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90)-90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891 / 1773] 쪽
“선남자여, 어떤 비유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무진의보살이 대답하였다.
“설할 수는 있지만 조그마한 일로써 비유할 수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여기서 동방의 한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불세계와 남방·서방·북방·상하와 사유(四維)의 한 항하의 모래알만큼 많은 불세계를 다 합하여 한 커다란 바다를 만들고, 그 바다에 물을 가득 넘치게 해 두고서 한 항하의 모래와 같은 많은 중생을 모이게 하여 다 같이 털[毛] 하나를 백분으로 나누어 그 1분의 털을 갖고 바닷물을 한 방울씩 적시되, 이렇게 한 항하의 모래에 다 같이 한 방울씩을 적셔내고 두 항하의 모래에 두 방울씩을 적셔내어 이와 같이 해서 가득 찬 큰 바닷물이 다하도록 되풀이할지라도 이 중생계는 오히려 다함없습니다.
그러나 보살의 자애로움은 이러한 중생을 두루 감싸주나니, 사리불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 자애로움을 닦는 선근(善根)이 다함이 있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참으로 다함이 없습니다.”
“선남자여, 이 허공은 차라리 끝이 있을지언정 보살의 자애로움은 끝이 없습니다. 만약에 어떤 보살이 이러한 말을 듣고서도 놀라거나 겁내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끝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얻은 이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리불이여, 이 자애로움은 능히 자기를 옹호하고 또 다른 사람까지 이익 되게 하나니, 그러므로 이 자애로움은 다툼이 없고 온갖 성냄과 거칠고 더러움과 얽맴을 끊고, 온갖 번뇌를 없애고, 모든 것을 기뻐하고 온갖 중생들이 파계(破戒)하는 허물을 저질러도 미워하는 마음으로 보지 않고, 뜨거운 번뇌가 없어서 몸과 마음이 안락하고, 온갖 괴로움과 침해를 멀리 여의고, 온갖 겁냄과 두려움을 여의며, 이 자애로움은 모든 성인의 도에 수순하고, 성내는 자로 하여금 기쁘게 하고 모든 투쟁에서 벗어나고 능히 이끗[利養]과 칭찬[稱歎]을 내고, 제석[釋]․범천[梵]의 위덕을 장엄하고, 언제나 슬기로운 사람의 칭찬을 받고, 범부와 어리석은 사람을 옹호하며, 이 자애로움은 항상 범도(梵道)에 수순하고, 욕계를 멀리 여의고, 해탈법문에 나아가고, 모든 승(乘)을 돕고, 재물 아닌 공덕을 돕고, 모든 공덕을 길러내고, 모든 함이
[892 / 1773] 쪽
없는 공덕에 뛰어나고, 상호(相好)를 모두 장엄하고, 용열한 사람의 둔한 뿌리를 여의게 하며, 이 자애로움은 하늘사람에게 열반의 길과 모든 착하고 바른 길을 열어주며, 이 자애로움은 3악도[惡]와 8난(難)을 여의고, 모든 착한 법을 즐기고, 소원대로 모든 욕망을 자재롭게 성취하며, 이 자애로움은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생각하고, 발심(發心)수행함에 있어 모든 이상한 모양을 여의고, 바르게 계율 지니는 법문에 나아가고 모든 금계(禁戒) 범하는 자를 옹호하고, 능히 위없는 참음의 힘을 성취하고, 모든 교만과 방일을 여의고, 다툼 없는 정진을 힘써서 바른 도에 들고, 이 자애로움을 근본으로 성인의 선정에 들고, 마음을 잘 분별하여 모든 번뇌를 여의게 하며, 이 사랑하는 마음은 지혜를 따라 나므로 언어와 문자를 총괄하여 가지고, 선정을 짝[伴]삼아 마군[魔]의 짝을 여의고, 언제나 기쁨을 같이하고, 마음의 작용을 잘 조절하며, 이 자애로움은 위의와 계법(戒法)을 굳게 지니고, 마음의 흔들림을 안정시키고, 갖가지의 모양을 없애고, 좋은 향 바르기를 부끄러워하고, 번뇌의 더러운 습기를 제거합니다.
사리불이여, 무릇 자애로움을 닦음이란 모든 중생을 옹호하여 자기의 즐거움을 버리고 다른 중생을 즐겁게 함이라 성문의 자애로움은 자기를 위함에 그치지만, 보살의 자애로움은 모두 한량없는 중생을 위합니다.
사리불이여, 무릇 자애로움을 닦음이란 모든 흐름[流]을 건너게 함이니, 자애로움의 미치는 곳이라면 중생을 인연함이 있고 또 법을 인연하고 아무 법도 인연함이 없음[無所緣]을 인연함이 있습니다. 중생을 인연함이란 초발심이요, 법을 인연함이란 이미 자애로움을 닦아 행함이요, 인연 없음을 인연함이란 깊은 법의 지혜를 얻음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이 닦는 큰 자애로움[大慈]은 다할 수 없음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큰 슬픔[大悲]을 닦음도 다함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리불이여, 사람의 생명[命根]이 곧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으로서 근본을 삼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대승(大乘)을 수학함에는 큰 슬픔으로써 근본을 삼으며, 전륜성왕(轉輪聖王)이 윤보(輪寶)로써 근본을 삼는 것처럼 보살도 그와 같이 모든 지혜를 닦음에는 큰 슬픔으로써 근본을 삼습니다. 큰 장자(長者)가 외아들을 두고 가엾고 사랑스런 마음이 두터운 것처
[893 / 1773] 쪽
럼, 보살의 큰 슬픔 또한 그러하여 모든 중생을 외아들과 같이 사랑합니다.
이러한 큰 슬픔은 내가 먼저 행해야 하고, 이 큰 슬픔은 나를 이익 되게 하고, 이 큰 슬픔은 다른 일을 빙자하지 않고, 이 큰 슬픔은 자기 마음을 작용함에 있어 아부하거나 왜곡[諂曲]하지 않고, 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바른 결정을 내고, 모든 종성(種性)의 하는 이로서는 바른 도에 벗어나지 않고, 마음에 삿되거나 잘못이 없어 정직하게 합니다. 이 큰 슬픔은 교만이 없어 중생의 경계를 벗어나고, 자기 몸을 버려 여래의 몸을 내고, 수명에 탐착하여 나쁜 일을 일으키지 않고, 중생을 옹호하여 보리심을 내게 하고, 진실한 법을 옹호하여 청정한 마음을 내고, 모든 빈궁한 사람을 보고는 구제할 일을 마련하고, 근본 될 서원을 굳게 하여 마음을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이 큰 슬픔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동시에 다른 사람과 하늘과 어진 사람을 헛되이 속이지 않고 그 수행이 청정하여 착한 업을 지으며, 자기의 즐거움을 버리고는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고,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하거나 초조한 번뇌를 내지 않게 하며, 이 큰 슬픔은 중생으로 하여금 무거운 짐을 버리어 굳은 정진을 내게 하고, 참는 힘을 가져 참는 힘없는 자를 옹호하고, 더러운 것을 싫어하지 않아 병든 자를 돌보아 주고, 모든 법에 자재로움을 얻어 둔한 근기를 교화합니다.
이 큰 슬픔은 자기의 공덕을 덮어 다른 사람의 공덕을 나타내고, 모든 괴로움을 여의고, 번뇌 없는 즐거움을 구하고, 사랑하는 물건을 회사하고, 뭇 착한 업을 일으키되 괴로워함이 없고, 금계(禁戒)를 잘 가지되 계를 훼손하는[毁戒] 이를 버리지 않고, 모든 중생을 교화하고, 자기의 신명을 아끼지 않고, 자기의 몸뚱이와 사지를 회생하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착한 마음을 내게 하고, 스스로의 이익과 착한 인연을 짓고, 모든 선정에 집착하는 맛을 내지 않고, 욕계를 싫어하지 않고, 관찰하는 지혜를 내고, 착한 마음을 더럽히지 않고, 중생들을 소원대로 성취하게 합니다.
이 큰 슬픔은 함이 있음[有爲]과 함이 없음[無爲]을 내고, 함이 없음에 빠지지 않고, 중생의 성품이 함이 없음과 같음을 알고서 교화하며, 이 큰 슬픔은 훼계(毁戒)하는 자를 옹호하고, 부처님의 계율을 찬탄합니다. 이러한 대승의 모든 슬퍼하는 마음은 크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내나니, 이 인연으로써 크게 슬퍼함이라 합니다.
[894 / 1773] 쪽
이른바 크게 슬퍼함이란 반드시 보시·지혜·인욕·․정진·지혜의 모든 조도법(助道法)을 잘 행하여 자연히 아는 지혜는 곧 스승 없이 아는 지혜[無師智]를 얻기 위해서, 중생들의 하는 사업을 돌보아 주되 마치 자기 임무를 닦는 것처럼 부지런하고 착실하게 정진함이니, 이러한 인연이기 때문에 크게 슬퍼함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의 크게 슬퍼함도 끝이 없다 함은 바로 이것을 말함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기뻐함[喜]을 수행함도 다함이 없습니다. 그 기뻐함이란 항상 법을 생각하여 기뻐 뛰되 게으르지 않고 뜨거운 번뇌가 없고 5욕락(欲樂)을 여의고서 법의 즐거움에 머물며, 마음은 화락하고 몸은 경쾌하고 뜻은 권독(勸督) 하기에 부지런하고 마음은 항상 슬퍼함을 내며, 여래의 위없는 법신(法身) 구하기를 즐거워하며, 상호(相好)를 닦아 스스로 장엄하기를 즐거워하며, 법을 듣고서 싫어함이 없고, 바른 법 행하기를 생각하며, 행하고는 마음으로 기뻐하고, 기뻐하고는 법의 슬퍼함[法悲]을 갖추어 얻으며, 항상 중생들에 거리끼는 마음을 내지 않고 증상[增上]하는 욕망으로 법을 부지런히 구하며 부지런히 법을 구하고는 마음껏 깊은 불법을 이해하며, 2승(乘)을 멀리 여의어 위없는 마음을 내고 인색함을 없애어 평정한 마음[捨心]을 내며, 와서 비는[乞] 자를 보고는 마음으로 기뻐하고 버릴 때도 기뻐하며, 보시한 뒤에 뉘우치지 않고 보시할 때마다 깨끗이 하고는 마음으로 기뻐하며, 계율 지닌 자에겐 언제나 보시하고 계율 헐뜯는 자에겐 기쁜 마음을 거둬주며, 스스로 금계를 지니고는 마음을 깨끗이 하여 악취(惡趣)에 헤매고 있는 중생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없애어 나쁜 곳을 멀리 떠나게 하고, 한마음으로 여래의 금계를 회향하되 견고하여 파괴할 수 없게 하고, 욕설을 듣고서도 그대로 참아 보복하지 않으며, 중생에겐 교만한 마음이 없고 존장에겐 겸손하고 공경하며, 말씨는 언제나 화하고 부드러워서 찡그림이 없이 먼저 사랑스러운 말로서 끝까지 아첨하거나 그릇됨이 없고, 삿된 마음으로 남을 꾀거나 속이지 않고 이끗[利養]을 위해 남에겐 심부름하지 않으며, 그 마음이 깨끗하여 거칠거나 과격함이 없고, 모든 옳지 못한 일에 그 허물을 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단점을 캐내거나 다른 사람의 죄를
[895 / 1773] 쪽
들추지 않고서 모든 화경(和敬)하는 법을 마음껏 염원하며, 보살을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설법하는 자를 자기의 몸뚱이보다 애중하며, 부처님을 애중하기를 자기의 목숨처럼 아끼고, 스승과 어른을 부모처럼 생각하며, 모든 중생을 자식처럼 생각하고, 위의를 갖추되 머리[頭首]를 옹호하다시피 하고, 바라밀을 사랑하되 손발[手足]을 아끼다시피 하며, 모든 착한 법을 값진 보배처럼 생각하고, 가르쳐 주는 사람에겐 5욕(欲)을 좋아하다시피 하며, 만족함을 아는 행(行)에는 몸에 병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법 구하기를 즐거워함은 묘한 약을 얻는 것처럼 생각하며, 잘못을 말하여 주는 자에게는 훌륭한 의원[醫]인 줄 생각하고 모든 감관[根]을 조절하되 게으름이 없나니, 이것을 기뻐함이라고 합니다.
이 기쁨의 고요함은 미묘한 것을 깨달아 알기 때문이며, 이 기쁨의 적멸(寂滅)함은 깔보거나 희롱함이 없기 때문이며, 이 기쁨의 치우치지 않음은 희론(戱論)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 기쁨의 근본은 마음이 어지럽지 않기 때문이며, 이 기쁨의 들음이 많음은 착한 말을 갖기 때문이며, 이 기쁨의 평등함은 마음이 부드럽기 때문이며, 이 기쁨의 용맹스러움은 사업을 잘 일으키기 때문이며, 이 기쁨이 후회하지 않음은 오로지 착한 일을 행하기 때문이며, 이 기쁨이 바르게 머묾은 게으르지 않기 때문이며, 이 기쁨이 흔들리지 않음은 의지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며, 이 기쁨이 공동하지 않음은 부수거나 조복하기 어려운 때문이며, 이 기쁨이 실다운 이치인 것은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이 기쁨이 진실함은 변하거나 달라짐이 없기 때문이며, 이 기쁨이 성실함은 하는 일을 실천하기 때문이며, 이 기쁨이 능히 평정[捨]할 수 있음은 힘이 굳기 때문이며, 이 기쁨이 큰 힘을 지님은 이길 이가 없기 때문이며, 이 기쁨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일으킬 수 있음은 모든 불법을 구하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이여, 이것이 바로 보살이 기뻐함을 수행함이 다함이 없음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평정[捨]을 수행함도 다함이 없느니라. 평정을 행함에 세 가지가 있으니, 말하자면 모든 번뇌에 대해 평정함과 자기나 다른 사람을 옹호한다는 생각에 대해 평정함과 제때[時]라든가 제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대해 평정함이 그것입니다.
[896 / 1773] 쪽
모든 번뇌에 대해 평정함이란 이른바 공경하고 공양하여도 그 마음이 잘난 체하지 않고 깔보거나 헐뜯더라도 마음이 못난 체하지 않으며, 이끗을 얻어도 탐내지 않고 어떤 곤란에 처하여도 걱정하지 않으며, 칭찬하여도 기뻐함이 없고 헐뜯어도 위축되지 않으며, 조롱을 받아도 부끄러움이 없고 찬양함이 있어도 법계에 잘 머물며, 괴로운 일을 당하여도 꿋꿋하게 참아 견디고 즐거운 일을 당하여도 덧없음[無常]을 밝게 보며, 사랑함을 내버리고 성냄과 미움을 끊고, 친하거나 친하지 않는 이에게 마음을 평등이 하며, 계(戒)를 지니거나 계를 헐뜯는 이에게 생각을 더하거나 덜함이 없고, 착한 일을 하거나 나쁜 일을 하거나에 차별을 두지 않으며,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에 마음으로 집착함이 없고, 좋다거나 싫다거나 다 참아 견디고, 착한 말과 나쁜 말에 마음이 얽매이지 않고, 몽매한 자와 허물 있는 자를 차별함이 없어 모든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대하며, 상·중·하의 평등한 광명을 얻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아 좋고 나쁜 명문(名聞:명성)을 법계와 같이 하고 진실하거나 진실하지 않는 법에 마음을 깨끗이 하고 세간법에 보살의 평정을 평등하게 함이니, 이것을 일러 보살이 번뇌에 대해 평정함이라 합니다.
또 보살이 자기나 다른 사람을 옹호한다는 생각에 대해 평정함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만약에 몸뚱이와 팔·다리·뼈마디가 베이고 끓기더라도 마음에 성내거나 미워함이 없어 원수에게 보복하지 않으며, 평정한 마음을 얻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버리게 되나니, 이른바 안과 바깥이거나 몸과 입이거나 이 두 가지 중에 다툼을 내지 않고 눈과 색에도 애욕의 물듦이 없고 귀에 대한 소리와 코에 대한 냄새와 혀에 대한 맛과 몸에 대한 촉감과 뜻에 대한 법도 다 그와 같이 두 가지 중에서 다툼을 내지 않으므로 이것을 평정이라 하며, 서로 손상시키거나 해치지 않으므로 이것을 평정이라 하며, 자기나 다른 사람을 옹호한다는 생각을 버리므로 이것을 평정이라 하며, 이롭거나 이롭지 않거나에 심행(心行)이 평등하므로 이것을 평정이라 하며, 제1의 이치에 논란하지 않으므로 이것을 평정이라 하며, 자기의 마음속에 잘 분별하므로 이것을 평정이라 하며, 자기의 몸까지 버릴 것을 관찰하므로 이것을 평정이라 하며, 다른 사람의 몸을 해치지 않으므로 이것을 평정이라
[897 / 1773] 쪽
합니다.
보살은 평정을 닦되 모든 선정에서 항상 평정한 마음을 행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보살이 여러 중생에게 평정한 마음을 행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보살은 항상 정진을 닦되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이익 되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선근을 부지런히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일러 보살이 자기나 다른 사람 옹호함에 대해 평정함이라 합니다.
또 때와 때 아님에 대해 평정함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그릇[器]이 아닌 중생에 대해 평정하고 인접(引接)하지 않으며, 헐뜯거나 조롱하고 괴롭힘에 대해 평정하고 받지 않으며, 성문을 구하여 결정을 이룩하는 자에 대해 평정하며, 보시를 행할 때에는 지계 닦음에 대해 평정하고 지계를 닦을 때에는 보시에 대해 평정하고 인욕을 닦을 때에는 보시·지계·정진에 대해 평정하고 정진을 닦을 때에는 보시·지계·인욕에 대해 평정하고 선정을 닦을 때에는 보시에 대해 평정하고 지혜를 닦을 때에는 다섯 가지 바라밀에 대해 평정하여 응당 하지 않아야 할 일은 마침내 하지 않나니, 이와 같이 모든 법을 계행에 편히 머물러서 정근과 용맹을 다하여 수행을 원만히 갖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일러 보살이 다함없는 평정을 수행함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의 모든 신통도 다함이 없습니다. 그 모든 신통이란 하늘눈 신통[天眼通]과 하늘귀 신통[天耳通]과 남의 마음 아는 신통[他心通]과 전생일 아는 신통[宿命通]과 뜻대로 하는 신통[如意通]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떤 것이 하늘눈 신통인가 하면, 보살의 하늘눈은 모든 하늘·용·귀신과 건달바(乾闥婆)와 배울 것이 있는 사람[學]과 배울 것 없는 사람[無學]과 성문·연각들의 하늘눈보다 가장 뛰어나서 미묘하고 훌륭하고 통달하고 명료하여 온갖 지혜에 나아가 공덕을 성취함이 저 하늘·용 따위와 성문·연각 2승(乘)과는 같지 않습니다. 시방 한량없고 그지없는 불세계의 모든 모양·색·광명이거나 그 모든 것의 거칠고 가늘고 가깝고 먼 것을 보살의 하늘눈은 모두 비추어 보고 분별하기도 하고 잘 알아 보며 또 그 중에 있는 중생들의 모든 형태를 봅니다. 그리고 무색계 하늘[無色天]을 제외하고는, 그 나머지 업행(業行)과 나고 죽음의 상속과 또 업과 업의 과(果)와 모든 감관을 분별함에 있어 남김없이 모두 알며, 시방 한량없고 그지없는 부처님들
[898 / 1773] 쪽
의 장엄하고 청정하고 미묘한 모든 국토까지도 남김없이 모두 봅니다. 이와 같이 보고는 청정하게 계율을 지니되 자기 국토에 회향하여 장엄하기를 원하고, 이 계율 지님에 머물러서 그의 소원과 같이 위없는 큰 이익을 모두 성취하게 됩니다. 보살의 하늘눈은 또 그 중에 있는 보살 대중이 도(道)를 수행하여 몸에 4위의(威儀)를 갖추고 바르게 억념(憶念)함과 해탈법을 얻어 다라니[總持]에 편히 머무는 동시에 변재(辯才)의 방편으로 지혜의 방편에 들어감을 보며, 이것을 보고는 스스로 이러한 모든 행을 닦아서 모두 원만히 갖추게 합니다.
이 보살의 눈이 청정하여 걸림 없음은 색을 볼 수 있기 때문이며, 이 눈이 더럽히지 않음은 색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 눈이 해탈함은 모든 견해[見]와 번뇌를 멀리 여의기 때문이며, 이 눈이 청정함은 그 본성이 분명하기 때문이며, 이 눈이 의지하지 않음은 반연하는 것을 여의기 때문이며, 이 눈이 발동하지 않음은 번뇌를 끊기 때문이며, 이 눈이 가림 없음은 의심을 끊기 때문이며, 이 눈이 일으키지 않음은 장애를 끊기 때문이며, 이 눈이 광명을 얻음은 법을 비추기 때문이며, 이 눈이 지혜를 생각함은 식별을 행하지 않기 때문이며, 이 눈이 탐냄과 성냄과 미움과 어리석음을 여읨은 온갖 번뇌를 끊기 때문이며, 이 눈이 위없이 훌륭함은 성인의 근본에 나아가기 때문이며, 이 눈이 걸림 없음은 평등한 광명으로 중생에게 비추기 때문이며, 이 눈이 더러움 없음은 나쁜 법을 끊어버리기 때문이며, 이 눈이 물들지 않음은 본성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이 눈이 부처님 눈에 듦은 끝까지 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이 눈이 얽매이지 않음은 사랑과 미움을 끊기 때문이며, 이 눈이 이치를 행하여 진실한 수행을 냄은 청정한 도법(道法)을 생각하여 알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이 대사(大士)는 큰 자비심에 편히 머물러 법상(法相)을 깊이 알고 이치를 잘 분별하여 다툼이 없고, 보고 들음에 따라 연설하되 착하지 않은 법을 저버리고 도량에 나아가되 마음에 장애됨이 없으며, 인색한 사람을 보면 재물을 보시하고 금계 헐뜯는 자를 보면 청정한 계율을 닦게 하며, 성내거나 미워하는 자를 보면 참음을 닦아 다투지 않게 하고 게으른 자를 보면 부지런히 힘쓰도록 거둬주며, 마음이 산란한 자를 보면 선정을 닦게 하고 지혜 없는 자에게는 슬기로운 눈을 베풀어 주며, 삿
[899 / 1773] 쪽
된 도를 행하는 자에게는 바른 도를 보이고 낮은 행을 닦는 자에게는 아주 깊고 미묘한 불법을 연설하여 온갖 지혜에 들며 모든 신통에 물러나지 않아 보리를 원만히 갖추게 합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의 하늘눈 신통은 한이 없는 것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의 하늘귀 신통도 다함이 없느니라. 어떤 것이 보살의 하늘귀 신통인가 하면, 시방 한량없고 그지없는 불세계의 모든 소리, 이른바 하늘·용·귀신·건달바·아수라(阿修羅)·가루라(迦樓羅)·긴나라(緊那羅)·마후라가(摩睺羅迦)와 사람인 듯하면서 사람 아닌 듯한 것[人非人] 따위들의 소리와 성인의 소리, 성문·연각·보살·정변지(正遍知)의 소리, 모든 귀 감관에 대한 소리 내지 지옥·아귀·축생과 파리·개미·모기 따위의 소리도 모두 들으며, 모든 중생의 마음 반연하는 곳과 착하고 착하지 않음과 착하지도 않고 착하지 않지도 않은 사업에서 나오는 모든 소리를 모두 이해하며, 입으로 짓는 착한 업, 착하지 않은 업과 착함도 착하지 않음도 아닌 업까지도 모두 사실대로 알며, 또 입의 업이 애욕으로 인하여 성냄을 말하고 어리석음을 말하거나, 성냄과 미움을 인하여 애욕을 말하고 어리석음을 말하거나, 어리석음을 인하여 애욕을 말하고 성냄을 말하거나, 애욕을 인하여 애욕을 말하고 성냄을 인하여 성냄을 말하고 어리석음을 인하여 어리석음을 말하는 이러한 모든 소리를 모두 알며, 또 입의 업이 마음은 깨끗하여도 입은 거칠고, 입은 깨끗하여도 마음은 거칠거나, 입도 깨끗하고 마음도 깨끗하거나, 입도 거칠고 마음도 거친, 이러한 모든 것을 걸림 없는 귀의 신통은 사실대로 알 수 있습니다.
귀의 신통을 얻은 보살의 하늘귀는 또 성인의 소리와 성인의 소리 아닌 것을 아느니라. 그러므로 성인의 소리를 들어도 애착하지 않고 성인의 소리 아닌 것을 들어도 마음에 걸림이 없으며, 성인의 소리에는 크게 사랑하는 마음을 갖추게 되고 성인의 소리 아닌 것에는 큰 슬픔을 갖추게 되며, 과거와 미래의 모든 소리를 들어도 근본 구경의 끝[本際]을 다하는 여실한 바른 지혜를 얻습니다.
이 보살의 하늘귀는 또 모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미묘한 법을 듣게 되며, 듣고는 바른 지혜와 다라니를 기억하여 잊거나 잃어버리지 않고 중생의
[900 / 1773] 쪽
그릇[器]에 따라 설법하되, 모든 법의 견고하거나 견고하지 않은 모양을 잘 압니다.
이 보살이 만약 한 명의 부처님의 설법은 들어도 다른 부처님의 설법은 듣지 못한다면 그럴 수가 없나니 모든 부처님의 연설을 모두 받아 듣습니다. 보살이 착하고 착하지 않음과 착하지도 않고 착하지 않지도 않는 법의 소리를 들음에는 때[時]와 때 아님[非時]을 잘 아나니, 이른바 대중은 있는 때이지만 설법할 때가 아닐 때에는 듣고서 잠잠히 설법함이 없고, 설법은 할 때이지만 대중이 없을 때에 어떤 한 사람이 받게 된다면 비록 설법할지라도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은 진실하여도 다른 사람을 손상시킬까 염려하여 설법하지 않기도 하고 사실은 진실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을 이익 되게 한다면 청정한 마음으로 방편에 따라 설법하기도 하며, 기쁜 소리라면 듣고 기쁘지 않는 소리라면 다시 듣지 않으며, 만약 대중 속에서 여러 중생을 위해 설법할 때에는 그 귀의 식별[耳識]의 이해하고 느끼는 것에 따라 이 보살의 하늘귀는 모두 듣고 알게 되며, 설법할 때에 어떤 중생이라도 깨달아 아는 자는 법을 들은 것이고 깨달아 알지 못하는 자는 법을 듣지 못한 것입니다.
이 보살의 귀 경계는 법의 경계와 같이 그 본성이 청정하여 나와 다른 사람과 중생의 성품이 모두 청정함을 알아보기 때문에, 이 보살은 귀의 경계를 바르게 분별함이 언어 문자로 말하는 모양과 같습니다. 만약에 다섯 가지 갈래[五趣]의 잡된 중생이 있더라도 그들의 이해하는 언어와 음성에 따라 설법하나니, 이 하늘귀를 지님은 여래의 얻은 귀 경계에 회향하여 다른 승(乘)을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의 하늘귀 신통은 다함없는 것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의 남의 마음 아는 신통도 한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남의 마음 아는 신통인가 하면, 모든 중생의 상·중·하의 마음을 보살은 모두 아는 것입니다. 어떤 중생은 보시의 뿌리에 인연한 심상(心相)인 줄을 알고 어떤 중생은 계율의 뿌리에 인연한 심상인 줄을 알며, 어떤 중생은 인욕의 뿌리에 인연한 심상인 줄을 알고 어떤 중생은 정진의 뿌리에 인연한 심상인 줄을 알며, 어떤 중생은 지혜의 뿌리에 인연한 심상인 줄을 알.....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대방등대집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집경(92)-920 (0) | 2016.01.14 |
---|---|
대집경(91)-910 (0) | 2016.01.13 |
대집경(89)-890 (0) | 2016.01.11 |
대집경(88)-880 (0) | 2016.01.10 |
대집경(87)-870 (0) | 2016.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