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155)-155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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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보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늘어나 집집으로 다니면서 음식을 청하고 그 따라 탐심을 내어 속인들이 하는 일을 따르고, 속인들의 말을 들으면 마음으로 즐겨 집착한다. 마음으로 즐기기 때문에 즐기는 그만큼 자기 이익을 잃으며 우치 때문에 타락한다. 미래의 나쁜 길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또 지옥·아귀·축생 및 다른 곳에 태어날 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또 현재의 두려운 노·병·사의 고통과 사랑과 이별하는 고통, 원수와 만나는 고통도 생각하지 않고, 또 사랑하는 모든 것과 이별할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고향·벗·친척 등을 두려워하여 집을 떠나 스님이 되었다가 다시 고향·벗·친구 등을 즐거워하고 그 음식을 좋아하여 자주 그 문으로 간다. 그리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진다. 혹은 지옥에 태어나고 아귀에 태어나며 혹은 축생에 태어나서 출가한 이유를 모두 헛되게 하고 만다. 그리하여 지옥이나 아귀·축생 등에 태어나서 큰 고통을 받을 때에는 고향도 벗도 그를 구호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구로서 지옥이나 아귀·축생 등에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거든 태어난 곳, 고향 및 벗들 보기를 즐기지 않아야 한다. 그들을 가까이하면 아무 이익도 없을 것이다. 애정을 없애는 것을 이유로 하여 집을 나와 애정의 그물을 끊었는데, 우치하기 때문에 다시 애정의 그물을 가까이한다. 마치 불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그것을 버리고 도망했다가 다시 큰 불에 들어가는 것처럼, 가정을 두려워하여 그것을 버리고 나왔다가 다시 두려운 곳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와 같다. 고향을 버리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그것을 친하면, 그를 눈이 없는 사람이라 하는데 그는 무지에 가려 모든 감관이 억제되지 못했으니, 그것을 더러운 법이라 한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끊는가? 그것은 지혜가 아니면 끊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것이니, 혹 그것을 감당할 수 없으면 오랫동안 그것을 멀리 피해야 한다.
만일 지혜가 없으면 어떤 다른 방편으로도 그 애정을 끊을 수 없을 것이니, 그것을 멀리 피해야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애정 때문에 그것을 보고는 아주 끊지 못하기 때문이다. 애정이란 이별해야 하는 것으로서 죽을 때에 이르러서는 선업을 제하고는 아무도 그를 구원하지 못하고, 한량없는 백천 생의 선업만이 가장 잘 구원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를 구원할 수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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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고향도 아니요, 형제도 아니다. 그러므로 비구로서 친척을 버리고 혼자 고요한 곳에 있으면 그 더러운 법을 끊을 수 있을 것이요, 늙고 병들어 죽을 때에는 고향도 그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비구로서 이렇게 생각하여 애정을 아주 끊거나 혹은 애정이 희박해지면, 그것이 이른바 비구로서 고향의 애정을 끊는다는 것이다.
또 속인이나 출가인으로서 여덟째 더러운 법을 끊어야 한다. 그 더러운 법이란, 이른바 실없는 말이니, 그것은 바른 말로 끊는다. 속인으로서 실없는 빈말을 하면 마치 초개(草介)처럼 사람들의 천대를 받을 것이다. 도리에 맞는 말은 가장 좋은 재물로 다른 어떤 재물도 거기에 미치지 못할 것이요, 실없이 말하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부유하고 즐겁더라도 빈궁한 이라 불릴 것이다. 실없어 도리에 닿지 않는 말은 허망하고 진실하지 않으므로, 마치 흰 염소가 말이 없는 것처럼 사람들의 천대를 받고, 그가 재물을 말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마치 축생처럼 그를 보므로 그는 큰 비방을 받는다. 어떻게 하면 그 허망하고 실없는 말을 끊을 수 있을까? 그것은 이른바 바른 말이다. 바른 말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침묵이요, 둘째는 네 가지 바른 말이다. 그 네 가지란, 첫째는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요, 둘째는 나쁜 말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요, 넷째는 파괴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니, 이런 것을 바른 말이라 한다. 속인이나 출가인으로서 이렇게 말하면 그는 남의 비방을 받지 않을 것이다. 속인이나 출가인으로서는 여섯 가지 인연으로 사람의 경멸을 받는다. 그 여섯 가지란, 이른바 도리에 맞지 않는 말과 남의 집에 갑자기 들어가는 것과 남의 음식을 탐하는 것과 높은 자리에 앉는 것과 빈말과 진실이 없는 것 등이니, 이런 여섯 가지 법은 남의 비웃음을 받는다. 속인이나 출가인은 마땅히 이런 법을 버려야 한다. 또 아홉째 더러운 법을 백법이 끊는다. 어떤 백법이 더러운 법을 끊는가? 이른바 그것은 경솔한 법이니, 바로 안정함으로써 그것을 끊는다. 경솔한 법은 일체를 장애하는데, 그 심성이 경솔하기 때문이다. 그는 경솔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남이 믿지 않고 도리를 깨닫지 못하여 세상의 할 일을 알지 못하고 말할 줄을 모르며 때를 알지 못하고 선한 벗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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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이하지 않는다. 경솔하여 방일하기 때문에 세간의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런 경솔한 나쁜 번뇌는 현재와 미래 세상을 파괴하여 이롭지 못하게 한다. 그러므로 속인이나 스님은 백법에 바로 머물러 경솔한 행동을 버려야 한다. 속인이나 출가인으로서 경솔한 행동을 버리고 바로 머무르면 여러 사람들의 공양을 받고, 바른 계율과 바른 지혜, 바른 뜻으로 악마의 경계를 떠나고 선법이 만족하여 마침내 열반을 얻을 것이다. 세간 법에 있어서는 지혜로운 사람의 칭찬을 받고, 세간의 할 일을 다 성취하여 사람들의 공양을 받고, 항상 안락하며 하는 일은 다 성취한다. 이런 속인이나 출가인은 경솔한 행동을 버리므로 뭇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다. 다시 모수루타천왕은 설법하는 새들과 선시 아왕과 마왕의 방일 등을 위해 일찍이 옛 천자로부터 전해 들은 가섭부처님의 법을 천자들에게 말하였다. 또 열째의 더러운 법은 천시하고 비방할 만한 것으로서 지혜로운 사람이 버리는 바이다. 어떤 더러운 법인가. 이른바 그것은 빈궁이다. 그 빈궁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계율의 빈궁이요, 둘째는 지혜의 빈궁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보시의 빈궁이요, 둘째는 슬기의 빈궁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종성의 빈궁이요, 둘째는 소견의 빈궁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보물의 빈궁이요, 둘째는 스승의 빈궁이다. 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친족의 빈궁이요, 둘째는 친구의 빈궁이다. 일체의 빈궁은 천시할 만하고 비방할 만한 것이다. 남자나 여자로서 어떻게 그것을 끊는가? 이른바 그것은 보시로서 일체의 빈궁은 보시로 끊을 수 있다. 마치 동물이 어둠을 없애는 것처럼 일체의 우치는 지혜로 없앨 수 있으며, 일체의 다른 소견은 바른 소견으로 끊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비법은 정법으로 끊을 수 있으니, 그것은 가장 훌륭하여 지혜로운 사람이 포섭하는 바로서 온갖 나쁜 길을 끊고 현재·미래의 두 세상을 편안하게 한다. 어떻게 보시하는가? 보시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이른바 지혜의 보시, 계율의 보시, 법의 보시, 위안의 보시, 바른 길을 가르치는 보시, 길을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치는 보시, 길을 가는 이에게 물을 주는 보시, 목숨의 보시, 기구의 보시, 두려움을 없애 주는 보시, 진실한 말의 보시, 의심을 끊어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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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 다섯 계율의 보시, 집을 떠난 이에게 주는 계율의 보시, 구족한 계율의 보시, 약품의 보시, 눈의 보시 등이다. 이런 갖가지 보시는 현재와 미래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서 그것은 마치 부모와 같다. 그러므로 항상 생각하고 닦으면 그 빈궁을 끊고 나쁜 길을 끊어 천상·인간에서 향락하고 향락한 뒤에는 마침내 열반을 얻을 것이다. 이렇게 보시는 빈궁을 끊는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보시를 행하여야 한다. 또 열한째의 어두운 법은 생사를 결박하고 온갖 법을 장애한다. 그 어두운 법이란 이른바 무지이다. 한량없는 어둠과 내지 무명의 어둠은 일체의 생명을 결박하고 일체 어둠의 무더기는 그 몸을 결박한다. 무지는 칼·불·독 등과 같고, 무지는 또 일체의 무명과 같다. 일체의 무명은 인연으로 일어나 일체를 지옥이나 아귀·축생 등의 세계로 흘러 다니게 하고, 또 중생들을 결박하여 흘러 다니게 한다.이 원수를 어떻게 끊어 버리는가? 그것은 이른바 번뇌 없는 지혜이니, 그것은 마치 등불과 같고 구호하는 이나 귀의할 곳과 같으며, 중생들에 있어서 부모와 같고 또 의사나 좋은 약과 같다. 그리하여 마치 나무 뿌리를 베어 나무가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불이 섶을 태워 다시 살아나지 못하며, 또 흐르는 물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것처럼 번뇌 없는 지혜로 무지를 불살라 다시 살아나지 못하게 하는 것도 그와 같다. 그러므로 언제나 부지런히 정진하여 번뇌 없는 지혜로 무지를 끊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 열한 가지 법은 방일이 그 근본이 된 것으로서 방일을 따라 방일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일을 끊어야 한다. 일체 방일의 근본은 아무 이익도 없는 것으로서 모든 방일을 만들어 낸다. 마치 대지에 의하여 온갖 약초·초목·숲·흐르는 물·강·못·제방·도시·촌락·동산숲 및 수미산 등이 있는 것처럼 일체의 지옥·아귀·축생 등이 다 방일에 의해 있는 것도 그와 같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 때에 모수루타천왕은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노인은 피부의 주름살 생기고 힘이 없어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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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도 바른 법 알지 못하는 그것은 모두 방일 때문이니라. 병으로써 허물어진 몸으로 그 병석에 누워 있으면서도 삶에 염증을 내지 않는 것 그것은 다 우치 때문이니라. 주리고 또 목마르거나 혹은 험악한 길에 들어도 이 삶에 염증을 내지 않는 것 그것은 다 방일 때문이니라. 만일 사랑하는 것과 이별함으로 못내 고통하고 번민한다면 그것은 다 방일 때문이라고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혹은 다섯 갈래 길에서 온갖 고통을 받나니 중생들 항상 고통하는 것 그것은 어리석기 때문이니라. 아아, 염증을 낼 줄 모르는 이 생사의 여러 세간이여, 갖가지 업의 큰 수레바퀴는 돌고 돌며 잠깐도 쉬지 않는다.삼계에는 아무 즐거움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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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조금도 항상된 것이 없다. 그런데 저 어리석은 사람들이 세상을 싫어할 줄 모른다. 저 경계는 다 허망해 삼계도 마치 꿈과 같으며 모두는 다 고통이건만 눈이 없어 보지도 알지도 못한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그 방일의 해침 받나니 죽음의 두려움이 닥치려 할 때는 아무도 그를 구원하지 못한다.잘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괴롭히면서 죽음의 왕이 닥치려 하건만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죽음의 왕이 닥치려 할 때는 목숨을 보전하는 사람 마음 빼앗고 이익이 없는 세 가지로써 뭇 중생들을 괴롭혀 해친다. 늙음·병·죽음 등의 고통은 방일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구하는 것은 인간을 괴롭히고 방일은 하늘 사람 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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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고 목마름은 아귀를 괴롭히고 지옥은 고통의 번민 당하며 축생들은 어리석음이 많아 서로서로들 잡아먹는다. 이렇게 온갖 고뇌들 중생들을 해치고 괴롭히나니 그것은 비법의 행을 따라 방일하고 우치하기 때문이니라. 마치 저 대지에 의지해 온갖 약초들 나는 것처럼 방일도 또한 그와 같아서 온갖 번뇌를 자라게 한다. 이 마왕의 군사들과 훌륭한 대신들을 지혜의 금강저로 무찌르는 것 햇빛이 어둠을 없애는 것과 같다. 지금 말하는 가운데서 그 공덕과 허물을 알라. 방일의 과보는 괴로움이요 방일하지 않는 과보 즐거움이다. 이와 같이 야마천왕은 방일하는 허물과 방일하지 않는 공덕을 한량없이 분별하여 설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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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병·죽음의 온갖 고통과 사랑과 이별하고 원수와 만나는 한량없는 온갖 괴로움 생사 가운데 가득하였다. 만일 누구나 방편을 알면 미래의 고통을 막을 수 있으리라. 악업은 바로 고통의 인(因)이거니악업 짓지 않으면 즐거움이다. 번뇌를 없애면 가장 즐겁다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말했나니 이것은 바로 열반의 길로서 참 지혜에서 말한 것이다. 마음을 제어하여 방일하지 않고 한가하고 고요한 곳에서용맹스럽게 탐심을 버리면 그는 열반에서 멀지 않으리. 원수 및 친한 벗 떠나 존재의 욕망을 없애 버리고 그 경계에서 방일하지 않으면 그는 열반에서 멀지 않으리. 만일 누구나 악을 버리고 자비스런 마음을 닦아 행하며 나고 죽는 것 두려워하면 그는 열반에서 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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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마음을 끊고 지혜로운 마음이 깨끗해 게으름의 번뇌를 뛰어넘으면 그는 열반에서 멀지 않으리.네 가지 진리와 상응하여 세 가지 허물을 끊고 모든 감관이 자유로우면 그는 열반에서 멀지 않으리. 아나반나(阿那般那 : 數息觀)를 알고 두 가지 모습을 수행하고 지혜로 아는 것을 잘 이해하면 그는 열반에서 멀지 않으리. 만일 허물의 두려움을 벗어나고 즐거움도 그 마음 결박하지 못하면 그는 능히 저 언덕에 건너가리니 그러므로 그를 모니(牟尼)라 한다.
이렇게 야마천왕은 설법하는 새들과 선시 아왕을 위해 가섭부처님의 바른 법의 경전을 말하였다. 그는 방일을 떠났기 때문에 이런 한량없는 바른 법을 제어된 묘한 음성으로 용기 있게 설법하였다. 그 때에 마왕의 군사들과 방일 대신은 그 바른 법을 듣고는 이렇게 생각하였다.'우리는 지금 야마천왕의 이런 법을 움직일 수 없고 알기 어려운 깊은 법을 뒤집을 수 없다.'이렇게 생각하고는 저희들끼리 말하였다.'이 모수루타의 법은 심지어 단 한 글귀 라도 움직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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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대신들은 이렇게 생각하고는 힘이 빠졌으므로 원래 야마천왕을 파괴하려 하였으나 그 큰 위력을 잃고 말았다. 그리하여 허공에 날아올라 잠깐 동안에 타화자재천궁의 파순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 때에 악마들은 그 대신들에게 물었다.'네 할 일은 뜻대로 되었는가, 일은 성공했는가?'세 대신들은 이 말을 듣고 마왕에게 아뢰었다.'천왕님, 우리들은 힘을 잃었습니다. 야마천왕 모수루타는 큰 지혜가 있었고, 그 바른 법은 한 글귀라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천자들도 그와 같아서 우리가 도저히 어지럽힐 수 없었습니다.'파순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생각하였다.'나는 방일하는 천왕을 내 욕심 안에 머무르게 하리라. 그는 아무리 큰 힘이 있더라도 방일하기 때문에 내 경계 안에 머물 것이다.'이렇게 생각하고 그 악마 무리들에게 말하였다.'물러가 있어라. 나는 저 야마천을 부술 수 있다. 너희들은 서둘지 말라. 내게는 큰 힘이 있으므로 저 천자들을 다 어지럽힌 뒤에 모두 쳐부수리라.'파순은 이렇게 말하고 다시 견줄 데 없는 여섯 가지 욕심으로 향락하고 방일하는 경계에서 더욱 한량없는 큰 쾌락을 성취하였다. 야마천왕은 선시 아왕과 설법하는 새들과 함께 한량없는 법을 연설하였으므로 악마와 방일한 사람들은 물러갔다. 그리하여 천자들은 할 일을 모두 마쳤다. 그 때에 새로 태어난 천자들은 유희하며 향락하다가 동산숲 속에서 선시 아왕과 설법하는 새들에게 설법하는 천왕이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그 때에 야마천왕은 이 천자들을 보고 선시에게 말한다.'너는 이 방일하는 천자들을 보라. 저들은 지금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온다. 나는 이제 적정원림(寂靜園林)으로 가서 유희하리라.'이렇게 말하고는 허공으로 날아올라 적정림에 들어갔다. 이 천자들은 방일하게 돌아다니며 5욕을 두루 갖추어 동산숲의 못 속에서 즐겼다. 그리하여 그 모든 선업이 다하고 그 업을 따라 흘러 다니면서 지옥이나 아귀·축생들 속에 떨어진다. 만일 남은 업이 있어 인간에 태어나면 재......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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