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기도는 자기가 하라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84년도 겨울 어느 날, 나는 서울에서 함께 불교를 믿는 여성법우들 40여명과 더불어 가야산 백련암에 주석하시는 성철대종사를 찾아 뵙기 위해 관광버스를 대절하여 서울을 떠나 가야산을 찾았다.
차 안에서 여러 여성 불자들은 가야산에 도착하기 전부터 성철 대종사의「불전삼천배」에 대해서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번도 뵙지 못한 성철 대종사 친견과 법어에 대하여 큰 기대를 거는 불자도 많았다. 나 역시 그 분을 만나면 어떤 모습과 법어를 내릴까 가슴이 설레었고, 과연 이 추운 날씨에 삼천배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어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었다.
백련암이 자리하고 있는 가야산은 온통 눈에 덮여 마치 일본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설 제목인「설국(雪國)」을 연상케 하였다. 특히 백련암은 고산 지대에 위치한지라 눈은 더욱 많았고 바람 또한 몹시 차가왔다. 삼천배를 하지 않고 성철대종사를 만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힘든 삼천배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슬그머니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법우들도 대동소이한 느낌을 갖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의 나태함일 뿐이었다.
성철대종사를 모시는 시자스님이 와서 백련암 법당에 인도 삼천배를 권장하고 약간 설명을 했다. 때는 이미 사위가 어두워 있었다.
백련암 법당의 마룻바닥은 가위 얼음장이었다. 어찌할꼬, 어찌할꼬.....40여명은 작은 법당에 들어와 춥고 떨리고 발이 시려 발을 동동 구르며 당황했다.
그러나 성철대종사의 법어를 듣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난도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 일행들은 다같이 삼천배를 해 봅시다는 누군가의 큰 구호소리에 맞춰 드디어 정성을 다하여 불호를 외우며 일배 이배 불전에 절을 하기 시작했다.
삼천배를 다 마치니 전날의 어두움은 사라지고 새로운 미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밤이 새도록 절을 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처음 절을 시작할 때에는 춥고 떨렸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두 몸에서는 더운 기운과 땀이 흐르고 있었다.
「드디어 삼천배를 해냈다!」
일행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환희작약했다. 자, 우리는 이제 삼천배의 관문을 통과했다. 성철대종사를 만나자 우르르 염화실로 안내되어 들어갔다. 어떠한 법어를 내리실까, 나는 누구보다도 기대가 컸다.
솔직히 나는 성철대종사께서 들려주실 긴 법어를 기대했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가고 있었다. 대종사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둥글「圓」자를 쓴 백지 한 장씩을 나눠주고 집에 가면 매일 원자 앞에 108배씩 참회기도를 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법당에 가서 부처님께 시주를 하는 것도 좋지만 법당 가는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불행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 불행한 사람에게 시주하라. 그것이 참 불공이다.」
그 다음에 성철대종사는 한 사람씩 불명을 지어 주는데 나를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너는 무슨 생각이 그리 많느냐? 번뇌를 버리고 참된 도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道念心>으로 하겠다. 앞으로 쓸데 없는 생각 말고「道」만을 마음속에 생각해라. 알았느냐?」
나는 내심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해도 잡념이 그치지 않는데 어찌 그것을 아셨을까, 놀라웠고 부끄러웠으며,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이 우러나는 것이었다.
우리는 좀 더 깊고 오묘한 법어를 기다렸으나, 성철대종사는 웬지 일행 중에 따라온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시는 것이었다. 원 세상에, 법어는 내리시지 않고 아이들과 금새 친구가 되어 장난만 치시니 어찌된 셈이야. 일행 중 한 여성불자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렇게 중얼대는 것이었다.
그때 어느 여신도가 방에 들어와 성철대종사께 오체투지하고 무수히 절을 하며 감사의 말을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얼마 전에 병원에서 장암으로 죽음을 선고 받고 백련암에 찾아와 우는데 대종사께서 그녀에게 이렇게 이르셨다고 했다.
「너 죽는 것이 좋으냐, 매일 삼천배를 내가 그만 두라 할 때까지 하겠느냐?」
「큰스님,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그럼, 삼천배를 불전에 올리도록 하여라.」
그녀는 어차피 죽음을 선고 받은 몸이므로 죽기 살기로 대종사의 가르침을 따랐다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대종사께서 삼천배를 중지하고 병원에 갔다 오라고 하셨다.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해보았더니 놀랍게도 기적처럼 장암이 없어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병을 나은 그녀는 그 후로 부처님의 위신력을 믿고 가끔씩 대종사를 찾아와 보은의 절을 올린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이 하산할 때, 대종사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작별사로 주셨다.
「말세 중생은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하는 거야. 여러분은 음 12월 추운 날에 불전 삼천배의 기도를 각기 하였으니 큰 기도를 하고 가는 셈이지. 나의 법어는 그 기도에 비하면 사족이라네.....」
몇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서울의 복잡한 삶을 살면서도 가끔씩 엄동설한의 백련암에서 삼천배를 다 마쳤다는,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긍지 같은 것을 느끼며 환희심으로 뿌듯해 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가슴에 환희심이 가득할 때 사바세계가 곧 정토가 아닐 것인가? (筆者名 : 道念心)
출전 : 큰빛 큰지혜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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