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성전)-118-교리문87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제2절 세가지 해탈의 길
「대승 가운데「三해탈도」는 한결같이 자성이 없다. 자성이 없으므로 공이며 공한 까닭에 상(相)이 없고 상이 없는 까닭에 지음(作)이 없으며 지음이 없는 까닭에 구함이 없고 구함이 없으므로 원함이 없다. 이런 행업(行業)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므로 부처를 보게 되며 부처를 보므로 마땅히「정토(淨土)」에 나게 된다. 보살은 이 법을 세가지의 화술(化術…三化)로 부지런히 닦아서「혜」와「정」이 둥글게 이루어졌으므로「삼계」를 뛰어나느니라.」
「여래의 말씀하신 남도 없고 · 사라짐도 없다는 것은 곧 항상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나고 · 사라짐을 모두 다 없애면「적멸」은 항상 있을 것이요 항상함으로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 함이 있는 법(世間法)을 불구덩이 피하듯 할 것이온데 어떤 법을 의지하여 스스로 채찍질해야 저 하나의 문에 들어가겠나이까.」
「보살이 저 세가지 큰 일에 그 마음을 채찍질하면 세가지 큰 법에서 그 행에 들어가게 되느니라.」
「어떤 것을 세가지 일에 그 마음을 채찍질하며 세가지 이치에서 그 행에 들어간다 하나이까.」
「세가지 일이란 一은「인(因)」이요 二는「과(果)」요 三은「식」이다. 이런 세가지는 본래 공하여 없는 것이어서 나의「참나(眞我)」가 아니어늘 어찌하여 이것에 애착할 것인가. 이 세가지 일에 얽매이어 고해(苦海)에 표류함이라고 관찰하고 스스로 채찍질 하느니라.
세가지 법이란 一은「보리」의 도니, 이것은 평등한 법이요 평등치 않은 법이 아니다. 二는 큰 깨달음을 바른 지혜로 얻는 법이니, 삿된 지혜로 얻는 법이 아니다. 三은「혜」와「정」이 다름이 없는 행으로 들어가는 법이니, 잡된 행으로 들어가는 법이 아니다. 이 세가지 법으로「불도」를 닦으면 그 사람은 법에「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할 리가 없으리라.「바른 깨달음」의 법을 얻으면 다함없는 자비를 자아내어 나와 남을 함께 이롭게 하여「불보리」를 이룩할 것이다.」
「이러한 법은 인연이 없으리니 만일 연(緣)의 법이 없다면 인(因)도 곧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움직이지 않는 법으로「여래경지」에 들어가겠나이까.」
그 때에 여래는 이 뜻을 펴려고 게송을 읊으셨다.
「온갖 법의 실상은 자성이 비어 있어 움직이지 않나니
이 법은 언제나 이때(現在)이지만 이 때에 일어남도 또한 아니다.
법은 다른 때(과거 · 미래)가 없나니 다른 때에 일어남도 또한 아니다.
법은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도 없어서 자성이 공하므로「적멸」하니라.
자성이 공하여「적멸」할 적에 이 법(不動法)은 이즈음에 나타나나니
상을 여읜 까닭에 고요히 머물고 고요히 머물기에 인연하지 않네.
이 모든 인연으로 일어나는 법 이 법의 인연은 남(生)이 없나니
인연으로 나고 사라짐 없어 나고 사라짐의 자성은 공적하다.
인연의 자성과 인연함(能緣)과 인연하는 것(所緣) 이 인연(能 · 所二緣)은
근본 인연에서 일어나나니 그리고 법의 일어남은 인연이 아니다(緣性空故)
인연의 일어남 없는 것도 또한 그렇네.
인연으로 생겨진 법 그 법은 곧 인연이어니와
인연이 나고 사라지는 모습 그것은 나고 사라짐 없는 것이다.
그「진여」의 진실한 모습은 본래 나고 사라짐이 아니언만
모든 법은 그때에 절로 나고 사라지곤 하도다.
그러므로 가장 청정한 근본은 본래 여러 힘으로 인함이 아니니
바로 저 마지막 얻는 곳(究竟覺)에 그 얻음은 본래 얻음(本覺)을 얻는 것이네.」
출전 : 성전(대한불교원효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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