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元曉)

원효(성전)-161-수행문30

근와(槿瓦) 2016. 6. 21. 01:06

원효(성전)-161-수행문3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2절 부처의 씨앗


유마힐 거사는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여래의 씨앗이 되나이까.


문수보살은 대답하였다.

몸이 여래의 씨앗이 되고 무명과 애욕이 씨앗이 되며 탐욕과 성냄과 우치가 씨앗이 되고 네가지 뒤바뀜이 씨앗이 되며 개음(蓋陰)이 씨앗이 되고 식처(識處)가 씨앗이 되며 사법(邪法)이 씨앗이 되고 번뇌가 씨앗이 되며 악이 씨앗이 되나니 통틀어 말한다면 六十二()과 일체 번뇌가 모두 부처되는 씨앗이 되나이다.


만일 함이 없음(無爲)을 보고 바른 위(正位)에 들어가면 다시는아누타라삼먁삼보리마음을 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마치 높은 언덕이나 육지에는 연꽃이 나지 않고 낮고 젖은 진흙이라야 그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함이 없음을 보고 바른 위에 들어가면 마침내 다시는 부처의 법에 나지 못하고 번뇌의 흙탕 속에라야 중생이 있어서 부처의 법을 일으키나이다.


또 씨앗을 허공에 뿌리면 끝내 나지 못하고 더럽고 살진 땅이라야 무성하듯이 이렇게 함이 없는 바른 위에 들어가면 부처의 법에 나지 못하며라는 소견이 수미산같이 일어나야 곧아누타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어 부처의 법에 나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일체의 번뇌가 여래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마치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값진 보배를 얻지 못하는 것처럼 번뇌의 큰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체 지혜의 보배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때 대가섭존자는 찬탄하였다.

옳고 옳습니다. 문수보살의 그 말씀은 장쾌합니다. 진실로 말씀한 것과 같이 번뇌의 무리라야 여래의 씨앗이 되나이다.


우리들은 이제 다시아누타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내지 못할 것이요 역죄의 무간지옥에 가야만 뜻을 일으키고 부처님 법 가운데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영원히 일으키지 못하나이다. 마치 ()이 시들어 든 선비는 욕락에 아무 욕심이 없는 것처럼 성문들로 모든 번뇌를 끊은 사람은 부처의 법 가운데 아무 욕심이 없고 길이 원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까닭에 문수보살님, 범부는 부처님 법에 되돌아 오지만 성문은 그렇지 못하나이다. 무슨 까닭인가. 범부는 부처님 법을 듣고 위없는 도의 마음을 일으켜 三寶가 끊어지지 않지만 성문들은 몸을 마치도록 부처님 법과 ()무외(無畏)를 들어도 영원히 위없는 도의 뜻을 일으키지 않나이다.



출전 : 성전(대한불교원효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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