增一아함경, 雜아함경

잡아함경-685-137

근와(槿瓦) 2016. 10. 4. 02:21

잡아함경-685-137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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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一心]입니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렇다. 만일 거룩한 제자가 기쁨과 즐거움에서 멀리 떠나기를 닦고 배워 완전히 몸으로 증득한다면 다섯 가지 법을 멀리 여의고 다섯 가지 법을 닦아 만족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83. 무식락경(無食樂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음식이 필요한 기억이 있고, 음식이 필요 없는 기억이 있으며,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기억이 있다. 음식이 필요한 즐거움이 있고, 음식이 필요 없는 즐거움이 있으며,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즐거움이 있다. 음식이 필요한 평정이 있고, 음식이 필요 없는 평정이 있으며,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평정이 있다. 음식이 필요한 해탈이 있고, 음식이 필요 없는 해탈이 있으며,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해탈이 있다.


음식이 필요한 기억[食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5욕을 인연하여 생기는 기억이다. 음식이 필요 없는 기억[無食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비구가 탐욕을 여의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떠나, 각(覺)도 있고 관(觀)도 있으며 떠남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초선(初禪)에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이 필요 없는 기억이라고 한다.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기억[無食無食念]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비구가 지니고 있던 각(覺)과 관(觀)을 쉬고 안으로 깨끗한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제2선에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기억이라고 하느니라. 음식이 필요한 즐거움[有食樂]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5욕을 인연하여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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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즐거움과 기쁨이니, 이것을 음식이 필요한 즐거움이라고 한다. 음식이 필요 없는 즐거움[無食樂]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지니고 있던 각과 관을 쉬고 안으로 깨끗한 한마음이 되어, 각도 없고 관도 없으며 선정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이 필요 없는 즐거움이라고 한다.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즐거움[無食無食樂]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비구가 기쁨과 탐욕을 떠나 평정한 마음으로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에 머무르고, 저 성인들께서 말씀하신 평정에 안락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즐거움이라고 하느니라.


음식이 필요한 평정[有食捨]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5욕을 인연하여 생기는 평정이니, 이것을 음식이 필요한 평정이라고 한다. 음식이 필요 없는 평정[無食捨]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저 비구가 기쁨과 탐욕을 떠나 평정한 마음으로 바른 기억과 바른 지혜에 머무르고, 저 성인들께서 말씀하신 평정에 안락하게 머무르는 제3선에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이 필요 없는 평정이라고 한다.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평정[無食無食捨]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비구가 괴로움도 여의고 즐거움도 쉬어, 근심과 기쁨은 이미 벗어났고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아 평정하며, 깨끗한 기억에 한마음인 제4선에 원만하게 머무르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평정이라고 하느니라.


음식이 필요한 해탈[有食解脫]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색(色)과 함께 행해지는 것이다. 음식이 필요 없는 해탈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무색(無色)과 함께 행해지는 것이다.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해탈[無食無食解脫]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저 비구가 탐욕에 물들지 않고 해탈하며, 성냄과 어리석음에 마음이 물들지 않고 해탈하는 것이니, 이것을 음식도 음식 없음도 없는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484. 발다라경(跋陀羅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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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발다라(跋陀羅) 비구와 존자 아난도 함께 기수급고독원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존자 아난이 존자 발다라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서로 문안인사를 나누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섰다. 이 때 아난이 발다라 비구에게 물었다. 무엇을 봄[見]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까? 무엇이 들음[聞] 중에 제일이고, 무엇이 즐거움[樂] 중에 제일이며, 무엇이 생각[想] 중에 제일이고, 무엇이 존재[有] 중에 제일입니까? 존자 발다라가 존자 아난에게 말하였다. 자유자재로 만들어내고 마음대로 변화하는 세간의 아버지인 범천(梵天)이 있습니다. 만일 그 범천을 본다면 이것을 봄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아난이여, 어떤 중생은 떠남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겨 곳곳마다 윤택하고 곳곳마다 기쁨에 넘치며 온 몸에 가득 차지 않는 곳이 없나니, 이른바 떠남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냅니다. 그는 삼매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쳐 온 대중들에게 '지극한 고요함은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고, 지극한 즐거움은 떠남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이다'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는다면 이것을 들음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또 아난이여, 어떤 중생은 이 몸에서 기쁨을 여읜 즐거움이 윤택하여 곳곳마다 윤택하고, 기쁨이 넘치고 충만하여 온 몸에 충만하지 않은 곳이 없나니, 이른바 기쁨을 여읜 즐거움입니다. 이것을 즐거움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생각 중에 제일인가? 아난이여, 어떤 중생은 일체의 식입처(識入處)를 벗어나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소유입처(無所有入處)에 원만하게 머무릅니다. 만일 그런 생각을 일으킨다면 이것을 생각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무엇이 존재 중에 제일인가? 또 아난이여, 어떤 중생은 무소유입처를 벗어나 비상비비상입처(非想非非想入處)에 원만하게 머무릅니다. 만일 그런 존재를 일으킨다면 이것을 존재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존자 아난이 존자 발다라 비구에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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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그렇게 말합니다. 당신도 또한 그들과 같으니,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제가 방편을 써서 당신에게 묻겠으니 당신은 자세히 들으십시오. 당신을 위해 설명하겠습니다. 그 관찰한 바대로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봄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 들은[고려대장경에는 '문(問)'자로 되어있으나 앞뒤의 문맥으로 보아 '문(聞)'자라야 옳다. '문(聞)'자로 바꾸어 번역하였다.] 바대로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들음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생겨난 즐거움대로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즐거움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그 생각한 바대로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생각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대로 관찰하여 차례로 모든 번뇌를 다한다면 이것을 존재 중에 제일이라고 합니다. 이 때 두 정사(正士)는 서로 논설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485. 우다이경(優陀夷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병사왕[甁沙王 : Bimbis ra이고 빈바사라왕(頻婆沙羅王)으로 한역하기도 한다. 중인도 마갈타국의 왕으로 독실한 불교신자 였다.] 은 존자 우다이(優陀夷)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머리를 조아려 절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이 때 병사왕이 존자 우다이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모든 느낌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우다이가 말하였다.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즐겁다는 느낌·괴롭다는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 이 세 가지 느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병사왕이 존자 우다이에게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즐겁다는 느낌·괴롭다는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 이 세 가지 느낌에 대하여 말씀하셨다'라고 했는데,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두 가지 느낌인, 즐겁다는 느낌과 괴롭다는 느낌만 있어야 마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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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만일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곧 적멸(寂滅)입니다. 이와 같이 세 번을 말했지만, 우다이는 왕에게 세 가지 느낌이라는 것을 설득시킬 수 없었고, 왕도 또한 두 가지 느낌이라고 존자를 설득시킬 수 없었다. 그들은 함께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린 뒤에 한쪽에 물러나 섰다. 이 때 존자 우다이가 앞에 했던 말들을 세존께 자세히 아뢰고 여쭈었다. 저는 세 가지 느낌이라고 왕을 설득시킬 수 없었고, 왕도 또한 두 가지 느낌이라고 저를 설득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일부러 함께 찾아와 세존께 그 뜻을 여쭙습니다. 정확히 몇 가지 느낌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우다이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때로는 한 가지 느낌을 말하고, 때로는 두 가지 느낌을 말하며, 세 가지·네 가지·다섯 가지·여섯 가지·열여덟 가지·서른여섯 가지 ……(내지)…… 백 여덟 가지 느낌을 말하고, 때로는 한량없는 느낌을 말한다. 어떤 것이 내가 말하는 한 가지 느낌인가? 존재하는 모든 느낌은 다 괴로운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니, 이것이 내가 말하는 한 가지 느낌이다. 어떤 것이 두 가지 느낌인가? 몸의 느낌과 마음의 느낌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을 두 가지 느낌이라고 하느니라. 어떤 것이 세 가지 느낌인가? 즐겁다는 느낌·괴롭다는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어떤 것이 네 가지 느낌인가? 이른바 욕계(欲界)에 얽매이는 느낌·색계(色界)에 얽매이는 느낌·무색계(無色界)에 얽매이는 느낌과 얽매이지 않는 느낌이니라. 어떤 것을 다섯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즐거움의 근본·기쁨의 근본·괴로움의 근본·근심의 근본·평정의 근본이니, 이것을 다섯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여섯 가지 느낌이라고 말하는가? 이른바 안촉(眼觸)에서 생기는 느낌과 귀·코·혀·몸·뜻의 감촉에서 생기는 느낌이니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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