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성전)-116-교리문8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제2절 불법바다로 들어가는 길
「장자여, 하나의「불도」에 머무르면 곧 세가지 행을 통달하느니라.」
「어떤 것을 세가지 행이라 하나이까.」
「세가지 행이란, 一은 일을 따라 취하는 행이요 二는「식」을 따라 취하는 행이며 三은「진여」를 따라 취하는 행이니라.
장자여, 이러한 세가지 행은 여러 문을 다 껴잡아 지녔으며 온갖 법문은 모두 다 이 문에 들어오나니 이 행에 들어온 이는「공」이란 모양을 내지 않느니라. 이렇게 들어온 이는「여래갈무리」에 들어왔다고 할 것이며「여래갈무리」에 들어간 이는 그 들어갔다는 것도 들어감 아닌데 들어간 것이니라.」
범행장자는 사뢰었다.
「매우 희유하나이다.「여래갈무리」에 들어갔다는 것은 마치 싹이 열매를 맺은 것과 같나이다. 그 열매는 밖에서 들어간 곳도 없으며 그 뿌리에 갖추어진 보람(利力)으로서 그 보람이 도로 그 근본을 이룩하나니 그 근본 진리의 바닥을 얻는데는 그 지혜가 몇이나 되나이까.」
「그 지혜는 끝이 없느니라. 요약하여 말하면 넷이 있느니라. 넷이란 一은「결정한 지혜(定智)니「진여」를 따르는 행이요, 二는 정치 않은 지혜(不定智)니 방편으로 꺾어 부수는 것이며, 三은「열반지혜」니 번개같은 생각을 제거함이요, 四는「마지막 지혜(究竟智)」니 실상이 구족한 도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장자여, 이러한 네가지의 쓰임새(事用)는 과거 모든 부처님의 말씀하신 것이니 그것은 큰 다리(橋梁)며 큰 나루터라 만일 중생을 교화하려면 마땅히 이 지혜를 쓸지니라.
장자여, 이 큰 쓰임새를 쓰는데 다시 세가지 큰 일이 있다. 一은 세가지「삼매」에 안팎이 서로 뺏지 못함이요, 二는「대 · 의 · 과(大·義·科)」에서 그 도리를 따라 잘 가려내고 꺾어 없앰이며, 三은「진여」를 따르는 혜·정(慧定)에 대비(大悲)의 이익을 갖춤이니 이러한 세가지 일로「보리」를 성취하느니라. 이 일을 행하지 않으면 능히 저 네가지 지혜바다에 흘러들지 못하고 모든 마군이 그 틈을 타게 되리라.
장자여, 너희들 대중은 부처 되기까지 항상 이것을 닦아 익히어 잠깐도 놓아버리지 말지니라.」
「어떤 것을 세가지「삼매」라 하나이까.」
「세가지「삼매」란「공(空)삼매 · 지음없는(無作)삼매 · 형상없는(無相)삼매」이니라.」
「어떤 것을「대 · 의 · 과」라 하나이까.」
「「대」는「四大 원소」를 말함이요「의」는「오음(五陰) · 십팔계(十八界) · 육입(六入)」을 말함이며「과」는「본식」을 말함이니 이것을「대 · 의 · 과」라 하느니라.」
「매우 희유하나이다. 이러한 지혜의 공용(功用)은 스스로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여「삼계」를 지나가며,「열반」에 머물지 않고「보살도」에 들어가나이다. 이러한 법의 모습(대 · 의 · 과)은 나고 사라지는 법이니 분별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분별을 여의면 법은 반드시 사라지지 않으리이다.」
그 때에「여래」께서는 이 뜻을 펴려고 게송을 읊으셨다.
「모든 법은 분별을 좇아 일어나고 그 분별을 좇아 도리어 사라지네.
모든 분별의 법을 없애 버리면 그 법은 나고 멸함 아니네.」
그 때에 범행장자는 이 게송을 듣고 매우 기뻐하여 그 뜻을 펴려고 게송을 읊었다.
「모든 법은 본래로 적멸한 것 적멸은 또한 나는 것 없나니
그 온갖 나고 사라지는 법 그 법은 남(生)없는 것 아니다.
그것은 이 법과 같지 않은 것 아주 없다(斷) · 늘 있다(常)고 하는 까닭에
이것은 그 두가지를 여의었지만 또한 하나에도 머물지 아니하네.
만일 법에 하나가 있다고 말하면 이 모습은 허공의 꽃과 같은 것
마치 아지랑이를 흐르는 물로 속듯 온갖 허망한 분별인 까닭이네.
만일 법이 본래 없는 이치를 보면 그 법은 마치 허공과 같은 것
장님이 해(日)가 없다 고집하듯이 그 법을 설명함도 거북의 털과 같네.
내 이제 부처님 말씀 듣고서 법에 두가지 봄(見)없는 줄 알고
또한 중(中)도에도 머물지 않고 짐짓 머무름 없는 뜻을 받아지니네.
여래의 말씀하신 그 모든 법 머무름 없는 데로 좇아 왔나니
나도 머무름 없는 이치를 따라 여기서 여래에게 경례합니다.
여래의 그 상호(相好)에 경례하옴은 허공처럼 움찍 않는 지혜이며
아무데도 집착 없고 머무는 곳 없는 머무름 없는 몸에 경례합니다.
나는 항상 어디서나 모든 여래를 뵈옵나니
바라건대 모든 여래께서는 나를 위해 항상한 법 말씀하소서.」
그 때에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 선남자여, 너희들은 자세히 들어라. 너희들을 위하여 항상한 법을 말하리라. 선남자여, 항상한 법이란 항상한 법이 아니다. 말도 아니요 글자도 아니며 의리(義理=諦)도 아니요 해탈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요 경계도 아니다. 망녕되이 없다는 모든 소견을 여읜 것이다. 이 법은 항상됨이 없는 것이 아니라 늘「있다」·「아주 없다」는 모든 소견을 여읜 것이다.「식(識)」자체를 사무쳐 보면 그「식」은 항상한 것이다. 그「식」은 항상「적멸」한 것이며「적멸」하다는 것도 또한「적멸」하니라.
선남자여, 법의「적멸」을 아는 이는 적멸한 마음도 아니면서 마음은 항상 적멸하다. 적멸을 얻는 이는 마음이 항상 참된 관(觀)에 머무느니라.
모든 이름(受 · 想 · 行 · 識=四蘊)과 색상(色相=色蘊)은 오직 어리석은 마음인 줄을 알라. 어리석은 마음의 분별로 모든 법을 분별함이요 다시 다른 일로서 이름과 색상에 벗어남이 없다. 법의 이러한 줄을 알면 문자와 말에 따라가지 아니하며 마음마음이 저 이치에서「나」를 분별하지 않느니라.
「나」라는 것이 헛 이름인 것을 알면 곧「적멸」을 얻을 것이요 만일「적멸」을 얻으면 곧「아누타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그 때에 장자 범행은 이 말씀을 듣고 게송을 읊으셨다.
「이름과 상(相)으로 분별하는 일과「법」을 아울러 셋이라 하며
「진여」와 올바르고 묘한 지혜와 그것을 아울러 다섯이 되었네.
나는 이제 이 법의 없다 · 있다 하는 소견에 얽매이어
나고 죽는 길에 들어간줄 아나니 이것은「단견(斷見)」이요 항상됨이 아니다.
여래가 공한 이치 말씀하시어 없다 · 있다는 소견 여의게 하시니
인연으로 나지 않음 없나니 나지 않으므로 사라지지도 않네.
인연을 집착하여 있다고 하는 것은 마치 허공의 꽃을 따는 듯
또한 돌계집(石女=望夫石)의 아기를 구하는 듯 그것은 마침내 얻지 못하리
모든 인연의 취함을 여의고 또한 딴 것으로 좇아 일어난다거나
「五蘊 · 十八界」등 자체가 있다고 하지 말고「진여」에 의하므로 진실을 얻으리.
그러므로 이 진여의 법은 항상 자재롭게「여여」하나니
온갖 세간의 현상은「진여」가 아니라「식」으로 나타난 것
「식」을 여의면 만법이 다「공」한 것 그러므로 그 공을 의지해 말하나니
나고 사라지는 모든 법을 없애고 언제나「열반」에 머무름이여.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열반」의「적멸」에도 머물지 않고
취할 것(열반)과 취하려는 마음을 구울리어 모두「여래갈무리」에 들어가도다.」
그 때에 대중들은 이 진리의 설명을 듣고 다 올바른 지혜를 얻어 여래의「여래 갈무리 바다」에 들어갔다.
<金剛三昧經 如來藏品>
출전 : 성전(대한불교원효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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