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340-68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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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적의보살이 밀적금강역사에게 물었다.“인자는 이 경전을 내세워서 오는 세상에 일체에 유포하려 하는가.”“이 경전을 내세워서 저 말세의 여래가 멸도하신 뒤에 널리 염부제에 유포하여 모든 법사와 정사들로 하여금 빛을 입지 않음이 없게 하려 하노라.”밀적금강역사는 다시 말했다.“이제 선남자여, 부처님이 이러한 경전의 비밀을 내세우심을 모든 부처님이 다 보호하사나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 능히 보호하시면 곧 법을 잘 배우게 되며 문자에 집착하지 아니하되 언사가 다함이 없으며 능히 중단함이 없도다.
또 선남자여, 여래 지진께서는 모든 법을 폐하지 아니하시나니 무슨 까닭인가. 법은 본디 난 바가 없나니 그 난 것이 없으면 곧 무너짐이 없나니 이러므로 여래가 말씀하시기를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였다'함은 실로 난 바가 없도다. 여래가 머무른 곳은 법계(法界)에 있나니 법은 진여(眞如)의 법에 머무름이니 부처가 있거나 없거나 불법은 항상 그대로인 까닭이니라. 이와 같이 머무르므로 십이연기가 그릇 일어나지 않으며 연기를 어지럽히지 못하여 바른 법을 어지럽히지 못하느니라. 또 그 법을 관찰하건대 항상 언설이 없나니 그러므로 정법은 언설이 없다고 하느니라.“적의보살이 또 물었다.“밀적금강역사여, 그 바른 법을 수호하려고 넓은 서원의 갑주를 입음은 이것을 위하여서인가.”“적의여, 넓은 서원의 갑주를 입고 장차 바른 법을 수호한다 함은 모든 법을 어지럽지 않게 하려 함이요, 이 법으로써 함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이 바른 법이란 것은 일체 모든 법이 다 어지러울 것이 없나니 그것이 정법을 수호함이니라.” “어떤 것을 바른 법을 어지럽히는 것이라 하는가.” “공포심이 있으므로 산란한 마음을 일으키느니라. 또 선남자여, 끝내 어지러움이 없는 것을 어지러움이 없다 하나니 이것이 바른 법을 수호함이니라.” “밀적금강역사여, 어떤 방편으로 세상이 어지럽더라도 바른 법을 수호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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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자여, 세상이 어지럽기 때문에 바른 법을 수호하느니라. 왜냐하면 그 세상에서 삿된 육십이견이 유행하는 까닭이다. 보살의 소행은 공(空)으로 근본을 삼나니 이러므로 세상이 모두 어지럽더라도 능히 건너가느니라. 선남자여, 그 세속이란 것은 항상됨 있다고 계교하므로 '나'와 '나의 것'을 세우고 의지하여 안위를 삼나니 보살은 늘 항상됨 없고 고(苦)며 공(空)이며 몸이 아닌 법을 깨달을새, 이러므로 세상과 같이 다투어 세상과 한타령으로 살아가지만 보살은 방편으로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그 근원을 다하며 나고 죽음의 흐름을 뒤집어 미래제가 다하도록 보살은 공덕 쌓기를 게을리 하지 않느니라. 이러므로 세상과 더불어 쟁론하여 싸워 나가느니라. 세인은 오온·여섯 감관·십팔계에 의존하거늘 보살업을 닦는 이는 그에 집착함이 없나니 이러므로 세상과 쟁론하여 싸우듯 하도다. 왜냐하면 티끌 속에서 티끌과 같이하지 않는 까닭이로다.
이러므로 적의여, 보살이 장차 온갖 바른 법을 수호하기 위하여서는 곧 세상과 쟁론하여 싸우느니라.” “밀적이여, 행자가 어떻게 바른 법을 수호하는가.” “선남자여, 바른 법을 받아 지님으로써 그 몸을 수호하며 또한 중생과 사람의 수명과 형체를 보호하나니 온갖 법을 수호함은 수호함 없는 것이 되느니라.” “어떻게 받아 지니는가.” “'나'와 '나의 것'이 적연하며 중생상도 깨끗하여 중생상이 이미 고요하면 삼세의 모습이 곧 고요하며, 삼세가 이미 고요하면 불법이 곧 고요하며, 불법이 이미 고요하면 불토가 곧 고요하며, 불토가 이미 고요하면 모든 법이 곧 고요하나니, 그 모든 법에 들어갈 곳 없는 것을 곧 바른 법을 수호한다 말하느니라.”
그때에 세존께서 밀적금강역사를 찬탄하셨다.“착하다. 이것이 바른 법을 수호함이니라. 그 모든 법을 수호한다 함은 수호할 것 없으며 잃어버릴 것도 없음이니라. 또 바른 법을 수호한다는 것은 모든 경계와 접촉하지만 그 모든 생각들에 망상이 없나니 이미 생각함이 없을진대 그 모든 망상에 게으름을 행함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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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리라. 이것을 곧 온갖 법에 게으름 없음이라 말하며 아울러 도법이라 말하느니라.”그때에 회중에서 현왕(賢王)이라는 한 천자가 앞에 가서 부처님께 사뢰었다.“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의 언사가 매우 적연하여이다. 그 내보이는 것은 어떤 것이 옳은 것입니까?” “언사로써 바로 가르친 적연의 뜻은 일체 좋아하는 법에 적연을 행할 뿐이니라. 그가 법의 지혜로 더불어 이미 능히 인법을 더하므로 능히 지혜의 불꽃이 치연하며, 이미 능히 치연하므로 '밝게 빛난다[晃曜]'말하며, 이미 능히 밝게 빛나므로 적연이며, 이것을 곧 모든 여래중(如來中)의 총지(摠持)라 이름하느니라. 불도의 지니는 바가 이러하니라. 만일 법을 지니지도 아니하고 또한 법을 버리지도 아니하고 이러한 행을 펴며 이러한 말을 설할지니라.”이 현왕 천자에게 대답하실 때에 일천 비구는 번뇌가 다하고 마음이 열리었으며 일천 천자가 세속 번뇌의 때를 멀리 여의고 법의 눈을 떴다. 그때에 적의보살이 현황 천자에게 일렀다.“어디서 이런 변재를 얻었는가.” “만일 능히 일체의 장애를 끊어 버리어 다 얻을 것이 없으며 제일의를 얻은 자는 바로 의지할 데가 없나니 이것을 변재라 이르며, 스스로 깨달아 알되 신식(神識)이 변하지 않고 남을 거쳐 아는 것도 아니며 또한 설 데가 업는 것을 변재라 이르도다. 그 뜻이 방일치 않고도 모든 경계에 노니나니 만일 능히 집착할 것이 없는 법을 받들어 행하면 곧 이러한 변재를 얻게 되리라. 만일 온갖 법을 관찰하여 반복하고 자세히 살피어 다 알되 신식이 안정해야 변재를 얻느니라.
선남자여, 이와 같이 행자가 변재를 얻으려면 아무 데도 걸림이 없어야 하며, 경계에 따르는 행도 없이 흐르는 물결, 네 하수(四瀆)의 어려움을 건너서 나는 것도 없으며 일어남도 없으며 또한 없어짐도 없고 능히 없앨 자도 없는 것, 이것을 건넘[度]이라 하여 변재를 얻게 되느니라.”그때의 적의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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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현왕 천자는 어디로부터 이 국토에 이르렀기에 이러한 변재가 있나이까?” “아촉불국으로부터 왔느니라. 그곳에서 멸해 이 묘락(妙樂)세계에 난 것은 여래께서 연설하신 비밀경전을 얻어 보고 듣고자 함이니라. 적의여, 마땅히 알라. 이 현왕 천자 법실총지(法室摠持)의 마음에 들어갔나니 만일 한 겁이나 다시 한 겁을 지내면서 그 공덕을 찬양할지라도 그 변재의 즈음을 다하지 못하리라.” “어떤 것을 법실총지라 하옵기에 이 천자가 그 법을 따라 행하게 되었나이까?” “선남자여, 이른바 법실총지를 얻어 이르게 되면 총혜·문자(文字)의 다함이 없는 데로 들게 되나니 온갖 법이 다 이 집에 들어가되 법에 조작하는 바가 없나니 법실을 알아 사무치며, 법실을 받들어 행하여 모든 문자에 음향으로써 연설하여 입으로 설하는 바에 법의 집[屋]을 짓되 집이라는 것을 생각지 않나니 이것을 곧 법실 총지의 업에 들어간다고 이르느니라. 또 적의여, 법의 가히 들어간다는 것은 또한 모든 법이 가히 얻을 것이 없으므로 그 들어간다는 것은 오직 지혜에서 나온 것이며, 그 문자가 좇아온 데 없이 내실(內室:法室)에 들어가더라도 그 또한 문자가 내실에 나타남이 아니며, 어디로 지향코자 할 방향이 없으며, 또 그 문자가 널리 퍼져서 나아가되 머물러 대이는 곳에 또한 생각함이 아니며, 문자가 법을 따르는 것도 아니지만 또한 법 아닌 것도 아니요, 생각함도 없나니 그 문자는 모두 말이 없되 또한 말 아닌 것도 아니며, 늘고 줄지도 않느니라. 또 문자는 일어난 것도 보지 못하고 없어진 것도 없으면 문자를 짓지도 않고 잃어버리지도 않느니라. 또 적의여, 저 문자에는 문자가 있는 만큼 심수(心數)도 또한 있으며 일체가 이처럼 모든 법의 수가 그 돌아갈 바 있나니 저 모든 법의 수라는 것은 곧 수가 없음이니라. 무슨 까닭이냐? 법은 수에 돌아감이 아니기에 수가 있다 할 수 없나니 이것을 법수라 하느니라. 법수에 이렇게 따르는 것을 곧 법실에 들어간다 하나니 과거에 들어가지 않으며 나지 않으면 들어가 일어나는 법이 없으리니 그 낳은 것이 없으면 일어날 것도 없으리니 어떻게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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겠느냐? 들어갈 것이 없으므로 모든 법수에 든다 함이 다 이러하니라. 이와 같이 능히 법문을 체득하여 스스로 본디 없는 이치를 보아 곧 안주(安住)를 얻어 법실총지의 업에 들어가 중생심에 들어가나니 중생심에 들어감으로써 중생심에 따라 제도할 만한 자를 위하여 마땅히 설법하여 총지를 받는다면 이것을 '적의(寂意)'라 이르느니라. 적의여, 보살이 마음으로 때를 여의어 그 마음이 청정하고 유화하여 그 슬기는 매우 밝고 성행이 뛰어나 머무르는 바가 안상(安詳)해서 지혜에 잃음이 없고 원하는 바 견고하여 마땅히 제도할 만한 자는 마군이 능히 방해하지 못할 것 없으며, 번뇌를 항복받아 없애고 모든 원적을 제거하며, 그 힘이 왕성하여 마음에 겁약하지 않고 변재가 다하지 않고 말하는 바가 한량없으며, 귀의하는 바가 한량없고 지혜에 걸림이 없어 깨달음에로 들어가며, 그 밝음은 매우 멀고 길어 묘한 듯 진정한 말을 선포하며, 그 넓게 들음은 강과 바다 같으며, 삼매의 선정은 수미산이 바다에 처한듯하며, 대중에 있되 사자와 같고 세속법에 의지 않음은 마치 연꽃이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듯하며, 마음에 사랑하고 미워함 없기는 마치 백곡·초목이 땅으로부터 솟아 자라 만민을 편안토록 하는 듯하며, 번뇌의 때를 씻되 맑은 물과 같으며, 중생을 개화하여 온갖 고독(苦毒)과 재난을 불살라 버리되 치열하게 타는 불이 모든 초목을 살라 버리듯 하며, 두루 중생을 가르쳐도 마치 큰 바람이 땅 위를 스쳐가듯 하며, 평등한 마음을 행하되 보름달이 뭇 별들에 빛나듯 하며, 음욕·성냄·어리석음을 녹이되 햇빛이 어둠을 쳐없애듯 하며 마음·뜻·의식을 항복받되 마치 용장이 강적을 꺾어 베이듯 하느니라. 그 마음을 잘 다루기 마치 용왕과 같고 때를 따라 중생을 교화·성취시키기 마치 두터운 구름이 우레를 떨치고 비를 퍼붓듯 하면, 보살이 그 마음을 잘 다루어 법의 비를 뿌려 삼계를 윤택케 하며, 감로수를 뿌려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되 마치 하늘의 비가 바람이며 티끌을 씻어내듯 하며, 음욕·성냄·어리석음의 병을 치료하되 마치 양의(良醫)가 여러 사람의 병을 다스리듯 하며, 뜻을 세우되 없는 데에 두어 바른 법을 받들어 행하나니 곧 이 법왕의 시방을 교훈함이 또한 국왕이 만민을 다스리듯 하며, 일체의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살피어 교화하되 마치 사천왕이 사천하를 맡아 다스리듯 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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