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물리이론에도 정통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성철대종사께서 운달산에 위치한 고찰 문경 봉암사에 거처를 옮긴 것이 65년 봄이다. 그러니까 6· 25 사변 이후 대중을 거느리시고 규칙을 세우신 처음의 일이었다.
더욱이 대중과 수련온 불자들을 위해서 처음으로 법회를 가졌으니 후일「운달산 법회」라고 불리워진 그때의 법문은 한국불교 중건의 한 장이 되어 족한 것이었으며, 선종 교리의 정립이라는 점에서 전무후무한 불사이었다. 이후 가야산으로 이어진 교화의 시작이었고 재가불자의 참여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 포교하다가 돌아가신 ㄷ거사의 귀의는, 대작불사를 계획하는 인연이 되어 뒷날 자기 재산을 모두 희사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하였던 것이다.
당시 법회에 참석하였던 모든 사부 대중은 오늘도 나름대로의 불사에 매진하고 있으며, 스님의 해박하신 교리와 선 수행력에 지금도 존경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일일부작 일일불식」청규의 실천을 몸소 행하시고, 첨단의 과학서적과 자료를 구하시어 한걸음 앞서 불교의 이론을 전개하시는 스님의 혜안에 일급 학자들이 아연실색한 것도 그때의 일이다.
불교를 2천여년 전의 교훈 쯤으로 생각하려는 그들에게 최첨단 물리학의 이론으로 설명하시던 스님의 선견지명에 그들은 말을 잊었었다.
「양변을 여읜」중도의 선언은 변증론이 따르지 못했고,「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설명에 상대성 이론이 뒷받침이 되었다. 최면술의 이치로 육도윤회를 설명하시었고 더더욱 전생 기억의 인용은 불교교리 설명의 합리성을 밝히는 효시가 되었다.
금강경의 사상설을「주관· 객관· 공간· 시간」으로 설명하신 스님의 지혜는 놀라운 경지였다.
「연기법문」의 시간의 절대성을 배제한 설명은 우주과학의 기초 이론에 앞서는 훌륭한 논리였다.
동산 노스님의 입적으로 범어사를 다녀오신 이후 해인사에 주석하시기로 결정하고 백련암에 거처를 준비하였으니 오랜만에 가야산 귀향의 인연이 되었다.
출전 : 큰빛 큰지혜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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