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성전)-135-수행문4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제2장 참다운 자아반성(自我反省)
제1절 부처님은 누구며 나는 누구인가
「법계(法界)를 의지하여 처음으로 노니는 이는 네가지 위의(威儀)에 있어서 조금도 헛되게 노니는 일이 없이 모든 부처님의 헤아릴 수 없는 덕을 생각하고 항상 실다운 상(相)을 생각하여 업장(業障)을 녹이며 널리 여섯갈래 세계(六道)의 수없는 중생을 위하여 시방의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께 귀의(歸依)할 것이니 모든 부처님은 서로 다른 것도 아니요 또한 하나도 아니며 하나가 곧 일체(一切)요 일체가 곧 하나이니라. 비록 머무는 바도 없고 머물지 않음도 없으며 하는 바도 없고 하지 않음도 없지만 낱낱의 상호(相好)와 낱낱의 털구멍(毛孔)마다 가없는 세계가 두루하여 있고 끝 없는 미래의 시간까지 다하여서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어떠한 차별도 있을 수 없느니라.
중생을 교화함에는 잠시도 쉴사이가 없으니 왜 그런가. 시방 삼세가 한 티끌 한 생각이요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둘일 수 없고 분별될 수도 없으며 큰 자비(慈悲)와 반야(般若)는 취할 것도 없고 버릴 것도 없으며 또한「같지 않은 법(不共法)이 서로 응함」을 얻기 때문에 이제 이곳 연꽃장엄세계(蓮華藏界)에서「노사나불(盧舍那佛)」이 연화대(蓮華臺)에 앉아 갓없는 광명을 놓으시고 한량없는 중생을 거두어 이끄시느니라.
그리하여 변함없는 대승의 법바퀴를 굴리심으로 보살 대중은 허공에 가득 차서 받을 것 없는 대승법의 즐거움을 받느니라.
이제 우리들은 같은 하나의 실다운 삼보(三寶)로써 허물없는 이러한 곳에 함께 있으면서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함이 마치 귀머거리 같고 장님 같으니 불성이 없음인가 어찌하여 그런가.
무명(無明)의 뒤바뀜으로 망녕되이 바깥 경계를 지어「나」와「내 것」에 집착하여 갖가지 업을 지어 스스로 뒤덮임으로써 보고 들을 수 없는 것이다. 마치 아귀(餓鬼)가 강물을 마시려 해도 불로 보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이제 부처님 앞에 나아가 매우 부끄럽고 죄스러움을 느끼고「보리심」을 일으키고 깨달아 성심으로 참회하되,“나와 중생이 과거의 끝없는 때로부터「무명」에 취한바 되어 죄를 한량없이 지어 다섯가지 죄와 열가지 악을 지었으며 스스로도 짓고 다른 이를 시켜 그 하는 짓을 따라 기뻐하나니 이와 같은 뭇 죄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모든 부처님과 성현은 밝게 아시는 바입니다.”라고 하라.
이미 지은 죄는 깊이 부끄러워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내며 아직 짓지 않은 죄는 다시 짓지 않도록 할지니라.」
출전 : 성전(대한불교원효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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