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元曉)

원효(성전)-208-종조7

근와(槿瓦) 2016. 8. 5. 02:48

원효(성전)-208-종조7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7. 瑤石宮의 因緣

 

聖師는「금강삼매경」을 講論한 뒤로 수많은 大德 · 法師들이 다 감복하였으며 법사중의 第一法師로서 널리 알려졌다. 그러나 법사는 언제나 허공처럼 탁 트이어 아무 것도 걸림없는 그 마음의 경지 그대로가 그의 몸 짓이며 생활이었다. 어떤 형식 치레나 남의 이목에 거리끼어 그 마음과 몸짓 사이에 검은 장막을 가리움 없이 안팎이 하나의 투명한 유리와 같았다. 하루는 거리에서 바람맞은 사람처럼 이상한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는...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빌려 주리! 나는 하늘 고일 기둥을 베이려네(誰許 沒柯斧 ·我斫支天柱)」

 

사람들은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그 노래는 온 나라에 퍼졌다. 마침 太宗王(武烈王)이 그 소리를 듣고「그 스님께서 귀부인을 얻어 賢子를 낳으려는 뜻이다. 나라에 큰 賢人이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이익이 어디 있으랴」고 말했다.

 

그 때에 요석궁에 과부로 있는 公主가 있었다. 太宗은 宮吏를 시켜「원효를 찾아 들이라」고 분부했다. 宮吏는 명을 받고 원효법사를 찾으러 떠났다. 그때에 법사는 南山으로부터 蚊川 다리를 건너다가 宮吏와 마주치자 한 쪽으로 피하다가 다리에서 떨어졌다. 물에 빠져 옷이 젖었다. 宮吏는 師를 물에서 끌어내어 요석궁에로 인도하여 옷을 갈아 입히게 했다. 그리고 요석궁에 감금했다. 聖師는 그 밤을 요석궁에서 지냈다. 그 뒤에 요석공주는 수태하여 貴子를 낳았다. 그가 곧「薛聰」이다.

 

[비고]

이 요석궁 인연에 대하여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요석공주는 太宗의 딸로서 일찍이 寡居하는데 태종은 매우 가엾게 생각해 왔었다. 공주는 불교를 믿으면서 원효법사의 법문을 들었고 또한 법사를 매우 사모하게 되었다. 그런데 원효법사는 남산 어느 절에 있을 적에 이상한 靈氣가 공중에 떠서 東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보고 法力으로 그 기운을 잡아 머물렀다. 그리고는 먼저와 같은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 노래를 들은 太宗王은 그것이 賢子를 낳을 징조라 하여 요석궁에 引致하여, 말과 같이 위대한 賢人 설총을 낳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 또한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聖師가 俗情에 물들어서 요석궁을 찾은 것이 아니라 愛情에 불타는 寡公主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여 주면서 훌륭한 아들을 점지하여 외로운 공주를 건져주고, 따라서 한 賢人을 나라에 태워주었다는 것은 凡夫의 측량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출전 : 성전(대한불교원효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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