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45-29

근와(槿瓦) 2016. 7. 5. 23:50

대보적경-145-29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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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나 줄게 하지 않으며, 모든 중생의 뜻으로 즐겨하는 성품의 차별을 알아서 잘 분별하는 결정한 어업(語業)과 문구로써 널리 연설하느니라. 이런 말로 말미암아 능히 자기의 착한 뿌리를 더 길러 내며 청정한 법으로 중생을 거두어 잡아들이느니라. 여래가 능히 한량없는 비유로 이와같은 법 무더기[法聚] 다라니문을 열어 보이어 연설하나니, 너희들이 만일 능히 이렇게 더없는 바른 법을 선설하면 이것은 곧 처의 할 일에 머물러서 속히 사무소외를 원만케 하리라.


무변장엄아, 이와 같이 보살이 큰 방편의 청정한 지혜로 능히 신통업을 닦아 익히면 지닌 바 모든 법이 곧 능히 광대한 지혜의 무더기[智聚]를 거두어 지니느니라. 이 가운데 어떤 것이 신통업을 일으킴이냐?


무변장엄아, 만일 보살이 뜻대로 움직이는 신통[神足通] 가운데 머물러서 허공과 같이 의지할 데 없는 생각으로 능히 네 가지 원소[四大種]가 모인 것을 잘 분석하느니라. 여래는 걸림 없는 지견, 끝없는 지견을 성취하여 이 지견의 힘으로 모든 법에 방편의 지혜를 얻어서 능히 잘 결정하여 어떤 법도 알 것이 없으며, 얻을 것 없는 데 머무르며, 무엇으로 견줄 수 없는[無等等] 자리에 머무르며 또한 함께 아란야(阿蘭若)에 머무르지 않고 집착 없는데 머무르며, 청정한 지혜에 머물러서 어떤 법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함이 없으며, 어둠을 멀리 여의어 장애됨이 없으며, 한량없고 끝없는 지견에 잘 머무느니라. 이러므로 여래가 평등한 지견[平等見]으로 온갖 법이 환술과 같고 꿈과 같은 줄을 깨달으며, 또한 능히 무명법의 망상[無明法想]을 열어 보이나니 이러므로 우리들이 '마땅히 부처님을 따라 배우리라' 할지니라.


여래의 지혜는 걸림이 없이 능히 중생들의 상근(上根)·중근(中根)·하근(下根)을 알아 모든 보살들이 평등에 머물러서 신통업을 일으키게 하나니, 이러므로 뜻대로 움직이는 신통이 앞에 나타나게 되며, 이 신통의 도움으로 계(界)·정(定)·혜(慧)와 해탈지견으로 깨끗이 법의 지혜를 베풀어 속 편히 잘 머물게 하며, 이것으로 말미암아 능히 참다운 위신력을 얻어서 한량없는 차별 신통을 거두어 지니어 범천(梵) 세계에 자재하며, 사자좌에 앉아서 큰 법고(法鼓)를 울려 모든 모임을 다 기쁘게 하며, 중생을 위하여 큰 이익을 짓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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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변장엄아, 마치 큰 철륜위산왕(鐵輪圍山王)이 중생의 업력(業力)으로 이 세계를 둘러 싸고 있지만 중생으로 하여금 지옥의 냄새를 맡거나 지옥의 소리를 듣거나 지옥을 보지 못하게 하나니, 이와 같이 보살은 이 법 가운데 잘 닦아 배우고는 중생들을 위하여 온갖 장애되는 법은 제거하고 온갖 장애 없는 법을 맡겨 주느니라. 이와 같이 보살이 금강지(金剛智)로 선교방편을 거두어 주며, 이 교법의 깊은 이치를 깨달아 들어가며 얻을 것 없는데 머물러서 감로(甘露)의 법을 부어 주나니, 어떤 것을 감로의 법을 부어 준다 하는가. 말하자면 번뇌의 마군과 5온(蘊)의 마군과 하늘의 마군이 방해하지 못하며 비록 죽을 때에 죽음의 마[死魔]가 있더라도 또한 마음대로 죽음의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니라. 왜냐하면 저 정사(正士)가 공한 성품[空性]과 모양 없고[無相]·소원 없는[無願] 데 머물러서 온갖 법에 분별함 없으며, 남도 아니요 없어짐도 아니며, 무너짐도 아니요 일어남도 아니며, 온 것도 아니요 간 것도 아니요 머무름도 아니며, 물듦도 아니요, 깨끗함도 아니며 또한 겁약(怯弱)함도 아니요 장애가 있음도 아니며, 얻을 것이 없어서 교만을 놓아 버리고 그 마음이 겸손하여 안으로 미혹을 여의고 밖의 것을 잘 사무쳐 알아서 보고 듣고 깨달아 앎에 능히 끌려 들어가지 아니하며, 모든 법이 다 평등한 줄을 깨달아 알아서 진실히 여래의 법에 들어가 허망한 것이 아니므로 변함이 없이 진여(眞如)에 머무르나니 이것이 곧 보살들의 들어갈 바 반야바라밀문이니라. 보살이 이 바라밀문에 머무르고는 곧 능히 가없는 지혜를 성취하며, 이 지혜의 힘으로 능히 불사의지(不思議智)와 모든 여래의 비밀한 언설에 들어가서 온갖 법을 능히 사무쳐 알며, 따라서 차별 없는 평등한 보리를 깨달으므로 차별 없는 부사의 법을 깨달음이 보리 부사의와 같으며, 차별 없는 분별 여읜 경계를 깨달음이 보리의 분별 없는 경계와 같아서 차별 없는 것과 보리법의 얻을 것 없는 것을 깨달아 안 까닭에 그는 차별이란 생각을 내지 않으며, 보리의 평등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고 차별 없는 것과 보리가 지은 것도 아니요 무너짐도 아니며, 모인 것도 아니요 흩어짐도 아니니, 이 이치 가운데 능히 보살업을 닦는 이는 이에 말한 적정 법문에 집착하지 아니하고 또한 모든 업의 과보를 분별하지 않으면서 능히 업의 갚음의 평등함을 사무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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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니라. 평등함으로써 업 갚음을 얻지 않으며 또한 분별하지 아니하고 집착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그는 번뇌와 업장의 가볍고 안온함을 얻어서 그 흑업(黑業)의 원인을 멀리 여의고 모든 법문에 횃불[照耀]을 얻고 이 다라니품에서 광명을 얻느니라. 그가 이러한 청정법문에 머물기 때문에 능히 시방세계에 노닐면서 맑은 행을 갖추어 집착함이 없으며, 세속법에 물들지 않고 모든 세간 천상·인간 가운데 복밭으로써 친근 공양을 받을 만하나니라.


무변장엄아, 내가 제팔지에 머무르는 선남자를 공양한 공덕도 한량없다고 말하나니, 하물며 보살이 이러한 법에 수행하는 자랴. 만일 보리와 중생과 중생의 법과 세간 법에 얻을 것이 없으며, 또한 분별과 희론을 여의면, 그 사람은 능히 이 법을 깨달아 알고 말과 같이 수행하며 능히 세간의 온갖 공양을 받을 것이니 마땅히 여래의 공양으로써 공양할지니라.


무변장엄아,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을 닦아 배우면 저 공양에 온갖 것을 갖추어 온갖 두려움을 여의고 능히 그 몸과 목숨을 놓으리라. 그는 모든 법에 거두어 잡아 가질 것이 없되 능히 광대한 법을 거두어 잡아 지니어 두려움 없는 자리에 앉아서 사자후를 하여 외도와 외도법을 항복받고 파순(波旬)과 마군의 무리를 꺾어 없애며, 능히 중생의 온갖 장애를 없애고 법의 배[法船]로 모든 중생을 건네어 온갖 지혜의 길을 보여 주며, 능히 일체 중생들을 방편의 길[隨順道]에 편안히 머물게 하며, 그 모든 중생이 성제(聖諦)에 따라 서로 어기고 거스르지 않게 하며, 중생을 위하여 온갖 보리 부분법을 열어 보이며, 법시(法施)로 중생을 위안하며, 그들로 하여금 법의 희열[法喜]을 얻게 하느니라.


무변장엄아, 만일 이 다라니문을 능히 믿어 받으면 곧 보리의 수기(授記)를 받은 이와 다름이 없으리라. 그는 이미 법을 듣고 제 몸에 스스로 수기하기를 '여래 법왕이 이 법을 베풀어 주시고 이 법장을 여의어 능히 이 다라니인을 안립(安立)하고 또한 능히 이 모든 법문을 내세우시와 우리들을 거두어 잡아 주시니, 이것은 우리들의 아버지로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다'라 하느니라.


무변장엄아, 만일 보살이 거룩한 의욕으로 능히 나의 처소에서 아버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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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일으키면 그 사람은 장차 여래 축에 들어가 나와 다름 없으리라.


무변장엄아, 이 다라니문 법품에 이것이 제이의 벗어나는 다라니인[出離陀羅尼印]으로 법장을 연설함이니라.”


3) 청정다라니품(淸淨陀羅尼品) ①


그때에 세존께서 사방을 관찰하시고 이러한 갖가지의 신통을 나타내어 신통력으로 이 모임의 보살들이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을 보게 하며 또는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법을 듣게 하였다.


그때에 부처님이 무변장엄에게 말씀하셨다.“너는 '여래가 온갖 법에 지은 바가 없으며 헤아림[數]이 없으니 헤아림과 적정하다는 상을 여의어서 능히 이러한 자재 신통을 나타내신다'고 관찰할지니라. 여래의 두려움 없는 힘이 이러하니라.


무변장엄아, 여래의 성품은 하나도 아니요 다름도 아니며 하나와 다름 아님도 아니니, 아무 것도 없는 까닭이니라.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며, 자성이 있는 것도 아니요 자성이 없는 것도 아니니라. 마땅히 이렇게 여래의 성품을 알면 어떤 법도 얻을 것이 없느니라. 이렇게 보는 자는 또한 어떤 법도 볼 것이 없느니라. 만일 보지 못하면 있는 것이 없으며 또한 취할 것이 없느니라.


무변장엄아, 여래의 성품은 무엇이 진실하다, 무엇이 진실치 않다 할 것이 없느니라. 만일 무엇이 진실하다, 무엇이 진실치 않다 하면 이것은 곧 여래의 성품이 있다. 여래의 성품이 없다고 말하리라. 여래의 성은 있는 것을 여의고 없는 것을 여의며 또한 일찍이 여읨도 아니니라.


무변장엄아, 온갖 법의 본성이 허공과 같나니 이러한 법문은 모든 여래가 세상에 나오시기 전에는 일찍이 말하지 않았느니라.


무변장엄아, 만일 모든 보살이 이 법 가운데 이렇게 아는 이는 능히 한량없는 변재를 얻어서 모든 법에 능히 등불이 되며, 부처의 '두려움 없는 법[無畏]'에 광명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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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변장엄아, 두려움 없는 법이라고 함은 여래의 최상의 두려움 없는 힘을 얻어서 능히 어떤 법에도 거두어 잡아 들어가지 않는 까닭이며, 더 느는 것[增長]도 아니며 얻을 것이 아닌 까닭이며, 모두 얻을 것이 아닌 까닭이며, 어느 부분만 얻을 것도 아닌 까닭이니라.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거나 않거나 법은 늘거나 줄지 않으며, 두루 늘고 줆도 아니요, 모든 법 본성[住性]이 항상 머무르는 법계(法界)의 본성이며 법계의 정성(定性)이니라.


무변장엄아, 온갖 법이 법의 본래의 정성이 머무르나니 이와 같이 유(有)·무(無)를 얻을 수 없느니라. 온갖 법이 다 망상의 분별이라 업보로써 성취됨도 아니며, 이러므로 능히 온갖 법 업보 없는 문에 들어가나니, 이러한 모든 법이 자성이 없는 까닭이며 진실이 아닌 까닭이며 모든 업이 그 과보에 생(生)·멸(滅)의 원인이 아니며 그 멸에 나아가는 도(道)도 또한 인(因)이 아니니라. 여래가 다만 세속 법을 내세워서 인과 인 아닌 것이 있다고 말하나니 인이 자재한 까닭이며, 인이 있다고 할 것이 없는 까닭이니라. 이것이 여래의 두려움 없는 경지니라. 여래는 한량없는 변재를 갖추었으므로 능히 큰 두려움 없는 경지에 들어가느니라.


무변장엄아, 어떤 것이 두려움 없는 것이냐? 말하자면 모든 여래가 사무소외(四無所畏)가 있으니 이 사무소외는 연각(緣覺)도 오히려 없거니 하물며 성문(聲聞)과 나머지 세간이랴. 어떤 것이 넷인가. 첫째는 소리쳐 말하되 '나는 여래, 바로 다 깨달은 자[應正等覺]이고 다 아는 자[一切知者]며 다 보는 자[一切見者]라'라고 하면, 혹 온갖 세간 천상·인간이 나에게 대하여 '능히 모든 법을 깨달아 알지 못한다'하리니, 이런 이치가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능히 최상의 두려움 없는 법을 얻어서 대중 가운데 사자후를 하되 '내가 능히 위없고 가장 높고 광대한 교법을 연설한다' 하느니라. 둘째는 소리쳐 말하되 '나는 온갖 번뇌가 다한 자이다'라고 하면, 일체 세간 천상·인간이 나에게 대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지 않았다' 하리니, 이런 이치가 있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능히 안락한 데 머물러서 '내가 능히 한량업는 겁(劫)에 쌓아 둔 더없는 법장(法藏)을 열어 보인다' 하느니라. 셋째는 '내가 말한 생사를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 법에 그대로 닦아 익히면 괴로움을 멸하여 다하리라'고 하면, 혹 세간 천상·인간이 나에게 대하여 '괴...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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