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330-66

근와(槿瓦) 2016. 8. 10. 01:13

대보적경-330-66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326 / 3476]

無上士도법어(道法御천인사(天人師)인 불세존이었다. 세계 이름은 '선주(選主)', 겁의 이름은 '불이(不移)'였다.

 

그 식의불은 순전히 일체 보살중을 교화하여 다 정진케 하여 말씀하되 '보살이 되어서는 법에 게으름이 없고 마음에 게으름이 없으며 몸과 목숨을 버리되 아까워 용력(勇力)이라, 자리에서 일어나 식의불 처소에 나아가서 예배하고 부처님께 사뢰었다.

 

'대성께서 말씀하심과 같이 우리는 그 뜻을 이어받고 서로 의논합니다. 만일 보살이 마음으로 우리들은 빨리 위없는 정진의 도를 얻어서 최정각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보살을 해태(懈怠)라고 이름하나이다. 왜냐하면 만일 보살이 정진하지 아니하고 생사(生死)를 싫증낸다면 이런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큰 도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살이 생사가 어렵다고 보면 곧 그 소견에 얽매여 멸도(滅度)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직 중생을 교화하므로 이에 정각을 이루나이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 보살의 법은 보행(普行)을 부지런히 닦아서 나는 곳마다 생사에 처해 있으면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 멸도케 하되 또한 교화한 바가 없나니 이러므로 세존이시여, 보살의 행은 생사를 중히 여기고 멸도를 공경치 않나이다. 보살의 행은 생사를 중히 여기므로 한량없는 부처님을 받들어 무량한 중생을 인도하여 교화하고 수없는 법을 듣고 중생의 생각에 들어가되 그들의 행하는 바 지성(志性)이 열반의 행을 좋아한다 하여 그들의 관을 중히 여기며 곧 스스로 타락하여 적은 뜻에 빠지게 되나이다. 만일 보살이 생사를 두려워하여 공포심을 품고 열반을 좋아하거든 마땅히 이러한 보살은 곧 타락하게 된다고 관할지니라.

 

보살의 행이 없는 타락으로서 여래의 행을 잃으면 저 모든 중생에게 죄의 허물이 있게 되나이다. 어떤 것을 보살이 불순한 행[不順行]이라 하는가 하면 성문·연각 지위를 좋아하는 이는 스스로 그 행을 관하되 중생을 교화하려 하지 않나니 이러므로 보살의 행이 없다고 하나이다. 그것은 성문법을 행하고 보살행이 없는 까닭입니다. 그것은 모든 성문의 행은 생사의 괴로움을 두려워하지만 보살은 한량없는 생사에 노닐되 구애되지 않나이다.'라고.

 

식의여래는 용력보살을 칭찬하셨다.

 

                                                                             [327 / 3476]

'착하다. 정사(正士), 네가 쾌히 이런 법을 말하되 말과 뜻이 익숙하도다. 보살이 도를 닦되 그 몸의 안일을 버리고 다른 사람을 버리지 않으며 항상 제 몸을 살피고 남의 허물을 찾지 않느니라.'

 

'어떤 것을 보살의 행할 것이라 이르나이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스스로 제행위를 바로잡아 중생을 위하여 이루고 패하는 일과 나고 죽음의 어려움을 연설하면서 한량없는 생사의 걱정을 받되 두려워하지 않으며, 성문·연각의 지위를 좋아하지 아니하고 보살행을 익히며, 삼계의 선()을 가까이하지 않고 선정을 깨달아서 악취를 분별하며, 방편과 선지(禪智)를 다 요달하며, 공덕·성혜(聖慧)가 다함이 없으며, 무생혜(無生慧)를 발하여 사람을 위하여 일체가 본디 없는 이치를 선설하며, 지혜는 나는 바 없되 그 받는 바를 알며, 모든 중생이 '''나의 것'이 없음을 요달하여 지혜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며, 모든 법이 적정함을 깨달았으나 모든 법을 보호할 줄을 알며, 모든 불국토를 사무쳐 보되 일체가 본래 공()임을 요달하므로 불국이 청정하며, 그 슬기가 선명하여 지혜가 슬기로우므로 온갖 법이 없음을 사무쳐 알며, 상호(相好)를 더욱 빛내어 장엄에 들어가며, 지혜에 행할바 없지만 인하여 받들어 따르며, 일체 덕의 근본을 일찍이 잊어 버림이 없고 시달림이 적고 일이 적으며, 세간 중생의 짓는 업에 항상 고난을 뽑아 주며, 몸과 마음이 말쑥하지만 공을 쌓고 덕을 포개어 꺼리고 싫증냄 없으며 선사(禪思)를 닦아 길이 고요한 법을 깨달으며, 바로 한 마음 정하여 방편으로 깊고 묘한 법을 깨달아 사무치느니라.

 

혹은 약간의 교법을 선표하여 모든 과법을 분별하여 공덕의 과보를 보호하며, 성문 ·연각의 법을 교화하지만 여래의 해탈한 바 업을 사랑하며, 보살행에서 물러선 듯 여래행의 근본을 나타내어 보이느니라. 선남자여, 이것이 여래께서 행한 업이니라 왕은 마땅히 알지니라.”

 

그때에 용력보살이 저 여래 처소에서 이러한 법의 행이 청정함을 듣고 다시 그 부처님에게 사뢰었다.
매우 어렵나이다. 세존이시여, 희유하나이다. 이제 여래 지진의 말씀에 이러한 보살이 마땅히 행할 바를 펴셨나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과 같

 

                                                                             [328 / 3476]

이 제가 살펴 아는 선교방편으로는 이 모든 보살의 온갖 법이 자기의 소행으로 말미암음이니 마치 세존이 허공을 관찰하시되 일체 만물을 다 포함하여 일체 색이라 하나니, 그것이 다 각기 제 모양을 나타내되 헤아릴 수 없나니 이러한 일체 유형의 유를 싸 가지되 허공의 하는 일에 걸릴 것이 없듯이 세존의 선교방편도 그러하나니 이 모든 보살이 온갖 법에 있어서 자재함을 얻나이다. 모든 배우는 위치에 있는 법이나 아직 배우지 않는 위치의 법이나 범부의 법이나 최정각의 법이나 다 이것을 말미암나니 마치 불에 접촉하면 풀이나 나무나 백 가지 곡식이 타지 않음이 없는 것 같이 보살도 이와 같이 온갖 법에 행하는 바가 자재하여 지혜의 불꽃으로 모든 어리석고 어둠을 불살라서 삼계에 연기가 없는 듯하나이다. 세존이시여, 마치 크게 성내는 장부가 진에가 치성하여 남을 거슬러 해롭게 하되 돌아보거나 어렵게 여김이 없듯이 하나이다. 보살도 이와 같이 선교방편으로써 자재롭게 자기로 말미암아 지혜의 방편이 다함 없이 일체 중새의 번뇌를 끊어 버리나니 마치 물을 맑게 하는 보배 구슬을 흙탕물에 던지면 즉시에 그 물이 맑아지듯이 보살도 그와 같이 선교방편으로 일체 번뇌와 삼독의 더러운 때를 녹여 없애나이다. 마치 '소제(消除)'라는 큰 위력의 약을 만일 독 있는 물건에 투입시키면 일체 독이 길이 남음이 없는 것과 같으니, 보살도 이와 같이 선교방편으로 삼계의 험난한 곳에 놀되 방편의 지혜로 중생의 애욕 번뇌를 꺼버리나이다. 이러므로 세존이시여, 마땅히 이렇게 관하되 '선교방편의 보살들은 온갖 법에 자재롭게 자기로 말미암아 행하나이다'라고 하나이다.

 

이와 같이 대왕이여, 용력보살이 이런 말을 할 적에 무수한 사람이 다 위없는 정진 도심을 발하였도다. 왕은 알고자 하는가. 그때의 용력보살이 어찌 다른 사람이랴. 곧 오늘의 밀적금강역사의 몸이 이것이니라. 이 보살은 몸소 매우 굳세게 정진하여 넓은 서원의 공덕이 다함 없는 큰 갑주를 입고 거룩하기 이와 같으며 모든 부처님 공양하기 한량이 없으며, 빛나기 이와 같이 비유할 데 없느니라.”

 

그때에 아사세왕(阿闍世王)은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이 밀적금강역사가 잡고 있는 금강저가 얼마나 무거운가. 큰 힘이 있는 이는 응당 잡아 지닐 만한 것인가'라고. 그러자 밀적금강역사는 아사세왕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을

 

                                                                             [329 / 3476]

알고 잡고 있던 금강저를 땅에 던지어 땅에 부딪치자 삼천대천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다.

 

밀적금강역사는 아사세왕에게 일렀다. 아사세왕은 큰 역사의 힘으로 힘껏 들었으나 능히 땅에서 털끝만큼도 끄떡이지 않았다. 왕은 괴이히 여기어 부처님 앞에 나아가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의 몸에 큰 역사의 힘이 있사와 큰 갑주를 입고 큰 코끼리를 잡아 끌어 코를 들어 몸을 던지되 거리낌이 없거늘 오늘에 이 적은 금강저를 들려 함에 털끝만큼도 요동하지 않나이다.”

 

그리고 더욱 의심스러워서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어찌하여 이러하나이까?”
대왕이여, 이 금강저는 무거운 공덕의 힘이 들어 있나니 갑주를 입는 힘이나 코끼리 따위를 잡아 던지는 힘으로는 이것을 들어 옮기지 못하리로다.”

 

그때에 밀적금강역사가 천제석에게 말했다.
당신 이름을 '금강을 지닌 구익[執持金剛拘翼]'이라고 하니 오늘에 당신은 또한 땅에서 이 금강저를 들어 보라.”

 

그러자 천제석이 한량없는 신력으로 그 금강을 들려 하였으나 끄떡도 하지 않았다. 그때에 천제석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우리들의 몸이 모든 하늘과 함께 아수라와 같이 싸울 적에 한 손가락으로 유질(維質) 아수라를 들어서 제 있는 곳에 던지기를 한 탄자와 같이하여 다 도망쳐 가게 하였거늘 이 금강저는 그 형상이 매우 작은데 능히 움직이지 못하나이다.”

 

구익아, 이 금강저는 무거운 덕이 들어 있나니 저 아수라의 삼백 삼십육만 리의 몸으로 제 있는 곳에 던지기를 한 탄자와 같이하여 다 도망쳐 가게 하였거늘 이 금강저는 무거운 덕이 들어 있나니 저 아수라의 삼백 삽십육만 리의 몸으로 제 있는 곳에 던지는 것으로 비교할 수 없느니라. 구익의 마음에 어떠하냐? 수미산왕이 무겁다고 하겠느냐?”
매우 무겁다 하오리다. 세존이시여, 그 무게는 헤알릴 수 없으리이다.”
구익아, 가령 큰 용력의 신()이 이 금강저를 가져 수미산 가에 두고 그 중간에 서서 한 손으로 금강저를, 한 손으론 수미산을 든다면 수미산은 오히

 

                                                                             [330 / 3476]

려 가벼워 금강저처럼 무겁지 않으리라.

 

천제석아, 밀적금강역사가 이 금강으로 철위산(鐵圍山)과 대철위산 및 금강산을 쳐부수어 티끌같이 만들더라도 밀적금강역사의 힘을 다 나타내지 않음이니 그 힘은 무엇으로 비유할 수 없느니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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