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전기-1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0. 묘장왕, 대노하여 공주를 화원으로 내쫓다
공주는 잡념망상을 떨치고 일심전력 오직 수행참오에 매진하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일월한서(日月寒署)의 변화는 빨라 어느덧 공주, 16세가 되는 해를 맞게 되었다. 나이가 듦에 따라 공주의 수행은 점차 깊어갔고 일익진보하여 일루의 광명을 찾아낸 마음에는 한치의 오염없이 순진무구 그대로 정진해 나가고 있었으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공주의 수행에도 어김없이 마장(魔障)이 닥쳐오고 있었다.
묘장왕은 왕비의 탈상을 끝내자 묘음공주와 묘원공주의 부마(駙馬=사위)를 이어 맞아들였다. 묘음공주에는 문관인 초괴(超魁)를, 묘원공주에는 무관인 가봉(可鳳)을 맞이하여 혼인케 하였으나 묘선공주의 혼인에는 비상히 신중을 기했다. 왕비 생전에 같이 정한 양위문제도 있고 하여 이제 왕비와 약속한 일을 실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공주는 한창나이로 성장하여 고귀한 기품은 막 피어오르는 연꽃같았고 아름다운 모습은 보는 이마다 칭송이 자자했기에 급히 서둘러 서랑(駙馬)을 맞이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아나라를 위시한 중신들에게 그 뜻을 밝히고 인재를 물색하도록 명을 내렸다.
연로한 왕은 태자가 없으므로 늘 자신의 사후 나라 일을 우려하여 공주에 기대하는 희망은 갈수록 더해갔다.
어느날 묘장왕은 공주를 불러 마음속에 지금껏 생각하여 온 바를 모두 이야기하였다.
공주는 경악해 마지않으며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사양의 뜻을 표하고 자신의 의지를 밝혔다.
“아바마마! 소저 묘선은 일생을 수도에 전념하고 세인의 일체고액을 구원케할 생각이옵기에 결코 혼인을 않겠사옵니다. 소저는 이미 불전에 미타와 불타에 귀의할 서원을 세웠사옵니다. 이제 초지를 어기고 중도에 좌절하면 영원히 지옥에 빠져 다시 헤어나지 못하게 되옵니다. 통촉해 주시옵소서.”
공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묘장왕의 얼굴은 갑자기 붉으락푸르락해지면서 너무나 의외의 답변에 한동안 말문이 막혀 공주의 얼굴만을 멍청히 들여다 보더니 잠시후 진정을 되찾아 공주를 타이르기 시작했다.
“묘선! 잘 들어라. 엉뚱한 헛된 것에 탐닉해서는 안된다. 생각해 보아라. 세상사람 치고 가정을 꾸며 남녀가 한 부부로서 고락을 같이 하지 않는 자가 어디 있느냐? 주어져 있는 부귀영화도 마다하고 알 수도 없는 허무묘망(虛無渺茫)의 도에 빠져 망녕되게 헛것을 구할 필요가 있느냐? 너는 일시 불경에 현혹되어 심성을 전도케 된 것 뿐이니 뒤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이 아비의 말을 따름이 좋으리라. 알아 듣겠느냐?”
그러나 공주는 굳게 고개를 옆으로 흔들며,
“아바마마, 소저는 이미 뜻을 세워 굳게 결심을 했사옵니다. 이제는 다만 도를 구해 계속 수행해 힘쓸 생각뿐이옵니다. 제가 이렇도록 마음을 먹은 이유는 먼저 아바마마와 어마마마 생육의 은혜에 보답코저 함이며 나아가 수행공덕을 쌓아 장래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을 얻을 생각이옵니다. 그리하여 소저 자신의 악업까지 참회 소멸하여 중생을 대신해서 일체고뇌를 받아 이 몸을 세풍만회에 헌신할 비장한 서원을 세웠사오니 일체 후회는 없을 것이옵니다. 아바마마! 제발 소저의 뜻을 윤허하시옵고, 혼인을 취소하여 주시옵소서.”
공주는 조금도 결심을 흐뜨리지 않고 비장한 각오로 애소하였다. 묘장왕은 격노한 끝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이 아비 너를 양육하여 지대한 관심과 기대를 기울여 왔거늘 이토록 네가 변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세상에 나서 인간으로서의 윤리도덕을 다하면 그것만으로 더없이 훌륭한 것이다. 어째서 하필 고행하면서 도를 구하여야 할 필요가 있느냐?”
“아바마마의 일러주시는 말씀도 지당하신 말씀이오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생상도(人生常道)에 지나지 않사옵니다. 인간의 본명(本命)은 원래 하나같이 순선(純善)이었으나 혼탁한 세상에서 탐 · 진 · 치(貪 · 瞋 · 癡)에 빠져 자기 욕망을 만족시키고자 서로 싸우며 욕망은 탐욕망념이 되어 기모(機謀)를 다해 악업을 짓는 일을 그칠줄 모르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이룬 행복의 연이 다하면 다시 그대로 지옥에 떨어지게 되옵니다.”
묘장왕은 기가 막혀 말문을 열지 못하고 공주의 얼굴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공주는 다시 말을 이어,
“불타는 자각한 사람에게만 인연을 맺는다 하옵니다. 모든 중생들의 고를 없애주고 낙을 주고자 하지 않사옵니까?”
“착한 행을 하면 장차 복지에 행복을 받사오나 악업을 저지르면 처참한 형벌의 보복을 받게 되옵니다. 그때에는 부모형제 · 금은보화 · 전답토지 · 가옥재산 그 어느 것도 대신해 주지 못하옵니다. 소저 제일 두려워함은 생사의 윤회를 벗지 못할까 하는 염려이옵니다. 이 때문에 서랑을 맞이하지 않고 오로지 수행하여 도를 얻고저 하는 것이옵니다. 바라옵니다. 아바마마! 너그러이 자비를 내리시와 소저 신심에 허락을 해 주옵소서. 불타라 할지라도 범인으로 시작하여 성취한 것이옵니다. 소저 한사람의 아녀자로 입지하여 영원한 고통에서 해탈하려 하올 뿐이옵니다.”
마침내 묘장왕은 열화와 같이 대노하였다.
“허언을 그만 두지 못할까. 무슨 일이든 허락하겠으나 이 일만은 절대 허락할 수 없도다.”
하며 버럭 고함을 지르더니 가까이 있는 보모를 향하여
“공주가 오늘 이 모양이 되었음은 그대의 과실이 크도다. 삼일간의 말미를 줄 터인즉 그간에 개심하도록 공주를 타일러라. 만일 개심치 않으면 그대도 같이 엄벌토록 하겠노라.”
말을 마치자 만면에 노기를 띠운 채 소매를 떨치고 일어서 나가버렸다. 묘장왕이라고 공주의 참뜻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나라의 장래를 맡기려했던 공주가 자신의 뜻을 어기고 불도에 귀의해 버리려 하니 지금까지의 모든 계획이 뒤집혀 수포로 화해 버려 암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묘장왕도 이제는 연로하여 하루라도 빨리 왕위를 양위한 후 나머지 생애를 편히 보내고 싶은 생각이 적지아니 들고있던 즈음이었다.
근래에 들어서 점점 그러한 생각이 굳어지고 있던 참에 공주로부터의 의외의 대답을 듣고나니 아연해진 나머지 대노하게 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난처하게 된 것은 보모였다. 어찌해야 할지 난감했으나 공주의 결심을 돌이키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이미 단정짓고 있었다. 도저히 공주의 굳은 신심을 돌이키지 못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왕명을 거스릴 수도 없는 일이었으므로 왕의 뜻을 몇 번 권하였으나 공주의 철석같은 마음은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어떠한 중한 처벌을 받더라도 혼인만은 절대로 할 수 없사옵니다.”
라고 단호히 말할 뿐 더 이상 입을 열지도 않았다.
보모는 결국 자신도 같이 수행을 해왔기에 누구못지 않게 공주의 심성을 잘 알고 있어서 더 이상 같은 말을 계속하는 것은 무용한 처사임을 알고 자신도 함께 처벌을 받을 작정을 하게 되었다. 삼일째가 되자 묘장왕은 불같이 보모를 불러 결과를 물었다. 보모는 사실 그대로 주상할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묘장왕은 보모의 말을 듣자 대노하여 고함을 질렀다.
“그처럼 고를 바란다면 바라는대로 해주마. 공주의 옷을 벗기고 헌옷을 입혀 후원의 화원에 내어보내 꽃밭 일을 하도록 해라. 만일 꽃을 상하게 하거나 손질을 게을리하여 꽃피는 것이 충분치 못하면 더 중한 벌을 과할 것이다.”
보모 실색하여 물러나려 하자 묘장왕은 다시 말을 이어
“전비(前非)를 뉘우치고 명에 따르지 않는다면 공주의 명호마저 취소하여 버리고 궁녀나 잡역부와 같이 대할 것인즉 그리 알도록 일러라.”
이러한 왕지가 궁밖의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자 성내외의 민심은 크게 흔들렸다. 모든 사람들이 착하고 갸륵한 공주를 동정하면서 안타깝게 여기어 공주가 무사하기만을 빌 따름이었다.
“불쌍하게도 가녀린 공주에게 거친 정원 일을 시키다니.”
하면서 여인네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거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동정과 불안으로 수군거리고 있을 때 공주는 이와는 반대로 착 가라앉은 마음이 되어 이제부터가 진짜 수행이며 지금까지는 껍데기 수행일 뿐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수행하는 동안에는 백귀야차와도 다투어야 하며 악마와 수라의 시련을 받지않으면 정법을 성취하지 못한다. 여하한 고통에도 굴함이 없이 참고 이겨내지 못하면 불조비의(佛祖秘義), 무상보리를 증득할 수가 없다」라고 생각했다.
금수나사의 공주복을 벗어버리고 평궁녀복으로 갈아입은 공주는 보모와 함께 후원의 꽃밭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로부터 생래 해보지 못한 노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꽃밭의 풀을 뽑고 거름을 주고 꽃씨를 거둘 때까지 물통으로 물을 날라와 꽃밭에 뿌리는 등 쉴 사이없이 일을 했다. 화원은 매우 넓어서 수백종의 꽃이 피어 있었으므로 건장한 남자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보모가 잘 거들어 주어 저녁 해질 무렵이면 겨우 모든 일을 끝낼 수가 있었다.
본래 세 공주가운데서도 가장 보모의 귀염을 받던 몸으로 궁중의 깊은 방에 거처하면서 전혀 노역을 해본 일이 없던 공주에게는 분명히 힘든 일이었다. 해본 적 없는 노역을 이삼일 하고나자 수족이 부르트고 짓무르기도 하여 피로에서 오는 괴로움의 기색이 짙었으나 며칠 지나니 오히려 묘요(妙要)를 회득(會得)하여 휴식하는 시간을 이용해서 정좌명상을 이어 나가는 것이었다. 묘장왕은 공주의 몸으로서는 도저히 괴로움을 이기지 못할 것이므로 중도에 뜻을 꺾고 마음을 번의할 것이 틀림없다고 여기고 있었으나 공주는 뜻밖에도 그와는 반대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정도의 고난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아무런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지금 받고 있는 고난은 마장의 첫 관문에 불과하며 이를 뛰어넘지 못한다면 영원히 득도의 희망을 가질 수 없게 되리라. 달게 이를 받아 이것을 초월해야 바야흐로 대광명의 피안(彼岸)에 도달하리라.」
공주는 노역을 하는 가운데 갈수록 이러한 결의가 명료해져 갔다. 변심은 고사하고 더욱 더 굳세져 부동심으로 뿌리박혀 육체적 고통을 받아도 마음은 반해서 중화청정할뿐더러 기분 역시 침착하고 상쾌할 뿐이었다. 점차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일에 익어가며 오히려 일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일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게 되어 갔다.
백화는 한송이도 상하지 않고 만발했으며 각기 아름다움을 경염하는 듯 다투어 피어 한나무 한가지가 모두 만발한 꽃으로 가득하여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했다.
묘장왕은 때때로 시종에 명하여 공주 모르게 동정을 엿보게 했으나 위와 같은 소식을 듣고 불같이 화가 났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루빨리 번의시키지 않으면 안되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궁리하다 어느날 언니공주를 보내 설득시키는 것도 일책일 것 같아 묘음 · 묘원 두 공주를 불러 상의를 했다. 두 언니로부터 결혼생활의 즐거움과 가정의 행복함을 들려주고 보여준다면 아무리 강했던 마음일지라도 점차 봄눈처럼 녹아 없어지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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