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산큰스님 말씀

닭이 천 마리면 봉 한 마리는 나오는 법

근와(槿瓦) 2016. 7. 2. 02:21

닭이 천 마리면 봉 한 마리는 나오는 법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한편 온 세계를 한 손에 쥐고 흔들어도 시원치 않을 만큼 팽팽한 야심에 차 있던 고처사는 범어사 청풍당 금어선원에 머물면서 동산 스님이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는 수많은 가르침과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고처사로 하여금 차츰 부처님 법에 눈을 떠가게 하는 살아있는 가르침이었다.

 

하루는 동산스님이 고처사를 불러 그동안 공부해온 것들을 하나하나 일러보도록 하였다.

“그동안 그대는 선방에 앉아서 좌선을 해왔는데, 대체 무엇을 좌선이라 하던고?”고처사의 대답이 이어졌다.

 

“……예, 법문 가운데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일체 선악의 경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좌(坐)라 하며, 안으로 자성이 움직이지 아니함을 보는 것을 선(禪)이라 한다 하셨습니다.”

 

“음……, 그러면 그대는 조금 전 저녁 예불 때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을 외우셨겠다?”

“예.”

 

동산스님은 먼저 계향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았다.

“예, 자기 마음 가운데 잘못이 없고 악이 없으며 욕심과 성내는 마음이 없으며 말세의 재해가 없는 것을 계향(戒香)이라 하옵니다.”

 

고처사의 한치 한푼도 어긋남이 없는 대답이었다. 다음은 정향이란 무엇인지를 말하는 순서였다.

“모든 선하고 악한 경계의 모습들을 보고도 자기 마음이 어지럽지 않음을 정향(定香)이라 하옵니다.”

 

“허허, 그러면 세 번재로 혜향은 대체 무엇이던고?”

“예, 자기의 마음에 걸림이 없어서 항상 지혜로써 자기 성품을 비추어보고, 모든 악을 짓지 아니하며, 비록 모든 선을 닦지만 마음에 집착하지 아니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아끼며, 외롭고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을 혜향(慧香)이라 하옵니다.”

 

동산스님이 흡족한 미소를 짓는 가운데 이번엔 해탈향을 논할 차례였다.”

“마음속에 얽히고설키는 인연 일어남이 없어서 선도 생각지 아니하고, 악도 생각지 아니하며, 자재하여 걸림이 없는 것을 해탈향(解脫香)이라 하옵니다.”

 

“허허허허! 그러면 해탈지견향은 무엇이라 이르던고?”

 

마치 누에고치가 명주실 뽑아져나오듯이 시원스럽게 술술 풀어져나오는 고처사의 대답이 이어졌다.

“예, 자기 마음에 이미 선악의 일어남이 없으나, 공에 빠져 고요함만 지키지 않고, 널리 배우고 많이 들어서 본마음을 알며, 모든 부처의 진리를 통달해서 마음의 광명을 조화하고, 객관을 대하는 데 있어 나도 없고 남도 없어서 바로 깨달음의 참성품이 바뀌지 않는 데 이르는 것을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이라 하셨사옵니다.”

 

동산스님의 웃음소리가 점점 길고 커졌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허면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은 대체 어디서 찾으라 하셨던고?”

 

“예, 이 향들은 각각 안으로 향기가 옷에 배어들듯이 마음 안에서 찾을 것이요, 결코 밖에서 찾지 말라 하셨습니다.”

 

고처사가 스님의 물음들을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모두 대답해올리니 스승으로서 동산스님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동산스님은 그 웃음소리가 조실 바깥에까지 새어나갈 만큼 한바탕 기분 좋게 웃고 난 연후에 고처사의 경학이 뛰어남을 치하해주었다.
“하하하하! 그대는 이번에도 밥값을 톡톡히 하셨네그려. 응? 하하하.”

 

이처럼 동산스님은 수행정진에 열중하고 있는 제자들과 선문답을 나누는 것을 매우 즐기곤 하였다.

 

절간에서는 큰 돌을 파서 물이 고여 흘러넘치게 해두고 있는데 바로 이것을 수각이라 부른다.

 

깊고 높은 산속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홈이 파인 통나무와 대나무 쪽을 타고 쉬임없이 흘러 수각에 이르러서는 철철 넘쳐 흐르는 것이다.

 

이 수각가에서는 아직 사미계를 받지 아니한 행자들이 종종 채소를 씻곤 하였는데, 동산스님은 방선시간에 뜰을 거닐다가 이 행자들에게도 말을 건네곤 하였다.

“이 물은 대체 어디서 오는 물이던고?”

 

하루는 채소를 씻고 있던 한 행자를 향하여 동산스님이 물었다.

“그야, 바로 저기 저 산에서 내려온 물입니다요.”

 

동산스님이 다시 물었다.

“허면, 이 물이 저 산에 있기 전에는 대체 어디에 있었던고.”

“그거야 저 산속에서 흘러내린 것이니까 땅속에 있었겠습지요.”

 

함께 있던 다른 행자가 불쑥 끼어들며 대답하였다. 그 정도 질문이라면 얼마든지 대답할 수 있다는 듯한 태도로 그 행자는 무척 의기양양하게 굴었다.

 

동산스님은 두 사람의 행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땅속에 있었다?”

“예, 조실스님.”

 

“그럼 땅속에 있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겠느냐?”

 

두 행자는 이에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서로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조실스님.”

 

동산스님이 두 번째로 거듭 물었을 때에야 그 행자들은 자신들의 무지함을 실토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자 동산스님은 지엄한 어조로 그 행자들에게 숙제를 내놓는 것이었으니, 물이 땅속에 있기 전에는 대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아내기 전에는 결코 머리를 깎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분부였다.

 

제자들에게는 어버이처럼 자애로운 스승인 동시에 이처럼 가르침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한 동산스님이었으니, 각처에서 방부를 청하러 오는 수좌들의 발길 또한 여전하였다.

 

그러다 보니 동산스님이 이 무렵에 받아준 상좌만 해도 삼십 명이 훨씬 넘게 되었다.

 

좀더 과장되이 얘기한다면, 자고 나면 중 만들고 수좌 만드는 분이 동산스님이었으니 오나가나 원주스님만 속이 타는 노릇이었다.

 

매번 새로운 객승을 수좌로 받아들이는 동산스님의 처사가 원망스럽기만 했던 원주스님의 걱정 또한 나날이 깊어갈 뿐이었다.

 

그날도 청풍당으로 찾아든 웬 객승을 동산스님이 선방으로 들여보낸 뒤였다. 이제 한 사람 분의 공양거리를 더 만들어내야 하는 원주스님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이를 눈치챈 동산스님이 말하였다.

“이 사람, 원주. 저기 저 하늘을 보시게.”

“어디 말씀이십니까요, 스님.”

 

원주스님은 걱정 때문에 속이 타서 볼멘 음성이 되어 있었다.

 

“허허 이 사람, 저기 저 하늘을 보라니까, 처마끝은 왜 쳐다보고 그래?”

“예? 저 하늘에 뭐가 있습니까요, 스님?”

 

원주스님이 아무리 열심히 쳐다보아도 하늘엔 아무 것도 없었다. 새 한 마리 날아다니지 않는 하늘엔 뭉게구름만 잔뜩 끼어 있을 뿐이었다.

 

동산스님이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저렇게 떠 있는 구름 가운데 대체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자네 아시겠는가?”

“……?”

 

원주스님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매양 똑같은 것 같지마는 찌푸렸다, 맑았다 변화무쌍한 저 하늘의 조화속을 감히 인간이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동산스님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는 원주스님에게 타이르듯이 말하였다.

“저 많은 구름 가운데 어느 구름에서 비가 내릴지 모르는 법이요, 닭이 천 마리면 봉 한 마리는 나오는 법. 저 수좌들 가운데서 반드시 큰 법그릇이 나올 것이니 두고 보게나!”

“하오나 스님….”

 

“그래 뭣인고?”

 

원주스님이 용기를 내어 한마디 하였다.

“닭 천 마리를 다 먹여 살리려다가는요, 봉이 열 마리 있어도 다 죽이게 될까봐 그게 걱정입니다요, 스님.”

“쓸데없는 소리!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것, 이것이 곧 불가의 법도야. 그리고 또 지극정성으로 기도하고 수행하는 중이 굶어죽고 얼어죽었다는 소린 못 들었네.”

 

동산스님에게 일장훈시를 듣고 난 원주스님은 더는 아무런 대꾸도 아니하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보기엔 모든 구름이 비가 되어 내릴 것도 같았고, 그 반대인 것도 같았다.

 

그러던 어는 날 밤이었다.

고적한 산사에 소쩍새 우는 소리만이 간간이 들려오는 그런 밤이었다.

 

수각에 물 흐르는 소리, 잎새끼리 서로 바람에 흔들려 부딪치는 소리,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정적을 더욱 정적다웁게 만드는 작은 소리들만이 경내에 가득 차 있는 시각이었다.

 

고처사, 그러니까 훗날의 광덕스님이 동산스님이 기거하는 문 밖에 서서 공손히 뵙기를 청하였다.

“고처사라고 하셨는가?”

 

안에서 동산스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예, 스님.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들어오시게.”

 

이윽고 방 안으로 들어선 고처사는 예를 갖추고 단정히 스님 앞에 앉았다.

“그래, 무슨 말씀이시던고?”

“예, 스님. 조실스님께서는 어찌 저에게 다시는 계 받으라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는지요?”

 

동산스님은 고처사의 갑작스런 물음에 조용히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반문하였다.

“허허 이 사람, 내가 계를 받으라고 했을 적에 그대가 한마디로 거절하지 않으셨던가?”

“그땐 그랬습니다, 스님.”

 

“허면, 이제는 마음을 달리 먹게 되었다 그런 말씀이신가?”

 

다음 순간, 고처사는 단 한마디로 자신의 뜻을 아뢰는 것이었다.

“스님, 출가하겠습니다.”

 

“무엇이라구, 출가를 하겠다?”

“예, 스님.”

 

보살계 받는 것조차 거절하였던 고처사가 아니었던가. 헌데 그런 그가 이제 와서는 아예 출가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하하하! 고처사 그대가 출가를 하겠다구, 응? 하하하!”

 

동산스님은 마치 하루 아침에 귀한 자식이라도 하나 얻은 것 마냥 고처사의 출가득도를 반겨주었다.

 

허나 이 어찌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일이었겠는가. 동산스님도 고처사도 몇 년 동안을 끈기있게 수행정진하며 맺어진 스승과 제자사이였던 것이다.

 

고처사는 그동안 청풍당에 머물면서 병완이라는 속가의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광민(光民)이라는 호를 지어 쓰던 중이었다.

 

동산스님은 고처사, 즉 고병완에게 계를 내리고 출가득도의 길로 이끌어줌과 동시에 손수 법호를 지어주기도 하였다.

“그대는 이제 빛광(光)자, 큰덕(德)자, 광덕이라 하게나! 빛광 자 큰덕 자 광덕, 아시겠는가?”

“예, 스님. 감사하옵니다.”

 

사내 대장부가 살아가기 위하여 한 석 달 선방구경이나 하고 돌아가려 했던 청년 고병완.

 

그가 택한 길은 단지 사내 대장부로서 뿐만 아니라 진리 안에서 영생을 하는 수행자의 삶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 또한 동산스님이 천 마리의 닭 가운데서 발견한 한 마리의 빼어난 봉이었다.

 

 

출전 : 벼슬도 재물도 풀잎에 이슬일세(동산큰스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