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광불화엄경

1467-58-화엄-170

근와(槿瓦) 2016. 3. 4. 00:16

1467-58-화엄-17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끗과 공경함을 위하지 않는 연고며, 나와 남의 모든 중생을 이익하기 위하여 법을 구함이니, 자기의 이익만이 아닌 연고며, 지혜에 들어가려고 법을 구함이니, 문자를 좋아하지 않는 연고며, 죽살이에서 벗어나기[出] 위하여 법을 구함이니, 세간의 낙을 탐하지 않는 연고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법을 구함이니, 보리심을 내는 연고며, 모든 중생의 의심을 끊으려고 법을 구함이니, 망설임이 없게 하려는 연고며, 불법을 만족하려고 법을 구함이니, 다른 승(乘)을 좋아하지 않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다른 이의 가르침을 의지하지 않고 모든 불법의 큰 지혜를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밝게 아는 법[明了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세속을 따라서 선근을 생장함이니, 아이같은 범부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걸림없고 깨뜨릴 수 없는 신심을 얻어 법의 성품을 깨달음이니, 신심을 따라 행하는 사람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부지런히 법을 닦고 법을 따라 머묾이니, 법을 따라 행하는 사람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여덟 가지 삿됨[八邪向]을 여의고 팔정도(八正道)를 향함이니, 제팔지[第八] 사람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여러 결박을 없애고 생사의 번뇌를 끊고 참된 이치를 보는 것이니, 수다원(須陀洹)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맛[味]이 바로 걱정임을 보고 가고 옴이 없음을 아나니 사다함(斯陀含)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삼계를 좋아하지 않고 생사가 다함을 구하여 태어나는 일에는 잠깐도 애착하지 않나니, 아나함(呵羅漢)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육신통을 얻고 팔 해탈을 얻어 구차제정과 네 가지 변재를 다 성취하나니, 아라한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한결같은 연기하는 법을 관찰하기를 좋아하여 마음이 항상 고요하고 만족함을 알아 일이 없으며, 아는 것을 스스로 얻었고 다른 이를 말미암지 않았으며, 가지가지 신통과 지혜를 성취하나니, 벽지불(辟支佛)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지혜가 광대하고 근성이 총명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하기를 좋아하며 복덕과 지혜의 도를 돕는 법을 닦아서 여래의 십력(十力)과 두려움 없음[無畏]과 모든 공덕을 원만히 구족하니, 보살들의 밝게 아는 법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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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밝게 아는 법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수행법(修行法)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선지식들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수행법과, 항상 여러 하늘의 각오(覺悟)하는 바가 되는 수행법과, 부처님 처소에서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는 수행법과, 중생을 딱하게 여기어 생사를 버리지 않는 수행법과, 일은 반드시 끝까지 이르고 마음에 변동이 없는 수행법과, 대승 마음을 낸 보살 대중을 전심으로 따라다니며 부지런히 배우는 수행법과, 삿된 소견을 멀리 여의고 바른 도를 부지런히 구하는 수행법과, 여러 마와 번뇌의 업을 꺾어 버리는 수행법과, 중생들의 근성이 낫고 못함을 알고 법을 말하여 부처의 지위에 머물게 하는 수행법과, 그지없이 광대한 법계에 머물러 번뇌를 멸하고 몸이 청정케 하는 수행법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수행법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마(魔)가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오온의 마니 여러 가지 집착을 내는 연고며, 번뇌의 마니 항상 물드는 연고며, 업의 마니 능히 가리는 연고며, 마음의 마니 고만(高慢)을 일으키는 연고며, 죽음의 마니 난 곳을 버리는 연고며, 하늘의 마니 교만하고 방종하는 연고며, 선근의 마니 항상 집착하는 연고며, 삼매의 마니 오래 맛들이는 연고며, 선지식의 마니 집착하는 마음을 내는 연고며, 보리법을 아는 지혜의 마니 버리려 하지 않는 연고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보살마하살이 방편을 내어 빨리 여의기를 구해야 합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마의 업[魔業]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보리심을 잊고 선근을 닦음이 마의 업입니다. 나쁜 마음으로 보시하고 성난 마음으로 계율을 지니며, 나쁜 성품 가진 사람을 버리고 게으른 이를 멀리하며, 산란한 뜻을 업신여기고 나쁜 지혜 있는 이를 싫어함이 마의 업입니다. 깊은 법에 대하여 인색한 마음을 내고 교화 받을 사람에게 법을 말하지 않으며, 만일 이끗으로 공경하고 공양하면 법 그릇이 아니라도 구태여 법을 말함이 마의 업입니다.

 

모든 바라밀을 들으려 하지 않고, 듣더라도 수행하지 않으며, 비록 수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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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도 게으른 생각을 내고 게으름으로 뜻이 용렬하여 위없는 큰 보리의 법을 구하지 아니함이 마의 업입니다. 선지식은 멀리하고 나쁜 동무를 가까이하며, 이승(二乘)을 좋아하여 태어나기를 즐기지 않고 열반을 숭상하여 욕심을 여의고 고요하려 함이 마의 업입니다. 보살들에게 성내는 마음을 내어 사나운 눈으로 흘겨보고 허물을 찾아내어 잘못을 말하며, 그들에게 재물로 공양함을 끊으려 함이 마의 업입니다. 바른 법을 비방하여 듣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비록 듣더라도 문득 훼방하며, 법을 말하는 사람을 보고 존중한 마음을 내지 않으며, 제 말이 옳고 다른 말은 그르다 함이 마의 업입니다.

 

세상의 언론을 배워 글짓기를 좋아하며, 이승을 선전하고 깊은 법은 덮어 두며, 혹은 미묘한 이치를 자격이 없는 이에게 일러주며, 보리를 멀리 떠나고 삿된 길에 머무름이 마의 업입니다. 해탈을 얻어 이미 편안하게 된 이를 항상 가까이하고, 해탈을 얻지 못하여 편안하지 못한 이는 가까이하지도 않고 교화하지도 아니함이 마의 업입니다. 교만이 늘어서 공경하는 마음이 없고, 중생들을 시끄럽게 하며, 바른 법과 진실한 지혜를 구하지 않고 마음이 악하여 깨우치기 어려운 것이 마의 업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멀리 여의고 부처의 업을 부지런히 구해야 합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마의 업을 버림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선지식을 가까이 모시고 공경하고 공양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스스로 높은 체하지 않고 스스로 칭찬하지 않음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부처님의 깊은 법을 믿고 비방하지 않음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온갖 지혜의 마음을 잠깐도 잊지 아니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묘한 행을 부지런히 닦고 방일하지 아니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모든 보살장[藏]의 법을 항상 구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항상 법을 연설하여도 고달프지 아니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여 구호하려는 생각을 일으킴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모든 부처님이 신통한 힘으로 가지(加持)하심을 믿고 생각함이 마의 업을 버림이며, 모든 보살들과 선근을 함께 심어 평등하고 둘이 없음이 마의 업을 버림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능히 모든 마의 길

 

                                                                                                                     [1461 / 2062] 쪽

에서 뛰어나게 됩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부처를 봄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세간에 머물러서 바른 깨달음을 이룬 부처는 집착이 없음을 보며, 서원의 부처는 태어나심을 보며, 업보의 부처는 깊이 믿음을 보며, 머물러 유지하는[住持] 부처는 수순(隨順)함을 보며, 열반하는 부처는 깊이 들어감을 보며, 법계의 부처는 두루 이르심을 보며, 마음 부처는 편히 머무심을 보며, 삼매의 부처는 한량없고 의지 없음을 보며, 본 성품의 부처는 분명히 아심을 보며, 즐김을 따르는 부처는 널리 받으심을 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법에 편안히 머물면 항상 위없는 여래를 봅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부처의 업[佛業]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때를 따라 인도함이 부처의 업이니, 바른 수행을 하게 하는 연고며, 꿈 속에서 보게 함이 부처의 업이니, 지난 세상의 선근을 깨닫는 연고며, 다른 이에게 듣지 못하던 경을 연설함이 부처의 업이니, 지혜가 생겨 의심을 끊게 하는 연고며, 뉘우침에 얽힌 이에게 벗어나는 법을 말함이 부처의 업이니, 의심을 여의게 하는 연고며, 어떤 중생이 아끼는 마음과 내지 나쁜 꾀의 마음 · 이승의 마음 · 해하려는 마음 · 의혹하는 마음 · 흔들리는 마음 · 교만한 마음을 일으키거든, 여래의 여러 가지 상호(相好)로 장엄한 몸을 나타냄이 부처의 업이니, 과거의 선근을 자라게 하는 연고입니다.

 

바른 법을 만나기 어려울 때에 법을 자세히 말하여 그들이 듣고는 다라니의 지혜와 신통한 지혜를 얻게 하여 한량없는 중생을 두루 이익케 함이 부처의 업이니, 훌륭한 지혜가 청정한 연고입니다. 마의 장난이 일어나거든 방편으로 허공계 따위의 소리를 내며 남을 해롭게 하지 않는 법을 말하여 다스려서 깨닫게 하면 모든 마가 듣고는 위엄과 빛이 소멸함이 부처의 업이니, 훌륭한 것을 좋아하여 위덕이 커지는 연고입니다. 마음에 간단함이 없이 항상 수호하여 이승의 바른 지위에 들어가지 않게 하며, 중생의 근성이 성숙하지 못하였거든 끝까지 해탈하는 경계를 말하지 않음이 부처의 업이니, 본래의 서원으로 짓는 연고입니다.

 

생사의 결박된 번뇌를 모두 여의고 보살의 행을 닦아 계속하여[相續] 끊

 

                                                                                                                    [1462 / 2062] 쪽

어지지 않게 하며, 크게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거두어서 행을 일으키고 필경에 해탈케 함이 부처의 업이니, 보살의 행을 닦아 끊지 않는 연고입니다.

 

보살마하살이 자신과 중생들이 본래 고요함을 알아 놀라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복과 지혜를 부지런히 닦아 만족함이 없으며, 모든 법이 지음이 없음을 알지만 여러 법의 제 모양을 버리지 않으며, 모든 경계에 탐욕을 여의었지만 부처의 육신[色身]을 뵈옵기 좋아하며, 다른 이의 깨우침을 말미암지 않고 법에 들어감을 알지만 갖가지 방편으로 온갖 지혜를 구하며, 모든 국토가 다 허공과 같음을 알지만 항상 모든 부처님 세계를 장엄하기를 좋아하며, 사람도 없고 나도 없음을 관찰하지만 중생을 교화하여 고달픔을 모르며, 법계는 본래부터 동하지 않지만 신통과 지혜의 힘으로 여러 가지 변화를 나타내며, 온갖 지혜의 지혜를 성취하였지만 보살의 행 닦기를 쉬지 아니하며, 모든 법이 말로 할 수 없음을 알지만 청정한 법륜을 굴리어 여럿의 마음을 기쁘게 하며, 부처님들의 신통한 힘을 나타내지만 보살의 몸을 싫어하지 아니하며, 큰 열반에 들어감을 나투지만 여러 곳에서 태어나나니, 이렇게 방편과 실상을 함께 행하는 법을 짓는 것이 부처의 업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남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는 위가 없고 스승이 없는 광대한 업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교만한 업[慢業]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스님이나 부모나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바른 도에 머무르고 바른 도에 향하는 이들의 존중한 복밭[福田]에 공경하지 아니함이 교만한 업입니다. 어떤 법사가 가장 좋은 법을 얻었고, 대승을 의지하여 벗어나는 중요한 길을 알며, 다라니를 얻고 광대한 경전의 법을 연설하여 쉬지 아니하거든, 그에게 교만한 마음을 내거나 그 말하는 법을 공경하지 아니함이 교만한 업입니다. 대중이 모인 곳에서 묘한 법을 듣고도 찬탄하지 아니하여 다른 이들로 하여금 믿게 하지 않음이 교만한 업입니다.

 

보다 난 체하는 교만을 내어 자기가 높다 하여 남을 업신여기며, 제 허물을 보지 않고 자기의 잘못을 알지 못함이 교만한 업입니다. 더 보다 난 체하는 교만을 내어 도덕이 있는 이를 보고도 찬탄해야 할 것을 찬탄하지 않으며, 다른 이가 찬탄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음이 교만한 업입니다. 어떤 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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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사람들에게 법을 말함을 보고 그것이 옳은 법이고 옳은 계율이며, 진실하고 부처님 말씀인 줄을 알면서도 그 사람을 미워하고 법까지 미워하여 스스로 비방하고, 다른 이도 비방케 함이 교만한 업입니다. 스스로 높은 자리를 구하여 법사라 하면서 공양을 받아야 하고 손수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 하며, 오랫동안 수행한 큰 스님을 보고도 일어나서 영접하지도 않고 받들어 섬기지도 아니함이 교만한 업입니다. 유덕(有德)한 이를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고 좋아하지 않으며, 말이 거칠고 그의 허물만 찾는 것이 교만한 업입니다.

 

총명하고 지혜 있고 법을 아는 사람을 보고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려 하지 않으며,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이며, 어떤 것은 할 것이고 어떤 것은 아니할 것이며, 무슨 업을 지으면 긴긴 밤에 가지가지 이익과 안락을 얻는가를 묻지 아니하고 우치하고 패려하고 교만한 연고로 마침내 벗어날 중요한 길을 보지 못함이 교만한 업입니다. 어떤 중생은 교만에 가리워져서 부처님이 세상에 나시어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지 못하며 새로 선한 일은 생기지 못하고 예전 선한 일은 소멸하며, 말하지 않을 것을 말하고 다투지 않을 것을 다투며, 오는 세상에는 반드시 험난한 구렁에 빠져서 백천 겁 동안에 부처님을 만나지도 못하거늘, 어떻게 법을 들을 수 있으리요. 다만 일찍이 보리심을 내었으므로 필경에는 스스로 깨달음이 교만한 업이니, 이것이 열입니다.

 

만일 보살들이 이 교만한 업을 여의면 열 가지 지혜의 업[智業]을 얻으리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업과 과보를 믿어 알아서 인(因)과 과(果)를 무너뜨리지 않음이 지혜의 업입니다. 보리심을 버리지 않고 부처님을 항상 생각함이 지혜의 업입니다. 선지식을 친근하여 공경하고 공양하며 마음으로 존중하게 여기어 게으르지 아니함이 지혜의 업입니다. 법을 좋아하고 이치를 좋아하여 만족함이 없으며 삿된 생각을 멀리 여의고 바른 생각을 부지런히 닦음이 지혜의 업입니다. 일체 중생에게 교만함을 여의고 보살들에게 여래라는 생각을 내며 바른 법을 사랑하기를 내 몸을 아끼듯 하고 여래를 받들기 내 목숨을 보호하듯 하며 수행하는 이에게 부처님이란 생각을 내는 것이 지혜의 업입니다. 몸과 말과 뜻의 업에 착하지 못함이 없고, 성현들을 찬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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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보리를 순종함이 지혜의 업입니다.

 

연기를 파괴하지 않고 삿된 소견을 여의며 어둠을 깨뜨리고 밝음을 얻어 모든 법을 비춤이 지혜의 업입니다. 열 가지 회향을 따라 수행하며 바라밀에는 어머니란 생각을 내고 교묘한 방편에는 아버지란 생각을 내어 깊고 깨끗한 마음으로 보리의 집에 들어감이 지혜의 업입니다. 보시 · 계율 · 많이 듣는 것 · 집중하고 관하고[止觀] 복과 지혜의 온갖 도를 돕는 법을 부지런히 모아 게으르지 아니함이 지혜의 업입니다. 한 가지 업이라도 부처님이 찬탄하고 모든 마와 번뇌와 투쟁을 깨뜨리며, 모든 장애와 덮음과 결박과 얽힘을 여의며,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조복하며 지혜를 따라서 바른 법을 거두어 가지며, 부처님 세계를 깨끗이 장엄하며 신통과 밝음을 발기하여 부지런히 닦고 물러가지 않음이 지혜의 업입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온갖 교묘한 방편과 위없는 큰 지혜의 업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마에 붙들림[魔所攝持]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게으른 마음의 마에 붙들리고, 뜻이 옹졸하고 못난 마에 붙들리고, 조금 행하고 만족하다는 마에 붙들리고, 하나를 받아들이고 다른 것은 아니라 하는 마에 붙들리고, 큰 서원을 내지 못하는 마에 붙들리고, 고요함을 좋아하여 번뇌를 끊는 마에 붙들리고, 죽살이를 아주 끊는 마에 붙들리고, 보살의 행을 버리는 마에 붙들리고, 중생을 교화하지 않는 마에 붙들리고, 바른 법을 비방하는 마에 붙들리나니, 이것이 열입니다.

 

만일 보살들이 이 마에 붙들림을 버리면 열 가지 부처님의 붙들어 주심을 얻나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처음에 보리심을 내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나고 나는 가운데 보리심을 지니고 잊지 않게 되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마의 일을 깨달아 멀리 여의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바라밀을 듣고 말한 대로 수행하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생사의 고통을 알고 싫어하지 않으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깊고 깊은 법을 관찰하여 한량없는 과보를 얻으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중생들에게 이승의 법을 말하면서도 그 법으로 해탈함을 증하지 않으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함이 없는 법[無爲法]을 관찰하여 그 가운데 머물지 않으며, 함이 있고[有爲] 함이 없는[無

 

                                                                                                                    [1465 / 2062] 쪽

爲] 데 둘이란 생각을 내지 않으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남이 없는 처지[無生處]에 이르고도 일부러 태어나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시고, 온갖 지혜를 증득하고도 보살의 행을 일으키어 보살의 종자를 끊지 않으면 부처님이 붙들어 주십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부처님의 위없는 붙들어 주는 힘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열 가지 법에 붙들림[法所攝持]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모든 행이 무상함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행이 괴로움임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행이 나가 없음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법이 고요하여 열반인 줄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법이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이 없으면 생기지 않음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옳지 못하게 생각하므로 무명이 일어나고 무명(無明)이 일어나므로 내지 늙고 죽음이 생기며, 옳지 못하게 생각함이 멸하므로 무명이 멸하고 무명이 멸하므로 내지 늙고 죽음이 멸함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삼해탈문(三解脫門)으로 성문법[聲聞乘]이 생기고 다툼이 없는 법을 증하여 독각법[獨覺乘]이 생김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육바라밀(六波羅蜜)과 사섭법(四攝法)으로 대승이 나는 줄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세계 · 모든 법 · 모든 중생 · 모든 세상이 부처 지혜의 경계임을 알면 법에 붙들리고, 모든 생각을 끊고 모든 집착을 버리고 앞뒤 짬[際]을 여의어 열반을 따름을 알면 법에 붙들립니다.

 

이것이 열이니, 만일 보살들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법에 붙들림을 얻습니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이 도솔천(兜率天)에 머무는 데 열 가지 짓는 업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욕심 세계[欲界]의 천자들을 위하여 싫어하여 여읠 법을 말하되 모든 자유자재함이 다 무상하고 모든 쾌락은 마침내 쇠퇴한다 하여, 저 천자들을 권하여 보리심을 내게 하나니, 이것이 첫째 짓는 업입니다.

 

형상 세계[色界]의 천인들을 위하여 여러 선정과 해탈과 삼매에 드나듦을 말하되, 만일 거기에 애착을 내거나, 애착을 인하여 다시 몸이란 소견[身見] · 삿된 소견 · 무명들을 내거든 그들에게 실다운 지혜를 말하고, 만일 모

 

                                                                                                                    [1466 / 2062] 쪽

든 빛[色]과 빛 아닌 법에 뒤바뀐 생각을 일으켜 청정하나 한편 그들에게 부정하고 무상(無常)한 것이라 말하며, 그들을 권하여 보리심을 내게 하나니, 이것이 둘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머물러 삼매에 드나니 이름이 광명장엄(光明莊嚴)이며 몸에서 광명을 놓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두루 비추고 중생의 마음을 따라 가지가지 음성으로 법을 말하거든 중생들이 듣고는 신심이 청정하며, 목숨을 마치고 도솔천에 태어나면 그들을 권하여 보리심을 내게 하나니 이것이 셋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있어서는 걸림없는 눈으로 시방의 도솔천에 있는 모든 보살을 보고, 저 보살들도 여기를 보며, 서로 보고는 미묘한 법을 토론하나니, 이른바 도솔천에서 내려오고 어머니 태에 들고 탄생하고 출가하고 도량에 나아가 큰 장엄을 갖추며, 그리고 옛적부터 행하던 일을 나타내며, 그 행을 말미암아 이 큰 지혜와 가진 공덕을 이루었거든, 본 고장[本處]을 떠나지 않고 이런 일을 능히 나타내나니, 이것이 넷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머물면 시방의 모든 도솔천궁에 있는 보살들이 다 모여 와서 공경하며 둘러 앉습니다. 그 때에 보살마하살이 저 보살들의 소원을 만족하며 환희심을 내게 하려고 그 보살들의 머무른 곳에서 행할 것과 끊을 것과 닦을 것과 증득할 것을 따라서 법문을 말합니다. 저 보살들이 법을 듣고는 매우 환희하여 처음 보는 일을 얻고 제각기 본국에 살던 궁전으로 돌아가나니, 이것이 다섯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머물 적에 욕심 세계의 주인인 천마(天魔) 파순(波旬)이 보살의 업을 파괴하려고 권속에게 둘러싸여 보살의 처소에 이르거든, 그 때 보살은 마의 군대[魔軍]를 꺾으려고 금강도(金剛道)에 소속한 반야바라밀의 방편과 교묘한 지혜의 문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드럽고 거친 두 가지 말로써 법을 말하여, 마왕 파순으로 하여금 짬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마(魔)는 보살의 마음대로 하는 위력을 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나니, 이것이 여섯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 궁전에 있으면서 욕심 세계의 천자들이 법문 듣기를 좋아하지 않음을 알고는, 그 때 보살이 큰 소리를 내어 말하기를 '오늘 보살

 

                                                                                                                   [1467 / 2062] 쪽

이 궁중에서 희유한 일을 나타내리니, 보려고 하는 이는 빨리 모이라' 합니다. 이 때 천자들이 이 말을 듣고 한량없는 백천억 나유타(那由他) 대중이 모두 와서 모이니 그 때 보살은 하늘 무리가 모인 것을 보고 궁중에서 희유한 일을 나타내었습니다.

 

그 천자들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는 매우 환희하여 마음이 매우 취하였는데, 또 음악 속에서 소리 있어 말하되 '여러분이여, 모든 행은 무상한 것이고, 모든 행은 괴로운 것이고, 모든 법은 나가 없고 열반은 고요한 것입니다'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그대들은 다 보살의 행을 닦으면 마땅히 온갖 지혜의 지혜를 원만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저 모든 천자들이 이 법문을 듣고 걱정하고 찬탄하면서 싫은 생각을 내고 모두들 보리심을 내나니, 이것이 일곱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궁에 있으면서 본래 있는 곳을 떠나지 않고도 시방의 한량없는 부처님들이 계신 데 나아가 여러 여래를 뵈옵고 친근하여 예배하고 공손히 법을 듣거든, 그 때 부처님들이 보살로 하여금 가장 높은 정수리에 물 붓는 법[最上灌頂法]을 얻게 하려고 보살의 지위[菩薩地]를 말하니, 이름이 일체 신통입니다. 한 생각과 서로 응하는 지혜로 모든 것에 가장 나은 공덕을 구족하고 온갖 지혜의 지혜인 자리에 들어가게 하나니, 이것이 여덟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궁에 있으면서 모든 여래에게 공양하기 위하여 큰 신통의 힘으로 가지가지 공양거리를 일으키니, 이름이 수승가락(殊勝可樂)입니다. 온 법계 허공계의 모든 세계에서 부처님께 공양하거든, 그 세계에 있는 한량없는 중생들이 이렇게 공양함을 보고 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나니, 이것이 아홉째 짓는 업입니다.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있으면서 한량없고 그지없는 눈어리 같고 그림자 같은 법문을 내어 시방의 모든 세계에 두루 퍼져서, 갖가지 빛 · 갖가지 모양 갖가지 형체 · 갖가지 위의(威儀) · 갖가지 사업 · 갖가지 방편 · 갖가지 비유 · 갖가지 말을 나타내되 중생의 마음을 따라 환희케 하나니, 이것이 열째 짓는 업입니다.

 

불자여, 이것이 보살마하살이 도솔천에 머물면서 열 가지 짓는 업이니, 만.....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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