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관세음보살전기-11

근와(槿瓦) 2016. 10. 7. 01:54

관세음보살전기-11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1. 두 언니, 설복차 갔다가 설복당하다


묘음공주와 묘원공주는 묘장왕의 뜻을 받들어 화원 옆에 있는 묘선공주의 거처로 갔다. 그때 묘선공주는 화원에서 꽃을 향해 응신(凝神)하고 있었다. 꽃의 무성함이나 작은 새의 지저귐도 눈귀에 들지 않고 바야흐로 천지가 정적으로 안정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공주는 근래 육체노동을 하고 있었으므로 도저히 앉아서 좌선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할 수 없이 일하는 중에도 응신(凝神)할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노동을 하면서 동시에 명상정좌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될 수 없으나 공주는 다망한 가운데에서 행주좌와(行住坐臥)의 행법을 회득하여 눈을 뜬 채 정신통일을 하고자 노력했다. 확실히 이는 불도수행에 있어 새로운, 묘선공주가 시도한 일대혁신이었다.


이 수행은 좌선에 비해 몇배 더 어려운 것으로 안계에 비쳐보이는 일체색성(一切色聲)을 보고 들으면서 이를 의식계에 취하여 들이지 않음이란 어느 경계를 얻기 전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공주는 능히 이를 성취하여 나날이 무아입신의 경지에 들게되어 무신의신(無神之神)을 얻고 참다운 입신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공주가 입정해서 묘지편조(妙智遍照)를 닦고 있을 때 두 언니공주가 묘선공주를 부르며 다가왔다.

“묘선! 뭘 하고 있지?”


공주는 두 언니공주의 목소리를 듣고 조용히 뒤로 돌아섰다. 공주는 오랜만에 언니들을 보았으므로 얼굴에 반가운 표정이 역력했다.

“언니! 잘 와 주었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먼저 앞서며 원사의 한 방으로 안내하였다. 묘음공주는 묘선의 야윈 얼굴과 남루한 의복에 가슴이 찌르르해지며

“묘선! 이러지 않아도 될 터인데, 쯧쯧…….”


우리는 묘선공주가 아바마마의 성미를 거슬려 이곳에서 노역을 하고 있다는 이야길 듣고 왔어.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지? 대체 왜 이러는거야? 이런 모습을 해가지고…….”


묘원공주가 즉시 말을 받아

“우리는 모두 이 나라의 고귀하신 국왕인 부왕의 혈육으로 얼마든지 부귀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신분인데 묘선은 어째서 스스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


두 공주가 묘선공주를 시기해 왔으나 묘선공주의 앙상해진 몰골과 몸에 걸친 남루한 의복을 대하자 자기들도 모르게 뜨거운 혈육(血肉)의 정이 치밀어올라 진심으로 묘선이 너무 가엾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을 돌이키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두 언니의 말을 묵묵부답으로 듣고만 있던 묘선공주가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무엇을 보고 고귀라 하리까. 태어남에 다름이 있어도 불성은 평등하여 똑같은 존귀한 성명(性命)을 구족하고 있을 뿐입니다. 한순간 눈을 감으면 일체가 공(空)이며 명리 또한 일장의 꿈과 같고 헛된 겉세상은 덧없는 것으로 일생의 고락은 일순간에 지나고 맙니다.”


묘원공주가 얼른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괴로움은 버리고 즐겁고 기쁘게만 살아가면 될 일이 아니겠어?”


묘선공주는 탄식을 하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저희들이 오늘날의 신분을 얻게된 것은 전세에 쌓은 덕에 의한 선과입니다. 이 영화의 몸을 바르게 수행하면 신불에 감통하여 천수를 다할 때는 서천에 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을 모르고 부귀영화로 교만하고 덕행은 커녕 죄악만 범하고 있습니다. 허영 사치로 날이 저물며 이로 인하여 남이 괴로운 줄을 모릅니다. 한순간의 즐거움을 위하여 만세의 죄악을 부지불식간에 행합니다. 그 즐거움이라는 것은 마치 두터운 고통의 층위에 엷은 즐거움을 살짝 발라놓은 것 같아서 그 감미의 껍질이 녹는대로 무한히 계속되는 괴로운 맛을 여지없이 두고 두고 맛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즐거운 세상, 이러한 순간적인 외적 기쁨을 환락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 순간적 기쁨이라는 것은 영원히 고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묘원공주가 계속되는 묘선공주의 설법에

“그렇다면 묘선은 부왕의 말씀을 거슬려가면서까지 이렇게 수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우리는 이제 결혼을 해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어요, 결코 불행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어디에 행복이 있어요? 사람이 세상에서 살되 백세를 넘지 못하니 일장춘몽이나 같습니다. 비록 우리 자매들 뿐 아니라 부모 자식 사이라 할지라도 끝내는 이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아바마마나 언니들이 저에게 결혼을 권하는 선의는 잘 알고 있으나 언니들은 단지 현재의 즐거움만을 알고 있을 뿐 이 행복이 다하면 곧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이를테면 재식정진(齋食精進)함은 살생을 금하며 입의 탐욕을 삼가기 위함입니다. 축생이라 해도 인간과 똑같은 영을 가지고 있어요. 단지 자신은 살을 찌우기 위해 이들의 생명을 마구 살해함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살생을 하면 원수의 인과관계가 맺어져 눈에 보이지 않는 악업이 바다보다 깊어 결국은 그 화를 면할 수 없는 법입니다. 수행자는 하늘의 생육의 덕을 체(體)로 하고 불타의 자비를 마음으로 씀(用)이며, 헛되이 모든 살고저 하는 목숨과 원수를 맺을 까닭이 없는 것이지요.”


하니 묘음공주가

“그러나 우리들에게 수행이란 너무 이르고 가혹해, 다시 못올 젊음의 창창한 세월을 고독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은 너무 허망하지 않아. 단 한번 사는 인생살이가 너무나 애석하게 여겨지는 걸.”


“수행이란 이를수록 좋은 것이지요. 영혼이 아직 오탁(五濁)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물욕에 집착하기 전에라야 참다운 묘지혜(妙智慧)가 나타나게 됩니다. 나무도 이미 말라버린 뒤에 급히 서둘러 비료를 주어 보았자 소용없는 것 아니겠어요? 수행의 시기도 마치 이 나무와 같습니다. 젊었을 때야말로 비료를 주고 물을 주며 흙을 북돋아야 할 때이지요. 이는 우리들 덕을 배양함과 같이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이미 뜻을 정하고 무량수ㆍ무량광불(無量壽ㆍ無量光佛)과 석가불에 귀의했습니다. 보살과 불타가 항상 같이 있는데 어찌 고독하겠어요?”


공주는 두 언니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한층 더 열성을 기울여 말을 계속했다.

“사람은 모두 죄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하물며 참다운 쾌락이 어디에 있겠어요! 태어나는 고통, 죽는 고통, 병앓는 고통, 늙고 죽는 고통 , 그 외 원한의 고통, 질투의 고통, 이별, 번뇌, 걱정, 구해도 얻어지지 않는 갖가지 고통은 일생동안 우리에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을 지닌 채 달리 어떤 즐거움과 기쁨이 있겠습니까?”공주의 설법은 지극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이어서 언니공주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혼속 깊이 스며드는 것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인생의 허망스런 부귀영화를 누림으로써 잠시 고통을 잊어보려 하는 것 뿐입니다. 그 때문에 서로 음모와 책략으로 싸우고 서로 죽이니 그 결과 얻었다 해도 어느 만큼의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눈을 돌려 깊고 넓게 다시 보면 모두 거품과 같이 실답지 못하며 그림자와 같은 가상(假想)의 존재 뿐인 것입니다. 이러한 부귀영화라는 것이 인류를 혼미하게 하고 죄를 짓게 하며 영세(永世)의 구원의 기회를 놓치게 합니다.”


두 언니들은 동생 묘선의 말에 차츰 감동되어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이제는 숙연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때 마침 한 마리 아름다운 나비가 세 사람 앞으로 나풀나풀 춤을 추며 날아들더니 맞은편에 있는 꽃잎에 날개를 접고 앉았다.


공주는 한층 말에 힘을 주면서

“보리(菩提)의 도는 광대무변하며 법문은 크게 열려 뜻있는 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살(菩薩)의 사랑은 무한하며 깊이 믿는 사람의 일체마장을 타파하여 소리를 찾아 구고구난(求苦求難)해 주십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청정케 하며 우환을 즉시에 소멸시켜 주기도 합니다. 일념으로 참(眞)에 귀의하면 정각을 얻게되어 육근청정의 경지에 들어가며 무인, 무아, 무상, 무념(無人, 無我, 無常, 無念)으로 영원한 소요자재가 얻어집니다. 그러하면 다시금 자비대원을 발원하고 설법에 진력하여 세간상의 일체고액을 제도하며 중생을 모두 극락에 인도할 수가 있게 됩니다.제가 선과를 쌓으며 불도에 귀의하여 전세의 업연을 끊으려 함이 여기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언니들! 뜻을 어렵게 아실지 모르지만 제 말을 깊이 성찰해 주시어요.”


두 언니는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동생의 설법에 완전히 자신을 잃고 지금까지의 자신들의 생각이 크게 무너져 감을 깨달으며 너무도 고원한 묘리에 자신들도 모르게 휩싸여들어 있었다.


공주는 이미 자석과 같은 덕력을 갖추고 있어서 사람들을 설복하고 포옹해 버리는 능력을 구비해 있었던 것이다. 비범한 재지(才智)가 사물에 적응하여 변화자재로 발현되어서 그 본성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두 언니들은 말없이 화원을 물러나와 궁중으로 돌아왔다.


동생 묘선의 말에는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하였던 절실한 의미가 깃들어 있어서 크나큰 안정과 그윽하고 따스하게 감싸는 자애를 느끼었다. 강한 감동을 받은 두 공주는 어떻게 돌아왔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돌아오자 곧 부왕을 뵙고 동생 묘선의 결의를 시종 주상했다. 묘장왕은 공주 묘선의 결심에 변함이 없더라는 이야기를 듣자 앞에 놓인 탁자를 두들기며 진노해 마지 않았다. 두 공주들의 위로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미 왕의 분노는 극에 달해서 국왕으로서의 존엄과 명예가 셋째 딸로 인해 여지없이 실추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가장 사랑하였고 또한 가장 기대를 걸고 있었던만큼 실망과 실망에서 오는 분노도 그만큼 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엄한 왕녀가 비천한 여승이 되어 나가겠다 하니 이는 국왕인 자신뿐 아니라 대(代)를 이어온 왕가(王家)의 체면에 완전히 먹칠을 해도 이만저만한 먹칠이 아닌 망신이었다. 왕은 눈앞이 캄캄해지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왕은 초조하고 괴로워 더더욱 나라와 자신의 운명이 암담해지는 예감이 들었다. 사랑이 증오로 변하지 않기를 바랐으나 고민과 고통, 불안, 초조가 한꺼번에 폭발하여 필경에는 한때나마 원수로 대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출전 : 大聖 관세음보살일대기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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