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

정법념처경(130)-1300

근와(槿瓦) 2016. 1. 28. 02:38

정법념처경(130)-130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1291 / 1802] 쪽

그 때에 가섭부처님은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신다. 어른을 가까이 해 공양하고 때때로 부지런히 일을 물으며 보시·계율·지혜를 닦아 행하고 다시 지혜의 왕을 가까이 하라. 천상과 인간 세계에 능히 안온함을 가르치는 이 그는 존재의 괴로움에 묶이는 이 세상의 범상한 왕이 아니다. 만일 아무 고뇌 없으면 그이야말로 왕이라 할 수 있고 만일 언제나 고뇌 받으면 그는 왕이라 할 수 없느니라. 비구는 이와 같이 지혜의 왕을 가까이 하고, 범상한 왕을 가까이 하면 좌선과 독경을 방해할 것이요, 좌선도 독경도 하지 않으면, 다시 지옥이나 아귀·축생에 떨어질 것이니 그것은 세간의 범상한 왕의 경계다.

 

그러므로 비구는 이런 허물을 알아서 언제나 왕을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한다. 숲에 사는 사람으로서 왕을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한다. 숲에 사는 사람으로서 왕을 가까이 하면 그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그것을 버려야 하나니 그것은 이 아홉째 법이 좌선과 독경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 열째의 장애하는 법이 비구의 좌선과 독경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 열째란 이른바 비구가 초청을 희망하여 음식의 맛을 탐하는 것이다. 그는 경계에서 바르게 수행한 뒤에 다시 속세로 다니고 즐거운 숲을 버리고 또 속세에 여러 곳으로 돌아다닌다. 그런 비구는 방일하여 집마다 마을마다 가까이 하고, 이 성에서 저 성으로, 이 대중이 있는 곳에서 저

 

                                                                              [1292 / 1802] 쪽

대중이 있는 곳으로 돌아다니면서 말많음을 좋아한다. 망령되이 세속으로 나가 세속 말을 즐기고 친구 보기를 즐기며 친구와 벗의 초청을 받아 맛난 음식을 먹는다. 온갖 맛난 음식을 먹고는 숲 속에서 좌선하여 독경하기를 버리고 방일을 행한다. 음식을 희망하여 항상 온갖 음식을 탐착하기 때문에 몸이 늙어 죽는 줄을 깨닫지 못한다. 이와 같이 맛에 집착하여 초청을 바라는 그것으로 마음의 즐거움을 삼는다.

 

또 만일 비구로서 경계에 대해 법답게 행하지 않으면 눈으로 좋은 색깔을 보고는 마음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곧 더러운 욕심이 생기고 즐겨 보기를 희망하기 때문에 더욱 애착하여 그 곳을 좋아한다. 그런 비구는 속세로 나가므로 스스로의 이익인 좌선, 독경의 업을 잃어버리고 이렇게 잃고는 항상 음식 맛을 희망하여 남의 집으로 가서 눈으로 색깔을 보기 때문에 마음으로 사랑하고 즐거워한다.

 

이와 같이 차례로 귀로 소리를 듣고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즐거워하며 코로 향내를 맡고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즐거워한다. 이와 같이 일체의 경계를 즐거워하여 집착하므로 일체의 결박에 얽매이고 일체의 그물에 걸려 온갖 욕심을 따라 다닌다. 그리하여 그는 벌써 속인도 아니요, 중도 아니다. 그런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져 지옥에 태어난다.

 

그러므로 남의 초청을 좋아하지 않아야 한다. 남의 초청을 좋아하면 이런 허물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는 이 허물을 관찰하고 세상에 나가 돌아 다니지 않아야 한다.

 

만일 꼭 나가야 하는 데에는 다섯 가지 인연이 있어야 한다. 즉 첫째는 병자를 위해 쓸 약을 구하러 가는 인연이요, 둘째는 어른을 이롭게 하기 위한 인연이며, 셋째는 불탑이나 절이 파괴되어 그것을 수리하기 위한 인연이요, 넷째는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한 인연이며, 다섯째는 다른 왕이 그 나라를 쳐부수었을 때 그 왕을 교화하고 인명을 구하기 위한 인연이니 이런 인연이면 세상에 나갈 수 있다.

 

이런 다섯 가지 인연이 없이 세상에 나가면 그것은 허망한 행동으로서 좌선, 독경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렇게 행하는 사람은 늙음·병·죽음과 슬픈 울음·부르짖음·근심·고뇌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 나쁜 사문은

 

                                                                              [1293 / 1802] 쪽

한갖 집만 나왔을 뿐이다. 그러므로 비구로서 욕망을 끊으려고 하는 사람을 마음으로 바르게 관찰하여 모든 감관을 고요히 하고 어른을 의지하며 3보를 가까이 하여 마음을 거두어 행해야 할 것이요, 3보에 섭취되면 모든 번뇌의 뿌리를 끊을 것이다.

 

그 때에 가섭부처님은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신다. 좌선과 독경의 업을 버리고 오직 음식의 맛에만 탐착하면 그는 바로 비구 아니요, 그 마음은 아귀와 같다. 선정 버리면 다시 즐거움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렇게 말하셨다 선정의 즐거움을 떠나서는 다시는 즐거워할 것이 없다. 어리석은 사람은 최상의 즐거움 버리고 오직 여러 가지 맛에만 탐착하나니 그런 우치하고 나쁜 사람은 멸망과 괴로운 일만 당하리.만일 누구나 경계를 즐기고 언제나 경계의 즐거움 의지하면 좋지 않은 법 더욱 자라게 하고 목숨을 마치고는 나쁜 길에 떨어지리. 누구나 좌선도 독경도 떠나고 또 계율과 보시 버리고 포악해 그 마음 제어하지 못하면

 

                                                                              [1294 / 1802] 쪽

그는 목숨 있어도 죽은 것 같다. 만일 법을 따라 행하였다면 그는 세간에서 죽지 않지만 법을 떠나 언제나 어리석으면 그는 목숨 있어도 죽은 것 같다. 비록 사람의 가죽으로 덮였어도 어리석어서 짐승 같나니 그것은 지혜 등불의 광명으로 그 마음 비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계율을 받아 지키면 그는 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계율을 깨뜨리는 그 사람들은 저 개와 같아 다름이 없다. 만일 탐욕으로 보시 행하지 않고 나쁜 행동을 제어하지 못하면 그는 사람이라 할 수 없나니 아귀들 수에 끼여 있다. 누구나 계율과 지혜 없으며 또 보시의 보배 없으면 그는 비록 목숨이 있더라도 죽은 사람과 다르지 않다. 계율과 보시와 선정 행하고 삼매를 받들어 지니고 생각하면

 

                                                                              [1295 / 1802] 쪽

그야말로 사람이라 할 수 있나니 그는 하늘의 예배도 받으리라. 공덕이 있으면 그는 바로 사람이요, 공덕이 없으면 염소와 같다. 공덕이 있고 공덕을 알면 그 사람은 하늘이라 불리우리라. 이와 같이 공덕이 있는 사람으로서 공덕이 있는 이를 아는 사람은 어디서나 즐겁고, 공덕이 없는 사람은 항상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로서 이런 훌륭한 공덕을 들었으면 음식의 맛을 탐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열째 법으로서 좌선과 독경을 방해하는 것이니 사문으로 생사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부디 그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또 열한째의 장애하는 악법이 비구의 좌선과 독경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사문은 그것을 버려야 한다. 열한째란 이른바 어리석은 비구가 교만한 마음으로 남에게 묻지 않고 마음의 지혜가 열리지도 않았으면서 남을 향해 일체의 지혜를 말한다.

 

'일체의 지혜가 있기 때문에 나는 능히 설법하고 진리를 해석하며 독경하고 일체의 법 무더기는 내가 가진 것이며 백천 가지의 법의 뜻을 제자들에게 가르친다. 나와 같은 사람은 다시 없을 것이다. 내 마음으로도 그렇게 긍정하고 또 남을 위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지혜의 교만으로서 실로는 지혜가 없다. 그는 항상 일체 중생들에게 자신의 공덕을 말한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듣는 사람들은 다 그를 귀중히 여기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좋은 비구는 일체 지혜를 갖추고 있다. 이 비구와 같은 사람은 다시 없을 것이다.'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마는 그 비구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 실로 속은 텅 비어 아는 것이 없고, 마음 속에는 아무 것도 없어 마치 빈 그릇 같고 또 가을 구름과 같다. 좌선과 독경을 버리고 있으면서 지혜가 적은

 

                                                                               [1296 / 1802] 쪽

사람의 공양을 받는다. 그러나 오직 좌선과 독경을 수행하고, 보시와 계율을 부지런히 닦아 정진하여 좋은 법을 반연하고, 지혜와 계율로 마음을 제어하고 장엄하며 불법에 편히 머무르고 쉬지 않고 힘쓰며, 큰 자비로 마음을 단련하는 등 이것이 사문으로서 행해야 할 법이다.

 

그런데 저 나쁜 비구는 지혜가 없어 속이 비어 있으면서 이렇게 생각한다.'만일 지금 내가 저 비구를 보면 그는 내게 법을 가르칠 것이다. 저 비구는 나를 천시할 것이다. 저 시주 집에서는 항상 나를 공양하는데, 만일 내가 저 비구에게 배우면 저 시주는 나를 공양하지 않고 나를 경멸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내가 아는 것이 많거나 적거나 남을 위해 설법하고, 저 듣는 사람들이 알거나 모르거나, 나는 끝내 저 비구에게 가서는 배우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속은 비었으나 남의 경멸을 두려워하고 또 교만한 마음으로 저는 모르면서도 남에게 묻지 않는데 그것은 남의 경멸을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만한 마음으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다섯 학구(學句)를 잃어 버린다.

 

다섯 학구란 첫째는 이른바 거짓말로서 자기가 모르기 때문에 남에게 그것을 거짓으로 말하는데 이것이 그의 첫째 학구를 깨뜨리는 것이다.

 

또 둘째의 학구를 깨뜨리는 것은 이른바 도둑질이다. 즉 그는 시주의 공양을 받을 수 없는데 그 시주가 그를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여 물건을 주어 공양하면 그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가 적으면서 그 물건을 받는데 그것은 그 우치한 사람의 도둑질이다. 이것이 이른바 둘째의 학구를 깨뜨린다는 것이다.

 

또 셋째의 학구를 깨뜨리는 것이 있으니 이른바 비구가 처음으로 출가했을 때 받은 학구는 계율을 의지해 머무르고 계율을 반연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나는 지금 출가했다.'그러나 그 비구가 학문하지 않으면 무슨 계율을 지키겠는가? 그러면서 그는 남에게 말한다.'나는 많이 안다.'이것은 셋째의 학구를 깨뜨리는 것이다.

 

또 넷째의 학구를 깨뜨리는 일이 있으니 이른바 남의 경멸을 당할까 두려

 

                                                                              [1297 / 1802] 쪽

워하여 묻기를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을 비방하고 비법을 말하면서 이것이 법이라 한다. 이것이 가장 심한 학구를 깨뜨리는 것으로서 넷째의 학구를 깨뜨리는 것이다.

 

또 다섯째의 학구를 깨뜨리는 것이 있으니 이른바 그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같은 범행인의 말하는 바른 법을, 바른 법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그대들은 일체 깊은 법을 모른다. 그대들의 하는 말은 부처님 말씀이 아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다른 스님들은 비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오직 나만이 알고 그대 스님들은 전연 모른다.'이렇게 스님들은 비방하고 남의 무시를 당할까 두려워하여 스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그대들은 비법을 말한다.'그러나 그 스님들의 말이 바로 법이다.

 

그 나쁜 비구는 이렇게 하기 때문에 바른 법의 공덕을 잃고 가장 큰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져 지옥에 태어난다. 그것은 남에게 묻지 않는 악업 때문이다.

 

남에게 묻지 않는 데에는 또 큰 허물이 있으니 그것은 이른바 잘난 체하는 것이다. 잘난 체하기 때문에 숲 속에 들어 가지 않고, 남의 천시를 받을까 두려워 도를 가르치는 이에게 묻지 않는다. 즉 어떤 것을 도라 하고 그것은 어떻게 마음에 반연하며, 어디에 반연하고 어떻게 잃어버렸다가 다시 마음에 거두어져 있는가? 라고, 이런 것을 남에게 묻지 않는다.

 

교만한 마음의 허물 때문에 그는 이런 도를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음에 권태가 생겨 가부하고 앉았다가도 곧 다시 일어나 이렇게 생각한다.'이 법은 허망한데 저 비구들은 부질없이 저런 짓을 하고 있다. 이것은 도가 아니다. 실은 선정도 없고 삼매도 없으며 선정의 결과도 없고 삼매의 결과도 없는 것이다.' 잘난 체하는 마음 때문에 남의 업신여김을 받을까 두려워하여 이렇게 비방한다. 삿된 소견을 가진 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1298 / 1802] 쪽

떨어져 지옥에 태어난다.

 

그 때에 가섭부처님은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신다. 때를 알고 교만을 떠나 어른에게 청해 물어라. 부지런히 정진하는 비구는 열반을 빨리 얻으리. 남에게서 들은 온갖 것 모두 남을 위해 말하고 스스로를 알아 교만 떠나면 그 비구는 진리를 알리. 교만 버리고 큰 교만을 버리고 도를 알고 도 아님 알고 그리하여 자타를 모두 알면 그는 만족함을 아는 비구이니라. 교만한 마음이 매우 견고하고 마음이 움직이고 어리석으며 재물의 이익과 공양 바라면 그는 고요함을 얻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남에게 묻지 않는 교만한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좌선도 독경도 하지 못한다. 그는 오직 비구의 형상과 이름만을 가진 비구로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져 지옥에 태어난다.

 

혹 교만한 마음으로 남에게 묻지 않기 때문에 학자는 목숨이 다하기 전에는 항상 남에게 묻는다. 그런 비구는 마음이 늘 안락하고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좋은 길인 천상 세계에 태어나고 거기에 태어난 뒤에는 차

 

                                                                              [1299 / 1802] 쪽

츰 열반에 까지 이른다. 그것은 교만을 버렸기 때문이다.

 

또 열두째의 장애하는 악법이 비구의 좌선과 독경을 방해한다. 열두째란 많은 벗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벗은 아무 이익이 없는 것으로서 그 비구는 다만 애정을 더욱 자라게 할 뿐이다.

 

많은 벗을 가진 비구에게는 방해가 많다. 그는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마음이 어지럽고 마음이 어지럽기 때문에 좌선도 독경도 하지 못한다. 출가한 사람은 원수든 친한 이든 평등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벗도 가까이 해서는 안 되겠거늘 하물며 많은 벗을 두어서 되겠는가?

 

혹은 게으른 사람은 오직 이름만 비구로서 남의 집에 가기 때문에 눈으로 그를 볼 때에는 마음이 움직인다. 눈으로 색을 보기 때문에 눈의 알음이 근본을 달리하여, 마음은 고요한 법을 반연하지 않고, 관찰하기를 생각하지 않으며, 마음은 정직하지 못하고 말이 많게 된다.

 

그 벗을 본 뒤에는 다시 그 소리를 듣고는, 마음은 어지러이 반연하고 다르게 관찰하여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고, 고요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요하지 않게 관찰하여 반연하는 바가 있다. 혹 잠깐 동안 벗을 보아도 방해가 되거늘 하물며 오랫동안 벗을 봄이겠는가?

 

그러므로 사문으로서는 한 사람의 벗도 둘 필요가 없거늘 하물며 많은 벗이겠는가?

 

만일 비구로서 벗을 가까이 하게 되면, 사람이 많은 곳에서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게 된다.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찰나찰나로 목숨은 다하건마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하여 좋은 분수를 잃어버리고 좋은 분수를 잃어버리면 그것은 가장 스스로 속이는 것으로서 한 찰나 동안도 좌선과 독경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비구로서 이렇게 공부하는 이는 더러운 애정만 더욱 자라게 할 것이니 부디 속인의 벗을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한다.

 

또 혹 미래를 편안하게 하고 열반의 도를 가르치는 스승이나 벗으로서 좌선으로 같이 수행하는 이가 있으면 그는 친해야 한다. 같이 수행한다는 것은 이른바 일체의 번뇌를 제거하고 열반의 성으로 가는 것이니 그가 제일 훌륭한 좋은 벗이요, 다른 벗은 바로 원수로서 참 벗이 아니다. 참 벗이 아니기 때문에 그는 벗이 아니다. 그리하여 그와 만나 같이 말하거나 같이 다니거나 직업이 같거나 같이 일하면 그는 선업을 방해할 것이다.

                                                                              [1300 / 1802] 쪽

그러나 미래 세상에 있어서 그 힘이 되는 이라면 그는 벗이라 할 수 있다. 즉 깨끗한 행을 가르치고 수행하게 하며 혹은 미래 세상을 두려워함 알기를 가르치되, 지옥이나 아귀·축생에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하기를 가르치면 그를 좋은 벗이라 한다.

 

그러므로 몸과 입과 뜻으로 악업을 지어 나쁜 길로 가게 하는 이는 일체 가까이 하지 말라.

 

그 때에 가섭부처님은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신다.

 

오는 세상 일 가르쳐 주면
그는 바로 좋은 벗으로서
혹은 나쁜 곳 막아 주고
다시 재화(災禍)에서 구제해 준다

 

항상 유익한 법을 말하여
오는 세상을 이롭게 하면
그는 바로 좋은 벗으로서,
벗으로서의 이익을 준다.

 

이 훌륭한 벗은 한량없는 갖가지 분별이 있어서 갖가지로 설법하고, 음식을 많이 먹지 않으며, 남의 집에 들어갈 때는 예배하고 즐거운 색깔·소리·냄새·맛·접촉 등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름만 벗이라는 그런 벗은 진정한 벗이 아니다. 그러므로 좋은 비구는 그를 버려야 한다.

 

그런 벗은 한 사람도 가까이 해서 안 되겠거늘 하물며 많은 사람이겠는가? 그런 벗에게는 많은 허물이 있다. 만일 어떤 벗으로서 오는 세상에 대해 이롭지 않은 일을 가르치면 그는 이름만 벗으로서 실은 원수인 것이니, 만일 어떤 비구로서 그런 벗을 가까이 하면 좌선이나 독경 등 제 일을 방해할 것이다.

 

열셋째의 장애하는 악법이 있는데 그것은 비구의 좌선과 독경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사문은 그것을 버려야 한다. 그 열셋째란 이른바 비구로서 악인과 같이 거처하는 것이다. 어떤 비구라도 악인과 동거하면 좌선과 독경을 방해.....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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