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찬가(成道讚歌) 8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그때 부처의 힘에 의하여 보리수는 가지도 잎도 줄기도 칠보(七寶)처럼 빛났으며 또 그 자리에서는 빛이 시방(十方)으로 흘러, 널리 온 세계를 비췄다. 지금 부처의 지혜는 바다보다도 깊고 하늘보다도 넓다. 그 빛은 널리 어두운 세계를 비춰, 세상의 일체상은 마치 맑고 맑은 대해에 허공의 별이 똑똑하게 그 그림자를 비치는 것처럼 병연(炳然)히 일시에 그 가슴에 나타난다.
헤아릴 수 없는 보살이나 제신들은 구름처럼 모여들어, 각각 세존의 힘에 대해 찬가(讚歌)로써 그 덕을 찬양하였다. (1) 가이없는 묘법계(妙法界)는 부처의 몸에 충만하여 영원토록 고요하온데, 뭇 중생의 귀의처로서 부처는 이제야 세간에 나오셨도다. 부처가 세간에 나와서 바른 법을 세우니 그 覺은 끝이 없어 빛으로써 우리들의 번뇌를 멸하고 한량없는 기쁨을 주네. 불가사의한 힘으로써 작은 털구멍 속에까지 우리들을 위해 각의 법을 설하시네. 해의 빛이 만물의 모습을 드러내듯 이 부처는 지금 우리들을 위해 업의 형상을 나타내시어 진정한 방향을 가리키시네. (2) 어리석은 어둠에 마음은 교만해지고 방일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부처는 각의 법을 보여 선한 소원과 기쁨으로 돌아가게 하시네. 더할 수 없는 의지처가 되어 부처님은 세상의 괴로움을 除하시네. 우리들이 뵈려 하면 산에 나타나는 보름달처럼 우리들 앞에 나타나시네. (3) 자비라 부르는 자비의 방편을 다하여 우리들의 몸에 파고들어 우리 마음을 조복시키니 청정한 눈이 열린 자는 지칠 줄 모르고 우러러 보네. 한량없는 공덕을 생각하면 크나큰 기쁨이 생기네. 그야말로 부처의 힘이로세. 잠시라도 부처님을 생각하면 길이 모든 번민을 여의리. 지혜의 빛은 가이없이 널리 시방 세계를 비추면서 모든 정성을 다하느니 만큼 이제 눈앞에서 배례드리네. (4) 기이하구나. 빛이 이르자 세간은 모름지기 청정해지도다. 사람의 마음은 도에 눈 떠 기뻐하니 생각이 약동한다네. 어리석음의 어둠에 눈 먼 자까지 지혜의 등불에 開眼이 되어 청정한 부처의 존귀한 모습에 절을 올리네.우리들은 성자의 즐거움과 멀리 떨어져 세간의 괴로움에 빠져 있었지만 이제야 부처님의 청정한 법도에 환희하는 마음 편안하도다. 만물은 모두 공화(空華)이지만 부처는 우리들의 빛이며 자비의 구름으로 세상을 덮어 법의 비로써 윤택케 하네. 한없는 괴로움의 바다를 다 멸하게 하는 분은 오직 부처일 뿐, 대자비의 방편으로 심안을 뜨시었다네. 밑 모를 깊은 바다처럼 법의 공덕은 한이 없어 모든 소원을 다 들어 주시네. 아아, 그 목소리는 부드러워도 그 울림은 우뢰 같구나. 부처가 정법을 설하니 우리들은 그저 즐거움만 넘치네. 그 목소리에 마음은 뛰고 법의 기쁨은 가슴에 넘치네. (5) 우리들 죄는 무거워 백천겁(百千劫)에도 부처를 경배하지 않으니 생사를 거듭하며 괴로움을 받도다. 그런데도 부처님은 지금 우리들을 구제하시려고 바로 현실 세간에 나오셨네. 중죄와 악한 장애도 모든 방편으로 제하시고 우리들을 법으로 이끌어 주니, 한량없는 시간을 거듭하여 부처가 원래 행(行)을 닦을 당시 모든 부처를 찬양하셨기에 이제야 세간에 그 영예는 높이 들리네. 편안하게 도량에 앉아 있지만 무너지지 않는 힘에 의해 모든 국토에 시현하시는 그 용자를 사람들은 우러러본다. 모든 행은 원만하고 구름 일 듯이 빛은 솟는다. 국토라는 국토를 모두 비춰 깊은 법을 나타내시네.
보현(普賢)의 찬가. 그때 보현 보살은 부처의 힘을 받아 모든 세계와 모든 중생의 업과 원(願) 그리고 3世의 부처들을 살피시고 바다처럼 모인 대보살들에게 말씀하기를, "불자(佛子)들이여, 부처님 세계의 흥함이나 퇴폐함이나, 그 청정한 지혜에 대해서는 사량할 수조차 없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부처의 힘에 의해서 사람들을 부처의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이러한 법문을 설하리라." 그리고 노래로써 설하였다. (1)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길이 없다. 그 업은 모든 국토를 낳는다. 사람이 부정(不淨)하면 나라가 부정하고, 업에는 한량이 없으므로 세계가 일어남도 한이 없도다. 사람이 만일 보현의 행을 닦으면 청정한 세계에 떳떳하게 가리라. 그 공덕은 부처님 같아 한없는 부처의 나라를 낳으리. 한량없는 국토는 보현 보살의 一念에서 생하고, 하나하나의 미진(微塵)에 국토는 평안하니 부처의 마음이 구름만 같아 그 하나하나의 국토를 지키도다. 모든 국토는 마음의 행에서 일어나며 또 거기에는 한량없는 모양이 있도다. 혹은 청정하고 혹은 더럽고, 괴로와하고 즐거워함이 갖가지로다. 만물은 모두 항상 변하고 항상 이동하나니. (2) 먼 옛날부터 착한 사람과 가까이하여 청정한 행위가 자비와 함께 흐르면 부처의 국토는 청정해지리라. 보다 청정한 마음으로서 굳게 부처를 믿으라. 참는 힘, 더러움이 없으면 국토라는 국토는 모름지기 갸륵하게 꾸며지리라. 한량없는 방편으로써 모든 국토를 낳고 사람들의 원에 따라 부처님은 세간에 나오신다. 부처의 법신은 사량하기 어렵도다. 색(色)도 상(相)도 없으므로 비교할 수 없도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는 자는 어디에서나 부처를 뵐 수 있도다. 충만한 자비의 大海에서 온갖 방편을 다하여 부처님 이제 출현하시도다. (3) 이 나라는 보석으로 꾸며지고 하나하나의 보석은 구름처럼 빛나 인세의 괴로움을 없애고 바른 도에 안주케 하도다. 못에는 향기로운 물이 넘치고 꽃빛은 사방으로 흐르며 기쁜 목소리는 멀리까지 들리도다. 진주의 난간, 보수(寶樹)인 가로수, 밝은 음악 소리는 청징(淸澄)하여 三寶의 덕을 찬양한다. 구슬을 꿰맨 나망(羅網)은 서로 부딪쳐 부처의 목소리를 내고, 모든 보살과 부처의 법과 보현의 행과 부처의 서약의 목소리는 항상 피안에서 들리도다. (4) 부처는 널리 시방에 모양을 나타내시나. 가지도 않고 또 오지도 않으시네. 그러나 부처의 원에 의해 사람이 모두 우러러보도다. 국토가 서로 국토에 들어가도 늘지도 않고 또한 줄지도 않으며, 한 국토가 시방에 차고, 시방의 국토가 또한 한 국토에 들어가도 세계의 모양은 무너지지 않도다. 모든 국토의 티끌 중에서도 부처의 자재로운 힘을 보고 그 목소리는 바다에 진동하여 사람들은 조복하네. (5) 여러 가지 나무에 의하여 여러 가지 과일이 열리듯이 여러 국토에는 갖가지 인종이 있고, 씨앗이 다르면 과일이 다른 것처럼 업에 따라 국토도 다르도다. 용왕이 구름을 일으키듯 부처는 그 원력(願力)으로 모든 국토를 일으키시네. 그림은 화가에 의하고 국토는 마음에 의한다. 일념(一念)중에 한량없는 국토가 탄생한다. 부처가 주재하는 국토는 청정하여 번뇌를 여의도다. 어떤 국토는 진흙탕으로 이루어져 청정하지 못하고, 빛이 없어서 언제나 어둡다. 죄인이 여기에 산다. 어떤 국토는 진흙탕으로 이루어져 고뇌에 차있다. 박복한 자는 여기에 사는도다. 또 어떤 국토는 진흙탕으로 이루어져 항상 괴롭고 영원한 어둠이기는 하지만 바다처럼 빛이 비치도다. 축생의 세계에는 또 수없이 많은 몸뚱이가 있어 전생의 業에 따라 영원한 괴로움을 받도다. 죽음의 세계는 굶주림과 목마름의 괴로움으로 항상 시달리고 또는 불타는 산에 몰리어 헤아릴 수 없는 괴로움을 당하도다. (6) 사람들의 원에 따라 부처는 갖가지로 몸을 나타내지만 기연(機緣)이 아직 이르지 않은 사람은 번뇌의 구름에 막혀 부처의 마음은 보지 못하는도다. 어떤 국토는 청정한 행의 소리가 차고 광명이 솟는 소리, 보살의 소리, 다함 없는 서원의 소리, 도를 닦는 소리, 결국은 삼세의 부처들의 존귀한 이름을 듣도다.
문수(文殊)의 찬가. 때에 시방의 국토에서 수많은 보살이 구름처럼 이 회좌(會座)에 모였다. 문수 보살은 이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대중을 향하여, "부처의 처소(處所), 불법(佛法), 부처의 출세간, 부처의 국토가 일어나는 까닭은 모두 불가사의한 것이다. 부처가 그 법을 설하실 때에는 먼저 중생들의 마음을 알고 그것에 응하여 교화하시므로 부처에게는 무량한 방편과 법문이 있다."고 말하고 노래로써 법을 설하였다. (1) 모든 고뇌를 떠나 세간에 집착이 없음을 알지라도 그는 도안(道眼)을 청정케 하지 못하리라. 있는 바가 없다고 보고 법의 멸하는 모양을 안다면 그는 부처가 될 것이다. 마음이 평등(平等)하게 불이(不二)의 법문에 들어가면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불린다. 하나 가운데에서 무량(無量)을 알고, 무량한 가운데에서 하나를 안다. 마음에 생하는 것은 실(實)이 없고 지혜 있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다. (2) 어리석은 괴로움에 핍박되어 애욕의 사람을 보고 항상 각의 길을 구한다. 부처님의 도는 이것이다. 잘못된「유」와「무」의 견해를 여의고 참된 법을 관(觀)하여 옛날에 없었던 가르침을 베푸시도다. 이 성인은 모든 경(境)을 파괴하지 않고, 헤아릴 수 없는 국토에 노니며 모든 有에 집착하지 않고 부처처럼 자재하다. 하나하나의 사람들을 위하여 무간뇌(無間惱)의 지옥에 들어가 영겁으로 삶아져도 부처님처럼 마음은 청정하다.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항상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켜 항상 인(忍)의 행에 힘쓰면 부처님의 법을 체득하리라. 사람과 신과의 즐거움을 떠나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을 구하도다. 내 몸의 참 모양을 보라. 萬有는 모두 고요하다.「我와 我가 아닌 것」의 생각을 여의라. 한량없는 세계를 헤아리고 모든 고뇌의 바다를 삼켜 위대한 힘을 얻으라. (3) 수승한 모양을 보고 부처를 보았다고 한다면 병든 눈의 헷갈림이로다. 뛰어난 법을 그는 모른다. 부처의 모양은 세간 중생들이 볼 수 없으며, 억겁으로 사량하더라도 힘은 다함이 없다. 모양은 부처가 아니니 부처에게는 모양이 없다. 그렇지만 부처는 미묘한 모양을 구하는 대로 시현하신다. 부처의 정법은 헤아리기 어렵고 모든 말로도 미치지 못한다. 모이는 것도 아니고 또 흩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 성(性)은 항상 고요하다. 육신은 부처가 아니며, 분명히 관(觀)하여 모양에 집착하지 않으면 자재의 힘을 얻어 부처를 보리라. 몸도 마음도 모두가 같으며 안팎에 장애가 없다. 영원히 생각이 바르고 집착하는 생각이 없으며 널리 빛을 발하며 모든 경(境)을 비추면서 청정한 지혜의 눈으로써 만유의 근저를 궁구(窮究)한다. 1은 무량으로 , 무량은 1로, 사람들의 성(性)에 따라 모름지기 상(相)을 나타내신다. 몸은 오는 곳도 없고 또 가는 곳도 없다. 그러나 가자(假藉)하여 갖가지 몸을 시현하도다. 세계는 모름지기 망집에서 생하며 망집의 법은 실성(實性)이 없다. 이 참모양이야말로 부처가 궁구하신 것이다. 진정 이같이 보는 자야말로 도사(導師)를 본 사람이 아니랴. (4) 망집의 극을 진멸하여 부처님이 지혜의 등불을 걸어 놓고 정법의 배(船)와 가르침의 다리를 설치하고 구해야 할 것을 권한다. 그 생사의 뇌옥에는 재앙은 참으로 헤아릴 수 없다. 노, 병, 사의 괴로움은 다투어 다가와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 깊은 법을 알고 오로지 방편이 있는 지혜를 닦아서 이러한 괴로움을 제거하시니 이것이 부처의 경계임이라. 부처는 공(空)이면서 고요하지만 환상으로 보지는 말라. 소경이 빛깔을 대하는 것같이 부처를 뵙더라도 보는 바 없도다. 거짓 모양에 집착하는 사람은 참으로 부처를 보지 못하나 모든 것에 집착이 없는 사람은 진짜 부처를 보리라, 한량없는 부처는 허공에 충만하여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다. 세계의 성주괴공(成住壞空)에 의거하는 바가 없이 부처의 몸은 허공에 가득하도다.
출전 : 불교성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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