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169)-162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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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 않고 또 맛들여 집착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뜻의 즐거워하는 법을 잘 관찰하여 일체의 뜻의 법을 생각하거나 맛들이지 않고 사랑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만족할 줄을 알기 때문에 여섯 가지 쾌락의 경계에서 해탈을 얻는다.'그 때에 공작왕은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만일 잘 관찰하고 만족할 줄을 알고 여섯 가지 쾌락의 경계를 벗어나 그것을 생각하거나 바라지도 않으며 그는 언제나 즐거움을 얻으리. 만일 바른 생각의 마음으로 그 색깔을 여실히 관찰하면 그는 그 색깔의 쾌락으로써 그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으리. 그 코가 경계와 어울리어도 만일 그것에 탐착하지 않으면그 사람의 뜻은 맑고 깨끗해 코의 허물도 어지럽히지 못하리. 지혜로운 사람은 혀로 맛을 보아도 바로 관찰해 탐착하지 않나니 그 사람은 그 맛의 허물로 그 마음을 더럽히지 않으리. 몸으로 갖가지 촉감을 받더라도 그것을 탐해 탐착하지 않으면 그는 그 촉감을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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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안온한 즐거움을 얻으리. 좋거나 또 나쁜 법에 대해서 그 마음이 탐착하지 않아 마치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으면 그 마음은 세상의 칭찬 받으리. 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만족할 줄 아는 법을 행하여 이런 여섯 가지 욕망을 떠나면 그는 부처님의 칭찬을 받으리라.'
이렇게 공작왕 보살은 야마천과 도솔타천을 위해 이 참 법을 설명하였다.'또 사문이나 바라문은 법을 생각한다. 그 법이란, 이른바 스물한째로서 경계를 두려워하되 나쁜 경계를 두려워하는 것이니, 그것을 여실히 보지 못하면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할 것이다. 사문이나 바라문은 색깔의 경계를 여실히 관찰한다. 즉 만일 눈이 색깔을 반연하여 눈의 알음알이가 생기면 의식은 그것을 결정하고 분별하여 이렇게 관찰한다.(만일 경계가 앞에 닥치면 탐욕을 일으킨다. 이런 탐욕의 경계는 와서 나를 어지럽힌다. 나는 그것을 두려워해야 한다.)그리하여 혹 경계를 보더라도 그는 욕망·탐심·사랑을 끊고 그것을 보지 않는다. 분별하는 것처럼 뜻도 그와 같아서 탐하거나 분노하더라도 그것을 다 여실히 관찰하며 혹 번뇌가 일어나면 그 일어나는 것을 여실히 관찰한다. 즉 이것은 아무 이익이 없는 것이다. 이 번뇌로 말미암아 현재도 미래도 안락을 얻지 못한다. 중생들은 이 번뇌로 말미암아 이익도 안락도 얻지 못한다. 이 번뇌는 일체 중생들을 모두 얽맨다. 사문이나 바라문으로 이렇게 경계를 관찰하면 탐욕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아주 없애거나 혹은 희박하게 한다. 이렇게 눈과 색깔을 관찰하고 다시 귀를 관찰한다.(인연이 모이어 귀의 알음알이가 생긴다. 귀와 소리로 말미암아 생각을 내어 괴로움을 느끼기도 하고 즐거움을 느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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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렇게 의식을 관찰한다. (혹은 또 탐욕·분노·우치를 내며, 혹은 다른 의식을 내는 것은 마치 등불을 켜는 것과 같다.)또 좋지 않은 생각을 관찰한다. (나는 좋지 못한 생각을 내면 좋지 못한 생각을 알고 그 좋지 못한 생각은 인연을 따라 생기는 줄을 알아 그것을 없애야 한다.)그리하여 그 악을 끊으면 선법이 만족하고 경계를 여실히 관찰하여 좋은 생각이 불어난다. 그리하여 기쁨과 함께 생기고 존재에의 욕망과 함께 생기는 좋지 못한 생각을 모두 멸하게 된다. 그것을 멸하기 때문에 청정하게 되고 악의 번뇌를 떠나 일체의 즐거움을 얻는다. 그러므로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그 밖의 세간 사람들은 처음으로 경계 가운데서 나쁜 욕심이 생긴 것을 보거든 곧 그것을 없애고 선법을 관찰하여 온갖 악을 없애야 한다. 이렇게 귀와 소리를 여실히 알아 좋은 생각을 내야 한다.
또 사문·바라문이나 그 밖의 세간 사람들이 코로 맡는 냄새는 어떻게 의식을 내는가? 코와 냄새로 말미암아 코의 알음알이가 생긴다. 그 사문이나 바라문은 혹 좋지 못한 생각이 생기면 그것을 알고 이렇게 생각한다.(내가 지금 좋지 못한 생각을 내면 이익도 안락도 얻지 못할 것이니, 곧 이것을 끊어 없애야 한다. 여실히 관찰하면 능히 좋지 못한 생각을 끊을 수 있으리라.)이렇게 생각하고는 냄새를 여실히 관찰하여 좋은 생각을 내며 그 좋은 생각으로 말미암아 능히 함께 생기는 욕망을 없앤다. 이렇게 관찰한 뒤에는 어떤 냄새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집착을 끊기 때문에 안락을 얻는다. 이렇게 여실히 경계를 알면 곧 여실히 안온한 곳을 얻을 것이다. 만일 능히 냄새를 여실히 관찰하면 코로 냄새를 맡더라도 그 냄새를 즐거워하지 않을 것이다.
또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혀로 맛을 얻었을 때 좋지 못한 탐욕이 생기면, 혀와 맛으로 말미암아 혀의 알음알이가 생긴다는 것을 생각해 안다. 그리하여 그렇게 생각할 때에는 그 맛을 즐거워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는다. 혀의 알음알이를 여실히 알아 혀의 알음알이인 맛을 즐기는 줄을 알면 그 의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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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벗어나 제일의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그러한 경계를 여실히 알면 그러한 위없는 즐거움을 얻고 기뻐하는 욕망에 파괴되지 않을 것이다. 혀의 맛을 여실히 관찰한 뒤에 그들은 다시 몸의 닿임을 관찰한다. (몸과 닿임으로 말미암아 몸의 알음알이가 생기고, 이 세 가지가 어울려 촉감이 생기며, 촉감이 생기기 때문에 느낌·생각·의지 등이 생긴다.)
또 그들은 그 닿임을 여실히 관찰한다.(이 촉감은 무상하여 파괴되고 변역하는 것인데, 만일 이것에 대해 좋지 못한 각·관이 생기면 아무 이익도 없어 안락을 얻지 못할 것이다.)이렇게 여실히 촉감을 알고 좋은 생각으로 관찰하면 그는 기쁨과 욕망에 어지럽히지 않으므로 그 경계를 즐기지 않을 것이다. 온갖 방편으로 몸의 촉감을 관찰한 뒤에 그는 다시 뜻의 법을 관찰한다. 그것은 어떻게 생기는가? 뜻과 법으로 말미암아 선·악 혹은 무기(無記)의 의식이 생긴다. 만일 악을 반연하여 좋지 못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는 그것을 여실히 알고는 생각한다.(나는 악을 반연하여 의식을 내되 그것을 기뻐하고 사랑하였으므로 이익을 얻지 못하고 산란하여 편하지 못하다.)이렇게 생각하고 법의 생멸을 관찰한 뒤에는 법을 따라 행하고, 법을 따라 행하기 때문에 모든 법의 자성(自性)과 동상(同相)을 여실히 관찰하여 욕망의 어지럽힘을 받지 않는다. 욕망이 희박해졌기 때문에 해탈을 얻고, 해탈했기 때문에 제일의 즐거움을 얻는다. 일체 법은 다 생멸하는 줄을 알아 그렇게 모든 경계를 관찰하면 바른 지혜가 생겨 모든 번뇌를 없애고, 번뇌가 없어졌기 때문에 번뇌가 없는 지혜를 얻으며, 번뇌가 없는 지혜와 상응하기 때문에 제일 좋은 곳을 얻는다. 그러므로 사문·바라문은 그 경계를 믿지 말라. 일체의 경계는 원수와 같으며, 일체 중생들의 경계는 뱀과 같다. 그러므로 번뇌가 없는 지혜를 얻지 못한 사람은 경계를 믿지 말라. 경계란 가볍게 움직이는 것으로서 마치 원수와 같아 거짓으로 친우인 체하지마는 그런 경계는 다 중생들을 결박하는 것이다.'그 때에 공작왕 보살은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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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경계를 여실히 알았거든 쇠갈고리로 붙잡듯 마음을 잡아라. 달려[馳] 흩어지고 가벼이 움직이기 때문에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한다. 바람이 있어 경계에 미혹되고 분별하는 마음을 즐거워하면 죽음의 그물이 덮쳐 와 중생의 목숨 끊으려 한다. 경계에 끄달리면 그것은 사람 마음 소란하게 하건만 어리석음에 미혹 당하여 그것을 능히 깨닫지 못한다. 경계의 진실성 없는 것 마치 저 건달바의 성같이 온갖 고통을 더욱 늘리고 또 지옥의 인연이 된다. 그 경계의 불에 타고 우치와 욕심에 미혹되면 쉬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그 몸 태우는 것 깨닫지 못한다. 생각 때문에 욕심 생기고 욕심 때문에 분노 생긴다. 분노는 사람의 마음을 덮나니 그는 죽으면 지옥에 들어가리.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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