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佛陀,부처님)

세존의 출가 5

근와(槿瓦) 2014. 4. 5. 00:26

세존의 출가 5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하루를 즐겁게 놀고 난 후 피로를 풀려고 태자는 보상(寶床)에 몸을 기대셨다. 수많은 아리따운 궁녀들은 태자를 위로하려고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미묘한 재주와 요염한 자태는 마치 천녀들과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가무의 미묘함도 고요한 태자의 마음을 움직일 길이 없었는데, 태자는 어느새 졸음에 빠져 들었다. 궁녀들은 이를 보고서는 춤추고 노래할 흥이 나지 않아 주악을 그치고 잠에 빠졌는데, 한갓 향유의 등불만이 고요한 밤중에 깜박이고 있었다. 태자는 문득 잠에서 깨어나 보상에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보셨다.

 

정적이 넘치는 밤, 아름다운 궁전, 향기로운 향등(香燈) 속에 지친 무희들이 잠든 한심한 모습! 입에서는 침이 흐르며 이를 갈고 잠꼬대를 하며 옷매무새는 흐트러지고 몸을 내던져 여자로서의 조신(操身)을 잊어버린 채 여기저기에서 잠에 취해 있었다. 낮에는 참으로 화려한 궁전도 밤에는 무덤과 같은 장소로 화한다. 태자는 몸서리치면서 일어나 '일체가 이 모양이다. 더 참을 수 없다'고 마음 속으로 부르짖고는 곧 궁전을 탈출하려고 결심한 후 몰래 궁을 나와 궁문에 다가가서 어자(御者)인 차닉(車匿)을 불러 말을 준비하도록 명하고 다시 돌아와 태자비의 방으로 와서 천천히 그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난등(蘭燈)의 그림자만 한층 희미한데 다만 쌔근거리며 잠자는 숨소리만 들렸다.

'내 아들을 안고 최후의 작별을 한다면 태자비는 잠이 깨어 나의 출가를 방해할 것이다. 그러느니보다는 각(覺)을 얻은 후에 이 아들을 보는 편이 좋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대로 궁전을 떠나 명마 건척(陟)에 올라탄 후 성문을 급히 빠져 나왔다. 이 문은 부왕이 태자의 출가를 염려하여 많은 군사를 두어 지키게 했고 또 그 철문의 양익(兩翼)은 천 명의 힘으로도 열기 어렵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러나 신의 수호에 의해서인지 위병(衛兵)은 모두 잠에 떨어졌고, 그렇게 큰 철문은 소리도 없이 열리어 백마 건척은 질풍같이 도문(都門)을 빠져 나갔다. 때는 4월 보름날, 한밤중이었다.

 

이때 마왕(魔王)은 공중에서 부르짖기를,

"태자여, 어리석은 출가를 단념하고 화려한 궁전으로 돌아가라. 그러면 7일 이내에 사천하를 다스리는 전륜왕이 될 것이다."

태자가 대답하기를,

"마왕이여, 물러가라. 악마야 꺼져라. 지상의 권세는 나에게 있어 아무 소용도 없다. 나의 소원은 오직 도를 증득하는 일이다." 라고 꾸짖으시니, 마왕은 초연히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조만간 태자의 마음에 반드시 증오라는 새가 둥우리를 틀 것이다. 그때에야말로 내가 이용할 기회이다'라고 생각하고 그날부터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이 곁을 떠나지 않고 성도를 방해하려 했다.

 

용감하게 집을 나온 태자는 이때 점점 멀어져 가는 도성을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마음을 도사려먹고 앞으로 나아갔다. 세찬 마음의 싸움 끝에 이상하게도 대지는 두레박처럼 회전하여 도성은 저절로 태자의 시야에 나타났다. 그러나 태자는 새로운 용기로써 일로 매진하여 2백여 리를 달려 동틀 무렵에는 아노마(阿奴摩)강 언덕에 이르러, 채찍을 휘두르며 한걸음에 그 강을 뛰어넘었다. 그리하여 마침 빛나는 아침 해에 반짝거리는 모래 위에 내려서자, 태자는 옷을 벗어 차닉에게 주면서 이르기를,

"차닉아, 세상 사람은 마음을 따르나 몸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또 몸은 따르나 마음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너는 몸도 마음도 나를 따랐다. 세상 사람은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자를 다투어 섬기지만 빈천한 자와는 멀어진다. 그런데 너만은 나라를 버린 나를 따라서 멀리 여기까지 왔다. 참으로 기특하도다."고 하면서 자기의 상투를 풀어 마니보(摩尼寶)를 꺼내 주면서,

"차닉이여, 너는 지금 돌아가서 이것을 대왕에게 바치고 다음과 같이 아뢰어라. '태자는 이 세상의 것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구할 것이 없다. 사람은 모두 은애(恩愛)의 정에 얽매여 끝내는 생, 노, 병, 사를 면할 수 없다. 아무쪼록 이 이치를 생각하여 근심을 덜어 드리도록 하여라. 태자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씀 드려라."

또 영락(瓔珞)을 벗어서 차닉에게 주면서,

"이것을 양어머님께 바치고 이렇게 말씀드려라. '욕심은 괴로움의 근본이다. 태자는 출가하여 이 괴로움의 근본을 끊으려고 결심했다. 아무쪼록 근심하지 말으시라'고 말씀 드려라."

그리고 그 나머지 장신구들을 건네 주면서,

"이것은 태자비에게 전하라. 인세에는 반드시 이별의 슬픔이 있다. 태자는 그 슬픔의 근본을 끊으려고 결심했다. 연모의 정에 끌려 근심에 잠겨서는 안 된다고 말씀드려라."

차닉은 울고 매달리면서 같이 출가를 원했으나 끝내 허락을 받지 못하여 방성 통곡했다. 애마인 건척도 앞다리를 꾸부리고 태자의 발을 핥으면서 슬피 울었다. 태자는 건척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오오, 건척이여, 너의 할 일은 모두 끝났다. 결코 슬퍼하지 말라."고 위로하고는 오른손으로 검을 빼어 들고 왼손으로 상투를 잡은 다음, 손수 머리칼을 자르면서 '내가 만일 대오(大悟)를 얻을진대 이 머리칼이여, 공중에 머물러라. 불연이면 땅에 떨어져라.'고 하면서 공중에 던지셨는데, 머리칼이 허공의 아득한 곳에 걸린 채 땅에는 떨어지지 않았다. 제석천은 보기(寶器)로써 이를 받아 도리천에 안치하였다. 태자는 또 작병(作甁)이라는 신의 아들이 바치는 삼의(三衣)를 입고 바리때를 들고는 조용히 걸음을 옮기셨다.

차닉은 눈물로 태자를 전송하고 쓸쓸히 왕궁으로 돌아와 정반 대왕과 야수다라비를 비롯하여 일문의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태자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다.

 

태자는 지금 한 사람의 출가자가 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바리때를 손에 들고 부근의 집을 돌며 밥을 빌었다. 그러나 금전옥루에서 진수 성찬을 잡수시던 태자가 어찌 걸식한 쉰 밥을 먹을 수 있으리오. 나무 아래에 가서 음식을 먹으려다가 주저하면서 문득 그 음식을 버리려 했지만 자기는 도를 구하는 집도 없는 출가자라는 생각이 들어 기쁘게 그 음식을 먹었다. 그 이후 태자는 한평생 한번도 음식 때문에 걱정하시지 않았다.

 

이리하여 태자는 비사리국(毘舍離國)에 들어가 고행외도(苦行外道)의 스승인 발가바(跋伽婆)선인을 찾아 그 무리들의 행장을 보셨는데, 나무껍질이나 잎으로 옷을 삼고 풀잎, 나무뿌리, 과일을 먹고 혹은 하루 한끼를 먹거나 혹은 2, 3일에 한끼를 먹고, 물과 불을 섬기면서 노천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선인은 고행에 대하여 설하되,

'고행에 의하여 미래에는 천계에 태어나고자 한다.' '그러나 천계의 복이 다하면 다시 고계(苦界)에 빠져야 할 것 아닌가? 그대들은 어찌하여 괴로움의 인(因)을 쌓아서 괴로움의 보(報)를 구하는가?'라고 따지고 물으니, 만족한 대답이 없었다. 그리하여 생각하시기를 '장사꾼은 보물을 찾으려고 바다에 들어가고 왕자는 나라를 구하려고 전쟁을 일으키는데, 이 선인들은 천계를 구하려고 고행을 닦고 있구나!고 하였다.

 

이리하여 문답은 저물녘에 이르렀고 거기서 하룻밤을 새웠다. 그대들은 고(苦)의 인(因)을 주장하는데 나는 고의 근본을 끊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행은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튿날 그곳을 떠나 남쪽으로 항하(恒河)를 건너서 왕사성 부근에 나아가 성의 북쪽 미루산(彌樓山)에 머물고 있는 아라라가라마(阿羅羅迦羅摩)라는 수행자를 방문하여 도를 물었다.

"가라마여, 나는 당신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을 하련다."

"뜻대로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좋을 것이오. 이 법은 누구나 곧 체득할 수 있을 터이므로."

얼마 후에 태자는 그 법을 알고 그 가르침을 분명하게 깨닫자 생각하시기를 '아라라가라마가 이 법을 스스로 체득하고 있다는 것은 일체무량식처(一切無量識處)를 넘어 무소유처(無所有處)를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하고 가라마에게 물었다.

"가라마여, 그대는 어떻게 깨달았는가?" 하고 물으니 그는 공무변처(空無邊處)에 대해 설명하면서,

"공무변처라고 하는 것은 모든 물질의 관념을 초월해 버린 것으로, 존재하는 것은 모두 공(空)이다. 다만 공만이 무변(無邊)한 것임을 아는 것이 선정(禪定)의 경지인 것이다." 라고 설하였다.

태자는 깊이 생각하셨다. '아라라가라마에게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도 믿음이 있다. 정진, 정념, 선정, 지혜가 그들에게 있는 것처럼 나에게도 그것이 있다. 그가 체득했다고 하는 그 법을 나도 체득하도록 힘쓰자.' 얼마 후 그 법을 체득하자 가라마를 찾아가서 말하기를,

"가라마여, 당신이 체득했다고 하는 법은 이것뿐이었소."

"그것뿐이오."

"나도 그 법을 체득하였소."

"벗이여, 당신 같은 동학자(同學者)를 얻은 것은 다행이오. 내가 증득한 법을 당신도 증득하고, 당신이 증득한 법을 나도 증득하고 있소. 나와 당신은 같은 곳에 도달하고 있소. 그러니 함께 제자들을 거느리는 것이 어떻소?"

그러나 태자는 '이것은 망집을 여의는 법은 아니다. 욕을 여의는 바른 각의 법도 아니다. 다만 공무변처에 도달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그 법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선을 찾아 안온한 경지에 이르는 길을 구하여 라마의 아들 우다가(優陀迦)를 찾아가 그의 가르침을 받아 행을 닦았다.

태자는 거기에서도 우다가의 법을 체득하고 '우다가의 가르침이 단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이른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라고 하는 일종의 선정의 경지에 달하는 것으로, 이것도 망집을 여의고 애욕을 여의는 바른 각의 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그 비상비비상처의 경지에 아(我)가 없다고 한다면 비상비비상처의 이름조차 있을 수가 없으며, 만일 또 아(我)가 있다고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지각이 있을 것이며, 지각이 있다면 반연(攀煙)이 있어서 집착이 일어난다. 그것으로는 해탈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우다가의 곁을 떠나 다시 선(善)을 구하는 길에 올랐다.

 

태자는 그 후 길을 재촉하여 왕사성에 들어가 탁발을 하셨다. 성 안의 백성들은 태자의 기품 있는 자태를 보고 다투어 그의 뒤를 따랐는데, 그 소란함은 드디어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을 놀라게 했다. 왕은 대각(臺閣)에 올라 태자의 위용을 멀리서 바라보고 수레를 몰아 태자의 뒤를 따랐다. 성 밖의 반도바산(槃茶婆山)에 이르러 왕은 이르기를,

"경은 출가했다고는 하나 나이도 젊고 존귀한 왕자처럼 보인다. 만일 뜻이 있다면 경을 위해 나라의 절반을 할애해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태자가 대답하기를,

"왕이시여, 나는 설산 기슭에 사는 석가족의 왕자인데, 애욕을 괴로움의 근본으로 알고 모든 애욕을 버리고 안온한 열반을 얻고자 합니다. 내가 구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왕은 그 기특한 마음에 감동하여,

"만일 각을 증득한다면 첫째로 나를 제도해 달라."

태자는 묵묵히 그 말을 들은 후, 왕과 결별하고 서남쪽으로 니련선하(尼連禪河)를 건너 우루비라(優留毘羅)의 조용한 숲으로 들어갔다. 백사장이 끝없이 깨끗한 니련선하의 하반, 초록빛도 흐뭇한 우루비라의 숲은 이제 6년에 걸치는 보살 고행의 고장이 되었다.

 

부왕인 정반왕은 태자가 출가한지 얼마 후, 석가족에 속하는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을 뽑아 태자를 따르게 하였는데, 그들도 또한 태자와 함께 고행을 시작하였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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