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불교미술(佛敎美術)

근와(槿瓦) 2016. 1. 12. 00:29

불교미술(佛敎美術)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불교미술의 기원은 석존이 성도한 후 건립한 기원정사나 죽림정사와 같은 건축물들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를 반드시 본격적인 조형활동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본격적인 불교미술의 전개는 敎主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후 화장(다비)하여 얻은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架構物의 축조에서부터 비롯된다.

 

이때 인도에서는 舍利紛爭 후 根本八塔을 건립하게 했다. 이 탑의 시원은 곧 불교적 조형화의 출발점인 동시에 신앙활동의 주요 예배대상이 되었다. 그 후 아쇼카(B.C. 298~B.C. 232)왕이 佛塔을 많은 곳에 건립하여, 불교적 조형활동이 활발해지는 시대를 맞았다. 이때 無佛像時代의 갖가지 조형물을 낳게 하였다. 또 탑의 건립 이외에 석존사원의 출현도 있게 되었다.

 

1세기경에 이르러 비로소 불타의 모습을 형상화한 불상이 조성되었다. 인도의 마투라(Mathura)지방을 중심으로 한 재래적 조각 양식과 간다라지방을 중심으로 한 헬레니즘 문화 등 유럽의 영향을 받은 조각 양식 등이 발달을 보았다. 점차 불상조각이 활발히 전개되면서 종래의 탑 중심 신앙형태 또한 불상으로 옮겨가는 양상을 나타내게 되었다. 즉 사원의 중심축이 탑에서 서서히 불상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교세의 확장은 더욱 빈번한 사원건축의 출현을 낳게 하면서 각 분야에 걸쳐 화려하고도 다양한 조형활동을 가능하게 하며 불교미술이라는 독자적인 양식을 창출하였다. 불교미술의 부분을 크게 건축 ∙ 조각 ∙ 회화 ∙ 공예로 구분하여 설명하면,

 

① 건축. 불교미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건축이다.

 

가람의 배치에서 탑과 법당 등 佛殿을 중심으로 하여 사찰은 구성된다. 원래 사찰을 의미하는 절(寺)은 중국에서 외교사절을 관장하는 관청을 뜻하였다. 이것은 불교가 처음으로 수용될 때의 사정을 짐작하게 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의 경우, 일반 민간건축과는 달리 사원과 궁정의 건축물이 동일한 양식을 가진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람배치의 형태는 각기 특색을 이루고 있으나, 크게 보면 대부분 탑 ∙ 金堂 ∙ 僧院 등의 복잡한 형식이다.

 

感恩寺의 경우, 中門을 지나 雙塔이 있으며 중심부에 金塔을 세우고 뒤에 강당건물을 건립하는 한편 그 주위에는 회랑을 구축하고 있다. 고대 사원 건축의 유례로는 月城 斷石山의 神仙寺를 비롯한 석굴사원이 있으며 평지와 산지에 각종 사원이 건립되었다. 이것은 대개 목조건축물인데, 고려시대의 유례로 浮石寺 무량수전과 조사당 및 안동 鳳停寺의 극락전 등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가람배치의 여러 양상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특성을 달리하면서 발전되었다. 그 가운데도 탑의 존재는 결코 간과할 수 없다. 탑은 원래 범어의 스투파(stu=pa)와 파리어의 투파(thupa)를 漢字로 音譯한 것이다. 따라서 塔婆라는 말의 시원이기도 하다.

 

탑은 쉽게 말하여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한 무덤이다. 다만 불교도들의 주요 예배 대상이 되면서 사원의 중심부를 이루어 그 聲價가 높아간 것이다. 印度塔의 경우는 覆鉢形으로 탑의 기본 양식은 基壇部와 塔身部, 그리고 相輪部로 구성되어 있다. 탑의 재료는 금 ∙ 은 ∙ 동을 비롯한 금속 이외에 나무나 돌 또는 흙벽돌 등 다채롭게 사용되었다. 그것은 나라별로도 특성을 가져 일반적으로 중국이 塼塔, 일본이 木塔을 즐겨 건립한 반면, 한국은 石塔의 나라라고 일컬을 만큼 석탑의 건립이 많다. 현재 확인된 석탑의 수효만 해도 1,500기 정도에 이르고 있다. 석조건축의 핵심을 이루는 석탑의 시원 양식은 전라북도 익산군의 미륵사지 석탑으로 본다. 일찍부터 동양의 大塔이라고 불릴 정도로 규모가 큰 이 탑은 石材로 목탑양식을 충실하게 모방하여 건립한 우리 나라 석탑의 始原形이다. 이러한 한국 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은 부여의 정림사지 5층 석탑에서도 볼 수 있다. 백제탑의 경우 이외에 신라탑은 塼塔을 모방한 분황사탑이 있으며, 다음으로 감은사지 동서 3층석탑의 전형 양식이 있다. 대개 석탑은 화강석을 재료로 사용하여 건립한 한국의 독자적인 조형양식이다.

 

② 조각. 불상조각에는 如來像을 비롯하여 보살상이나 神將像 ∙ 祖師像 등이 있다. 이와 같은 불상들은 금이나 은 ∙ 구리 ∙ 철과 같은 금속 이외에 돌이나 나무 또는 흙 등의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여 조성하였다. 불상의 표현에는 32吉相 80種好라는 의궤방식이 따로 있어 보통 인간의 신체상과는 다른 佛格 특징의 차별상이 있다.

 

여래상에는 교주인 석가모니불을 비롯하여 화엄세계를 주재하는 비로사나불과 서방정토의 아미타불, 그리고 藥師佛 등이 있다. 보살상에는 문수 ∙ 보현을 비롯, 관음 ∙ 대세지 ∙ 미륵 ∙ 지장보살 등이 있다. 또한 갖가지의 나한상이 있으며, 팔부중이나 사천왕 혹은 祖師像 등이 있다. 불상의 형식은 佛身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臺座라는 자리가 있고 뒤에는 발산되는 빛의 상징인 광배가 있다. 또한 불상의 명호는 대개 손의 모습인 手印으로 구별하는데, 그 종류는 석가의 근본 5印으로서 禪定印 ∙ 降魔觸地印 ∙ 轉法輪印과 施無與願印, 그리고 天地印 등이 있다. 또한 阿彌陀九品印과 智拳印 등이 있다. 한국 불상은 여래상 ∙ 보살상 ∙ 반가사유보살상의 3대 양식으로 나누어진다. 또 여기에 獨尊像과 三尊像이 있는 외에 바위에 새긴 磨崖像이라는 특이한 양식도 있다.

 

③ 회화. 불교회화의 대종은 尊像畵이겠으나, 넓은 의미로 불교세계를 조형화한 회화는 모두 포괄된다. 불타재세시에도 불화 제작의 사례가 있은 듯하지만 현존 최고의 예는 BC 2세기 경의 인도 아잔타 벽화이다. 불화는 흙이나 나무 ∙ 종이 ∙ 베 ∙ 비단 등의 재료에 자유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또한 건축물에 직접 그려진 벽화가 있는데 榮州 浮石寺의 조사당 벽화가 바로 그 예이다. 그러나 불화의 주축은 탱화나 經畵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敎化와 예배, 또는 사원의 장엄을 위해 제작되는 것이 상례이다. 주제에 따라 석가모니 後佛畵로서 법화경의 變相인 영산회상도나 석가의 일생을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가 있다. 이밖에 비로사나불의 불화와 아미타불의 불화 등 조각에서 조성되는 내용을 대개 그림으로도 표현하였다. 우리 나라 고대 불화의 경우, 그 수준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르고 있어 고구려의 담징과 같은 화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특히 각종 古墳壁畵의 불교적 요소는 흥미있는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④ 공예. 불교공예품은 각종 儀式具로부터 사찰의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편이다. 그 내용은 범종과 같은 法具를 비롯하여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향로나 정병 등이 있다. 이밖에 佛壇의 장엄을 위하여 제작된 것들도 있다. 일반적으로 사찰에서는 四寶 또는 四物이라 하여 종 ∙ 북 ∙ 목어 ∙ 운판을 포함시키는데, 이것들은 모두 예불이나 의식 때 소리를 내어 치는 의식구이다. 그 중에서도 범종은 매우 중요하다. 종 역시 중생제도를 위한 신앙적인 의미와 함께 실용성을 지니고 있다. 종의 양식은 중국 주나라 때의 古銅器나 악기, 또는 청동기의 鐸에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다.

 

⑤ 한국의 불교미술. 한국에서는 불교가 처음 전래된 4세기에 이르러서야 그 조형미술의 출현이 있게 되었다.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順道는 불상과 함께 불경을 가지고 왔으며, 375년(소수림왕 5)에는 肖門寺라는 최초의 사원이 건립되었다. 한국의 불교는 고구려를 기점으로 하여 백제와 신라에도 잇달아 전해지면서 곧 한반도의 사상체계와 신앙을 하나로 일체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불교미술은 이 땅에서 이룩된 최초의 시각혁명으로서 한국미술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불교 자체가 외래종교이기는 하였으나 독자적인 전개방식을 펼치는 가운데 그 조형활동 역시 독특한 양상을 보이며 발전하게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미술은 한국 불교미술의 최절정기를 이루는 것으로 평가되며, 신라미술의 찬란한 조형적 성과는 불교미술의 滿開로서 가능할 수 있었다. 통일신라 이후 고려시대 역시 불교를 국교로 하여 다양한 불교미술의 새로운 전개를 보게 하였다.

 

다만 禪宗의 대두와 더불어 이 시대의 조형물은 특징을 달리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였다. 그러므로 고려미술의 특색 또한 불교미술이라는 커다란 민족미술의 한 주류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숭유억불시대인 조선시대에 불교미술의 쇠퇴를 가져왔고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戰禍로 말미암아 수천년의 경통을 이어온 민족문화재가 수난을 당해 황폐화하는 시련기를 거치게 되었다.

 

 

출전 : 불교학대사전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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