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성전)-113-교리문82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제2절 이치다운 부처님 말씀
사리불은 다시 사뢰었다.
「모든 법은 다 문자와 말로 표시되나이다. 문자와 말의 모습은 곧 뜻이 되지 않으므로 여실한 뜻을 말할 수 없다면, 이제 여래께서는 어떻게 법을 말씀하시나이까. 」
「내가 법을 말한다는 것은 너는 중생으로서 중생을 위하여 말하므로 그 말은 참 뜻을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느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내가 말하는 것은「뜻말」이요「글말」이 아니며 중생의 말은「글말」이요「뜻말」이 아니라”하느니라.「뜻말」이 아니란 참 뜻은 비어 없는 것이니 비어 없는 말은 그 뜻을 말함이 없다. 뜻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가 망어(妄語)요 뜻과 같은 말이란 실다운 공은 공이 아니며 공이 실답다 하는 것은 실답다 할 것도 아니니라. 두가지 모습을 여읜 중간이라 할지라도 그 중간도 아닌 법은 세가지 상(相)을 여의어, 그 처소를 볼 수 없어 「여여」와 같이 말한다.「여」의 없음이란 본래 있는 것이 없나니 무엇을 있는 데서 없다고 할 것도 없으며「여」는 본래 없는 것이므로 그 없다는 것은 어떤 있는데 대하여 없다는 것도 아니다. 있는 것도 없는 것도 다 있지 않나니 이 있지 않음을 말하는 까닭에「여」자체도 없다.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닌 것이「여」의 말이니라.」
「온 중생들은「일천제」로 좇아왔으니「일천제」의 마음은 어떤 지위를 거쳐야 여래와 여래의 실상에 이를 수 있나이까.」
「「일천제」의 마음으로 좇아 여래와 여래의 실상에 이르는 데는 다섯 등급을 거치느니라.
一은「믿음의 자리(信位)니 이 몸 가운데 진여의 씨앗이 있지만 망심의 가리운 줄을 믿고 망심을 놓아 버리면 조촐한 마음이 청백하여 모든 경계는 생각과 뜻의 분별인 줄을 아느니라.
二는「생각자리(思位)」니 생각한다는 것은 모든 경계는 오직 생각과 말뿐이니 생각과 말로 분별하여 마음대로 나타내었으므로 보는 경계는 나의「근본식(本識)」이 아닌 줄을 관하는 것이다. 이「근본식」은 법도 아니요 뜻도 아니며 취할 바의 경계도 아니요 능히 취하는 마음도 아닌 줄을 알게 되느니라.
三은「닦음자리(修位)」니 닦는다는 것은 항상 지혜로 지·관(止·觀)을 일으키어 그 일으킴과 닦음이 때를 같이 하지만 먼저 지혜로써 이끌어 모든 장난을 제거하고 덮어 얽맴(번뇌·업장)을 여의는 것이니라.
四는「행자리(行位)」니 행한다는 것은 모든 행의 경지를 여의고 마음에 가지고 버릴 것이 없으며 매우 청정하고 날카로워 움직이지 않는 마음의「진여」와 본연의 참 성품으로 큰「열반」경지에 들어가나니 오직 자성의 공한 경계이니라.
五는「버림자리(捨位)」니 성공(性空)의 경계에도 머물지 않고 바른 지혜는 근기를 따라 변동하지만 대비심은 평등한 한 모양이며 그 모양이「일여」에도 머물지 아니하고「삼먁삼보리」도 텅 빈 마음으로 증득하지 아니하며 마음은 끝간 즈음이 없어서 어떤 처소를 볼 수 없나니 이것이 여래에 이르는 길이니라.
선남자여,「五位」는 하나의 깨달음이라「본래 깨달음」의 이익(공덕)으로 좇아 들어가나니 만일 중생을 교화하더라도 그 본고장(本處)을 의지해야 하느니라.」
사리불은 사뢰었다.
「어떤 것을 그 본고장을 의지한다 하나이까.」
「본래 본고장이란 것도 없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같은 경지에서 진실에 들어가「보리심」을 일으키어 성도(聖道)를 성취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남자여, 마치 손으로 허공을 잡는 것과 같아서 얻는 것도 아니요 얻지 않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니라.」
출전 : 성전(대한불교원효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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