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154)-154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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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할 생각을 일으키고 언제나 고요한 곳을 즐거워하면 나쁜 업을 벗어나 지혜로 저 열반 얻으리. 정진을 일으켜 짝으로 삼아 게으름의 번뇌를 떠나면 광야의 두려움을 벗어나 그는 항상된 즐거움 얻으리.게으름과 방일은 일체의 법을 장애하나니 이런 큰 허물은 중생을 괴롭게 한다. 현재와 미래의 즐거움 얻으려면 부디 게으름 버려야 한다. 방일하고 게으른 사람은 저 개와 다름이 없다.
이와 같이 야마천왕은 선시 아왕과 설법하는 새들과 마왕의 대신 방일·욕미 등을 위해 저 가섭부처님의 경전을 말하였으니, 그것은 옛날 천자에게 들은 법이다. 또 다섯째로 백법은 악법을 능히 끊는다. 악법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도시나 촌으로 들어가기를 즐겨 항상 떠들기를 배우고 아란야에 머물기를 좋아하지 않아 사문의 법을 파괴한다. 어떻게 법을 파괴하는가? 그런 비구는 선정 닦기와 독경하기를 버리고, 도시나 촌락에 들어가 여러 속인의 집에 머물기를 즐겨 남자나 여자들과 말이 많고, 혹은 여자들과 말이 많으면, 그것은 사람을 결박하므로 일체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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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을 잃고 혹은 욕심을 내게 한다. 왜냐 하면 여자란 불과 같아 가까이하면 더욱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만일 여자를 가까이하면 차츰 마음이 어지럽게 된다. 그러므로 비구는 촌이나 도시 가운데로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만일 사람들과 말이 많으면 일체의 이익을 잃고 번뇌 없는 법에 있어서 마음이 깨끗해지지 않는다. 이렇게 비구는 스스로 그 법을 파괴한다. 또 만일 비구로서 촌락이나 도시에 들어가기를 즐기면 많은 허물을 얻을 것이다. 어떤 허물인가? 남의 집에 들어감으로써 그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즉 속인의 집에서 풍부하고 즐거운 음식·평상·침구 등을 보고는 탐하는 마음을 내는 것은 마치 토한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 아란야를 떠나 속세에 놀며 도를 버리고 세속에 들어가면, 한적한 즐거움을 버리고 가정의 결박을 당해 탐욕·분노·우치 등을 가지게 된다. 이런 허물로 다시 지옥이나 아귀·축생 세계에 떨어진다. 어떤 인연으로 이런 고통을 받는가?
그것은 촌락이나 도시로 들어가기를 즐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구로서 어떤 자리를 얻으려 하면 이런 허물을 떠나야 한다. 어떻게 그것을 떠나는가? 아란야에 머무름으로써 일체 집착 없는 공덕을 거두는 것이니, 집착 없음을 거두는 것은 제일의 안온이다. 어떤 비구로서 혼자 아란야에 머무르면 모든 감관이 고요해지고 그 마음은 청정하며 그 뜻은 단련한 금과 같아 가장 고요할 것이다. 모든 감관을 잘 단속하여 두려움을 떠나고 더러움을 떠나 가장 안온하여 번뇌 없는 즐거움을 얻는다. 6욕천(欲天)의 쾌락은 선업을 지었기 때문이니, 한 하늘의 즐거움도 비유할 수 없이 즐겁거늘 하물며 여섯 하늘의 온갖 즐거움이겠는가? 만일 번뇌가 없어지면 한 생각의 즐거움도 낱낱이 비유할 수 없어 일체의 생각과 산수로써도 비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최상의 즐거움을 구하려면 시끄러움을 버리기 위해 촌락에 들어가지 않고 선정을 구하고 삼매를 바로 받아야 한다. 즉 항상 혼자서 산골짜기, 바윗굴 등 한적한 곳으로 가거나 혹은 풀무더기 곁으로 혼자 가서 번뇌가 없는 즐거움을 구하고, 벗·친척·권속 등을 멀리 떠나야 한다. 그리하여 벗·친척 등의 즐거움을 관찰하되 그것은 무상하여 변천하는 것이요, 이별하는 법이며 집착이 없는 것이 아니요, 더럽고 어지러우며 자유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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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요, 두려움이 많은 것이라 관찰한다. 그러므로 지혜가 적은 우치한 사람은 최상의 즐거움을 버리고 번뇌가 있는 즐거움과 이름만인 즐거움을 구하므로 그는 광명을 멀리 떠나 어둠을 구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공덕과 허물의 모습을 알지 못하므로 멸망한다.
그러므로 촌락이나 도시의 즐거움을 버리고 항상 혼자 한적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 이렇게 촌락이나 도시를 떠나 숲 속에 있으면 집착 없는 즐거움을 얻을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다섯째의 희고 깨끗한 법으로 더러운 업을 끊는다는 것이다. 만일 즐거움을 구하고 악마의 경계를 떠나고자 하면, 이 희고 깨끗한 법으로 더러운 법을 끊어야 한다. 이리하여 모수루타천왕은 설법하는 새들의 마음이 안정되고 선시보살이 남을 이롭게 하려는 마음이 있는 줄을 알고는 옛날 천자에게서 전해 들은 가섭부처님의 경전을 말하고, 마왕의 대신 방일 등을 위해서 말하는 열한 가지 법 가운데서 다섯 가지 법을 말하였다. 그리고 이어 말한다.'여섯 가지 법이 남았으니 이제 차례로 말하리라. 너희들은 마음을 모아라.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니라. 너희들은 이미 온갖 어려움을 떠나게 되었으니, 만일 법을 말하지 않거나 법을 듣지 않으면 그것은 큰 속임수이다. 그러므로 이미 온갖 어려움을 떠났고 모든 감관이 원만해졌으니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지옥·아귀·축생 등 세 갈래 나쁜 길에 대해 어떻게 법을 말해야 하는가?
축생들은 서로 해치고 아귀들은 주리고 목마르며 지옥은 괴로움의 핍박을 당한다. 어떻게 법을 듣는가? 만일 인간이나 천상에서 방일하지 않으면 법을 들을 수 있다. 나는 방일을 떠났다. 너희들은 신심으로 자세히 들어라.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말하리라. 법은 듣기 어렵고 온갖 어려움을 떠나기도 또한 매우 어려운 것이다.
또 여섯째는 더러운 법에 속는 것이니, 그 더러운 법이란 이른바 욕심이 많은 것이다. 대개 욕심이 많으면 그것은 가장 더러운 것으로서 나쁜 탐욕이 사는 곳이다. 어떻게 그것을 멸할 수 있는가? 만족할 줄 알면 곧 멸할 수 있다. 욕심이 많으면 속인이나 스님이나 안락을 얻지 못한다. 속인이나 스님으로서 욕심이 많으면 밤이고 낮이고 늘 안락을 얻지 못한다. 재물을 얻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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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고 그 얻은 재물에 만족할 줄 모른다. 속인으로 욕심이 많아 만족할 줄 모름으로써 방해가 되는 것은 출가인과 같다. 그러나 출가인으로서 욕심이 많으면 그는 속인이라 할 수도 없거니와 출가인이라고도 할 수 없다.
출가인이란 교만·질투·탐욕 등을 버린 사람이다. 간단히 말해 욕심이 많은 이는 남의 비방을 받는다.만일 비구로서 욕심이 많아 항상 재물을 바라면 그런 비구는 선법에 대해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고,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감관이 깨끗하지 못하며 그 행도 깨끗하지 못하다. 만일 교만한 마음으로 절에 갈 때 한 걸음이라도 걸으면 지옥에 들겠거늘 어찌 그 침구·약품 등에 허물이 없는가? 그것은 순전한 지옥 걸음이다. 만일 계율을 깨뜨리고 욕심이 많아 악법을 행하면, 실은 사문이 아니면서 사문이라 자칭하는 것으로서 마치 늑대가 사자 가죽을 쓴 것처럼 거짓이 진실인 것 같고, 그 소리는 소라고둥 소리 같아서 속이 비어 아무것도 없다. 만일 욕심 많은 비구로서 (나는 가섭부처님의 성문제자)라 자칭하면, 가섭부처님의 법 안에서는 출가인으로서 욕심의 불에 타는 것은 큰 불에 타는 것 보다 더하다고 한다. 많은 욕심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그 몸에 독이 든 것과 같고, 많은 욕심이 사람을 해치는 것은 노쇠보다 더하며, 많은 욕심의 날카로운 칼이 선(善)의 나무를 치는 것은 칼의 해보다 더하고, 많은 욕심의 근심은 모진 병보다 더하며,
욕심이 많은 마음은 항상 남의 틈을 엿보아 그 목숨을 끊으려 하기는 원수보다 더하다.
그러므로 이 많은 욕심의 허물은 두 세상을 파괴하는 것이니, 부디 이 더러운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밤낮 생각하여도 마침내 즐거움을 얻지 못할 것이다.'그 때에 모수루타천왕은 다음과 같은 가섭부처님의 게송으로 말한다.
많은 욕심은 잘 드는 칼과 같아 어리석은 사람을 베어 죽인다. 그러므로 버려라. 그것은 칼과 같아 눈 먼 사람을 해쳐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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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욕심은 모진 창병 같나니 만일 그것이 마음속에 생기면 그 사람은 그 탐욕 때문에 밤낮으로 즐거움 얻지 못한다. 욕심의 불은 생각의 섶으로서 애욕의 바람에 불리면 사나운 불이 크게 일어나 이 중생들의 마음을 태운다. 탐욕으로 마음을 덮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움직여 재물을 사랑해 집착하기 때문에 사람은 그 신명을 잃는다. 만일 누구나 이 세간에서 갖가지 나쁜 업을 다 지으면 그것은 탐욕과 교만 때문이라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누구나 용맹스런 마음으로 능히 큰 불 속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다 탐심 때문으로서 스스로 이롭지 않은 일을 한다. 칼에 괴롭힘을 당하거나 혹은 갖가지 싸움을 하는 것은 다 마음이 인연이 되어 우치한 사람을 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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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한다. 이 멸망은 다 탐욕의 허물 때문이니 부디 탐욕을 친하지 말라고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와 같이 모수루타천왕은 선시 아왕과 설법하는 새들과 마왕의 대신 방일 등을 위해 이런 큰 허물을 말하였다. 그리고 이어 말한다.'어떻게 그것을 끊어 버리는가? 백법(白法)으로 해야 한다.
백법이란 이른바 욕심이 적은 것이다. 대개 욕심이 적은 것은 모두가 안락한 법 이라한다. 만일 누구나 욕심이 적으면 언제나 안락을 얻을 것이니, 그는 왕·도둑·물·불 등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욕심이 많은 사람은 재물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의 집을 친하여 재물을 구하고, 소인을 가까이하여 재물을 구한다.
그러나 욕심이 적은 사람은 나쁜 사람의 문을 두드리지 않고, 거짓말 하여 속이지 않으며 가무와 실없는 웃음과 발림말을 하지 않고, 악업을 짓지 않으므로 재물을 탐하는 불에 불타지지 않으며, 남이 쾌락을 누리는 것을 보고 고민하지 않으며, 재물을 탐하여 나쁜 벗을 친하지 않고 남을 의심하지 않는다. 혹 길을 가더라도 도둑을 두려워하지 않고 원수가 없으므로 틈을 엿보는 사람이 없으며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속인으로서도 이렇게 한다면 아무 두려움이 없고 안온하겠거늘 하물며 출가인이겠는가?
허물의 두려움을 멀리 떠나고 속인의 법을 떠나 숲 속에 살다가 다시 속인의 집에 가서 구하는 것이 많으면, 그 사람은 토한 음식을 다시 먹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사문으로서 제일의 공양은 이른바 욕심이 적은 것이다.
욕심이 적은 비구는 만족할 줄을 아는 청정한 명예가 널리 들린다.
다만 한 끼만 먹고 누더기 옷만 입고, 짝이 없이 오직 혼자서 산골짜기나 바윗굴이나 풀더미에서 논다. 오직 무덤 사이에 있으면서 음식을 3분하여 그 2분만 먹고, 걸식할 때에는 벗을 멀리 떠나고 친척을 가까이하지 않고, 오직 한 발우의 음식만 간직하며, 지팡이를 짚고 공양을 얻는 그대로 지혜로 생각하고는 그 집을 버리고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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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갈 때에는 한 길 앞만 바로 보고 좌우를 돌아보지 않는다.
맛난 음식을 버리고, 밤을 지낸 음식은 먹지 않으며, 촌에서는 사흘 밤 이상을 자지 않고 도시에서는 일곱 밤만 자며, 보배로 장식한 자리에는 앉지 않고, 과거에 알던 친척·벗·권속에게는 가지 않는다. 왕의 맛난 음식이나 평상·침구 등을 생각하지 않고 훌륭한 성바지를 말하지 않으며, 착한 벗을 친하고 성질이나 행실이 같고 계율이 같은 사람들과만 이야기한다. 이런 비구는 악과 홀림을 떠나고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을 알아 악마의 결박을 능히 끊는다. 만일 욕심이 많아 계율을 깨뜨리는 비구로서 가사를 입으면, 그는 하늘이거나 인간이거나 무간지옥으로 갈 큰 죄로서 그것은 병과 같고 도둑과 같다. 그러나 만족할 줄 아는 비구는 그 감관이 색깔·소리·냄새·맛·촉감 등에 달리지 않고 한데[露地]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고,
마음을 거두어 몸과 감각·마음·생각 등의 네 가지 관법을 닦아 마음을 거두어 생사 중에서 모든 감관을 단속하여 만족할 줄 알기 때문에 그를 비구라 하는 것이다.
만일 비구로서 욕심을 줄이기 위해 방일하지 않으면 그는 욕심이 적은 사람이다. 방일하기 때문에 욕심을 많이 내는 것은 속인이나 스님이나 다 같은 것이다.' 그 때에 야마천왕은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방일하지 않으면 그는 해탈의 과보를 얻고 만일 방일하면 그는 지옥에 떨어지나니 방일하고 방일하지 않는 그 과보를 이렇게 말한다. 마치 해와 어둠과 해탈과 결박인 것처럼 방일하고 방일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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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뜻도 또한 이와 같으니 욕심이 적으면 안락하고 욕심이 많으면 괴롭나니 이러한 괴롭고 즐거운 모습은 지혜로운 사람이 말한 바이다. 욕심이 많은 그 중생은 그 마음 언제나 불과 같고 욕심이 적으면 시원한 못물 같아 사람을 목욕시켜 탐욕을 떠나게 한다. 마치 마른 섶나무를 얻은 불이 그것을 태워 만족할 줄 모르는 것처럼, 욕심 많은 사람이 재물 탐하여 만족할 줄 모르는 것도 그와 같아서 언제고 안락할 때가 없느니. 욕심을 많이 즐기기 때문에 애욕의 화살은 그 마음 쏘나니 과거의 한없이 많은 왕들은재물을 탐하여 만족할 줄 몰랐다. 미래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것은 다 없어지고 마나니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욕심 적은 것이 가장 즐겁다 했다.
이와 같이 야마천왕은 연화대에 앉아 선시 아왕과 설법하는 새들과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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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방일 등을 위해 가섭부처님의 여섯째 법을 말하였다."
[1540 / 1802] 쪽
정법념처경 제 60 권
원위 바라문 구담 반야류지 한역
김월운 번역
6. 관천품
3) 야마천
"또 야마천왕은 선시 아왕과 설법하는 새들과 마왕의 대신 방일 등을 억제하기 위해 가섭부처님의 경전을 말하였는데, 그것은 옛날 천자로부터 들은 것이다. 그리고 이어 말한다.'번뇌를 끊는 여섯 가지 백법(白法)을 이미 말하였으니, 나는 이제 일곱째 더러운 법을 말하리라. 백법은 어떤 더러운 법을 끊어 버리는가?
그것은 이른바 본래 살던 곳을 보고 즐거워하는 마음을 내어 내 고장 보기를 즐기는 것이니, 그것을 멀리 떠나야 한다.'마음으로 항상 벗과 고장 보기를 즐기고 항상 친근하기를 생각하여 밤낮으로 그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하여 선정을 닦고 학업을 익히지 않으며, 좋은 스승을 가까이하거나 3보를 공양하지 않고 미래의 업을 생각하지 않으며 세 가지 업을 남에게도 말하지 않고, 스스로도 행하지 않으며, 다만 내 고향을 생각하고 고향·벗·친구 등을 보려고만 한다. 그리고 말한다.'저들은 어떻게 살림을 살며 무엇으로 살아가는가?'이렇게 생각하고는 근심 걱정에 덮여 해탈을 위해 숲 속에 살면서도 법을 따라 행하지 못하는데, 이것을 무지(無智)라 한다. 마음은 근심의 바다에 들고는 다시 한량없는 생·노·병·사 등 큰 근심 바다 속에 들어가며, 친척·친구·벗 등을 보고자 하여 악마의 그물 속에 들어간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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