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99)-99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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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을 이롭게 하려면, 언제나 착한 벗을 부지런히 구하여 착한 벗에 의지하여야 하느니라.
교진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욕심의 성품[性] 모양을 관찰한다면,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라고 알지니라.”
“세존이시여, 어떤 것을 벗이라 합니까?”
“교진여야, 착한 벗이란, 이른바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아라한(阿羅漢)이며, 나도 곧 착한 벗이니라. 왜냐하면 나는 항상 중생을 가엾이 여겨 모든 욕심의 허물을 말하여 줌으로써 대중들이 나의 말을 듣게 되나니, 나는 끝까지 두 가지 말을 하지 않으므로 허망한 말이나 거짓말이 없고 이치 없는 말이나 추악한 말이 아니며, 하는 말은 모두 성실한 말이고 사랑하는 말이고 슬퍼하는 말이고 중생을 편케 하는 말이니라. 내가 이제 모든 욕심의 허물을 말하여 주리니, 너희들은 마땅히 지심으로 받아 지닐 것이며 받아 지니고는 3악도에서 벗어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빨리 얻을지니라.
그때 사바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한 목소리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욕심의 허물을 널리 설하여 주소서. 저희들도 이제 지심으로 받아 지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 선남자야, 네 가지의 욕심이 있으니, 첫째는 색의 욕심[色欲]과 모양의 욕심[形欲]과 하늘의 욕심[天欲]과 욕계의 욕심[欲欲]이 그것이니라.
색의 욕심이라 함은 4대(大)로 이루어진 색으로서, 범부는 나와 중생 없음을 보지 않고 뒤바뀌는 생각을 내어서 남자와 여자의 생각, 훌륭한 색과 훌륭하지 못한 색의 생각, 이 색은 사랑스럽고 저 색은 싫다는 생각을 내며, 이 뒤바뀌는 생각으로 인하여 남자는 여자의 모양을 보기 때문에 아직 나지 않는 탐욕을 내게 하고 그 탐욕이 나서는 자라나게 되어 이 사람은 마침내 선근과 착한 지식을 멀리 여의고서 몸과 입과 뜻의 업을 잘 옹호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나쁜 업의 덩어리라 하느니라. 왜냐하면 욕심에서 벗어남을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이런 까닭에 3악도에 떨어져 지옥·아귀·축생의 몸을 받아서 한량없는 세간에 큰 고통을 받나니, 이는 다 탐욕을 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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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아 탐욕의 인연으로 욕심을 더 자라나게 함이니라.
만약에 슬기로운 사람이 여자의 색을 관찰하되 그 깨끗하지 못한 모양과 피부·뼈·살·힘줄·혈맥을 보고는 마음으로 즐거이 생각을 모으고 이 여자의 몸을 관찰함과 같이 남자의 몸에도 그러하고 멀고 가까운 것에나 이것, 저것에 다 그러하고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한다면, 이 사람은 이 마음을 닦음으로써 곧 탐욕과 애욕에서 빨리 해탈하게 되며, 이 몸은 뼈·힘줄·마디가 서로 연결된 것처럼 마음은 몸에 따라 행함을 관찰하여 그때 전일한 마음을 이마 위의 대추와 같은 곳에 두고서 이러한 모양을 즐거이 닦은 다음에, 몸에 고요함을 얻어 나쁜 모양을 보지 않고 나쁜 일을 보지 않고 나쁜 인연도 보지 않는다면, 이것을 사마타(奢摩他)라 하고 마음의 고요함이라 하느니라.
또 어떤 것이 몸의 고요함인가 하면, 선정에 들어서 들이쉬는 숨[入息]을 없앰이니, 들이쉬는 숨이 없다면 내쉬는 숨[出息]도 없을 것이므로 이것을 몸의 고요함이라 하며, 몸의 고요함은 곧 몸과 마음의 고요한 것이므로 이것을 사마타의 인연이라 하느니라.
이 사람은 온몸의 뼈마디 흩어지는 것을 마치 모레가 부는 바람에 흩어지는 것처럼 관찰하고 그리고는 곧 공(空)하여 아무런 물질이 없다는 생각을 내어서 허공을 관찰하나니, 그러므로 이것을 몸과 마음의 고요함이라 하고 또 사마타의 선정을 인연하여 해탈을 얻었다 하느니라.”
“세존이시여, 허공의 모양은 함이 있는[有爲] 모양입니까?”
“교진여야, 함이 있는 모양이니라.”
“세존이시여, 허공이 만약에 함이 있는 모양이라면, 이것이 허공 자체의 모양[自相]이나이까? 다른 모양[他相]입니까?”
“교진여야, 만약 모든 법의 경계를 함이 있는 경계로 관찰한다면 이것을 자체의 모양이라 하나니, 왜냐하면 물질의 고요함을 관찰함은 큰 부처님의 몸을 보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 까닭은 만약 어떤 사람이 뼈를 관찰하되 마치 모래가 부는 바람에 흩어짐과 같다고 생각할 때에 이 사람은 능히 색에 대한 탐심과 애욕을 파괴하고서 깊이 색의 진실한 성품을 관찰하리니, 그러므로 이 사람은 모든 것을 다 허공 같다고 보고 시방의 모든 색이 유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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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하다고 보고 그 중에서 다시 한량없는 부처님과 시방의 부처님을 다 그러하다고 보고 여래의 32상·80종호와 시방세계까지 또한 그러하다고 보느니라.
이 사람이 만약 생사의 법을 뉘우치게 된다면, 곧 스스로 생각하리라.
‘나는 마땅히 부처님께 묻겠노라. 이 허공은 누구의 조작으로서 어떻게 멸하는가.’
그리고 또 생각하느니라.
‘나는 이미 물었고 나는 이미 알았노라. 허공의 성품은 조작이 없거늘 어떻게 멸한다 하랴. 허공이라 함은 아무런 각(覺)과 관(觀)이 없고 물체가 없고 수량이 없고 모양이 없고 나는 것도 없고 멸함도 없으므로 모든 법이 다 그러하다.’
이렇게 관찰할 때에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나니, 이 아나함과는 모든 탐심과 욕심을 모두 끊어버리느니라.
오직 다섯 가지 일만은 끊어버리지 못하나니, 그 다섯 가지란, 첫째는 색계의 애욕[色愛], 둘째는 무색계의 애욕[無色愛], 셋째는 흔들림[悼], 넷째는 교만[慢], 다섯째는 무명(無明)이니라.
이 사람이 만약 여래의 몸을 보고서 생각하기를, ‘나는 마땅히 수량을 알겠노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그때 적다고 관찰하기에 적음을 보고 많다고 관찰하기에 많음을 본 것이며, 또 생각하기를, ‘이러한 부처님들은 어디로부터 오느냐’고 하거나, 다시 더 생각하기를, ‘이러한 부처님들은 와도 오는 곳이 없고 가도 이르는 곳이 없도다. 나의 삼계(三界)의 마음은 이 마음이 몸을 인연하기 때문에 나는 각(覺)과 관(觀)에 따라 많은 것을 보려고 하면 많음을 보고 적은 것을 보려고 하면 적음을 보리니, 모든 부처님이 바로 나의 마음이로다. 왜냐하면 마음에 따라 보는 까닭에 마음의 바로 나요, 내가 바로 허공이로다. 나는 각과 관의 마음으로서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을 알지만,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고 마음은 마음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범계의 성품을 굳지 않다고 관찰함은 모든 법이 다 각과 관의 인연을 따라 나기 때문이다’라고 하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성품의 모양이 곧 허공이고 허공의 성품도 공(空)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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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만약에 처음 보리심을 내는 자가 있다면 마땅히 한량없는 법의 인연을 관찰하지니, 이 사람이 만약 성문의 마음을 낸다면 그때에는 곧 무상(無相)삼매를 얻어서 저 무명을 길이 없애어 고요하게 하고 다시 공(空)에 수순하는 지혜[忍]를 얻을 것이며, 이 사람의 만약 허공도 공이라고 본다면 그때에는 곧 몸과 마음의 고요함을 얻으리라. 그러기에 이를 공해탈문(空解脫門)이라 하고 아라한(阿羅漢)을 얻음도 어렵지 않다 하나니, 만약에 멸진정[滅定]의 해탈을 다시 수행한다면 한량없는 모든 법의 인연까지도 없애게 되리라.”
이 법을 말씀하실 때에 9만 9천억의 중생은 선정을 닦는 지혜를 얻고 8만 4천의 중생은 공을 닦는 지혜를 얻고 6만의 중생은 공삼매해탈문을 얻고 2만의 중생은 모두 현전에 부처님을 보는 삼매를 얻고 8만 4천의 중생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고 한량없는 중생의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
다시 교진여야, 만약에 어떤 비구가 자기 몸을 관찰하되 깨끗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마음을 조복하지 못한다면, 이 사람은 마땅히 자기 몸을 떠나서 어떤 시체[死屍]를 관찰할 때에 그 시체가 푸른색으로 허물어지거나 붉은색으로 부풀고 흩어지거나 그 뼈의 희기가 조개[貝]와 같음을 자세히 관찰하고, 또 마음이 어느 곳에 즐거이 머무는가를 깊이 관찰하여서 이것을 알고는 곧 취하되 시체[外色]를 관찰한 것처럼 자기의 몸도 마찬가지로 푸른색 내지 조개와 같음을 관찰하며, 낮과 같이 밤도 그러하고 밤과 같이 낮도 그러한 것과 같은 것처럼 오는 것도 그러하고 오는 것처럼 가는 것도 그러함을 관찰하여야 할지니라. 그때야 비로소 모든 바깥 색을 보되 나무·사람·축생 그 밖의 잡된 색을 모두 뼈와 같다고 생각하며, 이렇게 관찰함으로써 목숨이 끝날 때까지 탐색을 내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 사람이 현재에는 욕심을 여의게 되지만, 다른 세상에까지는 여의지 못하리라. 이 사람이 만약 공 다라니를 닦는다면 곧 뼈의 흩어지는 모양을 모래와 가는 티끌같이 관찰하며, 자기나 다른 사람의 색과 모양을 한 티끌같이도 보지 않는다면 곧 허공의 모양을 얻어서 모든 색을 유리 같다고 보고 그리고는 다시 허공의 누런색을 보고서 누런색이든 붉은색이든 흰색이든 그 밖의 잡된 색을 다 유리색으로 관찰하고, 땅과 물까지도 유리와 같다고 관찰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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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사람은 모든 큰 땅을 네 발가락과 같이 생각하여, 이 땅을 움직이려고 한다면 발가락을 밟아서 잠깐이나 오랫동안이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고 내지 온 땅의 나무와 산, 물까지도 모두 움직일 수 있으며, 물을 관찰하여 분타리(分陀利)꽃·우발라(優鉢羅)꽃·구물두(拘物頭)꽃·파두마(波頭摩)꽃 따위의 갖가지 색을 만들어 두고서 모든 물에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누울 수 있으며, 모든 산을 관찰하여 그 모양의 가늘고 연하기가 도라면(兜羅綿)과 같은 갖가지 물질을 만들어 두고서 그 가운데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누울 수 있으며, 또 자기의 몸을 가벼운 바람처럼 관찰하여서 허공에 다니고 머물고 앉고 누울 수도 있으리라.
이 사람은 또 화광(火光)삼매에 들어서 몸에 갖가지의 묘한 색 광명을 내고 다시 염마가(焰摩迦) 선정에 들어서 몸 위로는 물을 내고 몸 밑으로는 불을 내며, 이러한 큰 신통의 변화를 일으키고는 생각하기를, ‘나는 어떻게 하여야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겠는가’ 하느니라.
그때 이 사람은 그의 관찰하는 방면에 따라 부처님을 보되 많다고 관찰하면 많게 보고 적다고 관찰하면 적게 보며, 보고나서는 다시 생각하기를, ‘부처님은 오는 곳이 없고 가도 이르는 곳이 없도다. 나의 삼계(三界)의 마음은 이 마음이 몸을 인연하기 때문에 나의 각(覺)과 관(觀)에 따라 많은 것을 보려면 많음을 보고 적은 것을 보려면 적음을 보나니, 모든 부처님이 바로 나의 마음이로다. 왜냐하면 마음에 따라 보기 때문이니라. 마음의 바로 나의 몸이요 내가 바로 허공이니, 나는 각과 관에 따라 한량없는 부처님을 보고 나는 각과 관의 마음으로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을 알지만,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고 마음은 마음을 알지 못하도다. 나의 법계의 성품은 굳지 않고 모든 법이 다 각과 관의 인연에 따라 난다’고 관찰하나니, 그러므로 법의 성품이 바로 허공이요 허공의 성품도 공한 것이니라. 나의 이 마음을 인하여 푸르고 누렇고 붉고 흰 잡된 색을 다 허공으로 보리라고 하느니라.
그리고 이 사람은 신통의 변화를 일으키고 나서 보는 것이 바람과 같아 아무런 진실이 없으므로,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는 진실한 다라니라 하느니라.
이 사람은 다시 생각하기를, ‘허공이 있더라도 이 허공은 잡을 수 없고 각과 관이 없고 널리 설할 수도 없음은 나의 마음이 허공의 모양을 떠나서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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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함이다’라고 하며, 또 마음의 모양을 관찰하여 멀리 여의지도 않고 온갖 조작을 여의고서 발심도 하지 않고 설사 발심하더라도 곧 멸하며, 마음의 인연이 사라짐으로써 이 마음도 사라져서 몸과 입과 뜻을 깨끗이 하고는 멸진정[滅定]을 닦으며, 이 사람은 기나긴 밤에 마음을 모아 선정에 두고 멸진정으로부터 일어나 그의 목숨을 버리고서 열반에 들어가므로,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지 않는 진실한 다라니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범부와 함께하는 진실한 다라니냐 하면, 생각하기를, ‘나는 뜻에 따라 관찰하므로 색(色)이 바로 견(見)이고 색이 바로 나의 마음이고 내 마음이 바로 색이다. 나는 모든 색의 모양을 멀리 여의고서 허공을 관찰하노라’고 하여, 이 사람이 그때 허공의 모양을 닦는다면,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는 진실한 다라니라 하리라. 만약 관찰하기를, ‘색이 바로 허공이므로 나는 이러한 색의 인연 때문에 허공을 관한다. 허공의 성품은 장애가 없어 이 바람이 머문다. 바람은 4대(大)를 인하여 생긴다. 나는 색의 모양도 그와 같이 4대를 따라 일어난다고 관찰하므로 허공과 바람과 색은 차별이 없으며, 모든 법성은 그 성품 자체가 고요하여 자체의 성품이나 다른 성품을 관찰함도 그와 같으므로 허공은 남[生]도 없고 멸함도 없다’고 하여, 이렇게 관찰할 때에 마음을 모아 부처님을 염하고는 허공 쪽에 한량없는 부처님을 보고 곧 아나함과(阿那舍果)를 얻는다면,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지 않는 진실한 다라니라 하느니라.
다시 생각하되, ‘허공이라 함은 곧 나[我]를, 깨끗한 나를, 나의 마음을 말함이요, 나란 것은 색이 없어서 허공이 그지없는 것처럼 나도 그러하다’라고 한다면,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는 진실한 다라니라 하며, 만약 모든 법에는 나 없고[無我] 내 것도 없다[無我所]고 관찰하여서, 공처(空處)는 곧 나 없고 색도 나 없으므로 여래를 염하거나 여래를 관찰함이 바로 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부처님을 보고 나서 사문(沙門)의 과(果) 내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으리라’고 한다면,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지 않는 진실한 다라니라 하느니라.
또 깨끗한 나를 관찰함은 곧 공처이고 공은 곧 나의 마음이니라. 만약에 모든 번뇌를 깊이 끊는다면 이는 깨끗한 마음이고 8직정도(直正道)를 닦는다면 이도 깨끗한 마음이라 하리니, 능히 이와 같이 수행하여서 수다원과(須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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洹果) 내지 아라한과를 얻는다면,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지 않는 진실한 다라니라 하느니라.
다시 색(色)을 관찰하거나 색의 모양을 관찰함은 곧 분별하는 모양이요, 분별하는 모양은 곧 성내는 모양이요, 성내는 모양은 곧 생사의 모양이니, ‘나는 이제 생사의 모양을 끊기 위하여 마음 모양의 공(空)함을 관찰하노라’고 한다면,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는 진실한 다라니라 하느니라.
또 내가 바로 고요한 것이라고 관찰한다면 나도 이제 각(覺)과 관(觀)을 끊지 못함이요, 만약에 내가 나[我]와 내 것[我所]을 허공 같다고 관찰한다면 나와 내 것은 곧 괴로움이니라. 괴로움이 생기는 것을 원인[集]이라 하고 이러한 괴로움과 원인은 법을 끊으므로 멸함이라 하고 괴로움과 원인과 멸함을 관찰하는 것을 길[道]이라 하나니, 이 도로써 수다원과 내지 아라한과를 얻는다면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지 않는 진실한 다라니와 하느니라.
또 생각하여 말하되, ‘나는 무슨 까닭으로 허공을 관찰하는가. 허공이란 바로 나다. 내가 만약 허공 관찰하기를 멀리 여읜다면, 다음 식처(識處)를 관찰함도 허공을 관찰함과 같고 식별의 관찰도 그러하며, 허공이 그지없는 것처럼 마음도 그러하리라’고 한다면,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는 진실한 다라니라 하리라.
만약에 식별은 바로 괴로움이라고 관찰하여 괴로움의 생기는 대상을 안다면, 이것을 원인이라 하며, 괴로움과 원인은 법을 끊으므로 멸함이라 하고 괴로움과 원인과 멸함을 관찰하는 것을 길이라 하나니, 이 길로써 수다원과 내지 아라한과를 얻는다면,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지 않는 진실한 다라니라 하리라.
그리고 또 식처는 바로 각과 관이고 종기이며 고뇌의 법이라고 관찰하여, ‘나는 공처와 식처를 멀리 여의어 무상처(無想處)를 관찰하리라’고 하여 이 사람이 무상처를 닦은 뒤에 무상정을 얻는다면,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지 않는 진실한 다라니라 하느니라. 만약에 식처가 곧 종기이고 괴로움의 법이라고 관찰하여 ‘나는 식의 모양을 관찰하는 것을 멀리 여의리라. 다음에는 무상(無想)의 모습을 관하고 무상을 말하면 곧 이것은 나 없고 내 것의 모양도 없다’고 한다면, 이 사람은 이렇게 관찰하고 나서 곧 수다원과 내지 아라한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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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으리니,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지 않는 진실한 다라니라 하느니라.
만약에 무상처가 바로 세밀한 생각이라고 관찰하여, ‘나는 이 무상처를 멀리 여의고 비유상비무상처(非有想非無想處)를 관찰한다’고 하면, 이것을 범부와 함께하는 진실한 다라니라 하느니라.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가 바로 큰 고통인지라 이 처(處)는 끊을 수 있고 해탈할 수 있다고 관찰하여서, 이렇게 관찰할 때에 수다원과 내지 아라한과를 얻어 온갖 욕탐과 색탐을 끊으며, 범부의 이름을 여의고 성인의 칭호를 얻어서 길이 3악도의 인연을 끊는다면, 이것을 진실한 다라니라 하리라.
이 다라니는 저 여러 부처님께서 보내온 것이고 일밀보살이 직접 가지고 온 것입니다. 온갖 번뇌와 온갖 나쁜 견(見)과 아견(我見)과 취견(取見)과 계견(戒見)과 상견(常見)과 단견(斷見)과 수명의 견과 조작의 견과 사부의 견과 느낌의 견과 색의 견과 촉감의 견과 출생의 견과 4대(大)의 견을 끊고자 한다면, 이 다라니는 이러한 견을 끊을 수 있으며, 또 이 다라니는 능히 음계입을 통탈하여 모든 견을 깨끗이 하고 받는 자로 하여금 길이 안락하게 하고 뭇 마군을 저지하고 사나운 용을 조복하고 모든 하늘을 기쁘게 하고 아수라와 가루라를 조복하고 찰리[刹利]·바라문·비사(毘舍)·수타(首陀)를 기쁘게 하며, 능히 나쁜 욕심을 끊게 하고 모든 나쁜 병을 없애고 모든 나쁜 싸움을 방지하고 법계와 더하여 삼보를 옹호하고 다 아는 지혜[盡智]와 다시 더 알 것이 없는 지혜[無生智]를 얻어 무명의 덩어리를 파괴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다라니를 말씀하실 때에 한량없는 중생은 수다원과를 얻기도 하고 아라한과를 얻기도 하고 이 다라니를 가지기도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도 하고 무생법인[無生忍]를 얻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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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등대집경 제33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이진영 번역
13. 일밀분 ③
4) 분별품 ②
그때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연화(連華) 다라니란 어떤 것이기에 일밀보살이 널리 설한 것처럼 슬기로운 자가 얻어서 받아 지니고 읽어 외우고 베껴 쓰면 큰 이익을 얻고, 삼계(三界)를 즐겨하지 않아 무상(無相) 해탈문을 얻는 자는 다 모든 번뇌를 끊고서 일곱 번 되돌아오면서 항상 사람·하늘의 몸을 얻으며, 비록 욕계에 있어도 욕심에 더럽히지 않고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의 존경을 받게 되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교진여야, 네가 묻는 연화 다라니는 성문과 연각들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이는 부처님의 18불공법의 행이니라.
교진여야, 가령 내가 한량없는 겁 동안에 이 다라니를 널리 설한다 할지라도 끝내 다할 수 없나니, 도리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혹하게 하리라. 그러므로 이 다라니는 부처님만이 설할 수 있고 부처님만이 들을 수 있느니라. 왜냐하면 이 다라니는 알기 어렵고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니, 다른 세 다라니도 그러하느니라.”
“세존이시여, 원컨대 부처님께서 이 허공과 같은 공행(空行) 다라니를 말씀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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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진여야, 지심으로 들어라. 내 너를 위해 말하리라. 교진여야, 만약에 어떤 중생이 방일한 인연으로 촉감의 욕심을 낸다면, 이 사람은 해탈하는 곳을 알지 못하고 생사에 유전(流轉)하여 한량없는 세간에서 3악도(惡道)에 빠져 큰 고통을 받으리라. 보살마하살은 중생들이 이러한 한량없는 고뇌를 받는 것을 보고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내어 부지런히 수행하고, 쉬지 않고 모든 도를 두루 닦나니, 이렇게 수행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고 보리를 얻고 나서는 괴로움의 해탈을 말하느니라. 중생들은 이 말을 듣고 괴로움을 해탈하게 되리니, 괴로움의 해탈은 바로 초과(初果) 내지 아라한과(阿羅漢果)에서 얻느니라.
교진여야, 촉감의 욕심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두 몸이 서로 합하는 것을 말함이니라. 몸을 합하기 때문에 촉감을 내고 촉감을 인연하여 즐거움을 내고 즐거움을 인연하여 괴로움을 내고 괴로움의 인연 때문에 생사의 고뇌가 여기에서 생기느니라.
교진여야, 마치 4대가 독사(毒蛇)와 같아서 눈으로 보고 입으로 불고 이로 깨물고 몸으로 부딪쳐서 이 네 가지 인연으로 중생을 해치는 것처럼, 애욕도 그와 같아서 보는 인연으로 중생을 해치는 것처럼, 애욕도 그와 같아서 보는 인연이 있고 듣는 인연이 있고 생각는 인연이 있고 촉감의 인연이 있어 이 네 가지 인연으로 말미암아 모든 중생의 선근을 멀리 여의게 하여 생사 속에 큰 고통을 받게 하느니라.
교진여야, 촉감의 욕심을 해탈함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어떤 비구가 흰 뼈[白骨]를 보고서 생각하느니라.
‘색(色)은 4대(大)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 4대로 이루어진 것은 곧 덧없는 성질의 것이고 견고함이 없어서 껍질과 털과 살과 피가 분리되어 흩어지는 법과 같으니, 슬기로운 자가 어찌 이 몸 가운데에서 깨끗하고 좋은 모양을 내겠는가.’
이렇게 관찰하고는 모든 시방의 깨끗한 색[淨色]에 대하여 곧 즐겨할 수 없는 모양을 얻으며, 이 비구는 또 생각하되, ‘나는 이러한 모양에 대하여 즐거이 닦음으로써 모든 번뇌와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을 끊으리라’고 한다면, 이는 사마타(舍摩他)라 하며, 만약 발의 뼈 내지 머리의 뼈에까지 이렇게 관......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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