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성전)-206-종조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5. 奇拔한 萬行의 길
聖師는 唐土로 향하는 발길을 本國으로 돌린 뒤 마치 끝없는 太虛空에 날개치는 大鵬과 같이 그 무엇에도 구애되지 않는 해탈의 길을 밟게 되었다. 佛에도 걸리지 않고 法에도 걸리지 않거니 하물며 세속의 是非에이랴.
그 때의 모습을 唐高僧傳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일찍이 湘法師와 함께 唐弉(玄奘)三藏 慈恩의 法門을 사모하여 唐에 들어가다가 그 인연이 어긋나자 유학할 마음을 쉬고, 얼마 아니되어 말하는 것이 狂悖하고 하는 짓이 乖常하여, 혹은 居士와 같이 술집에도 들어가고 혹은 疏를 지어 화엄경을 講하며, 때로는 神祠에서 거문고를 타고 때로는 마을에 붙여 자기도 하며 때로는 山水에서 좌선도 하여 마음대로 그 때에 따라 도무지 일정한 行檢이 없었다. 그 때에 國王이 百座 仁王經 법회를 베풀고 나라 안의 高僧 法師를 초빙하였는데, 적에 本州(聖師生地)에서 師를 추천하였으나 다른 大德들은 그 사람됨을 미워하여 왕께 참소하여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라는 한 토막의 기록으로써 聖師의 수도생활을 엿볼 수 있다.
聖師는 본래 天品이 영특하고 豪邁하여 마치 창공에 나는 鶴과 같고 구름 속에 노는 活龍과 같아서 어떤 테두리 속에 구속될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데 예리한 聰慧에 大乘의 초월한 識見을 겸한데다가「三界虛僞 · 唯心所作」의 근본원리를 사무쳐 깨닫고 보니 그야말로 날개 돋힌 범이요 구름 위에 뛰는 용이라 그를 누가 잡아매며 무엇이 그를 구속하랴.
아무 것도 집착할 것이 없는 그이기에 때를 따라 곳에 따라 常軌에 벗어나는 奇行을 연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裏面은 보통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佛法을 착실히 닦아 얻은 高僧이라도 그 하는 짓을 보고는 미워하고 비방할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범부 · 속세적인 狂妄이 아니라 그 속에는 뜨거운 눈물이 심어 나리고 붉은 피가 용솟음치는 인생으로서의 참담한 시련이었던 것이다. 왜냐, 우주의 實相 · 인생의 원리는 사무쳐 깨쳤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이미「涅槃 · 解脫」의 大自在境地를 완전히 體現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아는 이치로는「불 · 보살」과 둘이 없지만 이른바「業障 · 報障 · 煩惱障」은 여전한 凡夫이었다. 이「障碍」에서 어떻게 홀랑 벗어나느냐? 이곳에 道를 깨달은 聖者로서의 끊임없는 고민이 있고 참담한 시련이 있는 법이다. 이것이 大乘佛敎에서 말하는 깨달은 뒤의 萬行門이다. 깨친 뒤에도 無數劫을 닦아야「成佛」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聖師는 古塚一夜에 우주 · 인생의 근본원리를 남김없이 보았지만, 그것을 본 것만으로 인생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無碍解脫」의「大菩薩道」를 이룩하기 위한 苦心慘憺한 시련이 바로 그때 사람들이 비방하던 狂妄 · 乖常의 行이었다.
출전 : 성전(대한불교원효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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