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修心訣)

소먹이는 행

근와(槿瓦) 2014. 2. 27. 00:30

소먹이는 행(수심결)

 

(질문)

이 이치를 깨달으면 다시 계급이 없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무엇 때문에 깨달은 뒤에 다시 닦으면서 차츰 익히고 차츰 이룰 필요가 있겠습니까?

(대답)

깨달은 뒤에 차츰 닦는 이유는 앞에서 이미 누누이 설명하였는데 아직도 의문을 풀지 못하고 있으니 거듭 설명하겠다. 그대는 마음을 비우고 자세히 들으라.

범부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오도(五道)를 유전하면서 나고 죽음에 '나'라는 관념에 굳게 집착하여 망상과 뒤바뀜과 무명의 종자와 익힌 버릇이 오랫동안 한데 어울려 그 성품을 이루었다. 금생에 이르러 자성(自性)이 본래 공적하여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문득 깨닫더라도, 그 오랜 버릇을 갑자기 끊어버리기가 어렵다. 그래서 역경과 순경을 당하면 성내고 기뻐하며, 옳고 그르다는 생각이 불길처럼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고, 바깥 대상에 대한 번뇌가 이전과 다름이 없다. 만약 지혜로써 공부를 더하고 힘을 쓰지 않으면 어떻게 무명을 다스려 크게 쉬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단박 깨치면 부처와 같으나 여러 생에 익힌 버릇이 깊어서, 바람은 멎었지만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치는 드러났지만 망상이 그대로 침노한다'고 한 말과 같다. 

또 종고(宗) 선사도 말씀하기를 '가끔 영리한 무리들은 힘을 들이지 않고 이 일을 깨치고는 아주 쉽다는 생각을 내어 더 닦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헤매면서 윤회를 면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어찌 한번 깨쳤다 하여 뒤에 닦는 일을 버려두어서야 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깨친 뒤에도 늘 비추고 살피어 망상이 문득 일어날지라도 아예 따르지 말고, 덜고 또 덜어 무위(無爲)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구경(究竟)이 된다. 천하 선지식이 깨친 뒤에 소 먹이는 행(牧牛行)을 닦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비록 뒤에 닦는다고 하지만 망령된 생각은 본래 공하고 심성은 본래 깨끗한 것임을 이미 깨달았으므로, 악을 끊으려 해도 끊을 것이 없고 선을 닦으려 해도 닦을 것이 없으니, 이것이 참으로 닦고 참으로 끊는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온갖 행(萬行)을 두루 닦더라도 오로지 무념(無念)으로 근본을 삼으라'하였고, 규봉(圭峰)스님께서도 먼저 깨닫고 뒤에 닦는 이치를 통털어 이렇게 결론지었다.

'이 성품에는 원래 번뇌가 없고, 번뇌가 없는 지혜가 본래 갖추어져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닫고, 여기에 의지해 닦는 것을 최상승선(最上勝禪)이라 하고, 또 여래의 청정한 선이라 한다. 만약 생각마다 닦아 익히면 저절로 차츰 백천 삼매를 얻을 것이니, 달마 문하에서 잇따라 서로 전해 오는 것이 바로 이 선이다.' 그러므로 돈오와 점수의 이치는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 하나만 없어도 안된다.

 

어떤 사람은 선악의 성품이 공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꼿꼿이 앉아 움직이지 않으면서 몸과 마음을 억제하기를 마치 돌로 풀을 누르듯 하는 것으로써 마음을 닦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큰 미혹(迷惑)이다. 그러기에 말하기를 '성문(聲聞)들은 마음마다 미혹을 끊지만 그 끊으려는 마음이 바로 도둑이다'라고 하였다. 다만 살생 · 도둑질 · 음행 · 거짓말 등이 성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피면 일어나도 일어남이 없어서, 그 자리가 곧 고요함(寂)이니 어찌 다시 끊을 일이 있겠는가. 그래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로지 깨달음이 더딜까를 두려워하라'고 한 것이다. 또 말하기를 '생각이 일어나거든 곧 깨달으라. 깨달으면 곧 사라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깨달은 사람의 경지에서는 외부의 번뇌가 있더라도 그것은 모두 제호(醍 : 우유를 정제하여 만든 음식. 불성에 비유한 말)가 될 것이다. 미혹이란 그 근본이 없음을 살피면 허공의 꽃인 삼계(三界)는 바람이 연기를 거둠과 같고, 허깨비인 육진(六塵)은 끓는 물에 얼음 녹듯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마다 닦아 익히면서 살피고 돌아보기를 잊지 않고 선정과 지혜를 고루 가지면, 사랑과 미움이 저절로 사라지고 자비와 지혜가 밝아질 것이다. 죄업은 자연히 소멸되고 공덕이 늘어나 번뇌가 다할 때 생사도 곧 끊어질 것이다.

 

미세한 버릇의 흐름조차 아주 끊어지고 원만히 깨달은 큰 지혜가 뚜렷이 홀로 드러나면, 천백억 화신(化身)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안에서 느낀대로 응해 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달이 허공에 떠오르면 그 그림자가 물 위에 두루 비치는 것과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건지면서 근심없이 즐거울 것이다. 이를 가리켜 크게 깨달은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출전 : 밖에서 찾지 말라(지은이 : 보조선사, 옮긴이 : 법정스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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