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235-47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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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곧 법의 바퀴를 굴리기를 원하나이다.'
"적의야, 그때의 용군 전륜성왕을 알겠느냐?"
"미처 알지 못하겠나이다.”
“그가 곧 과거 정광(定光)여래이시니라. 그때의 모든 아들은 이 현겁 가운데 천불이 되어 출현함이 이것이니라. 구류손불에서 비롯하여 누유에 이르기까지 천불이 되느니라.
그리고 법의 태자는 곧 오늘의 금강역사로 이름은 '밀적'이요, 법념 태자는 이제의 저 대범천왕인 줄을 알아라. 그때의 용군 성왕의 중궁·부인·채녀는 이제 다 이 모임에 온 자이니라. 그때에 왕과 모든 태자의 권유를 받고 출가하여 사문이 된 자와 교화된 자는 다 이 현겁에서 차츰 수기를 받고 장차 차례로 최정각을 이루리라.
적의야, 또한 십이인연을 관하고 덕의 근본을 어지럽지 않게 하여 그 보응의 과(果)를 얻으며, 모든 발심한 바가 그 공을 잃지 않으면 이러한 정사는 십력(十力)이 두루 갖추어서 다 소원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적의야, 만일 보살이 빨리 위없는 정진을 이룩하여 최정각이 되고자 할진대 마땅히 이러한 정사의 업을 배워서 부지런히 닦고 받들어 행하여 다 불도에 뜻을 둘지니라.
어떤 것을 불도라 하느냐? 해칠 마음으로 중생을 대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 건져 주기 한량없으며, 그 도가 평등하여 편당이 없으며, 그 도가 두려울 것이 없나니 온갖 악을 범하지 않기 때문이며, 그 도는 모든 자재(資財)를 갖춘지라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施度)이 다함 없으며, 그 도는 깨끗한 행을 갖춘지라 지계바라밀[戒度]이 다함 없으며, 그 도는 남을 꾸짖거나 시비하지 않는지라 인욕바라밀[忍度]이 다함 없으며, 그 도는 십이처(十二處)를 여읜지라 정진바라밀[進度]이 다함 없으며, 그 도는 어지럽지 않는지라 선정바라밀[寂度]이 다함 없으며, 그 도는 잘 선택하는지라 지혜바라밀[智度]이 다함 없도다. 도가 나의 지혜에 돌아오거든 큰 자비심을 받들어 행하며, 도는 나의 사심이 없이 일체를 불쌍히 여김에 이르며, 도에 희열을 느끼거든 크게 기뻐하는 마음으로써 행하며, 도는 묘한 제어법[妙御]에 돌아가서 크게 수호[大護]함에 이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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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로써 뭇 괴로움의 번민을 제거하고 탐심·해칠 마음·성내고 분해하는 생각을 녹여 버리며, 도는 안심의 경지로 나아가게 하고 위태로운 생각을 품지 않게 되며, 도는 조복받기 어려운 자를 교화하고 색(色)·성(聲)·향(香)·미(味)·세활(細滑)의 법을 베어 버리며, 도는 마군의 권속을 항복받아 교화하여 그 아만의 마음과 온갖 원적을 정복하며, 도는 오음·여섯 감관[六根]·십이입(十二入)을 소제하여 다 집착이 없게 하며, 도는 마군의 일을 버리고 세속 번뇌 속에 있되 자재로우며, 도는 가장 높은 데 돌아가서 성문·연각의 생각을 여의며, 도는 모든 거(去)·래(來)의 소행을 익혀 평등각에 이르며, 도는 대보(大寶)를 어거하여 온갖 지혜에 따르며, 도는 항상 잘 분별하여 슬기로운 밝음에 걸림이 없으며, 도는 착한 행위를 널리 펴고 착한 벗을 거두어 들이며, 도는 구덩이와 참호[塹]를 없애고 뭇 결박을 풀며, 또는 진로(塵勞)를 버리고 시비하고 다투는 경지를 초월하며, 도는 안온한 데 돌아가서 온갖 과악을 버리며, 도는 길상(吉祥)에 돌아가서 니원업(泥洹業:涅槃)에 나아가느니라.
이것이 보살의 행할 바 불도업 삼십이사라, 보살이 이에 머무르면 재빨리 위없는 정진의 도를 이루어 최정각에 이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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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적경 제10권
서진 삼장 축법호 한역
송성수 번역
3. 밀적금강역사회 ③
그때에 적의가 다시 금강역사에게 물었다.
“여래가 몇 가지의 비밀[秘要]이 있어서 모든 성문·연각의 경지로서 능히 미치지 못합니까? 하물며 범부로서 캄캄한 무리이랴. 장하다. 밀적이여, 바라건대 뜻에 즐겨하는 대로 여래의 비밀을 말하여 두루 들어가게 하소서. 모든 회중이 다 듣고자 하나이다.”
밀적역사는 적의에게 일렀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이제 마땅히 부연하리라. 여래의 비밀이 세 가지가 있으니 세 가지라 함은 첫째는 몸의 비밀[身密]이요, 둘째는 입의 비밀[口密]이요, 셋째는 뜻의 비밀[意密]이니라.
어떤 것이 몸의 비밀이냐? 여래는 생각함 없고 또한 분별함 없이 두루 온갖 위의와 예절을 나타내나니 혹 모든 천상·인간의 사람들이 스스로 거닐기[經行]를 좋아하여 여래의 거닐음을 뵙고자 할 적에 모든 천상·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세존이 제일이 되시도다'라고 하면 이들은 여래의 몸의 비밀을 얻어 보게 되며, 부처님이 생각하시는 것도 또한 일체 중생이 여래 지진의 미묘한 덕행과 위의 보기를 생각하여 바라는 것도 아니다.
만일 천상·인간이 여래의 앉는 것을 좋아하면 여래의 앉는 것을 보게 되고, 만일 천상·인간이 여래의 눕는 것을 좋아하면 여래의 눕는 것을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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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만일 경듣기를 좋아하면 여래의 경설하심을 듣게 되고, 만일 적정을 좋아하면 여래의 묵연하심을 보게 되고, 만일 선정(禪定) 닦기를 좋아하면 여래의 삼매를 보게 되고, 만일 천상·인간이 눈으로 보되 눈깜짝이지 않는 자는 여래의 눈이 늘 깜짝이지 않음을 보게 되고, 만일 뜻이 자재하여 광명을 좋아하는 자는 곧 여래의 걸림 없는 광명을 보게 되고, 붉은 금빛을 좋아하는 자는 또 자마금색(紫磨金色)을 보게 되고, 만일 천상·인간이 은빛·수정빛·유리빛·마노빛·자거(硨渠)빛·누런빛·진주빛·흰빛·붉은 빛·분홍빛·자주빛이거나, 혹은 명월주빛·회색빛·불빛·햇빛·달빛·사천왕·제석(帝釋)·범천·아수라의 빛깔이나, 혹은 등분(等分)의 빛·수미화(須彌華)빛·사묘색(思妙色)·약형색(藥形色)·벽석색(碧石色)·무우화(無憂華)빛·전복(旃蔔)빛·사이화(思夷華)빛, 혹 청련(靑蓮)·홍련·황련·백련화빛, 혹 도리천빛·비사문왕(毘沙門王)의 얼굴·사천왕의 형상이거나,수장(首藏)·청제보(靑帝寶)·황제보(黃帝寶)·적제보(赤帝寶)·백제보(白帝寶) 빛이거나, 혹 하늘 빛[虛空淨色] 등 천상·인간의 마음을 보고자 하는 한량없는 빛깔이 각기 다르더라도 여래의 갖가지의 공덕의 빛을 보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적의여, 항하(恒河)의 모래처럼 많은 모든 부처님 세계에 가득 찬 중생들이 끊임없이 서로 사랑하고 잇달아 서로 태어나되 다 죄의 업보를 마치고 사람의 몸을 얻게 되어 생각하는 대로 태어나게 되나니,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태어나는 바로 하여금 또한 저와 같듯이 일체 중생에게 여래가 또한 갖가지의 형상[品色]과 위의·예절 등 마음에 좋아하는 대로 나타내어 보이기를 다 헤아릴 수 없으며 그 시종[本末] 언행을 살펴 알고자 함도 또한 그러하니라.
여래 지진께서 이런 인연으로 각기 중생에게 형상과 위의·예절·언행을 나타내어 보임도 그러하니라. 마치 한 사람이 얻은 해탈을 두 사람이 함께 가지지 못함과 같도다. 매우 진실한 법을 펴서 마음에 해탈을 얻어 도에 이르게 하며, 여래 지진께서 능히 일체 중생을 기쁘게 하시나니 중생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형상·위의·예절·언행을 나타내어 보임도 또한 그러하니라.
적의여, 마치 깨끗한 거울이 맞대인 경계에 비추면 곧 그 형상을 나타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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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본디 모습을 잃지 않고 똑같이 보이되 거울이 생각함 없이 하듯이, 여래도 이와 같이 비록 법으로 일체 중생을 건지지만 생각함 없이 이익[利養]을 위함 없이 중생의 심행(心行)에 맞추어 상·중·하의 깊고 옅은 법에 따라서 삼계의 미혹을 개화하여 제도하시느니라. 이것이 여래의 신행의 비밀이니라.
적의여, 여래의 온몸은 또한 오음의 종자와 모든 감관[根:諸入]으로 이룩된 것이 아니며, 죄와 복의 업에 의지함도 아니며, 번뇌로 난 것도 아니며, 부모의 포태로 이룩된 것도 아니며, 또한 뼈와 살도 없으며, 꽃과 향으로 몸을 장식하는 공덕도 다 있는 것이 아니니라. 네 가지 요소에 매여 있는 것이 아니니 나고 숨쉼도 없고 수명도 멸진(滅盡)하였느니라.
부처님 몸이 무엇인가 알려거든 곧 법의 몸[法身]이 이것이니라. 법신은 네 가지 요소의 물질이 없으며, 온갖 망상이 없건만 나타내어 보이는 색상을 탐하여 사모하고 호귀한 지위를 구하기 좋아하는 중생을 위하여 형상을 가지고 눈으로 보게 할 뿐이요, 법상(法相)은 적연하여 지혜를 높일 뿐이므로 중생들도 하늘 눈을 얻어서 보게 하느니라.
적의여, 만일 중생이 같은 모임에 있더라도 각기 다른 부처님 몸을 보나니 부처님을 보려는 마음으로 볼 적엔 멀리 머무른 것은 보지만 가까이 머무른 것은 보지 못하나니 그 가까이 머무른 것은 보지만 먼데 머무른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은 보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보려는 자가 산란심의 인연으로는 보지 못하며, 혹은 마음의 반연으로는 못하는 자도 있으며, 그 혹은 자기의 관찰로는 보지만 남의 보는 것으로는 보지 못하며, 또 남을 보는 것으로는 능히 보지만 자기를 보는 마음으로는 보지 못하면 그 꿈속에 보던 것은 꿈을 깨어서는 볼 수 없으며, 정의(定意)로 보던 것은 정에서 일어나면 볼 수 없으며, 정에서 일어나서는 보지만 정에서는 볼 수 없으며, 비고 고요한 데서는 보던 것은 고요하지 않으면 보지 못하다가 그 비고 고요한 데 있어서는 보지 못하는 것이 없으며, 그 하는 업이 없이는 보지만 하는 업 없는 것이 없으며 그 하는 업을 떠나서 본다는 것은 하나도 보는 것이 없느니라.
적의여, 그 여래의 몸은 무수한 사연을 따라 각기 나타내어 보이느니라. 그 색계천(色界天)은 신행이 적연하고 위의·예절도 그러하며 마음이 스스...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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