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기원 정사의 설법 22

근와(槿瓦) 2014. 5. 10. 00:58

기원 정사의 설법 22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어느 날 세존은 이 새로 세운 기원 정사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제자들이여, 나의 법의 상속인이 되어야지 그저 물질의 상속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너희들이 단지 나의 물질의 상속인이 된다면 '석가의 무리들은 물질 때문에 출가한 것이며, 법 때문이 아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제자들이여, 내가 공양 받은 음식을 남겼을 때, 두 사람의 제자들이 굶주려서 피곤한 채 밖에서 돌아왔다고 하자. 나는 그들을 향하여 '여기 남은 음식이 있다. 먹고 싶으면 먹어도 좋다. 너희들이 먹지 않는다면 풀의 생장을 해치지 않는 곳이나, 생물을 해치지 않는 물 속에 버리겠다'고 했다 하자. 그러면 한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세존은 일찌기 내 법의 상속인이 되라, 물질의 상속인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이 음식은 물질이다. 나는 이 음식을 먹지 않고 굶주림과 피곤함을 참고 견디면서 하룻밤을 지내리라.' 그리고 그는 생각했던 그대로 실행했다. 다른 한 사람은 '나는 이 음식을 먹고 굶주림과 피곤함을 면한 후 하룻밤을 넘기리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실행했다고 하자. 제자들이여, 이럴 경우 앞 사람은 칭찬을 해도 좋다. 왜냐하면 그는 오랫동안 욕심이 적고 족함을 알면서 번뇌의 독화살을 빼기 위해 힘썼기 때문이다.

제자들이여, 나는 너희들을 사랑하므로 '원컨대 내 법의 상속인이 되어야 하며 물질의 상속인이 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세존은 이 말씀을 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실(私室)로 들어가셨다.

그때 사리불은 세존이 가신 얼마 후에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벗들이여, 한가한 데 거하는 스승의 제자가 그것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어떠한 일이며, 또 그것을 배운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우리들은 그 뜻을 알기 위해 멀리 존자의 곁으로 왔습니다. 바라건대 그 뜻을 설해 주십시오. 우리들은 들은 대로 기억하겠습니다."

"벗이여, 고요한 속에 들어가는 것을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스승이 버리라'고 말씀하신 법을 버리지 않고, 도리어 오만하고 게으르며 타락에 빠져, 고요한 가운데 있는 마음을 저버리는 일이다. 또 고요한 가운데 있는다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스승이 버리라'고 말씀하신 법을 버리고, 오만하지 않고 게으르지 않아 고요함 속에 있게 되기를 서둘러 행하는 일이다. 벗이여, 탐욕은 악이다. 진에도 원한도 은폐하는 것은 악이다. 또 괴로움, 질투, 인색, 아첨, 속임, 고집, 떠드는 것, 방자함, 교만함, 게으름도 모두 악이다.

 벗이여, 이러한 악법을 버리기 위하여 중도(中道)가 있다. 중도란 팔정도(八正道)를 말한다. 이에 의해 지혜가 생기고 깨달음을 체득하는 것이다."

사위성의 사노소인(闍奴蘇仁) 바라문은 어느 날 일산을 씌운 수레를 타고 교외에 나가다가 도중에 유행자인 피로데카를 만나 물었다.

"이 더위에 어디를 가십니까?"

"교답마를 찾아 갑니다."

"그는 지혜 있는 현자일까요?"

"어찌 내가 교답마의 지혜와 현명함을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 분과 비슷한 분이라야 비로소 그 지혜와 현명함을 알 것입니다."

"그대는 지나치게 교답마의 덕을 찬양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어찌 교답마의 덕을 찬양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 분은 인천(人天)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분이신데."

"교답마의 어디가 그토록 뛰어난 점이 발견되었습니까?"

"코끼리 숲의 감시원이 숲에 들어가 큰 코끼리의 발자국을 보면 '이 코끼리는 확실히 크다'고 아는 것처럼, 나는 교답마의 네 개의 발자국을 보고 '그는 정각자이다, 그의 법은 훌륭하게 설해지고 그의 제자는 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네 개의 발자국이라 함은 현명하고 변재에 능한 찰제리(刹帝利)의 종족들이 교답마의 설을 쳐부수려고 여러 가지로 재주를 부렸지만, 만나서 가르침을 듣고 바로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첫째 발자국이요. 또 꾀 많고 재주 좋은 바라문이 그를 굴복시키려고 애태웠지만 그 가르침을 기뻐하여 오히려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둘째 발자국입니다. 또 논의에 교묘한 거사가 그를 쳐부수려고 계획했으나, 만나자 마자 그 가르침에 사로잡혀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세째 발자국이요, 또 모발을 나눌 정도로 영리한 출가자가 '나야말로 세존의 설을 꺾겠다'하고 여러 가지로 준비를 했으나 끝내는 그 가르침에 끌려 제자가 되어 '전에는 참된 출가자가 아니면서도 출가자라고 생각했지만 이제야말로 참된 출가자가 되었다'고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네째 발자국이요. '나는 이 네 발자국을 보고 세존은 실로 정각자이다, 세존의 법은 잘 설명되었고 세존의 제자는 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때 사노소인은 흰 일산을 씌운 수레에서 내려와 한쪽 어깨에 승의를 걸치고 세존이 계신 쪽으로 세 번 합장하고 나서,

"저, 세존이시여, 대오한 부처님께 삼가 귀명(歸命)하여 받드나이다."고 외치고 저도 모르게,

"높으신 교답마를 뵈오리다. 말씀을 경청하리라."고 말하면서 곧 세존의 앞으로 나아가 예배한 후, 유행자 피로데카가 말한 바를 말씀드렸다.

 

세존이 말씀하시기를,

"바라문이여, 이 코끼리의 발자국의 비유는 아직도 불충분하다. 내가 지금 그 비유를 들어 설명하리라. 코끼리가 있는 숲에 들어가 넓고 큰 발자국을 보았다 해도, 만일 익숙한 감시자라면 바로 '이것은 큰 코끼리다'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와아마니카라는 키가 작은 암코끼리도 큰 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걸음 나아가 큰 발자국이 있고 그 옆에 있는 큰 나무의 가지가 꺾여져 있어도 이것이 큰 코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키가 크며 발자국이 큰 카아라아리카라는 코끼리가 있기 때문이다. 또 나아가 큰 발자국을 보았으며 그 옆의 높은 나무의 나뭇가지가 꺾여져 있고 줄기에 어금니 자국이 있어도 또한 큰 코끼리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카네루카라고 불리는 큰 암코끼리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더 나아가 큰 발자국과 꺾여진 높은 나뭇가지와 줄기의 어금니 자국, 그리고 숲속을 왕래하고 또 누워 있는 큰 코끼리를 보고서야 이것이 큰 코끼리라고 비로소 인정하는 것이다.

바라문이여, 이 비유와 같이 부처가 이 세상에 나타나 법을 설하고, 양가의 아들이 믿음을 얻어 출가하여 청정한 행을 닦고, 나는 새가 그저 그 날개만을 몸에 붙이고 날 듯이 욕을 여의어 족함을 알고, 계를 갖추어 선정을 닦고 지혜를 연마하여 제일선(第一禪)에 들어간다. 바라문이여, 이것은 부처의 발자국과 어금니의 자국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이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이것만을 보고 '세존은 정각자이시며, 세존의 법이 잘 설해어져서 세존의 제자는 바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다'라고 결론짓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그 제자는 차례로 도를 닦고 모든 선정에 나아가 숙명통(宿命通), 타심통(他心通), 누진통(漏盡通)을 얻는다. 바라문이여, 이들도 모두 부처의 발자국, 어금니 자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이것만을 보고 '세존은 정각자이다'라고는 단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와 같이 나아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벗어났다는 지견(知見)이 열린다. 바라문이여, 이것은 부처의 발자국, 부처의 어금니 자국이라고 하며, 이 가르침의 제자는 이에 비로소 '세존은 정각자이다'라고 단정한다.

사노소인은 세존의 가르침에 의해 어둠 속에서 빛을 얻어, 뒤덮인 것이 드러난 것처럼 기뻐하며 일생 동안 신자가 될 것을 맹세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어느 때 사노소인은 또 세존께 나아가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세상에서 진정한 공양이라 하는 것은 모두 삼명(三明)의 바라문에게 공양하는 것입니까?"

"바라문이여, 이 삼명의 바라문이란 어떠한 사람을 가리키는가?"

"세존이시여, 삼명이란 이구(梨俱), 사마(娑磨), 야유(夜柔) 등의 세 가지 베다(吠陀)에 밝은 것으로써 아버지 쪽도 모두 7대가 옛날부터 종성(種性)에 더러움이 없고, 남에게 멸시 받지 않으며, 가문도 좋고 출생도 깨끗하여 성교(聖敎)와 주문을 외우며, 세 가지 베다에 걸쳐 그 어휘, 의식, 음운(音韻) 해석과 이야기에 정통하고 어원(語源)과 문법에 밝으며, 순세파(順世派)의 철학을 배워 그 대인상(大人相=부처의 32상)의 법에 통해 있으면 이 바라문을 삼명의 바라문이라고 하옵니다."

"바라문이여, 그것도 삼명이겠지만 바른 가르침에서 말하는 삼명은 아니다."

"세존이시여, 바른 가르침의 삼명이란 어떠한 것이옵니까?"

 

"바라문이여, 마음을 기울여 잘 들어야 한다. 도를 닦는 나의 제자가 먼저 욕을 여의고 악을 버리며, 심구(尋究),사찰(伺察)하는 거칠은 마음의 작용은 있으나 욕의 원리에서 생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는 제 1선에 들어가고, 이어서 그 심구와 사찰을 여의고 선정에서 생하는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는 제 2선(第二禪)으로 나아가서 그 기쁨까지도 여의어 평안한 마음에 머무르고, 바른 마음, 바른 생활에서 즐거움을 맛보는 제 3선에 들어가며, 다시 나아가 즐거움도 괴로움도 여의고 기쁨도 근심도 사라지어 괴로움과 즐거움이 끊어진 맑고 평안한 마음의 제 4선에 들어간다.

이리하여 나의 제자들의 마음은 고요하게 맑아 욕에서 멀어지고, 더러움을 버리고 순직하여 언제나 정리할 준비가 되어 있고 단단하여 남에 의한 번거러운 일이 없어진다. 그리고 이 마음을 과거의 일로 돌려 알고자 하면 1생, 2생, 3생, 1백생, 1천생, 1천백생, 그보다도 먼 전생의 일을 분명하게 상기할 수가 있으며, 그 전생에 어떤 이름이었다든가 어떤 혈통이었다 또는 직업, 일어난 일, 수명 등 세세한 그 생의 특징까지도 분명하게 상기할 수가 있다. 여기에 숙명통(宿命通)이라는 제 1의 지혜가 생하여 무명(無明)이 깨지고 어둠이 사라져 빛이 생한다.

다음에 그는 중생들의 생사를 알기 위해 그 마음을 돌린다. 인간을 초월한 뛰어난 천안을 가지고 중생들의 귀, 천, 미, 추, 행, 불행 등, 각각 그 업에 따라서 살고 죽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낸다. 이 사람은 신, 구, 의의 惡을 지어 성자를 비방하고 사견을 품어 그 업을 짊어지고 악취에 떨어질 것이다. 또는 이 사람은 신, 구, 의로 善을 지어 성자를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갖고서, 그 선업에 의해 선취(善趣)에 태어날 것이다. 이것이 제 2의 타심통(他心通)이란 지혜인데, 무명은 깨지고 어둠은 사라져 빛이 생한다.

다음에 그는 번뇌를 멸하기 위해 그 마음을 돌려서 이것은 고(苦)이며, 이것은 고의 집(集)이다. 이것은 고의 멸이며 이것은 고의 멸에 이르는 도임을 밝게 안다. 또 이것은 번뇌이며 이것은 번뇌의 집이다. 이것은 번뇌의 멸이며 이것은 번뇌의 멸에 이르는 도라고 밝게 안다.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알게 됨으로써 그의 마음은 욕에서 일어나는 번뇌와 존재에 휘감기는 번뇌와, 무명에 바탕을 둔 번뇌에서 벗어나 거기에서 해탈했다는 의식이 일어나고 집의 생을 다한 청정한 행을 성취하고, 이렇게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난 이후에 다시 망집의 생에 들어가는 일은 없으리라는 지혜가 생한다. 이것이 제 3의 누진통(漏盡通)이라는 지혜인데, 여기에 무명은 부서지고 어둠은 사라져 빛이 생하는 것이다.

바라문이여, 정법에 있어서 삼명(三明)의 바라문이라 하는 것은 이 세 가지 지혜가 있는 사람을 말한다."

"세존이시여, 제가 말씀드린 삼명을 세존의 그것과 비교해 보니 너무나 낮아 그 16분의 1 에도 미치지 못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훌륭한 가르침이옵니다."

또 어느 날 밤, 세존은 정사의 강당에서 제자들을 향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제자들이여, 재가자의 집에 다가갈 때에는 달의 비유처럼 마음도 몸도 조복하는 것이 좋다. 재가자의 집에서는 항상 새로 들어온 제자처럼 겸허하라. 비유컨대 오래된 우물이나 산이나 비탈이나 못을 들여다 볼 때에 마음도 몸도 긴장되는 것처럼, 재가자의 집에 다가갈 때에도 이와 같이 하는 것이 좋다. 제자들이여, 가섭은 달의 비유처럼 심신을 조복한 연후에 재가자의 집에 다가가서 새로 들어온 제자처럼 겸허했던 것이다. 제자들이여, 너희들이 재가자의 집에 다가갈 때에는 어떻게 하면 좋다고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세존은 우리들의 법의 근본이며 귀의처입니다. 세존의 가르침과 같이 수지(守持)할 것이옵니다."

그때 세존은 손을 공중에 휘두르면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이여, 비유하면 이 손이 공중에 붙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것처럼 너희들은 어느 집에 가더라도 그 집에 집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얻기를 바라는 자는 얻을 수 있도록, 공덕을 원하는 자는 공덕을 얻도록' 마음에 염하여 스스로 체득하며 기뻐하고 만족하는 것과 같이 남의 얻은 것에 있어서도 기뻐하고 또한 만족해야 한다. 제자들이여, 이와 같이 하여 비로소 재가자의 집에 다가갈 것이다. 제자들이여, 가섭은 어느 집에 가더라도 그 집에 마음을 집착하지 않고 사로잡히거나 계박되는 일이 없다.

제자들이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불제자의 청정하지 못한 설법과 청정한 설법은 어떠한 것인가?"

제자들은 다만 세존의 가르침을 원하였다.

 

세존은 말씀하시기를,

"제자들이여, 그러면 잘 듣고 이것을 생각해야 한다. 나의 제자로서 이와 같은 생각으로 설법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사람들이 나의 설법을 들어 주면 좋다, 기뻐하여 나에게 기뻐했다는 표시를 보여 주면 좋다.' 이러한 생각으로 설법하는 것이 청정하지 못한 설법이다. 또 이런 생각으로 설법하는 자가 있다고 하자.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명되어 있다, 현세에서 때를 미루지 않고 과보가 있으므로,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법이다.

또 그것은 열반으로 이끌어 식자가 제각기 스스로 알아낼 수 있는 법이다. 그러니 내가 설하는 법을 듣고서 사람들이 이를 깨닫고 그와 같이 행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여 좋은 법은 성질에 맞고 연민과 자비에 의해 남을 위하여 법을 설한다면 그것을 청정한 설법이라 하는 것이다.

제자들이여, 가섭은 참으로 이와 같이 설하는 자이다. 너희들도 또한 가섭처럼 법을 설해야 한다."

어느 때 세존은 많은 제자들을 데리고 기원 정사를 떠나 교사라국에 유행하셨다. 도중에 무섭게 타오르는 화염을 보고 길을 피하여 나무 밑에 자리를 마련하게 하고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제자들이여, 너희들은 저 무섭게 타오르는 불이 보이는가?"

"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입니다."

"제자들이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무섭게 타오르는 큰 불을 끌어안는 것과 찰제리의 공주나 바라문의 아가씨, 또는 거사가 아내의 부드러운 손발을 안는 것과 어느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그것은 소녀의 부드러운 손발을 안는 편이 좋습니다. 저 타오르는 불을 껴안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습니까?"

"제자들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겠다. 계를 파괴하고 법을 범하며 그 행을 덮어 감추고, 출가자도 아니면서 출가자인 척하며, 청정한 수행자도 아니면서 수행자인 척하고 마음은 썩고 애욕에 넘친 가치 없는 인간은 차라리 저 타오르는 불을 껴안는 것이 낫다. 그것은 오히려 소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껴안는 것보다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앞의 경우는 죽거나 죽을 만큼의 고통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는 인(因)은 되지 않으나 나중의 경우는 영겁의 고통에 빠지는 지옥의 인이 되기 때문이다.

제자들이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힘이 센 남자가 튼튼한 밧줄로 양쪽 정강이를 묶어 심하게 조여져, 피부와 살이 터지고 근육과 뼈가 부서져 골수에까지 이르렀다고 하자. 이것과 부자인 찰제리(刹帝利), 바라문, 거사의 후한 대접을 받는 것과 어느 것이 나을까? 제자들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고한다. 계를 깨고 법을 범하는 가치 없는 자는 차라리 두 정강이가 묶여 버리는 편이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앞의 경우는 죽거나 죽을 정도의 고통을 받으면 되지만, 나중의 경우는 영겁에 그것이 불리(不利)함을 이루어 고뇌를 부르는 근원이 되고 사후에 그 때문에 지옥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제자들이여,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힘이 강한 남자에 의해 날이 날카로운 칼로 가슴을 찔리는 것과 부한 찰제리, 바라문, 거사의 합장을 받는 것과 어느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가? 또한 힘이 센 남자가 빨갛게 달아 불똥을 뿜는 철판으로 몸을 감는 것과, 부한 찰제리, 바라문, 거사가 신시(信施)한 음식을 받는 것과 어느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가? 또 힘이 센 남자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똥을 뿜는 빨간 쇠젓가락으로 벌린 입 속에 빨갛게 달은 쇳덩어리를 집어 넣는다. 그 쇳덩어리는 입술과 입, 혀를 태우고 목, 가슴, 창자까지도 태우며 밑으로 흘러내린다. 이것과 비교하여 부한 찰제리, 바라문, 거사의 신시한 음식을 받는 것과는 어느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가? 또 힘이 센 남자가 발을 위로 머리는 아래로 묶어서 불길이 솟아 끓고 있는 쇠가마 속에 던져지었다. 그리하여 끓으면서 거품처럼 떴다 잠겼다 한다. 이것과 부한 찰제리, 바라문, 거사가 신시한 주방(住房)을 받는 것과 어느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가?

제자들이여, 나는 너희들에게 말하겠다. 이러한 여러 가지 육신의 괴로움도 모두 사후에 지옥에 떨어지는 인이 되지 않으나, 계를 깨고 법을 범하는 자가 부한 사람의 신시를 받는 것은 영겁에 괴로움의 인이 된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보시를 하는 자에게 큰 이익이 있고 우리 출가자도 보람이 있도록 의식, 좌구, 탕약의 보시를 받을 것이다'라고. 자기의 일을 생각하는데는 다만 부지런히 힘쓰는 것에 의해서만 잘되는 것이다. 타인의 이익에 대해서도 또한 그와 같다."

세존이 이 가르침을 설하시니 60명의 제자는 입에서 열혈을 토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이시여, 참으로 어려운 일이옵니다."

라고 말하고, 각각 수양하는 것을 버리고 환속하였다. 또 다른 60명의 제자는 집착을 여의고 번뇌에서 벗어났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