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삼매경(40)-8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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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서도 역시 안나반나의 여섯 가지 일을 행하여 여러 가지 호흡이 몸에 두루 있음을 생각하며, 또한 호흡의 출입을 생각하여 몸속의 모든 날숨과 들숨을 다 관한다. 들숨에서는 몸속, 나아가 발가락까지 두루 미치고 모든 털구멍까지 두루 미치는 것이 마치 물이 모래에 스며드는 것과 같음을 깨우쳐 알고, 호흡이 나올 때는 발로부터 머리칼에 이르기까지 모든 털구멍에 두루하는 것이 마치 물이 모래에 스며드는 것과 같음을 깨달아 안다. 비유컨대 가죽 주머니에 바람이 들어가고 나와서 모두 가득 채우는 것과 같이, 입과 코에 바람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도 또한 그렇다. 몸을 두루 관하여 바람이 가는 곳을 보니, 마치 연뿌리의 구멍과 같고, 또한 고기 잡는 그물과 같다. 다시 마음으로 오직 입과 코뿐만이 아니라 호흡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관하니, 일체의 털구멍과 아홉 구멍 속에서도 역시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숨은 모든 몸에 두루하며, 모든 몸의 행을 다스림을 알고, 또한 들어오고 나오는 숨을 생각한다.
처음 숨을 배울 때 만일 몸이 나른해지고 잠이 오며 몸이 무거우면 모두 없애버리고, 몸이 가볍고 부드러우면 선정을 따라 마음으로 기쁨을 받는다. 또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하여 게으름과 잠과 마음의 무거움을 제거하며, 마음의 가벼움과 유연함을 얻어 선정을 따라 마음으로 기쁨을 받는다. 또한 신념지(身念止)에 들어가 마치며, 다음으로 통념지(痛念止)를 행한다. 이미 신념지를 얻었으므로 진실로 지금 다시 통념지를 얻어 진실로 기쁨을 받는다. 또한 이미 몸의 실상을 알았으므로 이제 마음과 심수법[心數法 : 마음과 심수(心數)란 심왕과 심소유법, 즉 마음의 당체와 마음으로 인식하는 인식의 객관적 대상을 말하는 것이다.]의 실상을 알고자 하니, 그러므로 기쁨을 받는다. 또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하여 즐거움을 받으며, 또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기쁨을 늘어나게 하니, 이것을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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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樂]이라 한다. 또한 처음의 마음속에서 기쁨이 생기는 것을 기쁘다[喜]고 하고, 뒤에 몸에 기쁨이 두루한 것을 즐거움[樂]이라고 한다. 또한 초선(初禪)과 2선(禪)가운데 즐거움과 고통을 기쁨[喜]이라고 하고, 3선(禪) 가운데 즐거움과 고통을 즐거움을 받는다[受樂]고 한다. 모든 심행(心行)을 받아 또한 숨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생각하니, 모든 마음이 생기고 소멸하는 법[心生滅法], 마음이 물드는 법[心染法], 마음이 물들지 않는 법[心不染法], 마음이 흩어지는 법[心散法], 마음을 거두는 법[心攝法], 마음이 바른 법[心正法], 마음이 삿된 법[心邪法] 등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마음의 모습[心相]을 이름하여 마음의 움직임[心行]이라고 한다. 마음이 기쁠 때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먼저 기쁨을 느끼는 것은 저절로 생겨서 이유 없이 만들어진 것이니, 마음을 관찰하기 때문에 기쁨을 만든다.
[문] 무슨 까닭에 기쁨을 만드는가?
[답] 두 가지 마음을 다스리고자 하기 때문이니, 산심(散心)과 섭심(攝心)이다. 이와 같이 마음을 먹으면 번뇌를 벗어날 수 있으니, 그러므로 법을 생각하면 마음은 기쁨을 만든다. 만일 마음이 기쁘지 않으면 격려하여 기쁘게 한다. 마음을 거두어들일 때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하여, 설령 마음이 안정되지 않더라도 강제로 항복시켜 안정되게 하니, 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마음이 안정된 것이 바로 도(道)이며, 마음의 흐트러짐은 도가 아니다. 마음이 해탈했을 때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오는 것을 생각한다. 만일 뜻[意]이 이해하지 못했으면 강제로 항복시켜 이해하게 한다. 비유컨대 양(羊)이 도꼬마리[蒼耳]덤불 속에 들어간 것과 같아서, 도꼬마리가 몸에 붙으면 사람들은 점차 그것을 떨어버리니, 마음으로 여러 가지 번뇌의 결박을 벗어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것을 심념지(心念止)로 해탈을 이룬다고 한다. 무상(無常)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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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의 존재는 늘 변하는 것이며, 태어나고 없어지며, 공이요 무아라고 관한다. 태어날 때의 일체의 존재는 태어남이 없으며, 없어질 때의 일체의 존재는 없어짐도 없다. 이 가운데는 남자도 여자도 없으며, 사람도 없고, 지음도 없고, 받음도 없다. 이것을 무상관(無常觀)을 따른다고 한다. 유위법(有爲法)이 나와 흩어짐[出散]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 무상(無常)함을 생각한다. 이것을 ‘나와서 흩어짐’이라고 이름하니, 모든 유위법은 현세 속에서 나온다. 과거의 인연을 좇아 화합하기 때문에 모이고, 인연이 허물어지기 때문에 흩어진다. 이와 같이 따라서 관하는 것을 출산관(出散觀)이라고 한다.욕망과 번뇌를 여읨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마음이 모든 번뇌를 여의는 데는 이 법이 제일이다. 이것을 이욕관(離欲觀)을 따른다고 한다. 다함[盡]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모든 번뇌의 괴로움은 있는 곳에서 다하므로 이곳은 안온하다. 이것을 진관(盡觀)을 따른다고 한다. 버리는 것을 관하는 데도 역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생각한다. 모든 오염된 애착[染愛]ㆍ번뇌ㆍ신심(身心)ㆍ5음(陰) 등 모든 유위법을 버리면 이것이 가장 안온한 것이다. 이와 같이 관하는 것을 법의지관(法意止觀)을 따른다고 한다. 이것을 열여섯 가지 나뉨이라고 한다.
5. 등분(等分)을 다스리는 법문
등분[等分 : 등분이란 성실견(性實見)ㆍ착아견(着我見)ㆍ단(斷)ㆍ상(常)의 네 가지 견해가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성실견이란 본질적인 궁극적 존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견해이며, 착아견은 나에게 집착하는 견해이고, 단견은 일종의 염세주의로서 이 세상은 단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상견은 이 세상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견해이다.]을 다스리는 법문
다섯 번째 법문은 등분을 다스리는 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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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은 부처님을 찾으니, 이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마땅히 한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는 삼매를 가르쳐야 한다. 염불삼매에는 세 가지 사람이 있으니, 초습행(初習行)ㆍ이습행(已習行)ㆍ구습행(久習行)이다. 만일 초습행의 사람이라면 불상이 있는 곳에 데리고 가거나, 혹은 스스로 가게 하여 불상의 상호를 잘 보게 한다. 모습 모습이 명료해지면 한마음으로 지니고 조용한 곳으로 돌아가 마음의 눈[心眼]으로 불상을 관조하여 마음이 돌아다니지 않게 하고, 생각을 묶어 불상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한다. 다른 생각을 거두어서 항상 불상에 머물게 한다. 만일 마음이 머물지 않는다면 스승은 마땅히 가르쳐 말하기를, “그대는 마땅히 마음을 꾸짖어야 한다. 그대로 말미암아 받는 죄가 헤아릴 수 없으니, 끝없는 생사와 갖가지 고뇌를 다시 받지 않는 것이 없다. 만일 지옥에 있으면 큰 바다 같은 구리를 삼키거나 마시며, 타오르는 쇠구슬을 먹고, 만일 축생에 있으면 똥과 풀을 먹으며, 만일 아귀에 있으면 배고픔의 고통을 받고, 만일 사람 속에 있으면 가난하고 고단하며, 만일 하늘 위에 있으면 욕망을 잃어버리고 근심한다. 항상 그대를 따르기 때문에 나로 하여금 이 갖가지 육체적 고뇌[身惱], 정신적 고뇌[心惱] 등 헤아릴 수 없는 고뇌를 받게 하니, 이제 마땅히 그대를 통제하리라. 그대는 마땅히 나를 따르라. 내 이제 그대를 한 곳에 묶어서 내가 마침내 다시는 그대 때문에 곤란해지거나 괴로움의 해독을 받지 않으리라. 그대가 항상 나를 곤란하게 했으니, 내 이제 마땅히 일[事]로써 그대를 곤란하게 하리라. 이와 같이 하여 그만두지 않으면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리라. 이때 문득 마음의 눈을 얻어 불상의 모습과 광명을 보리니, 눈에 보인 그대로여서 다름이 없다”라고 해야 한다. 이와 같이 마음이 머물면, 이것을 ‘처음으로 익혀서 행하는 이의 사유(思惟)’라고 한다. 이때 마땅히 다시 생각해서 ‘이것은 누구의 모습인가? 바로 과거 석가모니부처님의 모습이다. 내가 이제 부처님의 형상을 보았듯이 형상이 온 것도 아니고, 나 역시 가지 않았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와 같은 심상(心想)으로 과거의 부처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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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신(神)이 내려올 때는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고, 32상(相)의 대인(大人)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첫째 발바닥이 평평하다. 둘째 발바닥에 천 개의 바퀴살이 있는 바퀴가 있다. 셋째, 손가락이 길고 아름답다. 넷째, 발뒤꿈치가 넓다. 다섯째, 손가락과 발가락에 모두 명주그물이 있다. 여섯째, 다리를 포개면 높고 평평하며 아름답다. 일곱째, 이니연[伊尼延 : 녹왕(鹿王)으로 번역한다. 부처님의 무릎이 이 사슴처럼 길고 짧은 정도가 적당함을 말한다.]의 무릎과 같다. 여덟째, 평소에는 손이 무릎을 지난다. 아홉째, 음마장(陰馬藏)의 모습이다. 열째, 니구로다(尼俱盧陁)의 몸이다. 열한째, 하나하나의 구멍에 하나하나의 털이 나 있다. 열두째, 털이 위쪽을 향해 나서 오른쪽으로 선회한다. 열셋째, 몸의 빛깔이 상품의 금보다 더 뛰어나다. 열넷째, 신광(身光)이 네 면의 한 길[丈]을 비춘다. 열다섯째, 피부가 아름답다. 열여섯째, 일곱 곳이 가득 차 있다. 열일곱째, 양쪽 겨드랑이 아래가 평평하고 아름답다. 열여덟째, 윗몸이 사자와 같다. 열아홉째, 몸이 크고 아름다우며 단정하고 반듯하다. 스무째, 어깨가 둥글고 아름답다. 스물한째, 40개의 치아가 있다. 스물두째, 치아가 희고 고르며 빽빽하고 뿌리가 깊다. 스물셋째, 네 개의 어금니가 희고 크다. 스물넷째, 뺨이 사자와 같다. 스물다섯째, 맛 중에서 최상의 맛을 얻는다. 스물여섯째, 혀가 크고 넓고 길면서 얇다. 스물일곱째, 범음(梵音)이 깊고 멀리까지 들린다. 스물여덟째, 가릉빈가의 음성이다. 스물아홉째, 눈이 감청색이다. 서른째, 속눈썹이 우왕(牛王)과 같다. 서른한째, 정수리의 터럭이 육골(肉骨)을 이룬다. 서른두째, 미간에 흰 터럭이 길고 아름다우며 오른쪽으로 감겨 있다. 다시 80가지 작은 특징이 있다. 첫째, 정수리를 볼 수 없다. 둘째, 코가 곧고 높으며 아름답고 구멍이 드러나지 않는다. 셋째, 눈썹이 초승달과 같고 감색 유리 빛이다. 넷째, 귀가 아름답다. 다섯째, 몸이 나라연과 같다. 여섯째, 뼈 사이는 쇠사슬과 같다. 일곱째, 몸이 한꺼번에 도는 것이 코끼리 왕과 같다. 여덟째, 움직일 때는 발이 땅에 네 마디마다 발자국을 찍어서 나타낸다. 아홉째, 손톱은 붉은 구리 빛깔과 같고 얇으면서도 윤이 난다. 열째, 무.....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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