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126)-126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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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렇게 병을 다스리는 비구는 나쁜 마음으로 생각하는 아주 큰 허물이 있다. 즉 그 비구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악법을 생각한다.'많은 사람들이 다 병자가 되었으면.... 병자가 많으면 나는 많은 재물과 공양·음식·침구 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이익이 있으면 그는 욕심에 마음이 파괴되어 선법을 생각하지 않는다.
즉 좌선과 독경은 좋아하지 않고 어른을 가까이 하지 않으며 좋은 벗을 가까이 하지 않고 부처님을 예배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악을 행하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나쁜 길에 떨어져 지옥에 태어나고, 거기서 나오면 남은 선업으로 인간에 태어나더라도 항상 병을 앓고 빈궁하며 목숨이 짧다.
그것은 나쁜 마음으로 병을 다스린 업 때문이다. 또 병을 다스리는 허물로서 법에 의해 병을 다스리더라도 거기에도 허물이 있다. 원래 세 가지 병이 있으니 이른바 풍(風)·열(熱)·냉(冷)이다. 이 세 가지를 잘 조절하면 몸은 안락하고 또 나쁜 길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몸의 부분이므로 몸이 멸하면 그 세 가지도 멸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우치한 범부는 아직 그 이치를 듣지도 못하였고 지혜도 없이, 실은 사문이 아니면서 '나는 사문이다'라고 자칭하고 그 세 가지 병을 고치려 한다.
그러면 무슨 뜻과 무슨 이유로 수염과 머리를 깎고 법의를 입고 집을 나왔으며, 무엇 때문에 그 집을 버렸던가?
원래부터 있는 이 탐욕·분노·우치 등은 몸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혹 이 몸을 태우더라도 이 세 가지는 타지도 않고 없어지거나 멸하지 않고 항상 따라다니면서 중생을 결박하여 어디로나 같이 다닌다.
그런데 왜 이 탐욕·분노·우치 등의 세 가지 큰 허물은 먼저 다스리지 않고 저 풍·열·냉 등을 먼저 다스리려 하는가?
이 망녕되이 출가한, 우치하고 무지하며 비열한 범부는 자기의 마음에 속아, 주인도 없고 짝도 없으며 빈궁하여 재물도 없다. 그에게는 큰 힘을 가진 원수만이 있어서 날마다 그를 괴롭힌다. 그 우치한 사람은 재물을 주어도 그 큰 힘을 가진 원수를 막을 수 없고 큰 세력으로도 그것을 막지 못한다. 그 원수는 그런 큰 힘을 가졌기 때문에 항상 틈을 엿보고 와서 그를 죽이려 한다. 그러나 그 우치한 사람은 그 원수는 두려워하지 않고 다른 조그만 원수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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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줄 알고 그것을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그 조그만 원수는 그 우치한 사람의 짝이 되므로 우치한 사람은 그에게 말한다.'우리는 지금 힘을 합해 저 원수를 없애 버리자.'그러나 큰 힘을 가진 그 우치한 사람의 원수는 그가 우치하고 게으르며 방일한 것을 알고는 곧 가서 그를 죽인다. 왜냐 하면 그 우치한 사람은 딴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 사문은 스스로 사문이라 일컫지마는 그 사문이라고 내세우는 자는 큰 힘을 가진 자기의 원수를 버려 두고 딴 일을 하는 것이다. 저 탐욕·분노·우치는 한량없는 세상에 중생을 따라 다니면서 떠나지 않고, 생사의 길을 보여 주지마는 큰 힘이 있기 때문에 어디서도 그 틈을 엿볼 수 없고, 오직 지혜로운 사람이 아는 것으로서 우치한 사람과 같이 다닌다.
이런 큰 원수의 인연을 버리기 위하여 자기의 친구·아는 이·처자·형제를 버리고 머리를 깎고는 집을 나온 것이다.
그런데도 이 큰 힘을 가진 원수를 관찰하지 못하고 재물을 얻기 위해 남에게 말한다.'너의 원수인 풍·열·냉을 고쳐 주리라.'이와 같이 마음이 어지러운 우치한 사람에게 죽음의 왕이 오더라도 그 세 가지 원수는 떠나지 않고 따라 다닌다.
그 큰 힘을 가진 원수란 이른바 탐욕·분노·우치이다. 그는 욕심의 밧줄에 결박되어 몹시 방일을 행하다가 장차 다른 세상에 가게 되었어도 즐겨 딴 일을 행하면서 큰 탐욕으로 뜻을 어지럽힌다.
그러므로 누구나 이 허물을 알았거든 남의 병을 다스리지 말고 만일 사람의 병을 다스리려 하거든 탐욕 따위를 죽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언제나 병이 없을 것이다.
그 때에 가섭부처님은 다음 게송으로 말씀하신다. 풍(風) 따위는 허물이 많지 않고 탐욕 따위가 허물이 많다. 풍 따위는 나쁜 길로 가게 하지 않지만 탐욕 따위는 지옥에 떨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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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허물이 큰 허물로서 언제나 나쁜 길로 가게 하나니 그러므로 그것을 버리면 즐겁고 풍 따위는 버려도 즐거움이 아니다. 만일 자기가 지은 업을 버리고 남이 짓는 것을 기뻐하고 즐기면 그 사람은 빨리 파괴되나니 지혜로운 사람의 웃음거리다. 풍 따위는 파괴하는 것이므로 중생들 그 때문에 몸을 잃는다. 탐욕 따위는 없어지지 않으므로 한량없이 생사에 딩구느니라. 탐욕 등은 사라지면 즐겁지마는 풍 따위는 사라져도 즐거움이 아니다. 탐욕 따위가 사라지면 마지막에 훌륭한 즐거움 얻는다. 마음 다스림을 병 다스림이라 하고 몸 다스림은 병 다스림이 아니다. 마음 병 다스리기는 알기 어렵고풍 따위 다스리기는 알기 쉬워라. 이런 인연으로 그 가섭부처님은 이렇게 집을 떠난 이에게 병 다스림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또 집을 떠난 사람이 의술로 병을 다스리는 데에는 한량없는 허물이 있으니, 그것은 이른바 탐심을 내는 것으로서 다른 의사를 보고는 교만한 마음을 낸다. 좋지 않은 말로 다른 의사를 헐뜯고 그 사업을 방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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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 질투하는 마음을 내어 아귀의 업을 거둔다. 그리하여 아귀의 세계로 갈 원인을 짓는다.
그는 이렇게 질투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움직여 큰 탐심을 내고, 탐심을 내기 때문에 여자를 볼 때에는 잘 관찰하지 않고 자기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는 마음이 어리석기 때문에 남의 여자를 보고는 욕심을 일으켜 마음을 부순다.
그리하여 남의 풍·열·냉 등을 다스림으로써 자기 마음 속의 탐욕·분노·우치 등의 병을 증장시킨다. 탐욕 등을 증장시키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지옥·아귀·축생 등의 온갖 고뇌를 증장시킨다.
그리하여 그는 탐욕 따위 때문에 파괴된다. 좋지 않은 의사에게는 나쁜 소견이 있으므로 큰 허물에 결박되어 지옥으로 끌려 들어 간다.
그러므로 집을 떠난 사람들은 부디 힘써 탐욕 따위의 병을 없애고, 풍 따위만을 다스리려 하지 말라.
이것이 둘째의 법이니 열반을 구하려는 사문은 부디 이 의약으로 병을 다스리되 좌선과 경율 읽기를 폐하지 않아야 한다.
또 행해서는 안될 셋째의 방해되는 법을 버려야 한다.
셋째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화가이니 집을 나온 사람의 업으로 그림 그리는 것은 걸맞지 않은 것이다. 그처럼 탐욕을 버리기 위해 집을 버리고 떠나 왔는데, 왜 또 다른 욕심을 내며, 이미 세간의 마음의 업의 그림을 다 알았는데, 왜 또 다른 온갖 채색 그림을 그리겠는가? 만일 마음의 업의 그림을 모르는 이라면 온갖 색깔로 채색의 그림을 그려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집을 떠난 사람은 이와 같이 채색의 그림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즉 다섯 가지 큰 색깔로 다섯 가지 길을 그리는 것이니 그것은 여러 가지 마음이 섞이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란 이른바 큰 색깔로 다섯 가지 길을 그리는 것으로서 첫째는 마음의 화가는 아주 희고 깨끗한 색깔로 천상 세계를 그리는 것이니, 믿는 마음으로 큰 보시를 즐겨 행하고 인색함과 질투를 떠나 가장 흰 법인 보시와 계율의 산(山)을 일으켜 천상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서, 마음의 화가는 이렇게 천상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또 집을 떠난 사람은 다시 업의 색깔을 관찰해 알아야 한다. 즉 둘째로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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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 업의 색깔로 인간 세계를 그릴 때, 사람에게는 하·중·상의 차별이 있다. 즉 그가 부자로서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면 그는 가장 흰 업의 색깔로 그려진다.
또 만일 그가 부자로서 계율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는 검고 흰 업의 색깔로 그려진다.
또 그가 빈궁하면서도 계율을 잘 지킨다면 그는 붉고 흰 업의 색깔로 그려지고,
또 그가 빈궁하면서 계율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는 더러운 검은 업의 색깔로 그려진다.
또 그가 게으르고 또 탐욕이 많으면 검고 누른 업의 색깔로 그려지고, 또 그가 단정하고 큰 성바지에 태어났으면 희고 깨끗한 업의 색깔로 그려지며,
또 그가 중간 성바지에 태어났으면 붉고 빨간 업의 색깔로 그려지고,
또 그가 하급의 성바지에 태어났으면 그는 더럽고 검은 업의 색깔로 그려진다.
마음의 화가는 선업의 색깔로 인간 세계를 그리는데 혹 그가 국왕이나 대신이 되었더라도 악업을 지으면 그는 그 흰 업의 색깔은 사라지고 검은 업의 색깔이 더 나타난다.
또 그가 비천한 집에 태어나고 혹은 매우 빈궁하더라도 항상 보시하고 계율을 받들어 지키면 검은 업의 색깔은 사라지고 흰 업의 색깔이 더 나타날 것이다.
또 그가 중간 성바지에 태어나면 좋고 묘한 몸을 받을 것이요, 혹은 중간 업을 지었으면 마음의 화가는 붉고 흰 업의 색깔로 그려진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온갖 업의 색깔을 가진 업의 화가는 이 인간 세계의 온갖 다른 업을 잡색으로 그려 거기에는 차별이 있다.
또 집을 떠난 사람은 다시 다른 길을 관찰한다. 즉 셋째로 다시 지옥의 중생을 관찰한다. 마음의 화가는 두 가지 업의 색깔로 그리는데 그것은 노란색과 검은색이다. 노란색이란 불이요, 검은색이란 질투로서 그들이 지옥에 태어날 때는 하·중·상의 구별이 있다. 이렇게 그들은 두 가지 색깔로 그려진다.
그 비구는 이렇게 지옥 그림의 색깔을 관찰한 뒤에 다시 넷째로 주림과 목마름에 몸을 태우는 아귀를 관찰한다. 그것은 검은 업의 빛깔로서 그 아귀들은 모두 각각 다른 업의 색깔로 그려진다.
또 그 비구는 다시 다섯째로 축생은 어떤 업의 색깔로 그려지는가를 관찰한다. 그것은 검은색과 빨간색이다. 그가 가장 괴로워하고 가장 두려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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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때는 검은 빛으로 그려지고, 서로 해치게 될 때는 빨간색으로 그려진다. 마음의 화가는 이런 색깔로 그린다.
또 축생들이 사는 세 곳을 간략히 말하면 그들은 서로 두려워하는데, 남에게 죽을까 두려워하고 묶일까 두려워하며 남에게 먹힐까 두려워한다.
허공으로 다니는 것은 공작·꿩·거위 등의 새요, 육지로 다니는 것은 소·물소·돼지·말 등의 짐승이며, 물 속으로 다니는 것은 고기들로서 그들은 검은 색으로 그려진다.
만일 남에게 죽을까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것은 빨간색으로 그려지는데 그것은 천상의 코끼리다. 이렇게 다섯 길은 다섯 색깔로 그려지지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줄 모른다.
일체 세간은 갖가지로 괴로워한다. 천상에는 다섯 가지 현상이 있고 인간에서는 노동하며 축생으로서는 서로 죽이고 아귀로서는 주리고 목마르며 지옥에서는 큰 고뇌를 받는다. 이와 같이 갖가지 업의 색깔로 그려지지마는 어리석고 지혜가 적은 사람들은 그것을 꺼릴 줄도 모르고 염려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게을러 좌선하지도 못하고 계율을 지키지도 못하며 경전을 읽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마음의 화가를 알지 못하고 온갖 다른 그림을 그린다.
그 첫째 그림이란 이른바 세간의 생·노·병·사이다. 즉 미워하는 것과 만나고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며, 추워하고 더워하며, 주리고 목마르며, 서로 파괴하고 헐뜯으며, 공양하는 종과 주인의 괴로움과 안락함과 지옥·아귀·축생·인간·천상 등 업의 색깔을 섞어 생사를 그린다. 아무 수행도 하지 못하고 생각하지도 못하여 그런 줄 알고서도 싫어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 비구는 좌선이나 독경의 업을 버리고 다른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사문의 법에서는 좌선과 독경이 그 근본이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법이 있다. 즉 태어나고 죽는 것을 그리면서도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다가 다시 다른 생각으로 다른 그림을 그린다.
그것은 이른바 갖가지 감관으로 경계를 반연하는 것이다. 즉 어떤 중생으로 경계를 즐거워하면 그는 오랫동안 지옥이나 아귀·축생 세계에 흘러 다니는 것이다.
그 법은 어떤가? 이른바 눈으로 색깔을 보고는 그 색깔의 경계를 즐기고 욕심을 내어 그 색깔에 굳게 집착한다. 그리하여 그는 검은 업의 색깔인 지옥이나 아귀·축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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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포섭되어 그런 색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혹 그 중생은 눈으로 색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한다.'이 색은 무상하여 변동하고 변화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 색을 좋아하지 않고 탐착하지 않으면 그는 흰색의 업에 포섭되어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고 나아가서는 열반에 이른다.
이와 같이 어떤 사람이 눈으로 색을 보고도 즐거워하지 않고 반연하지 않으며 바라거나 사모하지 않고, 무심으로 받아들여 욕심을 내지 않으면, 그는 가장 흰 업의 색으로 그려져 천상이나 인간에서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저 나쁜 비구는 그와 같이 어리석은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거나 늘 생각하지 않으며 좌선하거나 독경하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눈으로 색을 보고는 그 경계를 즐겨 집착하는데 이렇게 결박되는 사람은 검은 업의 색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 검은 업의 색깔인 나쁜 뜻의 업의 그림을 버린다. 그리하여 오직 좌선하고 독경한다.
또 화가 사문을 관찰한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어떤 형상을 생각하고 그리는가? 이른바 즐겁거나 즐겁지 않은 소리를 귀로 들을 때 그는 그것을 여실히 관찰한다.'이 소리는 무상하여 머무르지 않고 견고하지 않아 파괴되는 것이다.'이렇게 알고는 마음으로 좋아하지도 않고 기뻐하지도 않으며 사모하거나 즐기지도 않으므로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흰 업의 색으로 그려진다.
그 흰 색의 그림은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나고 천상에 태어나게 되면 그 그림들은 가장 훌륭하다. 그러나 저 나쁜 화가 사문은 스스로 사문이라 말하면서도 일찍이 마음을 일으켜, 소리의 그림이 변천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다른 그림을 그리면서 좌선하기나 독경하기는 생각하지 않고, 좌선과 독경을 버리고는 흰 업을 닦지 않는다.
또 저 소리를 듣는 우치한 사문은 일찍이 듣지 못하던 것을 들으면 어리석고 무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이 소리는 매우 즐거워 나를 기쁘게 하고 나를 즐겁게 한다.'그 나쁜 사문은 잘 관찰하지 않기 때문에 그 소리를 듣고는 사모하여 이내 욕심을 내어 그 소리를 즐거워한다. 그 검은 색을 가진 마음의 화가는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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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 아귀·축생을 그린다. 그 나쁜 사문은 업의 그림을 알고서도, 다른 그림을 그리면서 좌선하거나 독경하는 등의 업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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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념처경 제 49 권
원위 사문 구담 반야류지 한역
김월운 번역
6. 관천품(觀天品)
3) 야마천 ⑭
"또 그 나쁜 비구는 온갖 색깔의 갖가지 그림을 떠나 다시 다른 그림을 그린다. 다른 그림이란 이른바 감관의 경계에 의해 생사에 얽매이는 것이다. 그 감관의 경계는 즐거운 것도 있고 즐겁지 않은 것도 있다. 즉 코로 냄새를 맡고, 그것을 관찰한 뒤에 코로 맡은 것이 향기롭거나 냄새나거나 그 향내를 좋아 하지 않고, 잘못 관찰하고도 마음이 파괴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이 향기는 무상하여 한 찰나도 머무르지 않고, 견고하지 않아 파괴되는 것이다. 이런 참 향기도 본래는 없었다가 뒤에 있었고, 이미 있는 것이면 다시 없어질 것이다.'그리하여 그는 좋거나 나쁜 냄새를 즐기려 하지 않고 마음도 움직이지 않으므로, 그 자신의 선업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그는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난다.
그 나쁜 마음을 가진 사문은 이런 업을 버리고 다른 그림을 그리면서 좌선과 독경의 업을 버린다.
또 다른 향내를 맡고 그것을 즐겨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희망에 미혹되어 잘못 관찰하면 마음은 곧 파괴된다. 그것은 검은 색깔의 업으로서 항상 그런 검은 업의 색깔을 모으기 때문에 지옥이나 아귀·축생을 그려 온갖 고뇌를 받는다. 그 나쁜 사문은 이런 업으로 그리는 색깔을 버리고 잘못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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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다른 그림을 그리면서 좌선과 독경을 폐한다.
또 여러 가지 업의 온갖 색깔의 그림이 있다. 이른바 혀로 맛보는 그 맛에는 맛나거나 맛나지 않은 것이 있다. 그러나 좋은 비구는 맛난 것을 맛보더라도 기뻐하거나 성내지 않고 사모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 맛난 것을 항상 잘 관찰하고 잘못 관찰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렇게 관찰한다.'이 맛도 본래 없었던 것이 뒤에 있었고, 이미 있으면 다시 없어질 것이다.'그리하여 손으로 그 음식을 집어 입에 넣어 혀로 맛본다. 혀가 음식을 얻어서는 그것이 달콤하면, 곧 맛이 생겨 흐르는 물은 턱으로 내려 갔다가 잇몸으로 나와 혀 끝으로 맛을 보고 침과 아울러 어금니로 깨물어 그것을 씹는다.
그리하여 그것을 이렇게 생각하고 잘 관찰하는 사람은 흰 색으로 그려지며, 흰 색으로 그려진 사람은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서 가장 좋은 즐거움을 받는다.
그러나 저 나쁜 사문은 이런 업의 그림은 생각하지 못하고, 다른 그림을 그리면서 좌선과 독경을 폐한다. 그 우치한 사람은 음식 맛이 혀에 오면 혀를 대어 그 맛을 보고는 이렇게 생각한다.'이 음식은 맛이 아주 훌륭하고 색깔과 향기를 구족하며 가장 깨끗하다.'
그리하여 음식에 교만한 마음이 있으므로 몸·입·뜻 등으로 악업을 짓는다. 이것은 검은 업의 그림으로서 지옥이나 아귀·축생에 태어나서 그 세 곳이 분명하다. 그 나쁜 사문은 스스로 사문이라 말하지마는 바로 관찰하지 못하여 거기에 파괴되고 스스로 어지러워져, 이 업의 그림은 버리고 다른 그림을 그리면서 좌선과 독경을 방해한다.
또 세간을 그리는 업의 그림이 있으니 이는 오직 감관만이 있어 경계와 접촉하는 것으로서 몸에 닿는 촉감과 그것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는 그 참 촉감과 마음으로 잘 관찰한다. 즉 그 생기는 촉감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무상하여 머무르지 않고 또 파괴되는 것이다. 오직 엷은 피부만이 있는데 그것을 보고 애욕을 낸다. 오직 감관만인 것으로서 그것은 깨끗하지도 않고 항상되지 않으며 즐거운 것이 아니요, (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거짓으로 화합한 것이기 때문에 몸이라 한다. 그러나 4대(大)는 상자와 같고 화살이 항상 몸에 들어오는 것과 같아서, 항상 방해하고 항상 하지 않으며 온......
-나무 관 세 음 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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