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등대집경

대집경(92)-920

근와(槿瓦) 2016. 1. 14. 01:31

대집경(92)-92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911 / 1773] 쪽

.....씨가 없으며, 그 잘 설함은 고요하여 사람들이 받아쓰게 되고 위엄과 공덕 있는 말이어서 아무런 얽매임이 없으며, 서로 응답함이 어김없고 미묘하고도 부드러워서 조롱하거나 꾸지람이 없으므로 성인의 칭찬을 받고, 부처님의 가르치시는 말씀과 같이 그 범(梵)의 음성이 청정하고 널리 통하여 모두 다 듣게 되나니, 이 즐겁게 하는 말과 걸림 없는 지혜는 모두 부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다른 중생을 위해 미묘한 법을 연설함에 이 법을 듣는 자는 모두 출세간의 즐거움을 얻고 모든 괴로움을 없애버립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마하살의 4무애지가 다함없음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또 네 가지 의지하는 법이 있어 다함이 없나니,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하면,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음과 지혜에 의지하고 식별에 의지하지 않음과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요의경 아닌 것에 의지하지 않음과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음입니다.

 

어떤 것을 이치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않는다 하는가 하면, 말이란 세간법 속에 들어가서 말하고 이치란 출세간법을 알아 문자의 모양이 없으며, 말이란 보시와 조복과 옹호를 말하고 이치란 보시·지계·인욕을 알아 평등에 들어가며, 말이란 생사를 일컫고 이치란 생사의 성품 없음을 알며, 말이란 열반의 맛[味]을 일컫고 이치란 열반의 성품 없음을 알며, 말이란 모든 승(乘)을 해설하여 곳에 따라 편히 머물고 이치란 모든 승을 잘 알아 한 모양의 지혜 문(門)에 들며, 말이란 모든 버림[捨]을 해설하고 이치란 버림을 행하는 시기와 버리는 물건과 버리는 마음이 청정하며, 말이란 몸과 입과 뜻으로 깨끗한 계율의 공덕과 위의를 받아 가질 것을 말하고 이치란 몸과 입과 뜻의 조작 없음을 분명히 알고서 모든 깨끗한 계율을 옹호해 가지며, 말이란 인욕으로써 성냄과 교만을 끊어버림을 말하고 이치란 모든 법을 분명히 통달하여 무생법인[無生忍]을 얻으며, 말이란 모든 선근을 부지런히 행할 것을 말하고 이치란 정진에 편히 머물러 처음과 끝이 없으며, 말이란 모든 선정, 해탈삼매를 말하고 이치란 멸진정(滅盡定)을 알며, 말이란 온갖 문자와 지혜의 근본을 모두 들어 간직하고 있지만 이치란 이 지혜의 이치 설할 수 없음을 알며, 말이란 37조도(助道)의 법을 말하고 이치란 모든 조도의 법 수행함을 알아 능히 그 과(果)를 증명하며, 말이란 괴로움[苦]과 원인[集]과 길[道]의

 

                                                                               [912 / 1773] 쪽

진리를 말하고 이치란 멸함[滅]의 진리를 증명하며, 말이란 무명의 근본 내지 나고 늙고 죽음의 인연을 말하고 이치란 무명의 멸함과 늙고 죽음의 멸함을 알며, 말이란 선정과 지혜 돕는 법을 말하고 이치란 해탈의 지혜를 밝히며, 말이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말하고 이치란 착하지 않는 뿌리가 곧 해탈인 것임을 알며, 말이란 장애되는 법을 벗어나고 이치란 걸림 없는 해탈을 얻으며, 말이란 삼보의 한량없는 공덕을 찬양하고 이치란 삼보의 공덕이 욕심을 여읜 법성과 같아 함이 없는[無爲] 모양인 것임을 알며, 말이란 발심으로부터 도량에 앉아 보리수를 수집 장엄하는 공덕까지 말하고 이치란 일념(一念)의 지혜로서 모든 법을 깨닫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요약하여 말하자면, 8만 4천의 법 덩어리[法聚]를 설명함은 말이라 하고 모든 문자로서 널리 설할 수 있음은 이치라 합니다.

 

어떤 것을 지혜에 의지하고 식별[識]에 의지하지 않는다 하느냐. 식별이란 네 가지 식별의 머무는 곳이니, 색(色)의 식별의 머무는 곳과 수(受)의 식별·상(想)의 식별·행(行)의 식별, 이 네 가지 식별의 머무는 곳입니다. 식별이란 이 네 가지 곳에 머물지만, 지혜란 이 네 가지 식별의 머무는 곳 없음을 분명히 알며, 식별이란 땅·물·바람의 4대(大)를, 알고 지혜란 이 4대의 법성(法性)이 분별없음을 알며, 식별이란 눈은 색에, 귀는 소리에, 코는 냄새에, 혀는 맛에, 몸은 촉감에, 뜻은 법에 머묾을 알고, 지혜란 안의 성품이 적멸하여 바깥에 행함이 없으므로 모든 법의 기억할 것이 없음을 분명히 알며, 식별이란 오로지 반연한 것을 취하여 분별하기를 생각하고, 지혜란 마음에 반연한 것이 없어 어떤 모양을 취하지 않고 모든 법에 바라는 것이 없으며, 식별이란 함이 있는[有爲] 법을 행하고 지혜란 함이 없는[無爲] 법에는 식별의 행함이 없고 함이 없는 법성에는 식별이 없음을 알며, 식별이란 나고 머물고 멸하는 모양이 있고 지혜란 나고 머물고 멸하는 모양이 없느니라. 사리불이여, 이것을 지혜에 의지하고 식별에 의지하지 않음이라 합니다.

 

어떤 것을 요의경(了義經)에 의지하고 요의경 아닌 것에 의지하지 않는다 하느냐 하면, 요의경 아닌 것이란 수도(修道)를 분별하고 요의경이란 과(果)를 분별하지 않으며, 요의경 아닌 것이란 어떤 업을 짓고 행함에 과보(果報)

 

                                                                               [913 / 1773] 쪽

가 없고 요의경이란 모든 번뇌를 다하며, 요의경 아닌 것이란 모든 번뇌를 꾸짖고 요의경이란 맑고 깨끗한 법을 찬양하며, 요의경 아닌 것이란 나고 죽음의 고뇌를 말하고 요의경이란 나고 죽음과 열반이 한 모양이어서 둘이 없음을 알며, 요의경 아닌 것이란 갖가지의 장엄한 문자를 찬양하고 요의경이란 아주 깊은 경전의 가지며, 어렵고 알기 어려움을 말하며, 요의경 아닌 것이란 중생을 위해 죄와 복의 모양을 많이 말하여 설법 듣는 자로 하여금 마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며, 요의경이란 모든 연설에 반드시 듣는 자로 하여금 마음을 조복하게 하며, 요의경 아닌 것이란 나와 남, 중생과 수명, 양육(養育)과 사부(士夫), 지음과 받음 따위의 갖가지 문자와 모든 법에 베푸는 자와 받는 자가 없음을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베풂이 있음과 받음이 있음을 말하고, 요의경이란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과 조작 없고[無作] 나는 것 없음[無生]과 나와 남과 중생과 수명, 양육과 사부, 짓는 것과 받는 것 없음을 말함과 동시에 항상 한량없는 모든 해탈문을 말함이니, 이것을 요의경에 의지하고 요의경 아닌 것에 의지하지 않음이라 합니다.

 

어떤 것을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 않는다 하느냐. 사람이란 나와 남에 집착한 견해[見]로 짓는 이와 받는 이가 있음을 섭취함이요, 법이란 나와 남에 집착한 견해로 짓는 이와 받는 이가 없음을 이해함이며, 또 사람이란 범부와 착한 사람, 신행(信行) 하는 사람과 8인(忍)·수다원(須陀洹)·사다함(斯陀含)·아나함(阿那含)·아라한(阿羅漢)·벽지불(辟支佛)·보살(菩薩) 등의 사람을 말함이니, 오직 한 사람이 출세함으로써 이익 됨이 많아 모든 사람이 안락하게 되며, 세간을 가엾이 여겨 크게 슬픈 마음[大悲心]을 내어서 사람과 하늘에 많은 은혜를 주기 때문에 부처님 세존이라 하고, 또 부처님은 세간의 이치에 따라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이러한 말씀을 하게 됩니다.

 

만약 나와 남에 집착한 견을 섭취한다면 이것이 바로 사람에 의지하는 것이므로, 여래는 이러한 견을 섭취하는 자를 교화하기 위하여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법성이란 변하거나 바뀔 수 없고 조작과 조작 아님이 없고 머묾과 머

 

                                                                               [914 / 1773] 쪽

물지 않음이 없으며, 모든 것이 평등하여 평등도 평등하고 평등하지 않음도 평등하며, 생각 없고 반연 없이 바른 결정을 얻어 모든 법이 차별과 다름이 없으므로, 그 성(性)과 상(相)의 걸림 없음이 마치 허공 같습니다. 이를 법성이라 이르나니, 이 법성에 의지한다며 마침내 한 모양의 법을 여의지 않고 이 법문에 드는 자는 모든 법이 한 법성과 같음을 관찰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이 바로 보살마하살의 네 가지 의지하는 법이 다함없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915 / 1773] 쪽

대방등대집경 제30권

북량 천축삼장 담무참 한역

이진영 번역

 

12. 무진의보살품 ④

무진의보살이 다시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의 도를 돕는[助道] 공덕을 닦는 지혜도 다함이 없습니다. 공덕을 닦는 지혜의 다함없음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보시와 지계로써 마음을 닦고 자비(慈悲)를 일으켜 자기의 모든 죄를 드러내어 참회하며, 또 중생을 대신하여 그들의 죄를 참회하고 이미 참회한 다음에는 자기의 일처럼 따라 기뻐하며, 모든 중생을 비롯하여 배울 것이 있고 배울 것이 없는 사람 및 벽지불과 발심한 보살 또는 이미 그 발심을 익혀 행한 자와 굳게 머물러 물러나지 않는 자와 일생보처[一生補處 : 1생만 지내면 부처님이 되는 것이 약속된 자리를 말한다.]의 이러한 여러 사람들까지의 3세 동안에 닦은 공덕을 마땅히 한마음으로 자기 일처럼 따라 기뻐하며, 과거·미래·현재 부처님들의 모든 선근에도 따라 기뻐하는 마음을 내나니, 이 따라 기뻐하는 보살은 모두 이러한 공덕을 성취하게 되므로 따라 기뻐함을 마치고는, 또 시방 모든 부처님께 권청하되, 처음 성도한 자에게는 법 바퀴 굴리기를 청하고, 열반을 보이는 자에게는 오래 세상에 머물기를 청하고, 모든 보살 성인에게는 오랫동안 세상에 머물러서 중생을 위해 설법하기를 청하여, 이러한 선근을 보리와 같이 생각해서 모두 위없는 보리에 회향하는 것입니다.

 

                                                                               [916 / 1773] 쪽

이 보살은 발심하지 못한 자를 권하여 발심하게 하고 이미 발심한 자를 위하여 모든 법도를 연설하며, 가난한 자를 보고는 재물로써 구호하고 병든 자를 보면 약품을 공급하여 수시로 치료하게 하며 세력 없는 자를 보면 인욕 행하기를 권하고, 금계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그의 허물을 덮거나 숨기지 못하게 하고 이미 덮거나 숨기는 자에게는 그 허물을 드러내도록 권하며, 현재의 부처님과 열반한 부처님께 모두 발심하여 공양 공경하고 스승과 어른을 부처님처럼 존경하며, 법을 구할 때에는 목숨을 걸어 게을리 하지 않고 이 법보(法寶)를 가장 값진 보배로 생각하며, 설법하는 자에겐 부처님과 같이 생각하고 설법을 듣기 위해서는 1백 유순(由旬)을 겪어도 마음과 힘을 더욱 용맹스럽고 날래게 하여 지치거나 괴로움 생각이 없으며, 모든 강설(講說)을 이끗[利養]을 위해서 하지 않으며, 부모에게 은혜를 알아 은혜를 갚되 모든 공양과 심부름하는 일에 마음으로 처음부터 뉘우침이 없으며, 공덕을 일으킴에는 항상 만족함이 없고 몸과 입과 뜻을 옹호함에는 아첨하거나 그릇됨이 없게 하고 불탑(佛塔)을 세워 공덕을 얻음은 범천의 권청(勸請)하는 복과 비등하다. 이 모든 상(相)을 원만히 갖춤은 문호를 열어 크게 보시하기 때문이며, 갖가지 형호(形好)를 얻음은 선근을 닦기 때문이며, 몸을 장엄한 교만을 없애기 때문이며, 입을 장엄함은 입의 허물을 여의기 때문이며, 뜻을 장엄함은 법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며, 불토를 장엄함은 신통으로써 교화하기 때문이며, 법을 장엄함은 모든 욕심을 여의기 때문이며, 대중을 장엄함은 두 가지 말과 나쁜 말로써 다른 사람을 파괴하지 않고 법을 받은 자에게 사실대로 말하기 때문이며, 설법을 기뻐하여 거룩하다고 칭찬함은 그 지은 공덕이 황당하지 않기 때문이며, 덮개[覆蓋]를 여읨은 가서 법을 듣기 때문이며, 보리수(菩堤樹)를 장엄함은 묘한 원림(園林)으로써 부처님을 받들기 때문이며, 도량을 장엄함은 모든 선근을 성취하기 때문이며, 출생이 청정함은 번뇌에 더럽히지 않기 때문이며, 보배손[寶手]을 얻음은 모든 소중한 물건으로 버림[捨]을 행하기 때문이며, 다함없음을 얻음은 한량없는 보배갈무리[寶藏]로써 보시하기 때문이며, 보는 자가 기뻐함은 항상 화하고 즐겁게 하기 때문이며, 법성을 체득(體得)함은 마음과 지혜의 광명을 중생들에 고루 비추기 때문이며, 광명을 장엄함은 말학(末學)을 깔보지 않고 잘

 

                                                                               [917 / 1773] 쪽

지도하기 때문이며, 태어날 때마다 청정함은 지계의 공덕을 모두 성취하기 때문이며, 때[胎]중에 처하여 청정함은 다른 사람의 죄과[罪]를 보지 않기 때문이며, 인간과 천상에 태어남은 10선(善)을 깨끗이 행하기 때문이며, 지혜의 광명으로 독보(獨步)함은 교화할 것에 분별을 내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법에 자재로움은 애중한 법에 인색함이 없기 때문이며, 세간에서 홀로 높음은 필경 청정하기 때문이며, 묘하게 해탈함은 조그마한 행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모든 공덕을 행함은 모든 슬기로운 마음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일곱 가지 재물을 갖춤은 신심으로 근본을 삼기 때문이며, 바른 법을 거둬 가짐은 신명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며, 세간을 속이지 않음은 본래의 서원을 갖추기 때문이며, 모든 불법을 원만히 갖춤은 여러 선근을 이미 행한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이 바로 보살의 공덕을 간략하게 말함이니, 만약 널리 말한다면 한 겁(劫)을 지나도록 말하여도 다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지혜가 다함없음인가 하면, 낱낱의 인(因)에 지혜를 설할 수 있고 낱낱의 연(緣)에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이니라. 인이라 함은 안(內)으로 욕심을 증상(增上)함이요, 연이라 함은 바깥으로 부지런히 법을 구함이니, 이러한 인연은 부처님의 지혜에 의지하고 성문과 연각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으므로, 지혜에 친근한 자는 마음에 교만이 없어 항상 그 사람에게 세존의 생각을 낸다. 이 모든 지혜란 법 받는 사람을 알고 마음이 이미 유화(柔和)하여 지혜를 말하기 위해서 의지(依止)할 것을 가르치고는 그 바른 그릇[器]에 따라 물들임 없는 법을 말하여, 설법 듣는 사람도 이 법 속에서 부지런히 닦고 모아서 도 돕는[助道] 법을 정진하나니, 이것을 지혜라 합니다.

 

어떤 것을 보살의 도 돕는 법을 정진하는 것이라 하는가. 아무런 바라는 것이 없이 사무(事務)를 간략히 하고 말을 적게 하며, 모든 욕심에 항상 만족함을 알고 이른 밤이나 늦은 밤에 수면(睡眠)을 감하며, 모든 들은 이치를 잘 생각하여 헤아려 분별하고 착한 법을 자주 구하되 마음에 애착하거나 흐리멍덩함이 없고, 모든 음(陰)과 개(蓋)를 제거하여 가림이 없게 하고 잘못된 허물은 곧 없애버리며, 바른 행에 굳게 나아가 사모하고 법다운 행을 존경하여 정진하고 법을 구하되 게으르지 않기를 머리털에 불타는[頭然] 것을

 

                                                                               [918 / 1773] 쪽

구원하는 것처럼 함이니, 이는 곧 나없는 행과 느리지 않는 행과 근본을 버리지 않는 행과 마음을 증상시키는 행이고 대중의 시끄러움을 꾸짖는 행 홀로를 즐겨하는 행이며, 고요한 곳에 나아가 생각하는 행, 성인의 종자를 만족으로 아는 행, 두타(頭陀)를 움직이지 않는 행, 법을 즐거워하는 행, 세간의 말을 생각하지 않는 행, 출세간의 법을 구하는 행, 바른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는 행, 모든 법의 이치를 내는 행, 진정한 도의 행, 인연을 아는 다라니[總持]의 행, 부끄러움을 장엄하는 행, 지혜를 굳게 하는 행, 무명의 그물에 얽매어 묶임을 제거하고 지혜의 눈[眼]을 깨끗이 하는 행이며, 잘 깨닫는 행, 널리 깨닫는 행, 깨달음을 없애지 않는 행, 깨달음을 분석하는 행, 현재를 아는 행이고 다른 공덕을 따르지 않는 행, 자기의 공덕을 믿지 않는 행 다른 사람의 공덕을 찬탄하는 행, 업을 잘 닦는 행, 인과의 틀리지 않는 행, 청정한 업을 아는 행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도 돕는 법의 정진함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또 네 가지의 보시가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춘다. 그 네 가지를 말하자면, 첫째는 종이·붓·먹으로써 법사(法師)에게 보시하여 경전을 베껴 쓰게 함이요, 둘째는 갖가지로 꾸민 장엄한 자리[座]로써 법사에게 보시함이요 셋째는 모든 필요한 공양거리[具]로써 법사에게 바침이요, 넷째는 아첨하거나 굽은 마음이 없이 법사를 찬탄함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의 네 가지 보시로써 지혜를 원만히 갖춤이라고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금계를 지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나니,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하면, 계를 지니어 항상 법을 연설함과 계를 지니어 항상 부지런히 법을 구함과 계를 지니어 바르게 법을 분별함과 계를 지니어 보리에 회향함입니다. 이것을 일러 보살의 네 가지 계를 지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춤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참음[忍辱]을 닦아 지혜를 원만히 갖추나니, 그 네 가지란, 법을 구할 때에 다른 사람의 욕설을 참음이 그 하나요, 법을 구할 때에 굶주리고 목마름과 춥고 더움과 비·바람을 회피하지 않음이 그 둘이요, 법을 구할 때에 스님과 아사리(阿闍梨)의 행에 수순함이 그 셋이요, 법을 구

 

                                                                                [919 / 1773] 쪽

할 때에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을 참음이 그 넷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의 네 가지 참음을 닦아 지혜를 원만히 갖춤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정진을 닦아 지혜를 원만히 갖추나니, 그 네 가지란 어떤 것인가 하면, 많이 들음에 부지런함과 다라니에 부지런함과 즐겁게 말하는[樂說] 데 부지런함과 바른 행에 부지런함이 그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의 네 가지 정진을 닦아 지혜를 원만히 갖춤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4선정이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나니, 그 4선정이란 첫째는 홀로 거처하기를 항상 즐거워함이요, 둘째는 전일한 마음을 항상 즐거워함이요, 셋째는 선정과 신통을 구함이요, 넷째는 걸림 없는 해탈의 지혜를 구함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의 4선정으로써 지혜를 원만히 갖춤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지혜가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나니,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단견(斷見)에 머물지 않음과 상견(常見)에 들지 않음과 12인연을 통달함과 나 없음을 참는 행이 그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의 네 가지 지혜로써 지혜를 원만히 갖춤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옹호하는 법이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나니 그 네 가지란, 첫째는 법사 옹호하기를 자기의 임금처럼 함이요, 둘째는 모든 선근을 옹호함이요, 셋째는 세간을 옹호함이요, 넷째는 다른 사람을 옹호하여 이익 되게 함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의 네 가지 옹호하는 법으로 지혜를 원만히 갖춤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만족하는 법이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나니, 그 네 가지 법이라 함은 설법의 만족과 지혜의 만족과 이익의 만족과 모든 법의 만족히 그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의 네 가지 만족하는 법이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춤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힘이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나니 어떤 것을 네 가지 힘이라 하는가 하면, 정진의 힘으로 해탈을 얻기 위하여 많이 들음을 구함이 그 하나요, 생각하는 힘으로 보리심을 잊어버리지 않음이 그 돌이요, 선정의 힘으로 평등하게 차별을 없앰이 그 셋이요, 지혜의 힘으로 많이 들음

 

                                                                               [920 / 1773] 쪽

을 닦음이 그 넷입니다. 이것을 네 가지 힘으로 지혜를 원만히 갖춤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방편이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나니, 그 네 가지를 말하자면, 첫째는 세간의 행에 따름이요, 둘째는 중생의 행에 따름이요, 셋째는 모든 법의 행에 따름이요, 넷째는 지혜의 행에 따름입니다. 이것을 네 가지 방편으로 지혜를 원만히 갖춤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도(道)가 있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나니, 그 네 가지란 모든 바라밀의 도와 보리를 돕는 도와 여덟 가지 성인의 도[聖道]와 모든 지혜를 구하는 도가 그것입니다. 이것을 네 가지 도로써 지혜를 원만히 갖춤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만족함이 없는 행으로 지혜를 원만히 갖추나니, 그 네 가지를 말하자면, 첫째는 많이 들음을 즐거워하여 만족함이 없음이요, 둘째는 설법을 즐거워하여 만족함이 없음이요, 셋째는 혜(慧)를 행하되 만족함이 없음이요, 넷째는 지(智)를 행하되 만족함이 없음입니다. 이것을 보살의 네 가지 만족함이 없는 행으로 지혜를 원만히 갖춤이라 합니다.

 

또 지혜를 돕는 행이 있으니, 모든 중생의 마음에 따르는 행과 모든 법에 따르는 행과 보시에 따르는 행과 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에 따르는 행과 사랑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버림에 따르는 행이 그것입니다. 이 행을 얻어 지혜를 원만히 갖추나니, 왜냐하면 보살의 발기하는 행은 모두 지혜로서 근본을 삼고, 지혜를 성취하고는 도로 지혜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보살은 지혜에 편히 머물고 모든 지혜에 의지함으로써 어떤 마군의 권속도 방해할 수 없나니, 그러므로 모든 지혜를 갖추게 됩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의 지혜 돕는 행의 다함없음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은 또 4념처(念處)가 다함없나니, 이는 보살이 몸[身]을 관찰하고 몸을 닦는 행으로서 과거·미래·현재 모든 몸의 뒤바뀜과 화합됨을 보되, 마치 바깥의 풀·나무와 담·벽과 기와·돌이 인연을 따라 있어서 자라날 수 없고 얽매임이 없는 것처럼, 이 몸도 그러하여 인연을 따라 생기므로 자라날 수 없고 얽매임이 없으며, 이 음(陰)과 계(界)와 입(入) 속의 나와 내 것이 공하고 항상함[常]과 덧없음[無常]도 공하여, 이 몸에는.....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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