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335-67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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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14권
서진 삼장 축법호 한역
송성수 번역
3. 밀적금강역사회 ⑦
그때에 밀적금강역사가 현자 대목련에게 말하였다.
“장로 목련아, 세존께서 칭찬하시기를 신통이 제일이라 하시니 당신은 또한 땅에서 이 금강저를 들어 보시오.”
그러자 대목련은 앞에 나와 금강저를 들려고 무한한 힘으로 사대해(四大海) 물을 위로는 해[日]에 대게 하고 그 세력으로 또 끌어 야마천에 이르게 하여 도력이 마치는 데까지 그 신통력을 뽐내어 옮기고자 하매 삼천대천세계가 위 아래로 진동하여도 능히 이 금강저를 털끝만큼도 움직일 수 없었다.
대목련은 그 희유함을 괴이하게 여겨 부처님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대성께옵서 저를 성문 가운데 제일의 신통이라 칭찬하셨나이다. 스스로 신통을 시험하와 이 삼천대천세계를 움직이기를 작은 발우를 집어 다른 불토에 던지듯 하오며, 저의 몸이 변화하와 난두화난(難頭和難) 용왕이 능히 수미산 같은 큰 통나무를 집어 삼키는 것을 항복받았거늘 이제 이 작은 금강저를 움직이지 못함은 무엇 때문이옵니까? 한 생각 사이에 해와 달을 잡아 끌어서 머물게 하고 손으로 만지기도 하거늘 능히 이 작은 금강저를 털끝만큼도 움직이지 못함은 무슨 뜻이 있나이까? 장차 저의 몸에 신통의 힘을 잃어버림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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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아, 신통을 잃음이 아니니라. 또 목련아, 보살 신통의 위신력의 감응이란 일체 성문·연각이 미칠 바가 아니니라. 가령 항하 모래처럼 많은 수의 모든 부처님 세계의 모든 수미산을 합쳐서 한 수미산을 이룰지라도 오히려 진동할 수 있지만 이 금강저는 움직일 수 없느니라. 보살의 위력으로 성취된 덕행은 불가사의하여 기특하기 이러하니라,”
그때에 현자 대목련은 희유함을 느끼고 입으로 '도지히 따를 수 없도다'라고 선언하고 사뢰었다.
“대성이시여, 보살대사의 위신력의 소치로 이 밀적금강역사가 금강저를 받들어 가짐이여, 이 밀적이 이제 지닌 힘이 부모에게 받아 난 육체의 힘이나이까? 신통의 힘이나이까?”
“부모에게 받아 난 육체의 힘이니라. 가령 보살이 신통력을 다 나타내어 보인다면 천상·인간에 다 사무치게 되리라.”
부처님은 밀적금강역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스스로 이 금강저를 들어라.”
그때에 밀적이 삼천대천세계를 움직이면서 자기의 오른손으로 금강저를 들어 허공에 던지니 허공에서 일곱 번 빙빙 돌고는 도로 밀적금강역사의 오른손에 머물러 섰다. 그때에 모여 있던 일체 회중이 희유함을 느끼고 다 합장하고 귀의하며 이구동성으로 각기 말하기를 “따를 수 없도다. 밀적금강역사의 그 힘이 매우 기묘하기 위와 같구려. 모든 중생으로 이러한 무궁한 힘을 얻게 하여 주오”라 하였다.
이때에 아사세왕(阿闍世王)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사뢰었다.
“보살이 몇 가지 법으로 이러한 힘의 다함 없는 기운을 얻게 되나이까?”
“보살이 열 가지의 큰 법이 있어서 이러한 다함 없는 큰 힘을 얻느니라. 어떤 것이 열인가. 첫째는 차라리 신명을 버릴지언정 부지런히 바른 법을 받아 지니느니라. 둘째는 일찍이 잘난 체하지 않고 겸손하고 조심스레 뜻을 낮추어 중생을 예경하느니라. 셋째는 억세고 사나워 감화하기 어려운 중생을 보고 인욕행을 세우느니라. 넷째는 굶주린 사람을 보거든 좋은 음식을 베풀어 충족시키느니라. 다섯째는 모든 공포에 떠는 중생을 보거든 권고하여 위안시키느니라. 여섯째는 만일 중생이 무거운 병에 걸렸거든 좋은 약으로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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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니라. 일곱째는 약하고 못난 사람이 남의 업신여김을 당하거든 공경하는 생각으로 불쌍히 여겨 소홀하게 여기는 자가 없게 하느니라. 여덟째는 깨끗한 진흙과 물로 여래의 법당을 발라서 그 헐고 이지러짐을 보수하느니라. 아홉째는 외롭고 괴로운 사람이 빈궁하고 곤액한 것을 보거든 항상 무거운 짐을 져서 그 어렵고 무거운 재앙을 덜어 주느니라. 열째는 만일 보호할 자가 없고 귀의할 곳이 없거든 항상 붙어서 건져 주되 그 말과 같이하여 변하여 잃지 않느니라. 이것이 열 가지니라.”
왕은 다시 부처님께 사뢰었다.
“보살이 인화(仁和)한 덕을 닦는 데 몇 가지 법이 있사와 언제나 항상 유화한 마음으로 머트러운 마음을 일으키지 않나이까?”
“보살이 인화한 것이 여덟 가지 법이 있느니라. 어떤 것이 여덟이냐? 첫째는 성품이 순직하여 아첨함이 없는 것이요, 둘째는 성행이 화아(和雅)하여 간사하고 거짓됨이 없음이요, 셋째는 마음이 진실하여 길이 허망함이 없는 것이요, 넷째는 심행(心行)이 견고하여 급하거나 비열함이 없음이요, 다섯째는 미혹함 없이 뜻을 늘 인화한 데 두는 것이요, 여섯째는 세상의 중우(衆祐)가 되어 특이한 덕행을 받아 닦는 것이요, 일곱째는 심행이 사무쳐 통달하여 집착한 바가 없음이요, 여덟째는 죄와 복을 생각하되 마음에 생각하는 바가 없음이니라. 이것이 여덟이니라.
다시 네 가지의 법이 있어서 심성이 순화하여 두루 자재하느니라. 어떤 것이 넷이냐? 첫째는 인간에 있어서 전륜성왕이 되어서 모든 부처님을 만나 뵙고 도심을 버리지 않음이니라. 둘째는 천상에 있어서는 천제석으로서 모든 하늘 가운데 하늘이 되어 항상 모든 부처님을 뵙고 도법을 준봉하는 것이니라. 셋째는 만일 범천상에 있으면서 자재를 얻어 도업을 심어서 도심을 헐지 않음이니라. 넷째는 항상 청정불토에 있어서 친히 모든 부처님이 설법하는 것을 만나뵘이니라. 이것이 넷이니라."
아사세왕은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을 믿음의 안좌처(信坐]라 하나이까?”
“대왕이여, 선지식으로 안좌처를 삼느니라.”
“보시는 무엇으로 안좌처를 삼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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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이여, 보시의 안좌처는 큰 부자로 재물이 넉넉하고 보배가 많으니라. 그 계를 지니는 자는 천상의 안좌처에 얻어 앉으며, 그 인욕을 하는 자는 얼굴빛이 깨끗하고 즐거우며 항상 단정함을 얻게 되며, 그 정진하는 자는 부지런히 닦아 도에 통달하고 즐거우며 항상 단정함을 얻게 되며, 그 정진하는 자는 부지런히 닦아 도에 통달하여 무리에 뛰어나게 되며 그 선정을 닦는 자는 항상 적정(寂靜)을 얻어서 모든 감관[根]이 어지럽지 않음이요, 그 지혜를 닦는 이는 모든 번뇌 때의 걱정을 끊게 되며, 그 널리 들은 자는 큰 지혜가 생겨 무슨 일을 묻든지 온갖 의심을 결단하여 나머지 맺음이 없게 하며, 부지런히 배우는 자는 끝내 위없는 정진의 도에 들게 되며, 그 항상됨 없는 '나'가 없으며, 적연(寂然)한 이치를 관찰하는 자는 이르는 바 안좌처에 뒤바뀐 소견을 녹여 버리게 되나니 이것을 믿음의 안좌처라 하느니라.”
또 물었다.
“때를 따르는 생각은 어떤 것이 안좌처가 되나이까?”
“대왕이여, 형상됨 없으며 괴로움[苦]이며 적멸함을 관하는 것이 바른 견해에 편히 머물러서 삿된 짓에 따르지 아니하고 신심이 청정하며 선정에 안좌하면 신통을 일으키느니라.”
또 물었다.
“도가 어느 곳에 있나이까?”
“벗어날 것 없는 곳에 편히 머물러서 도과를 이루어 삼계의 어려움이 없는 데에 있느니라.”
“벗어날 것 없다는 것은 어느 곳에 편히 머물러서 있나이까?”
“그 벗어날 것 없다는 것은 나고 죽음의 모든 걱정을 해탈한 데에 머물러 있느니라.”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어서는 어디에 안좌하여 계시나이까?”
“익힌 바 삼십칠도품의 법에 편히 머물러 있어 파괴할 바 없이 법바퀴를 굴리어 삼보의 가르침을 끊지 않느니라.”
누가 능히 부처님을 출현하게 하나이까?“
“대왕이여, 능히 독실한 믿음으로 본디없는 이치를 깨달은 자니라.”
“누가 능히 독실한 믿음을 일으키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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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히 보살심을 발함이 있는 자니라.”
“누가 능히 보살심을 발하나이까?”
“그 심정이 안정되어 어지럽지 않은 자니라.”
“누가 능히 심성이 안정되어 어지럽지 아니하리까?”
“그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닦아서 일찍이 끊기지 않은 자니라.”
“누가 능히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끊지 않으리이까?”
“그 일체 중생을 놓아 버리지 않는 자니라.”
“누가 능히 중생을 놓지 않으리까?”
“자기도 편안히 하고 일체를 편안히 할 자니라.”
“누가 능히 제 몸과 아울러 일체 중생을 편안케 하리이까?”
“능히 그 도를 일으키어 삼보를 끊이지 아니할 자니라.”
“누가 능히 삼보를 끊이지 아니하리까?”
“세속 번뇌를 버리는 것이 삼보를 끊이지 않게 함이니라.”
아사세왕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참으로 희유하나이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법률에 들어가는 일을 선포하심이여, 여래께서 마땅히 선포할 만한 법을 펴 가르치심은 유순인(柔順忍)에 이르게 하여 단멸(斷滅)이나 항상됨 있다는 업을 버리게 하고 보응의 과(果)를 잃지 않고 닦아 얻은 바 행이 어지러움 없는 데 들어가서 근본 선도 없고 악도 없지만 정업과 부정업에 부지런히 허물을 닦아 어그러지고 잃어버림이 없나이다.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이 원에 들어와서 온갖 의혹을 끊고 여래 정진의 법교를 수순하오며 누가 이 법을 듣고 의혹하리이까? 오직 숙세에 덕의 종자를 심지 않은 자로서는 나쁜 벗을 따라 믿지 아니하고 비방하리이다. 세존이시여, 우리는 일찍이 덕의 종자를 심어서 복덕이 없지 않으므로 이제 바른 법을 듣게 되오며 은덕을 갚고자 하오나 능히 뜻대로 못할 뿐이옵나이다.
모든 부처님이나 문수사리(文殊師利)와 같으신 자비의 덕으로써 이에 우리들을 위하여 온갖 의혹을 끊고 큰 광명을 나타내시리이다. 세존의 좋은 말씀은 범행을 갖추신 지극한 선지식으로써 대인의 자비와 상선(上善)의 반려(伴侶)가 되는 까닭입니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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