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129)-129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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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중이 되었으나, 오직 음식맛만 탐하여 항상 다른 모임만 엿보고 음식을 구하며 혹은 경계를 즐긴다. 이런 비구는 죽은 비구로서 비구라 하면서도 좌선도 독경도 하지 못하고 깨끗한 계율을 깨뜨린다. 다른 죽은 사람은 그 몸만 버리고 가지마는 계율을 깨뜨리는 비구는 일체의 선법을 다 깨뜨리고 오직 평상에 앉아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만 잘났다 자칭하지만 오직 비구의 형상만으로서 실상은 계율도 없고 바른 계율 떠난 사람이다. 이른바 바른 계율이란 마음의 계율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그 계율을 지키지 못하고 또 짓지도 못한다.
계율에는 일곱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그 첫째는 입의 계율이다. 즉 비구는 법에 대한 일을 제외하고는 다른 비구나 속인들과는 말하지 않으며, 또 계율을 지키는 비구는 걸식 걸음을 제외하고 여자와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혹 축원할 때에는 이렇게 말한다.'그대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고 열반을 얻게 하리라.'어머니나 자매를 볼 때에도 그 발만 보고 얼굴은 보지 않으며 또 그 의복이나 장엄은 보지 않는다.
그 때에 가섭 부처님은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신다. 손으로 비비거나 바람이 불어서 일어나는 나무의 불은 오랜 뒤에야 태우지마는 여자를 보고 일어나는 불은 오래지 않고 빨리 태운다. 그러므로 비구는 태워질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여자와는 일체 말하지 않는데 이것이 첫째 계율이며,
둘째 계율이란 이른바 나쁜 벗을 친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한 곳에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는 것이며,
넷째는 많은 이익을 취하지 않고 공양을 버리는 것이며,
다섯째는 병자를 버리지 않고 처자를 보지 않으며,
여섯째는 어디서나 많은 이익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니 그것은 탐욕이 생길까 두려워하기 때문이요,
일곱째는 계율을 깨뜨린 이와는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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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일곱 가지를 비구는 잡아 끌지 않는다.
다만 음식을 탐하거나, 남의 재물이나 남의 공양을 보거나 혹은 들으면 곧 번뇌가 생겨 이렇게 생각한다.'나는 지금 어떤 방편을 써서 저 이익을 얻을까?'이렇게 생각하여 마음으로 탐착하고 이렇게 마음이 흐려 탐심을 증가시킨다. 그 나쁜 사문은 일체의 선법을 다 깨뜨리고는 밤낮 근심하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하여 그 비구는 계율을 지키는 다른 선행 비구가 남의 공양을 받는 것을 보고는 질투하고 탐욕을 내어 그 시주 집으로 갈 때는 거짓 복장으로 말이 적고 천천히 가지마는 그 마음은 고요하지 않다.
겉으로는 위의가 있고 고요한 형상을 나타내기 위하여 누더기 옷을 입는다. 또 그는 계율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짝이 되어 다만 주라 소리[貝聲]로 악법을 행하며 짝을 지어 시주 집으로 가서는 계율을 지키는 외형을 내면서 마음대로 행동한다.
그 시주는 그 비구가 계율을 지키는 줄 알고 이렇게 생각한다.'이들 비구는 가장 계율을 잘 지킨다.' 그 나쁜 비구는 계율을 지키는 형상을 나타내어 시주로 하여금 믿고 존경하게 한 뒤에는 다른 친구들과 그 시주 집으로 자주 간다.
그 비구는 자기가 들어서 조금 아는 불법을 그 친구들과 함께 그 시주를 위해 설법한다. 이런 방편으로 시주로 하여금 저 비구가 얻을 이익을 돌려 자기에게 주게 하려 한다.
이런 비구는 외형은 사문이나 실상은 큰 도적으로서 시주의 집에 가서 방편으로 남의 재물과 공양을 겁탈하는 것이다.
그 비구는 남의 재물과 공양을 보고 탐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내어, 눈을 떴다 감는 찰나 동안도 선법을 짓지 못한다. 그 나쁜 비구와 계율을 깨뜨리는 사문은 좌선, 독경 등 업을 버리고 한 생각 동안도 지옥이나 아귀·축생에 포섭되지 않는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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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념처경 제 50 권
원위 사문 구담 반야류지 한역
김월운 번역
6. 관천품
3) 야마천 ⑮
"또 그 비구는 친구들과 함께 시주의 집에 가서, 전에 알던 계율을 지키는 비구의 허물을 거짓으로 말하고, 혹은 질투하는 마음으로 그의 계율의 깨뜨림을 말하며 혹은 그의 무식[無聞]과 이력[行相]을 말하되 그 시주에게 이렇게 말한다.'당신의 이 스님은 계율을 깨뜨리고 혹 설법은 하지마는 게을러 들음이 없고 지혜가 없어 어리석기 새와 같아서 들음이 적고 지혜가 적습니다.'
그 나쁜 비구는 남의 시주를 향해 이렇게 나쁘게 말하면서 항상 비법의 경계를 친하거늘 어디서 좌선이나 독경의 업을 닦겠는가? 그는 아무 실속이 없고 견실하지 않아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져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그 때에 가섭부처님은 다음 게송으로 말한다. 거짓말로 말하는 사람 일체 중생을 괴롭히나니 그는 언제나 어둠과 같아 목숨이 있어도 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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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칼은 그 혀를 베거니 어떻게 혀가 떨어지지 않겠는가? 만일 거짓말로 말하면 진실한 공덕을 잃어 버리리. 만일 누구나 거짓을 말하면 그 입 안에 독사가 있고 그 입 안에 칼이 있으며 그 입 안에서 불꽃이 타리. 입 안의 독(毒)도 독이지마는 뱀은 그보다 더한 독이다. 입의 독은 중생을 파괴하나니 목숨을 마치고는 지옥에 떨어지리. 만일 누구나 거짓을 말하면 그 입 안에서 고름이 나고 그 혀는 바로 시궁창이요 또 그 혀는 타는 불 같다. 이것은 그런 그물의 결박이요 지옥의 앞 사자로서 법의 다리 등을 파괴하나니 이것은 다 거짓말의 허물이다. 거짓말하는 그 사람에게는 부모도 있을 수 없고 또 계율도 지키지 못하다가 나쁜 세계에 떨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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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구나 거짓말하면 그는 사람들의 천시를 받고 착한 사람의 버림 받으며 하늘도 받아 들여 보호하지 않으리. 스스로 그 말을 단속하지 못하고 성질이 급해 많이 성내며 마음이 어지러워 말이 많으면 언제나 온갖 괴로움 받으리. 항상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며 여러 나쁜 중생과 함께 방편으로 남을 괴롭히고 해치면 그는 그 때문에 지옥에 들어 가리. 저 가섭부처님은 이와 같이 좌선, 독경을 방해하는 일곱 가지 악법을 말씀하셨다.
저 나쁜 비구는 계율을 지키는 이를 해치므로 하늘도 그를 버리고 입 안에는 칼이 나며, 남을 해치기 위해 남의 진실한 공덕을 없다고 말하며 진실로 허물이 없는 이를 허물이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나쁜 사문으로서 스스로 사문이라 말하지마는 그것은 거짓말인 것이다. 그에게는 언제나 이런 악의와 악행과 악법이 있다.
그러므로 그 시주도 뒷날 그것이 모두 거짓인 줄 알고 마음으로 그를 업신여긴다. 이것이 일곱째 법이니 비구로서 마땅히 버려야 할 악법이다.
즉 음식·공양 등을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다.
또 비구의 좌선, 독경을 방해하는 여덟째 방해되는 악법이 있으니 사문은 그것을 버려야 한다.
여덟째란 이른바 온갖 천연적 보배와 인조(人造)의 보배 따위를 모으는 것이다. 원래 그 비구는 생사를 두려워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 믿음으로 집을 나왔던 것이다. 즉 생사 가운 데에는 많은 고뇌가 있는데 줄여서 말하면 두 가지 고통이 있다. 5음·18계·12입에 의하여 삼계에 있거나 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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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는 5도에 있는데, 5도란 8대지옥과 아귀·축생과 욕심세계의 6천(天)이요, 욕심세계에는 온갖 세세한 고통이 있다. 또 형상세계에는 마음의 고통이 있고 무형세계에는 타락하는 고통이 있다. 그러므로 타락하게 될 때에는 마음이 어지러워진다. 그러므로 그 마음에는 한량없는 갖가지로 분별하는 고통이 있다.이렇기 때문에 저 선남자는 이런 고뇌를 관찰하고는 이 세계에 싫증을 내었고, 이런 한량없는 허물을 두려워하여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복을 입고 믿음으로 집을 나왔던 것이다.
또 그 사문은 다시 다른 고통을 관찰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른바 몸의 고통이다. 몸의 고통이 있는 두 곳이란 곧 욕심세계와 형상세계로서 몸이 있는 곳에서는 다 고뇌를 받는다.
형상세계에서는 어떤 고통을 받는가? 이른바 좌선하다가 피로하면 일어서고, 그 선정에서 일어나면 또 피로하다. 그가 타락하게 될 때에는 몸의 위덕이 떨어진다. 즉 바람이 몸에 와 부딪친다. 본래는 그런 바람이 부딪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몸에 부딪치면 고뇌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눈의 부딪침은 그렇지 않아 즐거움만 받고 괴로움은 없는 것이니 그것은 무기(無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받는 고통은 같지 않은데 이 육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선남자는 이렇게 관찰하고 생사 가운데의 모든 고뇌는 다 5음·12입·18계가 한데 모여 된 것임을 안다.
그는 이렇게 한량 없고 끝없는 생사의 고뇌를 관찰하고 집을 나온 것이다. 이미 집을 나와서는 다시 악인을 가까이 하기 때문에 같은 업을 지으면서 보배의 성질을 듣는다. 어떤 성질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믿음으로써 집을 나왔는데, 또 다른 성질을 듣고 다시 탐심을 낸다. 즉 혹은 금 성질, 혹은 은 성질, 혹은 다른 보물의 성질을 듣고는 만족 할 줄 모르고 탐욕의 불에 태워진다.
그리하여 나쁜 벗과 함께 산중으로 가서는,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두루 다니면서, 은밀한 곳에서는 탐욕의 불에 태워져서 밤낮 괴로워하며 즐거울 때가 없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집을 나왔는데도 그 성질은 생각하지 않고 다른 성질을 생각하는가? 이른바 몸의 성질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니 앞에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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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바와 같다. 그는 이렇게 마음이 바르지 못하고 마음이 어지러우므로 좌선, 독경을 폐하고 선법을 잃어 버린다. 그는 사문도 아니요, 속인도 아니다. 열반을 구하기 위해 집을 나왔다가 성질의 귀신에 집착하여 곧 탐심을 내고 탐욕의 그물에 얽매여 지옥으로 들어 간다.
그 때에 가섭부처님은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신다. 몸의 성질을 관찰하는 것이란 곧 일체의 성질을 관찰하는 것이니 열반을 얻으려 하는 사람은 몸의 성질 다루는 것 이외에 없다. 만일 몸의 성질을 버려 떠나고 다른 성질을 탐하여 집착하면 그는 참 성질을 모르는 이로서 고뇌를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금의 성질은 온갖 고뇌를 능히 제거하지 못하지마는 분명히 참 성질을 아는 사람은 괴로움을 벗어나기 의심 없으리. 일체의 괴로움은 괴로움을 낳나니 이 괴로움 벗어나기 어렵다. 저 재물을 가진 사람은 왕·도둑·불 등을 다 두려워한다. 그러므로 재물을 버려야 한다. 본래에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재물을 버리면 즐거움 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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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을 섭취하면 고통 받는다. 몸의 성질을 분명히 알고 또 그 성질의 모양을 분명히 알아 좌선하고 독경하기 즐거워하면 능히 번뇌의 산을 불사르리.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몸을 관찰해 그 성질을 잡나니 스스로의 상을 아는 중생은 곧 열반의 즐거움 얻으리.
지혜로운 사람은 이와 같이 그 몸의 성질을 부지런히 관찰하고 금·은 등의 성질을 경영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체 집에 있는 사람에게도 두려움의 근본이 되거늘 하물며 집을 나온 사람에 있어서랴. 집을 나온 사람은 일체를 버려야 한다. 그 재물이란 모두 두려움이므로 재물을 모으지 않으면 즐거움을 얻는다.
그 재물이란 재물도 아니요, 재물의 성질도 아니다. 어떤 것이 재물인가? 이른바 몸의 성질을 관찰하는 것이다. 만일 몸의 성질을 버리고 다른 성질을 즐기면 좌선과 독경에 정진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지옥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출가한 사람은 언제나 좌선·독경 등의 재물을 닦아 모아야 하고 세간의 천한 물건을 구할 것이 아니니 그 인연으로 욕망을 더욱 자라게 한다.
그러므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제일의 재물이요, 다른 재물은 사람을 번뇌하게 한다. 이것이 여덟째 법으로서 좌선과 독경을 방해하는 것이니 출가한 사문은 그것을 버려야 한다.
또 아홉의 장애되는 악법이 비구의 좌선과 독경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사문은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 아홉째란 이른바 왕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출가한 사람은 왕을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왕을 가까이 하는 사문은 세상 사람들이 그를 꺼려 공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왕을 가까이 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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쁜 사문은 재물을 희망하여 도시와 촌 혹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 항상 재물을 구하면서 만족할 줄 모르며, 혹 구하지 않더라도 한갖 왕을 가까이 함으로써 좌선·독경을 방해한다.
그런 비구는 마음을 내어 해탈의 도를 행하려 하다가 다시 얽매임의 길에 들어 가는 것이니 그러므로 비구는 왕을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한다.
또 비구는 어떤 이를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하는가? 이른바 비구는 나쁜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한다. 나쁜 사람이란 이른바 나쁜 벗이니, 그는 때로는 다섯 경계에 집착한다.
즉 색깔·소리·냄새·맛·접촉 등을 잘 관찰하지 못하고 게으르며 어리석어 마음 따위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비구는 그들을 모두 버려야 한다. 즉 게으른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고 거짓 무리를 가까이 하지 않으며 음식의 맛을 탐하는 사람과 장사꾼을 가까이 하지 않고 사냥꾼 등 나쁜 생활로 살아가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질투하는 사람, 삿된 소견을 가진 사람, 자상하지 못한 사람, 교만한 사람, 갑자기 부귀한 사람, 도박꾼, 술 파는 사람, 술을 즐기는 사람, 술집 여자를 좋아하는 사람, 뚜장이, 잡화상, 요리인, 옥졸 따위, 새 사냥꾼, 실없는 말 하는 사람, 외도를 믿는 사람,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 등 이런 사람을 비구는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하여 같이 살거나 같이 말하거나 동행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기 때문이다. 출가한 사람이나 온갖 허물을 떠난 청정한 사람은 저 의심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은 저 비구도 그런 사람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그 비구는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 하거나 혹은 한 곳에 머물기 때문에 그들의 허물에 더러워지므로 가까이 해서는 안 되겠거늘 하물며 왕을 가까이 하겠는가?
왕을 가까이 하는 이는 가장 비열한 자이다.
그 때에 가섭부처님은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신다. 비구는 숲에서 살아야 한다. 왕을 가까이 하는 것 비열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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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를 입고 남을 가까이 하는 것 종이 주인의 명령에 의지하는 것 같다. 비구는 남을 가까이 하지 말고 하늘도 가까이 하지 말라. 거위는 개를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하나니 그것은 자기가 깨끗하기 때문이다 나[我]도 없고 희망도 없어 마음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않고 생사를 두려워하는 이로서 왕을 가까이 하는 것 좋은 일 아니다. 동산숲이나 무덤 사이나 평지나 혹은 산에 살면 그는 바로 좋은 비구요. 왕을 가까이 하는 것 좋은 일 아니다 이런 갖가지 한량없는 방편으로 왕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왕을 가까이 하면 모든 법행인들의 꾸지람을 받는다. 가까이 해야 할 이는 오직 지혜의 왕이다. 그를 가까이 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고요하다. 지혜의 왕을 가까이 하면 반드시 열반을 얻을 것이요 어디에 태어나더라도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지혜의 왕을 가까이 하려면 거기에는 방편이 있으니 이른바 좌선과 독경에 굳세게 정진하고, 좌선과 독경을 방해하는 다른 업은 짓지 않으며, 어른을 가까이하고 만족할 줄 알기를 닦아 익히며, 그 마음은 잘 다루어져 언제나 탐하는 일이 없다. 어른을 가까이 하여 때때로 일을 묻고는 가르침을 받아 지녀 잊지 않으며, 희귀한 물건을 보거나 들으려 하지 않아 기특하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다. 지혜의 왕을 가까이 하는 데에는 이런 방편이 있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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