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大寶積經)

대보적경-125-25

근와(槿瓦) 2016. 7. 2. 02:22

대보적경-125-2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21 / 3476]

마음을 내지 않고 온갖 인색한 마음을 여의고 능히 놓아 베풀어서 법의 시주가 되어 내가 이제 여래의 일, 온갖 지혜의 일을 하여 중생으로 하여금 무거운 짐을 놓아 버리고 큰 폭포 흐름에 마땅히 법의 배로 중생을 건네 주어 중생으로 온갖 안락한 생활의 도구와 재물[資財]을 얻게 하리라' 하느니라.

 

보살이 이러한 자비심으로 깨달음의 지혜를 일으키어 속히 수승한 법을 증득하며, 이 계경 다라니문에 모든 법 차별의 총지를 연설하며, 장차 생사를 여의게 되며, 다른 이론에 끌려가지 않고 능히 모든 외도의 이론을 깨뜨리고 마군을 항복받나니 쟁론의 법을 없애고자 함이니라. 능히 이렇게 머무를지니라.

 

무변장엄아, 이 다라니문은 일체 여래가 받아 지니셨으니 잘 기억하라. 마치 최후의 몸을 받은 보살이 머무르는 곳인 삼십삼천이나 야마천·도솔타천·낙변화천(樂變化天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가운데 도솔타천궁이 일체 하늘을 받들어 섬기고 공양하며, 모든 중생이 다 애락심을 내며, 착한 뿌리를 성숙하고 수승한 복[勝福]을 거두어 잡아 지니며, 일생 동안에 보시·지계의 복온(福蘊)이 구족 청정하며, 일체 수승한 지온(智蘊)을 성취하여 이 삼천대천세계 일체 중생이 미치지 못할 바이며, 능히 일체 중생이 지닌 착한 뿌리를 덮으며, 또한 일체 중생의 공경과 찬탄을 받게 되고 현전(現前)에 온갖 지혜의 지혜를 얻나니 만일 그 보살이 도솔천궁으로부터 염부제에 내려올 때엔 곧 염부제의 한복판으로서 가장 안온하고 묘한 곳에 큰 성안의 인민들이 집중한 곳에 강생하여 모든 인민들이 우러러보고 예배·공경·공양을 받는 것과 같이 이 다라니계경의 문도 또한 그러하여 온갖 법 가운데 들어가 편안히 머무르게 되고 온갖 법은 다 이것으로부터 나오고 또한 이것을 좇아 꺼지느니라.

 

보살이 이 법에 머무르고는 지혜·공덕이 성숙하고 향상하므로 온갖 법에 머물러서 온갖 법에 자재하나니 그 주인이 된 까닭이니라.

 

보살이 최후로 몸을 받아 사람 가운데 나서 관()함 없이 온갖 법을 보는 인(삼매의 힘으로 두두 일체 중생을 관찰하며, 또한 두루 삼천대천세계를 관찰하고 법 다라니 제호(醍醐)의 맛을 얻어 광대한 마음을 광대한 지혜 경계에 머물러서 끝내 온갖 욕락과 오락 도구에 탐착하지 않으며, 또한

 

                                                                             [122 / 3476]

온갖 세속법을 희구하지 아니하고 단정하고 장엄한 위의가 서로 이어서 공()의 삼매의 깨달음에 머무므로 능히 온갖 법을 관찰하며, 따라서 무상(無相)의 방편선교를 얻어서 일체에 집착함이 없으며, 능히 일체 삼계의 함이 있는 법이 과실·걱정 아님이 없는 줄을 잘 알거니 어찌 탐착하겠느냐? 마땅히 떠나기를 구하여 속이 적정하고도 가장 적정한 경계와 뛰어난 해탈[勝解脫]과 뛰어난 벗어남[勝出離]의 경계를 증득하느니라.

 

그러나 그 식() 경계에 머무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세간법의 나고 깨지고 모이고 흩어짐을 관찰하여 저 중생에 대자대비를 일으켜 그들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세속의 벗어나는 깨달음을 내며, 이취를 깨달은 자재방편으로 능히 수순하여 가장 거룩한 지혜에 들어가서 일체 중생을 따라 생각하는 선교방편에 자재를 얻으며, 따라서 모든 법에 걸림 없는 다라니 선교이취를 얻어서 선교지로써 모든 중생을 간택하고 관찰하며, 또는 생각할 수 없는 법 결정한 이취를 관찰하느니라.

 

비록 소년은 단엄하고 곱더라도 모든 욕심의 경계에 애착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소유한 모든 재산과 진기한 보물과 오락 도구며 친척 권속을 다 놓아 버리고 생각하고 관찰하되 세속을 싫증내어 적정을 희구하여 집을 떠나서 집 아닌 데로 나아가며, 이미 집을 나와서는 생각할 수 없는 깨달음의 깊은 방편을 성취하여 할 만한 일을 하여 착한 뿌리의 자량(資糧)을 쌓아 모으며, 최상의 보리 도량(道場)으로 향해 나아가서 원력의 장엄으로써 최상 다라니인 깊은 방편의 가장 뛰어난 경계를 증득하며, 이 청정 다라니문의 선교이취로 말미암아 모든 법 자연지(自然智)와 걸림 없는 온갖 지혜의 지혜인 총지선교를 얻느니라.

 

그가 이미 온갖 지혜 다라니문을 얻고 따라서 결정적인 온갖 지혜의 지혜를 얻어 이것이 이미 청정하고는 최상의 온갖 지혜의 지혜에 편안히 머무르며, 그 위신력으로 능히 가장 높은 청정한 법바퀴를 굴리며, 또한 능히 일체 법지의 교묘한 말솜씨를 얻느니라. 마치 한낮에 태양의 광명이 두루 비치듯이 이 법의 음성의 광명으로 두루 인간·천상의 중생에게 보이느니라.

 

무변장엄아, 보살이 온갖 지혜의 지혜 다라니에 머무르고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나니 그 보살의 다라니문 구의(句義) 차별은 모든 보살이 능

 

                                                                             [123 / 3476]

히 알 수가 없느니라. 만일 일생보처 보살이라면 도량에 앉아서 청정한 깨달음으로 스승 없이 스스로 깨달아서 이 다라니가 앞에 나타나나니, 이것은 보살이 보리를 위하여 한량없는 겁에 착한 뿌리를 쌓아 모으며 구원한 생사의 어두운 밤에 끊임없이 범행(梵行)을 닦음으로써 깊은 법의 지혜[法忍]를 얻었나니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기므로 대자비심이 바야흐로 앞에 드러났느니라.

 

무변장엄아, 보살이 이 다라니로 말미암아 도량에 앉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리니 내가 이제 너에게 보이어 말할 수 없도다. 네가 보살 지혜가 앞에 드러나서 능히 저 법을 증득할 때에 스스로 알게 되리라. 그때에 보살이 가없는 문·한량없는 문·인문(因門견줄 데 없는 문[無譬喩門]을 얻어서 다 앞에 드러나리라. 그러나 그 문은 보이어 말하지는 못하느니라. 그것은 세간을 뛰어넘어서 모든 천상·인간·(() 및 모든 사문·바라문 등과 같지 않으며 곧 가장 높은 청정법의 온갖 지혜의 지혜와 자연지를 얻으리라. 보살이 이것을 말미암아 능히 청정한 자연지에 들어가서 능히 가장 높은 청정한 법바퀴를 굴리며, 점차로 한량없는 중생을 위하여 위없는 온갖 지혜의 지혜를 성취하며, 모든 법문과 열반문에 청정함을 얻으므로 한량없는 갖가지 선교이취를 열어 보이어 연설하며, 능히 온() 선교를 발생하여 지니게 하고 또한 능히 온 청정 선교지를 나타내어 보여 지나게 하며, ()와 처(
)의 연기도 또한 그러하니라.

 

또 중생으로 하여금 성제(聖諦)에 들어가는 법문을 일으키게 하고 또한 능히 성제의 청정한 선교지를 보이며 또 능히 삼십칠품 보리 부분법의 차별선교를 일으키고 또한 능히 보리 부분법의 청정지를 보이며, (()의 선교지를 일으키어 지니게 하고 또한 능히 지·관의 청정선교를 보이어 지니게 하며, 또 능히 삼매·등지(等止)의 선교지를 일으키어 지니게 하고 또한 능히 선()삼매·등지의 청정선교를 보이며, 또 능히 미혹함 없고 공()을 헛되이 버리지 않는 선교지를 일으키어 지니게 하고 또한 능히 미혹함 없고 공을 헛되이 버리지 않는 청정 지혜를 보이어 지니게 하며, 또 능히 생사를 여의고 남이 없는 이치[無生]를 다하는 지혜를 일으키어 지니게 하고 또한 능히 생사를 여의고 남이 없는 이치를 다하는 청정 선교지를

 

                                                                             [124 / 3476]

보이어 지니게 하며, 또 능히 명해탈(明解脫)선교지를 일으키어 지니게 하고 또한 능히 명해탈의 청정한 선교를 보이어 지니게 하며, 능히 대열반문을 연설하고 또한 능히 모든 구의(句義)를 잡아 지니며[住持], 청정 선교방편을 놓아 버리고 유위법·무위법·유루법(有漏法무루법(無漏法세간법·출세간법(出世間法)에 한량없는 명의(名義)로 표시하여 연설하느니라.

 

법문이 청정하므로 모든 중생을 위하여 더없는 결정법과 청정하고 미묘한 지혜의 종자를 지닌 법을 열어 보이느니라.

 

무변장엄아, 여래가 이 큰 다라니 총지방편을 말함은 온갖 지혜 다라니 선교력(善巧力)에 머무름을 얻게 하기 위함이니라. 모든 중생이 본원을 따라서 이러한 행을 보이어 이취의 차별을 따라 깨닫는 데 들어가서 다라니 위력의 더없는 법장을 잘 열어 보이며, 능히 법의 비[法雨]를 내려 부어서 온갖 메마른 중생을 적셔 주어 묘한 법으로써 다 만족케 하느니라.

 

너희들은 마땅히 여래를 따라 배우되 이 매우 깊은 결정법에 어그러지거나 거스르지 말지니라. 너희들이 이 온갖 지혜, 큰 다라니에서 오래지 않아 총지 자재주(自在主) 다라니를 얻어서, 모든 중생을 위해 장차 이와 같은 한량없는 의리(義利)를 짓기를 오늘의 나와 같으리라.

 

너희들이 마땅히 한량없는 다른 이름으로 이 다라니의 결정된 모든 법의 깊은 지혜를 열어 보이어 연설할지니라.

 

무변장엄아, 이 가운데 마땅히 뛰어난 견해를 희구하여 보리의 자량을 버리지 말지니라. 어떤 것이 뛰어난 견해를 희구함이냐? 말하자면 모든 보살이 마땅히 온갖 법이 나는 것도 아니요, 멸하는 것도 아니요, 움직임도 아니요, 머무름도 아니며 자성이 공적함을 알아 깨닫고 저 공성(空性)에 또한 집착하지 않나니 하물며 그 모양[]에 집착하겠느냐? 그 공한 성품 가운데 모양의 생각이 있을 수 없느니라. 만일 그 공 가운데 모양이 없을진대 능히 여래가 말한 유위공(有爲空'[]' '나의 것[我所]'과 일체의 나[[중생[衆生수자(壽者)가 없다는 이치에 들어가리라.

 

이러한 공의 성품은 물듦도 아니요 물듦 아님도 아니며, 더러움도 아니요 더러움 아님도 아니며, 미혹함도 아니요 미혹함 아님도 아니며, 탐애(貪愛)도 아니요 탐애 아님도 아니며, ()에 머무름도 아니요 또한 두루 일체에

 

                                                                             [125 / 3476]

머무름도 아니니라. 만일 공을 여의면 그것이 곧 적멸이라 분별이 없으며, 두루 분별[徧分別:徧計]함도 업고 뛰어난 분별[勝分別]도 없으며, 널리 분별함도 없으며, 공용(功用)도 없고 아무 것도 취할 것 없이 자성이 청정하리라. 그것이 곧 모든 법 본연의 자성이라 온갖 세간법이 본성이 다 공한 것이며 선법·불선법·유위법·무위법·세간법·출세간법이 다 그러하니라.

 

보살이 이와 같은 뛰어난 견해를 거두어 잡아 지니고는 해탈과 해탈 지견(智見)에 들어가며 또한 능히 다 깨끗하여 때가 없는 해탈 경계의 보리의 자량(資糧)을 거두어 잡아 지니느니라.

 

어떤 것을 '보리의 자량'이라 하느냐? 말하자면 계()가 청정하며 지혜가 청정하며 삼매가 청정하며 해탈이 청정하며 해탈 지견이 청정하며 보시바라밀이 청정하며 계바라밀이 청정하며 인욕(忍辱)바라밀이 청정하며 정진바라밀이 청정하며 선()바라밀이 청정하며 지혜 바라밀이 청정함이니라.

 

만일 그것이 청정하면 곧 두루 다 청정하며, 만일 두루 다 청정하면 곧 물듦 없는 법문으로서 본래 청정한 마음[自性淸淨心]의 광명이 빛나고 번뇌가 없으며, 그 마음이 항상 머물러서 본성이 공적하며, 또한 빛난다는 것도 없으며, [] 번뇌·따른[] 번뇌의 삼종의 물듦[汚染]도 그것이 다 실답지 못하여 공하여 있는 것이 없나니 이와 같이 마음 바탕은 번뇌와 청정이 서로 응하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이 마음이 둘이 없으며 또한 둘로 나눌 수 없나니 본성이 청정한 까닭이니라.

 

만일 능히 심성을 깨달아 알면 번뇌 물듦에 물듦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밖에 있는 것도 아니요,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라 다 얻을 수 없으며, 오직 망상의 인연으로 화합함을 제하느니라. 비록 마음이 났다 할지라도 또한 볼 수가 없으며, 시방에 미루어 찾아도 끝내 얻지 못하며, 또한 마음으로 능히 마음을 보지 못하나니 이와 같이 경계의 반연이 마음과 화합함이 아니요 마음이 또한 반연과 화합함도 아니며, 또한 인연이 마음과 서로 응함도 아니요 마음이 또한 인연과 서로 응함도 아니니라. 오직 마음으로 말미암아 저 온갖 법이 서로 응하느니라. 온갖 법이 마음과 서로 응하되 서로 알지 못하며 또한 서로 보지 못하나니 하물며 모든 법이 마음과 서로 응함이 아님이랴. 제일의로 사유(思惟)하여 관찰하면 아무 것도 서로 응하거나 또는 응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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