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525-105

근와(槿瓦) 2016. 9. 18. 01:28

대보적경-525-10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521 / 3476] 쪽

청정하며, 능히 모든 분별에 혹 진리[勝義]의 분별이거나 함부로 생각[遍計]하는 분별을 다 깨달아 알되, 곧 분별이 없어서 진리의 분별도 없으며 함부로 생각하는 분별도 없어서 비뚤어진 생각에 머물지 아니하며, 비뚤어진 사유를 끊고 능히 바른 생활의 도를 보며 바른 생활을 본 생각으로 생활 봄이 청정하여 생활에 머무느니라. 이렇게 이치답게 능히 청정한 몸의 업[淸淨身業]·청정한 말의 업[淸淨語業]·청정한 뜻의 업[淸淨意業]을 보고 정업(正業)에 머물러서 저 말의 업과 말하는 자에 다 능히 정진의 견해로 정진을 잘 거두어 잡아서 바른 정진에 머무르며, 바른 견해로 바른 정진의 견해로 정진을 잘 거두어 잡아서 바른 정진에 머무르며, 바른 견해로 억념(憶念)하되 생각함이 없으며 또한 일부러 생각을 없애려 함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이 청정한 생각으로 바른 생각에 머무느 니라. 바른 소견의 삼매(三昧)로 저 삼매에 의지하는 일 없이 능히 삼매의 소견을 청정하게 바른 선정에 머무느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이렇게 볼 때에 일체처에 청정한 바른 소견을 얻어서 청정한 도에 머무나니, 이 청정한 도가 선장부가 닦을 행이 되나니 슬기로운 이가 존중히 여김이요, 성인들이 기뻐하시고 여래가 칭찬하심이라. 일체 마와 마의 무리·마의 사자와 마의 하늘 대중이 행할 곳이 아니며, 또한 일체의 외도에 집착하여 쟁론에 의지하여 행과 견의 비좁은 숲을 모든 도 아닌 데로 나아가는 로가야 등의 행하는 곳이 아니며, 모든 열반에 애착하는 자의 행하는 곳이 아니리라. 왜냐하면 함 없는 데 머무르면 곧 열반에 분별함이 없나니 열반에 분별하면 곧 모든 행에 분별함이니라. 왜냐하면 열반의 경계에는 모든 생각으로 분별함을 뛰어넘어서, 오히려 함 없음도 없거니 하물며 함 있음이 있겠느냐? 이 도는 능히 일체의 분별을 깨끗이 하여 곧 조금도 함이 없다는 분별도 없거니 어찌 일체 함이 있는 법의 분별이 있겠느냐? 만일 정도에 분별을 끊으면 곧 성도에 머무르며, 두려움 없는 도에 머무르며, 안온한 도에 머무르며, 안락의 도에 머무른다 말하나니 이 도는 능히 늙고 앓고 죽는 근심·괴로움이 없는 곳에 이르며, 이 도는 능히 자성이 없이 자성을 뛰어넘은 곳에 이르며, 이 도는 능히 일체의 성(性)과 성 아님을 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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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여읜 곳에 이르며, 이 도는 나타내어 보일 형상이 없으며, 색상(色相)이 아닌 곳에 이르며, 이 도는 허공과 같이 일체에 두루하여 능히 위없는 큰 궁전에 이르나니, 이렇게 간 자는 다 물러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곧 안은 쾌락을 얻으리라. 저 큰 궁전은 가히 나타내어 보이지 못하며 모든 사상(事相)이 없고 함 있음도 없고 함 없음도 없어서 이 함 있음을 없애고 이미 함 없음을 버리어서 중생에게 함 있음의 안락이나 함 없음의 안락을 줄 것도 없느니라.


무변혜야, 저 함 있는 열반을 좋아하면 오히려 함이 있는 안락도 구하지 않거니 하물며 능히 큰 궁전에 머무르겠는가. 큰 궁전 속에는 모든 베풀어 하는 일이 없고 시원하고 고요한 까닭에 열반이라 이름하나니, 탐냄·성냄·어리석음을 없애 버리고 모든 번뇌를 끊으며 애견[愛見]의 그물을 찢고 무명(無明)의 흐름을 말리며 뭇 독의 화살을 뽑고 불선법을 다하였으므로 열반이라 말하며, 일체의 교만과 질병, 뭇 괴로움의 핍박을 멀리 여의므로 열반이라 말하며, 마음과 의지와 의식[識]과 심소법(心所法)의 소행이 아니므로 열반이라 말하며, 모든 쟁론과 일체의 번뇌와 번뇌의 심부름꾼과 법의 생각을 쉬므로 열반이라 말하며, 모든 뜻으로 좋아함과 그 구하는 것을 끊고 또한 분별할 바의 대상이 없으므로 열반이라 말하느니라.


무변혜야, 이것이 큰 열반의 체성이 되나니 열반은 가장자리가 없나니 말로 선설할 수 없느니라. 만일 나아갈 것이 있으면 곧 도가 아니니라. 도는 본디 말이 없는지라 가히 선설할 수 없느니라. 모든 보살이 만일 이 도로써 열반의 큰 궁전에 나아갈 때에 또한 한량없는 중생으로 이 도에 머무르게 하느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이 이 도에 향하여 나아갈 때에 지치거나 권태증이 없으며, 또한 근심·번민이 없으며, 하고 싶은 대로 장엄되며, 장엄하는 곳을 따라서 낱낱 장엄에 중생을 거두어 잡아 들이어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여 중생들로 다 기쁘게 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도는 견줄 데 없으며, 능히 모든 허물을 깨끗이 하여 할 일을 끝내니 모든 부처님과 성문·연각이 다 이 도에 향하여 나아가되 서로 어긋나지 아니하며 그 땅에 이르지 못하며 그 원과 같지 못 하여서는 끝내 서로 여의지 않느니라. 어떤 것을 땅이라 하는가. 열반의 경지와 큰 궁전의 경지를 말하나니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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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과 같아서 무엇으로 비유할 수 없나니 오직 허공으로써 허공에 견줄 뿐이니 끝없이 넓고 크고 비고 고요한 것을 허공이라 이름하나니, 열반의 궁전도 또한 그와 같이 크게 비고 고요하여 주재자가 없으며, 또한 '나의 것'이라는 것이 없고 일체 중생이 그 가운데 들어가되 능히 털끝만한 분량도 차지하지 못하나니 끝없이 넓고 비고 고요하며, 한량없는 것을 큰 열반이라 말하며 큰 궁전이라 말하느니라.


무변혜야, 모든 보살의 이 거룩한 도는 모든 성문·연각이 지닐 것이니라. 이 도에 머무르는 자는 일체의 공덕 자량의 불퇴전을 성취하여 모든 중생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지으며, 거룩한 행으로 큰 장엄을 삼아서 이 도로써 향하여 나아가나니 이러한 장엄은 또한 성문·연각이 지닐 바가 아니니라. 모든 보살이 이 도에 머무를 때에 혹은 전륜성왕이 되더라도 무엇을 돌아보고 아낌이 없고 큰 위덕과 신통이 있어 능히 세간·출세간을 환히 알며, 혹은 제석천왕이나 대범천왕이 되더라도 탐착함이 없고 멀리 교만을 여의며, 모든 부처님 뵙기를 즐기고 바른 법 듣기를 즐기며, 한량없는 모든 하늘을 성취시키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나아가게 하느니라.”그리고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보살의 거룩한 도는 세간에 다시 위가 없나니 여러 성자와 이승(乘)은 다 이 도에 나아가도다. 과거·미래 모든 보살이 큰 보리에 향해 나아가서 도로써 장엄함을 얻어서 이 도로써 열어 보이도다. 그 누구나 이 도에 이미 나아가거나 지금 나아가는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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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 바른 소견으로 이 도에 편히 머무르나니 과거·미래 모든 보살이 만일 평등한 견해에 머물러서 이 도 가운데 행하면 안락하게 보리에 나아가리라. 이 도가 가장 거룩하며 이 도가 가장 위가 없나니 실답게 능히 인도하여 나아가서 그 가운데 집착함 없을지니라. 그 누구도 이 도에 머무르며 이 도로 말미암아 행하는 모든 슬기로운 이로는 그 뜻이 흔들리며 움직이지 않으리. 이 도가 조금도 흔들려 움직임 있다 말하지 않는 이라면 이 움직임 없음으로 말미암아 저 움직임에 항상 멀리 여의리로다. 나는 이 도가 움직임도 없고 베풀어 함도 없으며 또한 또 보탤 것 없다 말하나니 이런 도이므로 가장 높다 하노라. 일체의 보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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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실히 이 도에 머무르라. 이 도는 애착함도 없고 또한 미워함도 없느니라. 이 도는 과거도 아니요 이 도는 미래도 아니며 그곳엔 분별할 수 없나니 이렇게 닦아 익힐지니라. 이 도는 번뇌가 없으며 이 도는 분별이 없으며 저 도리에 어그러지지 않나니 이렇게 편히 머무를지니라. 가장 거룩한 도에 머물러서 머무름 없음으로 머무름 삼나니 이 도에 머무는 이는 능히 청정한 성품을 얻으리라. 나는 여덟 가지의 성도가 모든 성자의 밟던 길이라 말하노라. 이 도에 머무는 이는 보리를 얻기 어려움 아니리라. 보살은 중생들의 부모라 이렇게 이 도에 머무르므로 능히 청정한 도를 얻거든 낱낱이 향하여 나아갈지니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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