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이조불교(李朝佛敎)

근와(槿瓦) 2016. 4. 13. 00:13

이조불교(李朝佛敎)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이조시대의 대표적인 종교로는 역시 불교를 들 수 있다. 이조에서는 처음부터 불교를 배격하고 유교를 숭상하였으나 오랜 기간에 걸쳐 번성하였던 불교 중심의 문화가 일시에 거세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고려 이래로 불교의 폐단이 많았음은 사실이어서, 태조 때부터 이에 대한 개혁에 착수하였으며 태종은 시종일관 불교의 탄압 정책을 써서 태조 때에 제정한 도첩제를 더욱 엄하게 하고 전국의 사원을 정비하여 242개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버리는 동시에 거기에 딸려 있던 토지와 노비는 모두 국가에서 몰수하였으며 고려 이후 전해오던 國師·王師의 제도를 폐하는 등의 조처를 취하여 불교는 큰 타격을 받았다.

 

뒤이어 세종도 처음에는 억불정책을 썼는데, 특히 불교의 7종파를 선 · 교 양종으로 통합하는 한편 전국에서 선종 · 교종에 각각 18본산, 도합 36본산만을 인정하였으며, 서울 안에 있던 흥천사와 흥덕사를 각각 선 · 교의 대본산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無學대사를 비롯하여 많은 명승들이 배출하였다.

 

세종은 만년에 불교를 믿게 되었으며 소헌왕후가 죽은 뒤에는 경복궁 안에 內佛堂을 짓기까지 하였다. 당시 조정에서는 유신들에 의해 斥佛의 소리가 높았으나 왕실에서는 불교를 독실히 믿었으며, 훈민정음이 반포된 뒤에는 불경의 언해가 시작되었다.

 

세조는 불교를 독실히 믿어 처음부터 사원 및 승려의 보호에 힘썼으며, 또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각종의 불경을 우리 말로 번역해 내는 등, 이조시대 불교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성종이 즉위하여서는 이내 억불정책을 써서 도첩을 발급하지 않고 승려들의 환속을 장려한 일도 있었다.

 

연산군 때에는 더욱 심하여, · 교 양종의 대본산인 흥천사 · 흥덕사의 철폐와 동시에 僧科 · 法階 등 불교에 관한 관제가 없어짐으로써 국가와의 관계가 단절된 私的인 단체로서 남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선 · 교 양종의 존재 의의도 없어지고 따라서 종파도 제대로 구분될 수 없었다.

 

명종 때에 문정대비가 섭정하면서 보우라는 승려를 등용하고 양종을 부흥하며 승과와 도첩제를 다시 실시하여 한때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으나 문정대비가 죽자 곧 양종 · 승과 · 도첩제는 모두 폐지되고 보우스님은 杖殺되며 불교는 또 다시 쇠퇴하여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선조 때 임진왜란을 당하여 휴정(서산대사)과 유정(사명당) · 영규 · 처영 등이 승병을 이끌고 나라를 위해 일본군과 싸움으로써 그에 대한 보답으로 교세를 만회할 기회를 얻었다. 한편 휴정은 선 · 교 양종을 조계종의 단일종으로 만들었으며, 그의 문하에서 유정 · 언기 · 태능 등의 고승을 비롯하여 우수한 승려들이 많이 나와서 제각기 훌륭한 업적들을 남겼다.

 

불교가 배척되던 이조 사회에서는 승려들도 賤人과 같은 대우를 받았으나, 일반 백성들은 국가 정책과는 별 관계없이 대부분 불교를 신봉하였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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