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적경-55-11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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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배울 적에도 또한 비방하느니라. 들은 것이 적은 자는 질투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부처님을 훼방하느니라. 비구가 이러한 사법을 성취하므로 '불보리'를 비방하느니라.
가섭아, 만일 한 가지 법이 있으면 사문과 바라문을 얻어 이루리니, 하나라 함은 온갖 법에 마음이 머무름이 없는 것이니라. 이러한 한 가지의 법으로 사문 및 바라문을 이루느니라. 마치 사람이 높은 산꼭대기에서 떨어질 적에 대지의 풀 · 나무 · 숲이 없다고 하여 오직 허공뿐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면 숨[出入息]이 곧 막히는 것과 같으니라. 가섭아, 모든 법에 집착한 자도 또한 그러하니라. 만일 눈이란 생각과 또는 눈의 모양[相]에 집착하거나, 귀 · 코 · 혀 · 몸 · 뜻이란 생각과 뜻이란 모양에 집착하거나, 만일 물질[色] · 느낌[受] · 생각[想] · 지어감[行] · 의식[識]에 집착하거나, 정계(淨戒) · 다문(多聞) · 참괴(慙愧) · 경행(經行) · 왕래 · 보리를 얻는다는 생각에 집착하면 곧 해가 되니 무엇에게 해침이 되는가. 탐냄 · 성냄 · 어리석음이 그것이니라.
만일 눈의 모양에 집착하면 사랑할 것, 사랑하지 못할 것의 색상(色相)에 집착하는 까닭에 눈의 해침이 되느니라. 이와 같이 귀 · 코 · 혀 · 몸 · 뜻의 모양에 집착하면 사랑할 것, 못할 것의 모양에 집착하는 까닭에 뜻의 해침이 되느니라. 만일 해를 입으면 지옥 · 축생 · 아귀 · 인간 · 천상 가운데 해침이 되느니라.
무엇을 인연하여 해를 입는가. 생각의 집착으로 말미암음이니, 무엇을 생각의 집착이라 하는가. '나'라는 생각과 '나의 것'이라는 생각과 계집이란 생각 · 사내란 생각 · 지(地) · 수(水) · 화(火) · 풍(風)이란 생각 · 백골이라는 생각 · 무너진다는 생각 · 푸르뎅뎅하고 어혈진 모양의 생각 · 피가 번지르르한 생각 · 색깔이 변한 생각 · 사지가 여의어 흩어진다는 생각 · 뛰어난 해탈[勝解脫]이라는 생각 · 저는 조금 뛰어난 해탈을 얻었다는 생각 · 이는 조금 거룩한 해탈을 얻지 못했다는 생각 · 한량 없는 숙명통[宿住]이 있어 생각을 따라 증득[現證]한다는 생각에 집착하여 내가 생각을 따라 헤아림[想]은 과거와 다르고 현재와 다르지만 '나는 이 과거다, 나는 이 현재다'고 하여 모든 법에 생각을 일으키며, 열반이란 생각 · 내가 열반을 얻었다는 생각에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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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니라.
가섭아, 요컨대 집착이란 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생각을 일으키어, 공성(空性) 가운데 일체의 생각을 일으키는 것은 다 사문 · 바라문을 이룩하는 법이 아니며 사문의 행이 아니며 바라문의 행이 아니니라.
가섭아, 여래가 말하는 사문법 · 바라문법이란 것은 마치 허공과 대지와 같으니라. 왜냐하면 허공은 끝내 내가 허공이라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가섭아, 사문 · 바라문은 끝내 내가 사문 · 바라문이라고 이르지 않느니라. 사문법 · 바라문법이란 것은 만드는 것도 아니고 없애는 것도 아닌 것, 이것이 사문 · 바라문이 되느니라.
가섭아, 마치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밤에 손과 팔을 휘두르고 얼굴과 눈을 흔들면서 말하기를 '내가 세상을 희롱한다, 내가 세상을 희롱한다'라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가 누구를 희롱함이 되느냐?”
“세존이시여, 이 사람이 스스로를 희롱함입니다. 왜냐하면 그 가운데 희롱할 만한 상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만일 비구가 아란야(阿蘭若), 혹은 나무 아래 빈집 · 한데[露地]에 앉아서 이렇게 생각한다. '눈이 무상(無常)하다. 귀 · 코 · 혀 · 몸 · 뜻이 무상하다' 하고. 다시 생각하기를 '빛[色]이 무상하다. 소리 · 냄새 ·맛 · 부딪침 · 법이 또한 무상하다'고. 이 생각을 하고는 '내가 열반에 나아간다'고 하나니 이런 종류는 스스로 수고로울 뿐, 사문의 행이 아니니라. 왜냐하면 여러 가지 사집(邪執)이 있기 때문이니라. 눈의 상[眼相]을 알고는 그 상을 없애기 위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히나니 이와 같이 귀 · 코 · 혀 · 몸 · 뜻의 상을 알고는 뜻을 없애기 위하여 부지런히 닦아 익히느니라.' 만일 3처(處)에서 분별해 알고 믿고는 곧 삼처에 분별을 내느니라. 만일 모든 견해에 분별을 일으키면 어떻게 능히 마음의 통일된 경지[心一境性]를 얻겠느냐?
가섭아, 매우 깊은 보리는 들어가기 어렵고 나아가기 어려우며 자량(資糧)을 갖추기 어려우니라. 마음의 통일된 경지란 어떤 것을 말함인가. 널리 찾아보아도 한 법도 얻지 못하나니, 말하자면 눈에 실다운 것을 얻지 못하며 귀 · 코 · 혀 · 몸 · 뜻에 또한 실다운 것을 얻지 못하며 온갖 법에 다 실다운 것을 얻지 못하나니, 왜냐하면 본성이 이러하여 심성이 나지 않나니 온갖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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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실다운 것을 얻을 것이 없으므로 저 마음을 얻지 못하느니라. 과거 · 미래 · 현재에 얻을 것이 없는 까닭이며 조작할 것이 없는 까닭이니라. 이것은 조작할 것이 없는 까닭이니 이것을 조작할 수 없는 것이라 이르느니라. 어찌하여 조작할 것이 없다고 하는가. 새 것이나 묵은 것이나 함께 조작할 것이 없는 것을 조작할 것 없다고 이르느니라. 이 가운데 과거의 마음도 해탈하지 못하며, 현재의 마음도 해탈하지 못하며, 미래의 마음도 해탈하지 못하나니 그 마음에 따라 얻을 것이 없는 것, 이것을 마음의 통일된 경지라 하느니라. 이것을 마음의 수(數)에 든다고 하느니라.”
가섭은 부처님께 사뢰었다.
“미래세에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가 있어서 눈 등의 모양에 집착하여 그것을 없애 버린다고 말하면서 모든 온(蘊) 가운데 물(物)이라는 생각을 일으키나니 여래께서는 '온이 꿈과 같다'고 말씀하셨나이다. 그러나 그들은 꿈이 실로 있다고 말하나니 그 까닭은 세간에서 이 꿈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꿈이 없었을진대 우리들이 꿈이란 것이 있다고 표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들이 잠자고 꿈꿀 적에 꿈이란 생각을 일으키나이다.”
“그렇다. 온에 인연함이 있으므로 꿈과 같다고 말하느니라. 만일 온이 없었을진대 꿈과 같다고 말하지 않으니라. 저 어리석은 사람은 꿈이 실로 있다고 하므로 이 경을 듣고는 비방하리라.
그 가운데 비구니 등이 시주 집에서 망령되게 '내가 아라한의 과를 얻었다'하며, 혹은 옅은 지혜로 '내가 도를 얻었다'고 말하느니라. 만일 우바새 · 우바이 등이 경(經) · 율(律)을 들으면 '내가 도를 얻었다'고 말하느니라.
가섭아, 그때에 만일 어떤 비구가 이십년 · 삼십년 동안 조용한 절에서 부지런히 공부하다가 불법을 위하여 처음 믿는 우바새 곁에 가서 오직 빈말로 서로 이론하되 공(空) · 공(空)을 말하므로 '내가 이미 알았다. 내가 이미 알았다'고 하느니라. 혹 어떤 비구가 이 경을 듣고 서로 향하여 이야기하거든 어떤 사람이 듣고 문득 겁내어 말하기를 '저 재가(在家)나 출가인들은 마땅히 가까이할 것이 아니요, 멀리 여윌 것이다. 그들은 교사(敎師)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알 만한 사람도 서로 가까이하지 않기 때문이다'고 하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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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다시 매우 깊은 법을 연설하는 이가 있으면 여러 재가 · 출가인들에게 버림받고 천히 여김이 되느니라. 왜냐하면 내가 오늘에 거룩한 범행(梵行)을 말하더라도 오히려 아는 자가 적으니 하물며 미래세는 조금 아는 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설법하는 비구 천명 가운데 능히 사실대로 알고 믿어 들어오는 자는 하나도 있기 어려우며, 내지 이천 명이라도 또한 그러하리라. 그 가운데 어떤 비구들은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나니 하물며 잘 알겠는가.
가섭아, 그때에는 재가와 출가인이 같이 교훈을 가볍게 여기느니라. 만일 비구가 부지런히 정진하여 불선법을 줄게 하고 선법을 늘게 하기 위하여 밤과 새벽으로 잠을 많이 줄이고 정진하여 닦으면 다른 사람에게 흉보고 버림받게 되며, 혹 목숨을 끊으며, 이런 경을 헐어 없애리니 법을 지니는 비구도 또한 다 없어지리라. 그 가운데 슬기롭고 물듦 없이 법을 잘 아는 자는 마땅히 깊은 마음으로 공경하여 같이 모여 조용한 절에 머무르리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내가말한 착한 법은
제일의와 서로 맞나니
온(蘊)은 견실(堅實)함 없어
마땅히 꿈과 같다 관찰하라.
그때의 비구들은
투쟁심이 많아서
높고 낮음을 가림 없이
오직 빈 명목만 있으니라.
비구가 말하는 것은
세속도 그렇게 말하리니
이와 같은 교법은
도(道) · 속(俗)의 말도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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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가 속인에게 말하기를
'네가 법 닦는 것이 희유하도다
이것을 불보리라 이르나니
이미 초지과(初地果)를 발하였다'고.
그는 마음으로 법을 보았다 하고
재가(在家)를 가까이하면
그는 비구를 받들어 보시하여
최상의 공양을 바치느니라.
이런 비구의 말과 같이
틀림없이 다 참되다 하여
그와 더불어 서로 친하여
'나도 능히 법을 보았다'하리라.
그때에 나는 이는
보시를 위해 집을 떠나서
바른 법에 머물지 않고
'보리도'를 헐어 부수리라.
'나는 너에게 도를 보인 자니
나를 친하고 다른 이는 가까이 말라.
오래지 않아 너의 얻음도
또한 나의 얻음 같으리라'고.
'이 가장 적정(寂靜)한 지위는
너에게만 서로 말할지언정
여러 대중에게 말하면
나의 교법을 파괴하리라'고.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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