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520-104

근와(槿瓦) 2016. 9. 17. 00:18

대보적경-520-104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516 / 3476] 쪽

이렇게 모든 즈음 가운데 온갖 분별을 끊어서 가가 있느니 가가 없느니를 일체를 다 끊어 버리라. 몸이 있다는 소견[有身見]이 있으면 곧 즈음이 있다고 말하리니 이 즈음에 집착하면 불쌍한 자라 할 수밖에 없도다. 만일 몸이란 소견이 없으면 모든 즈음에 집착하지 않으리니 일체의 즈음에 집착 않으면 세간에 비치어 밝은 자 되리라. 일체의 즈음은 즈음이 아니라 모든 즈음이 진실이 아니로다. 일체 즈음의 자성과 형상이 그것이 근본 있는 것 아니로다. 일체의 즈음을 받지 아니하고 즈음이란 그것을 다 뛰어넘어 모든 즈음에 집착[着]하지 않으면 유신(有身)견해를 능히 끊으리. 만일 저 유신의 견해를 끊지도 않고 여의지 않으면 큰 갑주를 입지 못하며 큰 수레를 타지 못하리.


                                                                            [517 / 3476] 쪽

모든 즈음을 받음으로써 즈음의 형상을 분별하나니 앞 즈음이니 뒷 즈음이니 일체가 모두 다 분별이로다. 만일 저 유신의 견해를 일체를 이미 끊고 보면 그것은 끝없는 갑주를 입고 위없는 큰 수레 탔다 하리라. 모든 즈음의 문에 집착하지 않으면 그것이 세상에 슬기로운 이 그는 능히 갖가지 즈음에 일체를 모두 다 뛰어넘으리. 이것을 말미암아 불법 가운데 안온하게 보리에 나아가가리라. 보살은 능히 지혜의 힘으로 모든 법을 잘 관찰하므로 어떤 조그만 법일지라도 끊어 없앨 것 얻지 못하리. 언제나 교묘한 방편으로서 지(止)와 관(觀)을 잘 거두어 잡아서 하나의 실상을 사무쳐 알므로 모든 법의 모양[諸相]을 사무쳐 알리. 바른 법에 편히 머무르므로 큰 법의 광명을 얻게 되나니


                                                                            [518 / 3476] 쪽

이렇게 법의 광명 얻음으로써 저 모든 즈음을 결단하도다. 조그만 어떤 즈음이 있어 즈음과 즈음 아닌 것이 서로 응함을 보지 않나니 일체에 집착이 없음으로써 만일에 괴로운 중생을 보면 위로하여 타일러 말하기를 '이리와서 이 수레 타고 안온히 괴로움 벗어나라'고.


                                                                            [519 / 3476] 쪽

대보적경 제22권

대당 삼장 보리류지 한역

송성수 번역


7. 피갑장엄회 ②


“다시 무변혜야, 내가 생각건대 지나간 세상에 보살행을 닦을 때에 이러한 갑주를 입고 이러한 대승을 타고 모든 변제(邊際)를 뛰어넘어서, 능히 어둠을 없애고 능히 두려움을 제하며, 큰 정진력으로 한량없는 부처님 처소에서 이 보살의 갑주 장엄과 대승 장엄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며, 이 법을 관할 때에 부처님을 공경하고 존중하면서 '내가 이러한 갑주를 입었다. 내가 이러한 갑주가 있다, 내가 이러한 법을 얻었다. 내가 이러한 법이 있다. 내가 이런 갖가지의 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니라. 내가 그때에 '나'라는 생각이 없으며 신견(身見)을 멀리 여의고, 아만(我慢)을 멀리 여의며, 마음에 차별을 두지 않고 또한 분별이 없으며, 모든 중생을 거두어 잡아 들이고자 모든 부처님의 법장을 호지(護持)하며, 한량없는 중생을 성취하되 일찍이 한 생각이라도 지쳤다는 마음이 없었느니라. 내가 그때에 갑주를 버리지 아니하고 끝없는 대승법(大乘法)을 타고 나는 세상마다 능히 마군을 항복받아 마군의 권속이 패망하여 없어지고 마군의 사자도 떨며 도망갔으며, 차라가(遮羅迦)·로가야타(路伽耶陀)·파리바라차가(波利婆羅遮伽) 등 일체 외도와, 이 외도와 서로 부응하는 무리를 내가 다 항복받아 안온함을 얻게 하며, 일체의 사견[異論]을 다 꺾어 없애고 일체 외도를 다 항복받으며, 비뚤어진 길에 빠진 중생으로 이 대승에 의하며 온갖


                                                                            [520 / 3476] 쪽

선법의 멍에를 메어 주며, 모든 중생을 위하여 갑주법과 갑주 장엄을 열어 보이며, 또한 중생을 위하여 이러한 종류의 법을 연설하여 대승에 머물러 즐기게 하며, 이 대승에 머무른 자는 곧 일체 안락한 자구(資具)를 얻게 하였나니, 말하자면 유위(有爲)의 안락 자구며, 전륜성왕의 안락 자구며, 제석천왕·범왕의 안락 자구며, 무위(無爲)의 안락 자구를 얻게 함이니라.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이 법을 설할 때에 모든 중생으로 이 법 가운데 들어가서 성종성(聖種性)에 나서 큰 법의 당기를 세우고 사자후를 지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달려 나아가게 하였느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이러한 큰 갑주를 입고 이치와 같이 관찰하여 선택하되 마땅히 어떤 법에 향하여 나아갈까 하여 온갖 법을 다 능히 알고 보되 분별함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모든 보살이 바른 도에 머물러서 이치답게 아는 까닭이며, 정도에 향하여 나아가되 이치답게 본 까닭이니라. 이치답게 청정하면 분별이 아니며, 불별 아님도 아니니 저 분별이니 분별이 아니니 하는 가운데 평등치 못함이라. 이치다운 청정지견에 머물지 못함이니라. 분별이 없되 분별 아님이 없음으로써 저 분별과 분별 아님을 멀리 여의나니 이 도 가운데 집착함이 없으며, 집착 없음으로써 분별과 분별 아님을 멀리 여의나니 이 도 가운데 집착함이 없으며, 집착 없음으로써 분별과 분별 아님을 멀리 여의나니 이 도 가운데는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김도 없고 중생을 위하여 베풀어 하는 것도 없으며 또한 증익(增益)할 것도 없고 가지고 버릴 것도 없으며, 평정(平定)한 길에 머물러서 또한 분별함이 없이 과거·현재·미래에 다 능히 일 체 분별로 인연한 온갖 번뇌를 깨달아 알며, 온갖 법의 평등한 데 머물러서 뒤바뀐 뜻이 없는 것을 이 도에 머무른 자라 말하느니라.


무변혜야, 어떤 것을 도와 도의 청정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팔지성도(八支聖道)니 바른 소견·바른 사유[正思惟]·바른 말·바른 행위·바른 생활[正命]·바른 정진[正精進]·바른 생각[正念]·바른 선정[正定]이 그것이니라. 바른 소견이라 함은 능히 살가야(薩迦耶) 견해를 끊어 버리고 일체 사견의 반연하는 경계를 뛰어넘어서, 일체 견해가 어떤 처소에서든지 다 청정하며, 능히 모든 하는 경계를 뛰어넘어서, 일체 견해가 어떤 처소에서든지 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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