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심결(修心訣)

공적 영지(空寂靈知)

근와(槿瓦) 2014. 2. 17. 01:32

공적 영지(空寂靈知)       (修心訣)

 

(질문)

상상(上上)의 뛰어난 사람은 들으면 쉽게 알지만 중하(中下)의 사람은 의혹이 없지 않을 것이니, 다시 방편을 말씀하여 어리석은 이들도 알아듣게 해주소서.

(대답)

도는 알고 모르는데 있지 않다. 그대가 어리석어 깨닫기를 기다리니 그 마음을 버리고 내 말을 들으라. 모든 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므로 번뇌 망상은 본래 고요하고 티끌 세상은 본래 공한 것이다.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에 신령스런 앎(靈知)이 어둡지 않다. 그러므로 공적(空寂)하고 영지한 마음이 바로 그대의 본래 면목(本來面目)이며, 또한 삼세(三世) 부처님과 역대 조사와 천하 선지식이 은밀히 서로 전한 법인(法印)이다.

 

이 마음만 깨달으면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부처님의 경지에 올라 걸음마다 삼계를 뛰어넘고 집에 돌아가 단박 의심을 끊게 된다. 그리하여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되고 자비와 지혜가 서로 도와 자리(自利) 이타(利他)를 갖추고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 그대가 이와 같다면 진짜 대장부이니 평생에 할 일을 마친 것이다.

 

(질문)

제 분수에 따르면 어떤 것이 공적 영지의 마음입니까?

(대답)

그대가 지금 내게 묻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공적 영지하는 마음인데, 어째서 돌이켜보지 않고 밖으로만 찾는가. 내 이제 그대의 분수를 따라 바로 본심을 가리켜 깨닫게 할 테니 그대는 마음을 비우고 잘 들으라.

 

아침부터 저녁에 이르도록 보고 듣고 웃고 말하고 성내고 기뻐하며, 옳고 그른 온갖 행위를 무엇이 그렇게 하는지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만약 이 육신이 그렇게 한다면, 사람이 일단 죽게 되면 몸은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았는데 어째서 눈은 스스로 보지 못하는가, 어째서 귀는 들을 수 없고, 코는 냄새를 맡을 수 없으며, 혀는 말하지 못하고, 몸은 움직이지 못하며, 손은 잡지 못하고, 발은 걷지를 못하는가.

 

그러므로 보고 듣고 움직이는 것은 그대의 본심이지 육신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 육신을 이루고 있는 사대(四大)는 그 성질이 공하여 마치 거울에 비친 영상과 같고 물에 비친 달과 같다. 그런데 어떻게 항상 분명히 알며 어둡지 않고 한량없는 묘용(妙用)을 느끼는대로 통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말하기를 '신통과 묘용하여, 물을 긷고 나무를 나름이로다.'라고 한 것이다. 또 이치에 들어가는 데는 길이 많으나 그대에게 한 문을 가리켜 근원에 들어가게 하리라.

 

그대가 지금 까마귀 울고 까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가?

네, 듣습니다.

그대는 그대의 듣는 성품을 돌이켜 들어 보라. 얼마나 많은 소리가 있는지.

이 속에 이르러서는 어떤 소리도 어떤 분별도 얻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기특하다! 이것이 관세음보살께서 진리에 드신 문이다.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가 말하기를, 이 속에 이르러서는 어떤 소리도 어떤 분별도 얻을 수 없다고 했는데, 얻을 수 없다면 그때는 허공이 아니겠는가?

본래 공하지 않으므로 환히 밝아 어둡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것이 공하지 않은 실체인가?

모양이 없으므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의 생명이니 다시 의심하지 말라. 이미 모양이 없는데 어디에 크고 작음이 있겠으며, 크고 작음이 없는데 어찌 한계가 있겠는가. 한계가 없기 때문에 안팎이 없고, 안팎이 없으므로 멀고 가까움이 없으며, 멀고 가까움이 없으므로 피차(彼此)가 없다. 피차가 없으므로 가고 옴이 없으며, 가고 옴이 없으므로 생사가 없고, 생사가 없으므로 옛날과 지금이 없으며, 옛날과 지금이 없으므로 어리석음과 깨달음도 없다.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없으므로 범부와 성인이 없고, 범부와 성인이 없으므로 더럽고 깨끗함도 없으며, 더럽고 깨끗함이 없으므로 옳고 그름이 없고, 옳고 그름이 없으므로 모든 이름과 말이 있을 수 없다. 모두가 다 없어지니 모든 감관과 대상과 망념, 나아가서는 갖가지 모양과 온갖 이름과 말이 다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이것이 어찌 본래부터 공적하고 본래부터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에 영지(靈知)가 어둡지 않아 무정(無情)한 것과 같지 않고 성품이 스스로 신기롭게 안다. 이것이 바로 그대의 공적 영지라는 청정한 마음의 실체다. 이 청정하고 공적한 마음은 삼세 모든 부처님의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며, 또한 중생의 본원각성(本源覺性)이다. 이것을 깨달아 지키는 이는 한결같은 데(一如)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해탈할 것이며, 이것을 모르고 등지는 자는 육도(六途)에 나아가 한량없이 헤맬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하기를 '한 마음이 어리석어 육도로 나아가는 자는 가는 사람이고 움직이는 사람이며, 법계(法界)를 깨달아 한 마음으로 돌아온 이는 오는 사람이고 고요한 사람이다.'라고 한 것이다.

어리석음과 깨달음은 다르지만 그 근원은 하나다. 그래서 법이란 중생의 마음이라고 한 것이다. 이 공적한 마음은 성인이라고 해서 더하지도 않고 범부라고 해서 덜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말씀하기를 '성인의 지혜에 있어서도 빛나지 않고, 범부의 마음에 숨어 있어도 어둡지 않다.'라고 한 것이다.

 

성인이라 해서 더하지도 않고 범부라 해서 덜하지도 않는다면, 부처님과 조사가 보통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은 스스로 그 마음을 살피는 데에 있다.

그대가 이 말을 믿고 의문이 단박 풀리고 대장부의 뜻을 내어 진정한 견해를 일으켜서 몸소 그 맛을 보고 스스로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이 마음 닦는 사람의 알아 깨닫는 곳이고, 따로 계급과 차례가 없기 때문에 돈(頓)이라 한다.

 

이것은 '믿음의 인(因) 중에서 부처의 과덕(果德)에 계합하여 털끝만치도 다르지 않아야 비로소 믿음을 이룬다'고 한 말과 같다.

 

출전 : 밖에서 찾지 말라(지은이 : 보조선사, 옮긴이 : 법정스님)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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