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167)-1615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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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 세간을 여실히 관찰해 알면 거기에는 아무 자유가 없고 한량없는 갖가지 법에는 아무 자유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 법에 자유가 있겠는가? 일체 유위의 법은 다 인연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하니, 다 인연에서 생기는 것이다. 마치 이 집은 온갖 재목과 벽돌 따위가 한데 모여 어울리고 서로 의지하여 집이라 하는 것처럼 몸도 그와 같아서 피부·지방·뼈·힘줄·골수 등이 화합한 것을 몸이라 하여 아무 자유가 없으며, 이 몸의 빛깔과 모양도 지은 이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사문·바라문이 여실히 관찰할 때 그 세 가지 고민은 모두 다 없어지거나 혹은 줄어든다. 또 진실을 관하지 않기 때문에 종성의 교만을 일으키지마는 만일 여실히 관찰하면 그 종성에는 다만 분별이 있을 뿐으로서 무지한 사람이 허망하게 생각을 내는 것일 뿐이다. 만일 보시·지계·지혜·깨끗한 행·바른 소견 등이 화합하면 그런 종성이 교만한 마음을 일으켜 종성이 훌륭하다 생각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만일 사문·바라문이나 그 밖의 사람으로서 그 종성을 여실히 알면 종성의 교만은 아주 없어지거나 혹은 희박해질 것이다.'그 때에 공작왕 보살은 다음과 같은 가가촌타부처님의 게송을 말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항상 몸·종성·재물 등의 교만 부리면 그는 마치 저 취한 코끼리가 험악한 언덕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갖가지 교만과 방일은 모든 감관을 어지럽히나니 그는 현재에는 사람들에게 멸시 받고 목숨 마치고는 나쁜 길에 떨어지리. 만일 누구나 교만한 마음 일으켜 몸·재물 따위의 교만에 눈이 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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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현세에 즐거움 없고 목숨 마치면 나쁜 길에 떨어지리. 몸·재물 따위 믿고 교만 부리면 그것은 여실히 본 것 아니다. 어리석어 지혜 없는 그는 괴로움의 바다를 건너지 못한다. 몸·종성·재물과또 온갖 즐거운 도구들 그것은 다 무상하거니 지혜로운 이는 그것을 믿지 말라. 보시·지계·지혜 등을 버리면 거기에는 아무 종성도 없다. 보시·지계·지혜 등이 있으면 그 종성이야말로 훌륭하니라. 어리석은 사람은 부자라 할 수 없고 또 좋은 길로 갈 종성 아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그 인(因)이 되나니 지혜를 떠나면 종성 없으리. 누구나 깨끗한 계율 지키면 그것은 맑고 시원한 못물 같나니 그런 사람은 큰 종성으로서 그것을 훌륭한 종자라 한다. 보시와 지계와 또 지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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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용맹스런 진실한 정진 등 이런 것들과 잘 상응하면 그것을 뛰어난 종성이라 한다. 만일 그 바른 법을 버리면 그는 머리 깎은 종성이 아니건만 그를 사문이라고도 부르고 또 일러 바라문이라 한다. 만일 바른 법을 잘 닦고 보시와 지계와 지혜 있으면 그야말로 사문이라 할 수 있고 또 바라문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늙음은 능히 젊은 몸 빼앗고 죽음은 능히 목숨 뿌리 끊으며 재물은 반드시 흩어지나니 일체의 법은 다 이러하니라. 병은 능히 건강을 파괴하여 중생들을 모두 흘러 돌게 하나니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부디 몸과 재물의 교만 떠나라. 만일 이런 악을 다 알았다면 교만한 마음 일으킬 수가 있으리.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몸과 재물의 교만 버리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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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법을 잘 닦아 행하면 그에게는 아무 고뇌 없으리.
공작왕 보살은 그 천자들을 위해 이렇게 설법하였다. '또 사문·바라문이 행할 법이 있으니, 이른바 열아홉째로서 일체 중생에 대해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만일 사문·바라문이나 그 밖의 사람들로서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면 그는 제일의 즐거움을 얻어 일체 중생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길의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어떻게 일체 중생에 대해 평등한 마음을 일으키는가? 사문·바라문은 이런 투쟁을 버려 남과 다투지 않는다. 이미 다툼을 버렸으면 일체 중생에 대한 평등한 마음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이런 투쟁을 버리면 일체 중생들에 대한 평등한 마음을 얻을 것이다. 또 사문이나 바라문들로 하여금 일체 중생에 대한 평등한 마음을 얻게 하는 법이 있으니, 일체 중생들이 다 쇠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관찰하고는 원수까지도 친우처럼 관찰하는 것이다. 즉 이 중생들은 생사에 포섭되어 생사가 끊이지 않는다. 생(生)이 있기 때문에 늙음·병·죽음과 근심·슬픔·고뇌와 추위·더위·주림·목마름·구타·결박·채찍과 원수와 만나는 괴로움,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는 괴로움 등이 있다. 이렇게 고뇌하는 중생들이 크게 쇠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관찰하고 원수에 대해서는 평등하게 관찰한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렇게 관찰하고는 일체 중생에 대한 평등한 마음을 얻는다. 그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 중생들은 온갖 고통의 괴로움을 받는다. 그것은 이른바 병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의 병으로서 이 병의 고통 때문에 중생들은 큰 고뇌를 받는다.)그들은 원수까지도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청정해지고, 마음이 청정해졌기 때문에 피가 청정해지며, 피가 청정해졌기 때문에 얼굴빛이 청정해지고, 모든 감관도 다 청정해진다. 이런 관찰은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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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보를 얻어 중생들은 그를 즐겨 보고 사랑하며 존경하고 우러러본다. 이런 인연으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천상에 태어난다. 또 사문이나 바라문에게는 다시 다른 법이 있으니, 그것은 친우를 원수처럼 보는 것이다.(일체 중생은 죽지 않는 일이 없고 생사를 떠나지 못해 태어났다가는 다시 죽는다. 이렇게 중생들은 자기 업으로 말미암아 지옥이나 아귀·축생에 떨어진다. 이렇게 중생들은 갖은 고통에 고민한다.)이렇게 생각하고 중생들을 이롭게 하므로 그 마음이 청정해지고, 마음이 청정해졌기 때문에 피가 청정해지고, 피가 청정해졌기 때문에 얼굴빛이 청정해지고, 얼굴빛이 청정해졌기 때문에 단정하기 견줄 데 없으므로 중생들은 그를 사랑하고 우러러본다. 이렇게 그는 현세의 과보를 얻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길의 천상 세계에 태어난다. 이렇게 비구들은 큰 선업을 닦아 중생들에 대해 평등한 마음을 일으킨다. 또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그 밖의 세상 사람들은 다시 다른 법으로 평등한 관찰을 수행한다.(이 중생들은 업과 업장(業藏)의 인연으로 흘러 다니며 업이 지은 그대로 선·악을 다 성취한다. 그리하여 선업으로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고, 악업으로 지옥이나 아귀·축생 등에 떨어진다.)만일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이렇게 수행하면 그 마음이 청정해질 것이요, 그 마음이 청정해지기 때문에 피가 청정해지며, 피가 청정해지기 때문에 얼굴빛이 청정해지고, 얼굴빛이 청정해지기 때문에 중생들은 그를 좋아하고 우러러본다. 그리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길에 태어나서 천상의 몸을 받아 반드시 열반을 얻을 것이다.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에 일체 중생에 대해서 평등한 마음을 일으켜 이런 과보를 얻는 것이다. 또 사문이나 바라문에게는 다시 다른 법이 있어 일체 중생에 대해서 평등한 마음을 닦는다. 어떤 다른 법인가? (일체 중생들은 모두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다. 일체 중생은 생사에 포섭(包攝)되어 있으므로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지 않는 중생은 한 사람도 없다. 이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은 매우 괴로운 것이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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