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100)-100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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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한다면 이는 비바사나(毘娑舍那)라고 하리라.
그리고 이러한 비바사나와 사마타를 얻고 나서 숨[息]의 드나듦을 관찰하되 숨의 내쉼을 볼 때 생각하기를,‘이러한 바람은 어느 곳에서 오고 어느 곳으로 가느냐’라고 한다. 이렇게 관찰할 때에 몸의 모양을 멀리 여의고 공의 모양을 내어서 안의 법[內法]을 보지 않는다면, 이것을 안의 공이라 하며, 내 것과 바깥 색의 모양을 보지 않는다면, 이것을 바깥의 공이라 하며, 안팎 색의 공을 관찰하여서는 다시 생각하느니라.
'나는 이제 들이쉬는 숨[入息]의 모양을 닦고 나서 큰 이익을 얻음으로써 모든 안팎의 색을 파괴하였느니라. 내가 이러한 안팎의 색 모양을 파괴한 것은 다 들이쉬는 숨을 관찰한 인연이다. 이 인연이 나로 하여금 안팎의 모든 색을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나는 색 모양이 없으니, 이는 바로 공의 힘이니라. 나는 이제 결정코 모든 법은 오는 곳도 없고 가는 곳도 없음을 알겠노라.’
이렇게 관찰한다면, 모든 각(覺)과 관(觀)을 길이 끊으리라. 그리고 다시 식(識)을 관찰하느니라.
‘이 모든 각과 관의 인연을 안다면 나는 마땅히 마음[心]과 뜻[意]과 식(識)의 행함을 멀리 여의리라. 왜냐하면 남[生]이 있으면 결정코 멸함[滅]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찰할 때에는 수다원과 내지 아라한과를 얻을 것이며, 만약에 각과 관은 멸하는 모양이라고 관찰한다면 곧 멸진정[滅定]을 얻으리니,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지 않는 공다운 다라니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이 다라니는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여 한량없는 큰 고통을 길이 끊느니라.”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9만 2천의 중생은 수다원과를 얻고 6만의 중생은 아라한과를 얻고 9만 9천의 중생은 공다운 다라니를 얻고 8만의 중생은 벽지불과를 얻고 8천억의 중생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얻고 한량없는 중생은 물러나지 않는 마음을 얻었다.
그때 교진여가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고귀덕왕(高貴德王)부처님으로부터 가지고 온 이른바 무원에 따르려는[欲隨無願] 다라니를 분별하여 말씀하옵소서.”
“교진여야, 내가 이제 말하리니, 지극한 마음으로 자세히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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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진여야, 모든 중생들은 촉감의 욕심에 얽매여 해탈을 모르느니라. 이 사람은 마땅히 원 없는 해탈을 관찰하여 생각하느니라.
‘욕계의 욕심과 색계의 욕심과 무색계의 욕심과 촉감의 욕심과 해탈의 욕심 이러한 모든 욕심은 각과 관을 인하여 생기므로, 이는 모든 행의 인연이다. 이 모든 행은 짓는 이도 없고 받는 이도 없어 바람을 따라 생기나니, 나의 몸과 입의 행도 그와 같이 바람을 인연하여 나고 바람을 인연함으로써 몸이 자라나고 입도 자라나게 되느니라. 내가 바람은 곧 드나드는 숨[息]이라고 관찰하는 것처럼 온몸의 털구멍이 바람의 인연을 따름을 자세히 관찰하고 또 온갖 깨끗하지 못한 색을 관찰하고 다시 이 몸과 목숨이 마칠 때에는 한 시체[死]로서 다시는 바람 숨의 드나듦이 없으리라.’
또 생각하느니라.
‘나의 몸과 입의 행은 바람을 인연하므로, 만약 바람이 없다면 몸과 입의 행하는 인연도 없으리니, 그러므로 그때는 공삼매를 얻어 닦고 자라게 할 것이며, 닦음을 인하여 능히 욕탐 내지 촉감의 욕심을 끊으리라.’
이렇게 관찰한다면, 수다원과 내지 아라한과를 얻을 것이며 혹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낼 수 있으리라.”
그때 선의각관(善意覺觀) 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만약 성문인(聲聞人)이 깨끗하지 못한 모양을 닦아서 그 모양을 성취한다면 어떠한 모양이 있나이까?”
"선남자야, 만약 탐욕의 번뇌를 파괴하기 위하여 깨끗하지 못한 모양을 닦아 마음을 눈썹 사이에 두고서 자기의 몸과 뼈를 관찰한다면, 이는 한 가지 모양이라 하며, 자기의 몸과 다른 사람의 몸을 관찰한다면, 이는 두 가지 모양이라 하며, 또 모든 것을 모두 깨끗하지 못하다고 관찰한다면, 이는 세 가지 모양이라 하리라. 그리고 이 사람이 또 괴로움과 원인[集]을 다 깨끗하다고 관찰한다면, 이는 사마타(舍摩他)로서 난법(煖法)의 모양을 얻었다 하며, 이 사람이 이러한 흰 뼈를 관찰할 때에 지혜 보기를 등불처럼 하고 몸의 네 가지 행과 내지 가는 티끌에 이르기까지 관찰한다면, 이는 정법(頂法)이라 하며, 네 가지의 진리[眞諦]를 관찰한다면, 이는 성문이 깨끗하지 못함을 관찰함이며, 사마타 선정을 성취한다면 이는 흰 뼈의 모양을 관찰하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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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니, 이 모양을 관찰할 때에 8정도를 얻는다면 이 여덟 가지 도를 얻음으로써 수다원 내지 아라한과를 얻느니라.
선남자야, 저 광명불토(光明佛土)의 성문인들이 이러한 법을 듣는다면 곧 도과(道果)를 얻으리라.”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한량없는 중생이 법다운 지혜[如法忍]를 얻었다.
그때 세존께서 다시 교진여에게 말씀하셨다.
“만약에 4제를 한 생각으로 증득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여래는 마땅히 모든 중생을 위해 한 가지 행한 가지 법, 한 가지 일을 연설하여서 한 사람이 증득할 때에 모든 중생도 같이 증득하게 하리니, 왜냐하면 번뇌가 같기 때문이요, 8만의 법 덩어리가 차별 없기 때문이니라.
교진여야, 그러므로 중생은 갖가지의 인연으로서 조복할 것이고 한 가지 인연으로서는 조복할 수 없느니라.
교진여야, 모든 중생들은 실상 한 가지 승(乘), 한 가지 행과 한 가지 탐심, 한 가지 생각, 한 가지 욕심과 한 가지 알음, 한 가지 믿음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여래는 갖가지 게송과 명자(名字)로써 갖가지 법문을 연설하나니, 이런 까닭에 여래는 열 가지 신통의 힘을 원만히 갖추느니라.
교진여야, 모든 중생들은 갖가지 뒤바뀐 모양을 갖추고 있으므로, 여래는 이 뒤바뀜을 바로잡기 위하여 덧없는[無常] 모양·괴로운 모양·나 없는 모양과 부푸는 모양·터지는 모양·푸른 모양·허는 모양·흩어지는 모양을 말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음식의 깨끗하지 못한 생각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진여야, 너는 이제부터 이런 일을 묻지 말라. 왜냐하면 저 세계에서 도를 얻음과 이 세계에서 도를 얻음이 서로 각각 다르기 때문이니라.
교진여야, 내가 만약 갖추어 말한다면, 중생 중에 듣는 자가 때로는 미혹하게 되리라.”
“세존이시어, 원컨대 가엾이 여기시어 모든 신심 있는 보살을 위해서 분별하여 널리 설하옵소서.
세존이시여, 이 모든 중생이 이러한 두 가지 모양 널리 설하심을 듣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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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히 착한 종자를 심고 선근을 자라내어 무명(無明)을 파괴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들은 어리석은 애욕의 인연으로써 생사에 빠져 있으므로, 그 생사가 처음도 없고 마지막도 없으며, 또 모든 중생들은 음식의 인연으로써 탐욕을 더 자라게 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들은 아직까지 이러한 두 가지 모양을 듣지 못하였기 때문에 생사에 유전되어 다섯 가지 갈래에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신 마음으로 한량없는 세간에 항상 중생을 생각하시니, 원컨대 가엾이 여기시어 즐겨할 수 없는 생각과 음식의 깨끗하지 못한 생각을 말씀하시어, 듣는 중생으로 하여금 애욕의 탐심과 음식의 탐심과 음식의 탐심을 애써 꾸짖는다면, 이 사람은 마땅히 피안(彼岸)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진여야, 지심으로 들어라. 나 이제 세간의 즐겨 할 수 없는 생각과 음식의 깨끗하지 못한 생각을 말하리라.
교진여야, 두 가지의 세간이 있으니 중생세간[衆生世]과 기세간[器世]이 그것이니라. 중생세간이란 이른바 다섯 갈래[五道]의 중생이요, 기세간이란 욕계(欲界) 가운데 스무 곳과 색계(色界) 열여섯과 무색계(無色界) 넷이니라. 욕계의 스무 군데를 말하자면, 여덟 군데 큰 지옥이 있는데, 낱낱의 지옥에는 열여섯 겹의 둘레가 있느니라. 여덟 군데라 함은 첫째는 등활지옥[等活]이요, 둘째는 흑승[黑繩]지옥이요, 셋째는 중합지옥[衆合]이요, 넷째는 규환지옥[叫喚]이요, 다섯째는 대환지옥[大喚]이요, 여섯째는 열지옥[熱]이요, 일곱째는 대열지옥[大熱]이요, 여덟째는 아비지옥[阿鼻]이니라. 만약 중생으로서 몸과 입과 뜻의 업이 나쁘면 모두 이러한 큰 지옥에 태어나서 큰 고통을 받으므로 이 중생들은 묘한 색을 보더라도 즐거운 생각을 내지 못하고 이 인연 때문에 도로 큰 괴로움을 내나니, 소리·냄새·맛·촉감 또한 그러하느니라. 슬기로운 사람은 이런 일을 보고 나서 즐겨하지 않는 생각을 내느니라.
교진여야, 축생을 관찰하건대 그 몸뚱이의 가늘고 작기가 마치 가는 티끌의 10분의 1과 같고, 가는 티끌 내지 대추 같기도 하고 1유순(由旬) 내지 백천만 유순과 같기도 하며, 수명이 한 찰나에서 일곱 찰라 혹은 한 겁에서 천만 겁에 이르더라도, 이 중생들은 법의 행과 지혜와 부끄러워함을 가엾이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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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마음이 없으므로 마땅히 고뇌를 받고 겁내고 두려워하여 제각기 서로 해치는 마음을 내며, 모든 착한 법을 멀리 여의고서 항상 어둠에 다니고 삿된 도를 행하나니 그러므로 슬기로운 자는 즐겨할 수 없는 생각을 닦느니라.
교진여야, 슬기로운 자는 다시 아귀(餓鬼)의 몸을 관찰하되, 그 길이가 한 자[尺]이고 혹은 사람 같기도 하고 혹은 1백 유순, 혹은 설산(雪山)과 같더라도 마땅히 병들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옷이 없어 알몸이 되고 머리털을 풀어 헤치고 몸을 얽어 묶어도, 부끄러움이 없으며, 파리하여 뼈만 남아 몸에는 피와 살이 없어도 각기 나쁜 마음을 내어 가엾이 여기는 생각이 없으며, 모든 습랭(濕冷)한 기운을 영원히 맛볼 수 없고 혹은 철장(鐵獎)·철초(鐵麨)·철환(鐵丸) 따위와 열분(熱糞)·열농(熱膿)·열혈(熱血)·열풍(熱風)·열초(熱草)·열과(熱果) 따위를 먹기는 하되, 이것도 얻을 수 없어 항상 공급이 만족하지 못하며, 천만겁을 살더라도 언제나 고뇌를 받아 어둠에 다니나니, 슬기로운 자는 이것을 관찰하고 나서 세간이란 즐겨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닦느니라.
교진여야, 슬기로운 자가 사람 몸의 모든 것을 관찰하건대,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 이별을 아끼는 괴로움, 원수를 만나는 괴로움,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 굶주리고 목마르고 피곤한 괴로움, 탐욕의 괴로움, 성내는 괴로움, 질투하는 괴로움, 거짓말, 나쁜 말, 추위와 더위의 괴로움, 모든 사나운 짐승의 괴로움, 나쁜 왕의 괴로움 따위가 있다. 사람의 몸으로서는 이러한 괴로움을 받지 아니할 수 없거늘, 슬기로운 자로서 어찌 즐겨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닦지 아니하겠는가.
교진여야, 슬기로운 자가 욕계천[欲天]의 즐겨할 수 없는 생각을 관찰함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슬기로운 자는 처음 여섯 군데의 욕계를 관찰하되, 이가운데의 중생은 탐욕과 애욕에 초조하여 받는 과보(果報)가 고르지 않으므로 괴롭고, 덧없음[無常]으로 괴롭고, 취탐하므로 괴롭고, 다하므로 괴롭고, 이별을 아끼므로 괴로움을 아느니라. 슬기로운 자로서 어찌 이 중에 즐겨할 수 없는 생각을 닦지 아니하겠는가.
다음에는 색계의 열여섯 머무는 곳을 관찰하되, 이 중의 모든 하늘은 세간의 선정을 닦아도 번뇌가 있으므로 괴롭고, 고요함이 없으므로 괴롭고,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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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있으므로 괴롭고, 훌륭한 선정이 있으므로 괴롭고, 착한 법 갈무리[法藏]이 있으므로 괴롭고, 해탈하지 못하므로 괴롭고, 피안(彼岸)을 알지 못하고 지옥·아귀·축생·사람의 인연을 다하지 못하므로 괴로움이 있음을 아느니라. 그러기에 이 괴로움을 관찰하고는 슬기로운 자는 곧 즐겨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닦느니라.
다시 색계(色界)의 중생은 번뇌 없는 선정을 닦을지라도 이들은 8정도를 갖추지 못하므로 괴롭고, 8정도의 방편을 갖추고자 하므로 괴롭고, 배울 것 없는 자리[無學地]를 얻음이 자재롭지 못하므로 괴롭고, 연각의 삼매를 얻지 못하므로 괴롭고, 여래의 삼매를 얻지 못하므로 괴롭고, 모든 중생의 경계를 관찰하지 못하므로 괴롭고, 이러한 중생은 현상세계에서 열반에 들지라도 이러한 괴로움을 받느니라. 슬기로운 자가 어찌 현상세계 속에서 세간의 즐겨할 수 없는 생각을 닦지 않겠는가.
또 무색계의 즐겨할 수 없는 생각을 관찰하건대, 그 중의 중생들은 번뇌 있는 삼매를 닦으므로 괴롭고, 배움의 자리[學地]를 자재롭게 얻지 못하므로 괴롭고, 또 바른 법을 듣지 못하므로 괴롭고, 마침내 느낌[受]을 끊지 못하므로 괴롭고, 목숨을 버리고 물러날 때에도 삿된 소견을 내므로 괴롭고, 길이 3악도를 끊지 못하므로 괴롭고, 목숨을 버리고 괴로움에 떨어진다. 이러한 것을 알 때에 세간이란 즐겨할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닦게 되느니라.
교진여야, 세간이란 곧 행을 말함이니, 몸의 행과 입의 행과 뜻의 행, 이 세 가지가 있느니라. 몸의 행이란 이른바 드나드는 숨[息]이요, 입의 행이란 이른바 각 관이요, 뜻의 행이란 이른 바 생각의 느낌이니, 이 세 가지 행은 그 모양이 같으니라.
슬기로운 자가 어떻게 이것을 분별하여 아느냐 하면, 슬기로운 자는 숨의 드나드는 수(數)를 관찰할 때에 숨의 서늘하고 따뜻함 내지 모든 털구멍에 드나듦을 깊이 관찰하나니, 이 사람은 숨을 관찰하고서 이 숨은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음을 자세히 아느니라.
만약에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다고 한다면, 이는 덧없는[無常] 모양이어서 결정된 모양 없음이 마치 번개[電]로 물에 그림 그리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관찰할 때에 몸의 행하는 모양을 얻으며, 이러한 모양은 어떤 인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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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는가를 관찰하여 이 모양은 각(覺)과 관(觀)을 인연하고 각과 관의 성품은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음을 아느니라. 그러므로 덧없음은 끊을 수 있는 법이고 해탈할 수 있는 것이니라. 이 각과 관의 모양도 마음 때문에 생겨나고 마음도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나니, 본래 없던 것이 지금 있다면, 이것도 덧없는 모양이어서 파괴할 수 있는 모양이고 귀의할 데 없는 모양이고 물질의 모양도 없고 나의 모양도 없느니라. 이렇게 관찰할 때에 모든 행에 대하여 뉘우치는 마음을 내어 세간의 즐겨할 수 없는 생각을 닦느니라.
너희 비구들이 만약 이러한 세 가지 행을 깊이 관찰한다면, 모든 번뇌를 아주 없애고 바른 소견을 깨끗이 하고 생사의 법을 끊으며, 곧은[平直] 도를 이룩하고 바른 덩어리[正聚]의 거둠이 되어서 수다원과 내지 아라한과를 얻으리라.
교진여야, 슬기로운 자는 모든 행에 대하여 즐겨할 수 없는 생각을 닦나니, 말하자면, 비구로서는 입는 옷까지 관찰하여 즐겨할 수 없는 생각을 일으키느니라. 만약 어떤 비구가 옷을 만들거나 옷을 꿰매거나 옷을 보거나 옷에 부딪치거나 옷을 입거나 옷을 벗거나 이럴 때를 관찰하되, 마치 피 묻은 가죽의 썩은 냄새를 싫어하고 벌레의 머무는 곳에 즐겨할 것이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이와 같이 관찰할 때에 옷에 대한 탐심을 곧 없애버리게 되리라.
교진여야, 음식에 대한 즐겨하지 않는 생각을 닦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비구가 발우를 잡을 때에 마치 피 묻은 해골[髑髏]의 썩은 냄새를 싫어하고 벌레의 머무는 곳처럼 생각하여, 밥을 얻을 때에는 이 밥이 송장[屍]의 벌레와 같다고 보고 미숫가루[麨]를 볼 때에는 부수어진 뼈와 같다고 생각하고 장물[漿]을 얻을 때에는 똥 찌끼와 같이 생각하고 떡을 얻을 때에는 사람 껍질과 같이 생각하고 석장(錫杖)을 보고는 사람 뼈와 같이 생각하고 우유[乳]나 낙(酪)을 얻을 때에는 더러운 피고름같이 생각하고, 나물을 얻음엔 터럭같이 생각하고 갖가지의 장(漿)을 얻음엔 생피[生血]와 같이 생각하여야 함이니, 교진여야, 비구로서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는 음식에 대한 즐겨하지 않는 생각이라 하느니라.
교진여야, 어떤 것이 방사(房舍)에 대한 즐겨할 수 없는 생각인가 하면 비구가 방사에 들어갈 때에는 마땅히 지옥에 들어 모든 고뇌를 받는 것처럼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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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되, ‘이러한 방사는 모든 것의 화합이니라. 재목은 사람의 뼈요, 흙은 사람의 살이요, 온갖 평상과 이불까지 또한 그러하다’라고. 이렇게 관찰한다면, 이는 세간의 즐겨할 이 사람은 곧 진실다운 법의 지혜와 공(空)·무상(無相)·무원(無願)의 지혜를 얻을 것이며, 또 이 사람은 공의 모양을 즐거이 닦고 공의 모양을 닦음으로써 모든 법은 모두 나고 멸하고 괴롭고 공하고 나 없다고 보고 음(陰)·계(界)·입(入)과 12인연(因緣)과 모든 법성의 공하고 괴롭고 나 없음을 관찰하며, 이렇게 보고는 곧 수다원 내지 아라한과를 얻으리니, 교진여야, 세간의 즐겨할 수 없는 생각을 끊음과 같이, 능히 욕계의 탐심과 색계·무색계의 탐심과 모든 고민과 의심과 경박함과 무명을 끊고 내지 배울 것 없는 지위[無學地]를 얻는다면, 이것은 무원에 따르는 다라니를 원만히 갖춤이라 하느니라.
교진여야, 이 다라니는 능히 모든 악마를 파괴하고 내지 삼보를 더 자라나게 하리라.”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한량없는 중생이 법 눈[法眼]의 깨끗함을 얻었고, 한량없는 억의 중생이 모든 번뇌를 아주 없앴고, 8나유타의 중생이 원 없는 다라니에 따르고, 한량없는 중생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냈고, 5만 8천의 중생이 물러남이 없는 보리심을 얻었고, 한량없는 중생이 법다운 지혜를 얻었다.
그때 한량없는 중생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중생이 만약 이 법을 듣는다면 어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지 않는다 하겠습니까? 저희들도 이제 이 법을 받아 듣고는 옹호하여 가지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여러 큰 시주들이여, 너희들이 이제 큰 법을 옹호하려고 한다면, 법을 옹호함으로써 미래세계에 마땅히 한량없는 복덕의 과보를 얻으리라.”
그때 사리불(舍利佛)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덕화밀(德華密)부처님께서 허공밀(虛空密) 보살마하살을 보내어 가지고 온 청정한 다라니를 말씀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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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여라. 이 국토 중생들의 네 가지 뒤바뀜을 파괴하기 위하여 너에게 덕화밀 부처님이 보내온 청정한 다라니를 말하리라.
사리불이여, 이 국토의 중생들은 뒤바뀐 마음 때문에 진실히 나 없는 데에서 그릇되게 나란 생각을 내느니라. 슬기로운 자는 나 없음을 깊이 관찰하여 알고 이렇게 관찰하고는 뒤바뀜을 파괴하느니라.
사리불이여, 슬기로운 자의 나 없음을 관찰함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이른바 몸을 관찰하고서 나 없음을 자세히 아나니, 왜냐하면 화합한 몸이기 때문이며, 또 눈[眼]을 관찰하여도 나 없음을 아나니, 그 까닭은 4대(大)가 화합하였기 때문이니라. 눈을 굴리고 깜짝거리는 것은 곧 바람의 힘이니, 이러한 바람은 허공을 인하여 오가고 회전하지만, 그 허공의 성품 자체는 아무것도 없고 또 설할 수도 없는 것이니라. 만약에 아무것도 없고 설할 수 없다면, 이는 바로 나 없음이니, 그러므로 허공은 실로 나 없고, 이 허공 속의 바람도 아무런 물질이 없고 설할 수 없어서 나 없음이라 하며, 바람을 관찰함과 같이 땅도 그러하여 아무런 물질이 없고 설할 수 없으므로 나 없고, 물이나 불 또한 그러하나니, 마땅히 알아 두라. 눈의 4대도 아무런 색이 없고 설할 수 없기 때문에 나 없음이라 하느니라.
만약에 또 눈이 색을 인연하는 까닭에 나라는 모양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이치로 보아 그렇지 않느니라. 왜냐하면 눈 속에는 내가 없기 때문이니, 색 또한 그러하고 화합한 속에도 다시 내가 없느니라. 인연이 화합하여 눈의 식별[識]이 생기지만, 이 식 속에도 내가 없느니라. 식을 인하여 색을 내기 때문에 이름과 색[名色]이라 하나니, 이름과 색을 인연하여 6입(入)을 내고 6입을 인연하여 부딪침을 내고 부딪침을 인연하여 느낌을 내고 느낌을 인연하여 애욕을 내고 애욕을 인연하여 취함[取]을 내고 취함을 인연하여 존재[有]를 내고 존재를 인연하여 바로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 따위가 있느니라. 이러한 법은 눈의 식으로 인하여 나[生]지만, 이 눈의 식 또한 시방으로부터 오지 않으며, 인연한 생각[念]은 눈의 식을 내지만, 이 생각도 사라지느니라. 눈의 식은 두 가지 생각 중에 머물지 않고 또 생각하여 말하기를 ‘너는 머물고 나는 멸한다’고 하지 않으면서도 이 멸하는 법 또한 처소가 없나니, 그러므로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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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인연이 종합하기 때문에 나고 인연이 흩어지기 때문에 멸하느니라. 만약에 인연 때문에 난다면 인연 없을 때에는 멸하는 것이므로 마땅히 알아 두라. 모든 법은 진실로 내가 없느니라.
그리고 이 인연으로 또한 지음과 받음이 없고 짓는 이도 없으므로 나 없음이라고 하느니라. 만약 내가 없다면 내 것[我所]도 없으므로 눈의 성품은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니, 합하거나 흩어짐이 없어서 이것이 바로 나고 멸함이니라. 모든 법 또한 그러하느니라.
모든 법성은 취함도 없고 버림도 없고 성문·연각·부처님의 조작하는 것도 아니어서, 눈의 식이 공한 것처럼 모든 법 또한 그러하나니, 이렇게 관찰할 때에는 공삼매문을 얻고 수다원과 내지 아라한과를 얻느니라.
눈을 관찰함이 이미 그러함에는, 귀·코·혀·몸 또한 그와 같으니라. 몸의 나 없음을 관찰함에 비추어 터럭까지도 나 없고 껍질·털·피·살·힘줄·뼈·고름·뇌수·창자·침[唾] 따위 따뜻한 기운·오르내리는 바람과 수명(壽命)·명자(名字)도 다 나 없음이요, 다만 뭇 인연으로서 화합하였기 때문에 몸이라 하나니, 몸은 부딪치는 인연 때문에 몸의 식을 내고 몸의 식을 인연하여 이름과 색을, 이름과 색을 인연하여 6입을, 6입을 인연하여 부딪침을, 부딪침을 인연하여 느낌을, 느낌을 인연하여 애욕을, 애욕을 인연하여 취함을, 취함을 인연하여 존재를, 존재를 인연하여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내느니라.
이러한 법은 몸의 식을 인연하여 나지만, 이 몸의 식은 시방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생각은 몸의 식을 내지만 이 생각도 멸하며, 몸의 식은 두 가지 생각 중에 머물지 않고, 또 생각하여 말하기를 ‘너는 머물고 나는 멸한다’고 하지 않으면서도 이 멸하는 법 또한 처소가 없나니, 그러므로 모든 법은 인연이 화합하기 때문에 나고, 인연이 흩어지기 때문에 멸하고, 인연이 있기 때문에 나고, 인연이 없기 때문에 멸하느니라. 그러기에 이 모든 법은 진실로 내가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그리고 이 인연 또한 지음과 받음이 없고 짓는 이도 없으므로 나 없음이라 하나니, 나 없음이란 내 것도 없음이므로, 몸의 성품은 나와 내 것이 없고 합하거나 흩어짐이 없어서 이것이 바로 나고 멸함이니라. 모든 법 또한 그러하느니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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