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元曉)

원효(성전)-70-교리문39

근와(槿瓦) 2016. 3. 23. 09:16

원효(성전)-70-교리문39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제2절 「대승」의 뜻

 

「대승이란 말은「크다」함은 법 자체를 가리킴이니 널리 쌌다는 뜻이요「승」이라 함은 수레에 비유한 말이니 물건을 싣고 운반하는 것이 그 보람이다.「허공장경(虛空藏經)」에 말씀하기를「대승」이란 한량없고 끝난데 없이 일체에 두루하기가 마치 허공같아서 온 중생을 수용하여 성문 · 벽지불과 같지 않으므로「대승」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 아래 글에 이르기를「이 수레는 모든 부처님의 수용하시는 것이요 성문 · 벽지불의 보는 바이며, 일체 보살의 타는 바이요 제석 · 범천 · 호세(護世)천왕의 경례하는 바이며 온 중생의 공양할 바이요 슬기로운 이의 찬탄하는 바이며 온 세간의 돌아갈 곳이요 모든 마군의 능히 깨뜨릴 수 없는 것이며 온갖 외도의 능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요 온갖 세간의 능히 다투지 못할 것이라」하였다.

 

위에서 말한 것은 사람(성문 · 연각 · 보살 등)에 대하여「대승」을 나타낸 것이다. 여러 논에 의하면「대승」의 뜻에는 일곱 가지도 있고 세 가지도 있다. 세 가지에 대하여는 다음 본론문에 말하려니와 일곱 가지는 두 곳에서 말하였으니 첫째는「대법론(對法論)」이다. 거기서 말하기를 일곱 가지 크다는 성질과 서로 응하므로「대승」이라고 한다. 일곱이란, 一은「경계의 틈(境大性)」이니「보살도」는 백천 가지 넓고 큰 교법으로 경계를 삼기 때문이다. 二는「행의 큼(行大性)」이니 저와 남을 이롭게 하는 광대한 행을 닦기 때문이다. 三은「지혜의 큼(智大性)」이니 광대한 중생계와 법은「나」라는 것이 없는 줄을 환히 알기 때문이다. 四는「정진의 큼(精進大性)」이니 三大 아승지야(阿僧祗耶) 겁을 통해 방편으로 부지런히 한량없이 행하기 어려운 행을 닦기 때문이다. 五는「묘한 방편의 큼(方便善巧大性)」이니 나고 죽음에 머무르지 않고「열반」에도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六은「증득의 큼(證得大性)」이니 여래의 모든 두려움 없는 힘과 일체에 뛰어난 불법 등의 한량없는 큰 공덕을 얻기 때문이다. 七은「업의 큼(業大性)」이니 나고 죽음을 끝내고「보리」를 성취하는 것을 나타내어 보이는 등의 광대한 불사를 건립하기 때문이다.

 

둘째는「현양론(顯揚論)」이다. 거기서 말하기를「대승」이란「보살승」을 말함이니 일곱 가지 큰 성질과 서로 응하기 때문에「대승」이라고 이름하였다. 일곱이란, 一은「법의 큼(法大性)」이니 十二분교(分敎) 가운데「보살장」에 속하는 광대한 방편의 가르침이다. 二는「발심의 큼(發心大性)」이니 더 없는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三은「뛰어난 이해의 큼(勝解大性)」이니 이미 뛰어나게 알고 행하는 자리를 지나서 깨끗하고 수승한 즐거운 경계에 들어감이다.

 

五는「양식거리의 큼(資糧大性)」이니 복과 지혜의 두 가지의 큰 양식거리를 성취한 때문에 능히 더없는 바르고 평등한「보리」를 증득함이다. 六은「시간의 큼(時大性)」이니 三大 아승지야겁 동안에 능히 더없는 바르고 평등한「보리」를 증득함이다. 七은「성취의 큼(成滿大性」이니 더없는 바르고 평등한「보리」자체의 성취이다. 그「보리」자체는 다른「보리」자체에 비하면 다른 것은 비등하지도 못하거든 하물며 뛰어나겠는가.「유가론(瑜伽論) · 지지론(地持論)」에도 다 이렇게 말하였다.

 

첫째 둘째의 일곱 가지 큼의 성질은 그 수는 같지만 그 내세운 뜻은 다르니 내세운 뜻은 찾아보면 알 것이다.」

 

 

출전 : 성전(대한불교원효종)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원효(元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효(성전)-72-교리문41   (0) 2016.03.25
원효(성전)-71-교리문40   (0) 2016.03.24
원효(성전)-69-교리문38   (0) 2016.03.22
원효(聖典)-68-교리문37   (0) 2016.03.21
원효(성전)-67-교리문36   (0) 2016.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