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원을 교화시킨 청담스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춘원 이광수 선생님이 법화경을 번역한다고 하자, 말리신 까닭도 그 때문인가요?-
“그랬지. 춘원 이광수 선생이 멋도 모르고 법화경(法華經)을 번역한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찾아갔지. 그때는 이광수 선생이 불교를 안 믿고 성단에 다니던 시절이었어. 그 분이 법화경을 보고 내용이 매우 이상적으로 기록돼 있어서, 소설적으로 불교를 생각하고 판단할 때였지. 그러니 그 청년이 예술적으로만 보는 그런 소견으로 법화경을 번역해 놓으면, 춘원의 명성 때문에 번역이 잘못 돼도 그게 옳다고 할 판이야. 그러니 그런 위험천만한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내가 춘원을 찾아가 설득하여 불교신도가 되도록 해 주십사고 누가 간청을 하기에 춘원 선생을 찾아갔지.
그때 마침 춘원 선생이 자하문 밖에 살 때였지. 내가 찾아갔더니 춘원 선생은 부근에 있는 소림사(少林寺)에 시주를 몇 푼 하고는 나를 있게 하면서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끝장이 날때까지 토의를 해보자고 하더군.
아침 공양이 끝나면 둘은 깔 것 하나씩을 들고 산이나 개울가로 나가 앉아서 얘기하다가 점심공양 때가 되면 다시 절로 올라가 공양한 뒤 다시 개울가나 산이나 아무 데나 가마니 하나를 깔고 누워서 얘기하고, 앉아서 얘기하고 하다 보니 별 소득이 없었어. 나는 한쪽으론 슬며시 분한 생각도 나고 또 한쪽으로는 내 부족이 느껴지기도 하는 판에 닷새가 되자, 춘원 선생이 먼저 할 얘기는 바닥이 드러나고 말았지.
그 다음부터는 주로 춘원 선생이 질문하고 내가 답을 했는데, 일주일이 지났어. 그때사 춘원 선생은, 이제야 중생이 부처가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고, 불경을 보는 시각도 그전과는 차원이 달라졌다고 하더군. 전에는 예술시(藝術視) · 소설시(小說視) · 신화시(神話視)했는데 이제는 글로 한 자만 빼도 안되는 내용이며, 과학과 철학과 종교의 가르침이 모두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였어.
나중에는 법화경을 펴놓고 품품(品品)마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묻고 답하곤 했었지. 그러고도 내가 말하기를‘그렇지만 법화경을 이렇게만 읽어가지고 번역하지 마시오. 아직도 법화경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발견된 모르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라고 했었지. 그러면서 원각경과 능엄경을 읽어보라고 내가 권유를 하였어. 원각경은 상하(上下) 두 권으로 되어 있는 부피가 약간 두터운 것이지. 그것을 탐독한 다음에 법화경을 다시 한 번 새로운 각도로 읽어 보라고 하였어.
그리고 한 3년 후에 춘원 선생과 내가 다시 만나게 되었어. 나는 우선 그때 내가 말한 원각경을 읽어보고 법화경을 다시 읽어 보니 어떻더냐고 하였더니, 춘원 선생 하는 말이‘원각경을 읽은 뒤 법화경을 다시 대하니 그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없어 정말 모르겠다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더군. 되풀이 읽어 볼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지고 전에 알았다고 큰소리 친 것이 유치한 것이었음을 알겠다고 하더군. 그 말 끝에 내가 그전의 용기와 지식은 다 어디다 두었느냐고 하자, 춘원 선생 말이 다 잊어버리고, 또 잃어버리기도 했다고 하였어. 이렇게 되어 그때부터 춘원 이광수는 불교의 독신자(篤信者)로 개종을 한 것이지.”
-성불(成佛)을 한 생(生)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중생제도를 하시겠다고 하셨는데, 다른 불자(佛子)들에게 주실 말씀은 없으신지요?-
“불교에서는 신(信)과 해(解)가 바늘과 실같은 관계이지. 믿음 뒤에는 해가 따라가는 것이므로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그런 종교와는 달라. 그렇다고 자신이 뭣 좀 이해를 하였다고 건방을 떨면 더 나빠. 가끔 불경 몇 권 보고 스님 법문 몇 번 듣고는 아만이 생겨 ‘불교가 알고 보니 별 것이 아니구나. 내가 부처가 될 몸이니 절에 갈 것도 없다. 내 마음만 바로 하고 살면 그만이다.’ 하는 사람도 볼 수 있는데, 이래 가지고는 신앙생활이 바로 될 까닭이 없고, 대도(大道)의 성취는 꿈도 못꿀 일이지.
다되지도 않으면서도 다된 것처럼 떠들고, 남이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을 하는 것도 틀린 일이고, 안 되려 하는 것도 틀린 것이라는 등하며 건방진 소리를 겁 없이 하는 그런 구두선(口頭禪)은 불교 신봉하는 게 아니라 악업(惡業)을 짓는 일이니, 다같이 정신 차려 힘모아 중생제도 함께 하자는 부탁 뿐이야.”
두 시간도 넘게 이어지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삼 배를 올린 뒤 밖을 나서자, 땅거미가 발 밑으로 스멀거리고 있었다.
출전 : 청담대선사전집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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