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전기-9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공주 묘선(妙善)은 왕비의 병색이 깊어지자 주야불철로 간호에 전심을 기울였다. 공주가 변고를 당한 이후로 왕비는 특별히 공주의 거동에 주의를 기울여 항시 4, 5인의 궁녀를 가까이에 시봉케하여 궁녀들로 하여금 하시라도 외부에의 출입을 엄히 제한하도록 하였다.
궁녀들에게는 공주와 더불어 놀이를 하거나 함께 어울리는 일이 없도록 엄한 분부를 내렸다. 공주는 궁녀들이 난처해짐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하고 조용히 궁안에서 경전을 탐독하거나 혹은 명상에 잠겨 좌선을 여행(勵行)하였다.
그런 가운데 때로는 두 언니공주와 함께 거문고를 타기도 하면서 적적함을 달래곤 했다. 이렇게 조용히 지내던 중 뜻밖에도 어머니가 이름모를 병에 걸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 때 공주의 나이 겨우 7세이었으나 천성이 심후하고 공경심이 깊었기에 초조와 심려로 효심깊이 신불에 기도하고 천지에 기원하며 어머님의 완쾌를 빌었다.
「제발 저의 수명을 단축해서라도 어머님 수명을 연장해 주소서.」
그러나 공주의 애절한 염원과는 달리 왕비의 병은 갈수록 위중해질 뿐이었다. 어린 공주는 갸륵하게도 정성껏 약탕을 보살피는 등 어머님의 모든 뒷바라지를 손수 다하였다. 왕비가 잠시 제 정신이 들었을 때에도 곁에서 떠나지 않고 간호에 온 정성을 다 기울였다.
어머니가 괴로워 하면 즉시 서원을 세워 기도를 했다.
「일생을 미타(彌陀)에 귀의하여 중생을 구원하겠나이다. 바라옵나니 어머님의 수명을 연장케 해주소서.」
공주는 지극정성으로 기도해 마지 않았으나 왕비의 병환은 더욱 깊어져 명(命)이 다해 갔다. 9월 19일 밤 왕비는 힘없이 눈을 떠 곁에 있는 묘선공주의 손을 쥐고 “묘선아! 좀 더 오랫동안 너와 함께 살았으면 좋으련만, 너를 두고 가야하다니 죽어서도 내 어찌 눈을 감을꼬! 이 어미가 죽은 후에라도 아바마마 뜻을 잘 받들어 결코 어김이 없도록 하여라.”
여기까지 말하고 나자 왕비는 그만 설움이 복바쳐올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을 흘릴 뿐이었다. 어머님 임종의 유언은 공주의 가녀린 마음을 칼로 에이는 듯 뜨거운 눈물은 한없이 흐르며 비애의 감정이 앙분하자 일순 앞이 캄캄해 지면서 그만 실신하고 말았다. 그 순간에 왕비는 애석하게도 영겁의 저 세계로 가버렸다.
잠시 후 공주는 정신을 차렸으나 자기가 실신했던 순간에 모후가 서거한 것을 알게되자, 일층 비애에 몸을 떨면서 격하게 통곡해 마지 않았다. 식음을 전폐코 7일 7야, 방안에 들어 박혀 비탄해 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자기를 아끼고 사랑해 주시던 어머니를 잃은 총명다감한 어린 공주의 마음은 애통심상 그대로이었다.
이 애통해 하는 가운데 극에 달한 비통으로 인해 공주는 문득 한 영기(靈氣)를 오득(悟得)하게 되었다.
「이 세상은 끝내는 무상하며 생기는 모든 것은 반드시 멸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전(變轉)하며, 영고성쇠, 이합집산(離合集散)은 무한하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조만간에 이별하지 않을 수 없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도리를 절실하게 체험한 것이다.
「이른바 국왕의 권력을 쥐고있는 부왕에 있어서도 이 문제의 해결만은 방도가 없으리라. 인간은 누구나 환경에 따라서 대기(大器)를 이루는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리라. 」
공주는 희미하게나마 생각할 수가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낳아 길러 주셨다. 얼마나 갖은 노고를 거듭해, 오늘날까지 사랑으로 길러주신 것인가. 이 깊은 은덕에 만분의 일도 보답을 하지 못했는데 어머니는 나를 떠나셨다. 나의 죄는 비상히 중함에 틀림이 없다.」
공주의 상상은 갈수록 깊어 갔다.
「이런 죄를 멸하는데는 어떻게 하면 좋은가?」
공주는 이 한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공주의 마음속에 문득 섬광처럼 크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자비심깊은 미타불과 증각자(證覺者) 석가불이 깨달은 도(道)에 일심으로 귀의해서 구제를 구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불타가 구한 심법(마음의 진리)은 삼계시방을 초월하여 일체의 고액을 구제하며 구현칠조(九玄七祖) 모두 같이 극락정토에 가게하는 대법력이 있어 이제 이 자리에 죄를 참회해서 수행에 전심(專心)하면 반드시 광명이 있을 것이다. 심신을 바쳐 불가에 귀의하리라. 그리하면 어머니의 한없는 은덕에 보답이 됨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어머님을 구함에는 나의 공덕이 필요하다.」
이렇게 결심한 공주는 숙원을 성취실현할 때까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을 굳게 결심하였다. 그날부터 공주는 매일 경전의 참오(參悟)에 몰두하며 수행에 힘써 오랜 광음(光陰)을 여기에 집중했다. 확실한 삶의 목적을 정해 참다운 삶의 보람을 얻은 공주는 마치 고기가 물을 얻은 것처럼, 마음으로 환희하며 날마다 수행연마함에 따라 성장과 진보가 놀랄만 하였다.
모든 경전을 독파하고 일념에 소화하며 경뜻을 세밀히 깨달아 나가는 가운데 불타의 진수(眞髓)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진실이 다한 현묘오의(玄妙奧義)는 공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온 영혼을 경도하기에 이르렀다.
공주는 유가참오(瑜迦參悟)가 진전됨에 따라 한가지 큰 문제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불타가 득도한 길을 믿고 받들어 나가는 승려들의 수행에 큰 착오가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누구나 헛되이 형식과 염경(念經)에 힘을 기울여 마음이 따르지 아니한 계율과 근행을 과(科)하며 불타가 얻은 법의 진수(眞髓)와는 전연 멀리 떨어진 법을 행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곧 이어 공주의 심중에 한가지 사색이 정리통합되어 결론에 이르렀다.
「일반의 신앙을 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현세의 이익을 버리지마는 내세의 만족을 조건으로 귀의해서 수행한다. 열반의 도를 얻기에는 그와 같은 마음 가짐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다. 불타의 진종(참다운 종지)은 영원한 영적 소요자재(消遙自在)를 얻는 것이다. 생사의 윤회를 끊음에는 그들의 집념과 욕정을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 버리지 않으면 인과를 지어 점점 더 깊이 윤회를 벗을 기회를 없이할 뿐 되돌아 나올 수 없다. 」
「또한 불타의 진전(眞傳), 참다운 전법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이며 일반적으로 신봉되고 있는 것은 형식적인 것이며 진수가 아니며 진수는 불입문자로서 경전에 실려있지 아니함」을 발견했다.
이를 깨달은 공주가 이번에는 그 법을 얻으려 혼심을 다했다. 일심분란 경전에 일념하여 조관(照觀) 조찰(照察)했으나 심령을 잡는 진수는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었다. 공주는 불타의 지상교법을 오득할 것을 심중에 염했다. 불ㆍ법ㆍ승의 삼보는 별도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부처가 득도한 법을 구할진대 불타의 법이 아니면 안되며 그 법을 얻기 위한 승려가 아니면 안된다. 법은 눈으로 판단되는 것이 아니고 혼심으로 파고 드는데 있다. 나는 그것을 얻으려 하며 경전은 그에 도달하는 노정을 지시하는 것이며 별전의 심법(別傳心法)은 밝은 스승을 만나지 않는 한 목적을 이룰 수 없으리라.
기적도 같은 수단이며 참다운 극락은 공적무일물(空寂無一物) 무욕무색의 경계가 아니면 안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도 모르게 공주는 금강경(金剛經)의 한 게구(偈句)를 읊고 있었다.
불설(佛說), 「만약 색(色, 모든 물질)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가는 것이 되며,
여래(如來)를 보지 못한다.」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여기에 이르러 공주는 최고의 도를 구할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기어이 진법(眞法)을 얻게 되면 즉시 그 법을 중생에 베풀어 행자들을 계몽하리라. 」
이렇게 결심한 공주는 커다란 희망에 가슴이 부풀어 희열이 용솟음쳤다. 하늘은 항상 선인의 길을 끊지 않아 공주의 수행은 다행히도 돌아간 왕비의 여동생인 이모의 보살핌과 그 음덕으로 꽃이 열매를 맺듯 점차 여물어 갔다. 보모가 된 이모 또한 신앙심이 두터워 공주의 다시없는 이해자가 되었다. 보모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이후 공주를 계속 보살펴 언제나 친딸로 알고 끔찍이 사랑하여 곁을 떠나지 아니하여 공주가 있는 곳에 반드시 보모가 있었다. 보모의 따뜻한 보살핌에 공주는 큰 힘과 위안을 얻어 항상 같이 좌선수행하며 밤낮없이 정진하였다.
공주는 상(相)을 빌려 이치를 깨치게 하는 비유표현이 뛰어났기에 때때로 보모는 공주의 경전강의를 마음을 기울여 들었다. 실제로 공주 설법은 놀랄만큼 여러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도리, 도의(道理ㆍ道義)를 강론하면 깊은 이치에 통철되고 그의 웅변은 그칠 줄 모르며 단좌명상은 원숙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두 언니들은 냉정한 눈으로 공주를 이상히 보며 은연중 공주를 정신병자로 보고 가끔 그 이상한 점을 왕에게 일러 바치고 있었다.
“일국의 왕녀로 태어나 부귀영화를 목전에 두고도 신불(神佛) 따위의 망상에 빠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비웃나이다.”
묘장왕은 이런 말을 듣고는 다소 안색이 어두워지는 듯했으나 직접 묘선공주를 불러 물어보지는 아니하였다. 그때까지도 왕은 오직 왕비를 잃은 슬픔과 고적함에 마음을 달랠 길 없어 공주의 일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당시, 불가에 귀의하는 사람들은 고생이 심한 빈천한 신분이거나 의지할 데 없는 노인, 질병에 신음중인 자들, 과부나 그 아들, 패가망신한 자들의 집단으로 거의 걸식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으므로 왕족은 물론 상류의 양가 자녀들이 불가에 귀의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므로 공주가 그 신분을 버리고 불가에 귀의하겠다는 말을 들으면 묘장왕은 크게 놀라 격노할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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