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4년전 시청에 근무할 때입니다. 34살에 처음 불교를 접한 것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일찍 접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하지만 늦게나마라도 불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천만다행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감사에 감사를 해 봅니다.
당시 근무하면서 시간의 여유가 있어 월간동아라는 월간지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넘기면서 읽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죠. 그것은 다름 아닌 성철스님의 "영원한 자유"라는 저서에 대해 간략하게 내용을 담은 것이었습니다. 읽는 당시만
하더라도 불교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간혹 기사를 통해 성철스님이라는 고명한 분을 알고는 있는 정도였죠. 간략하지만 매우
깊이 있는 함축된 내용였는지라 그 책을 사서 읽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시청과 가까운 교보문고에 가서 샀던 것으로 생각되는군요. 무언가 하게 되면 그냥 몰입하는 성격이라 책을 손에 놓지 않고 출퇴근길에 읽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지하철 출근길에 책을 읽던중 저한테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귀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눈에
온통 눈물 투성이었습니다. 너무 많이 흘러 주변 사람들이 눈치 챌까봐 신경이 쓰일 정도였죠. 그 글귀는 "우리네 중생들은 세세생생 윤회를
거듭하면서 고통으로 인한 눈물(즉 이별의 고통, 죽음에 따른 슬픔의 고통, 기쁨의 눈물 등)을 넓은 바다를 채우고도 남을만큼 많이 흘렸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일회성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불서를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나중에는 한글로 번역되어 나온 한글판대장경
까지 구입하여 읽었습니다. 저에게는 거의 새로운 신천지가 전개되는 듯한 느낌이었고 즐기지는 않았지만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육식도 멈추고 채식으로 전환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더군요. 육고기는 물론 생선, 계란, 멸치 등 일체의 육식을 취하지 않고 채식으로 전환하니까 어떤 현상이 일어났냐면은 잠시 앉았다가 일어나면 갑자기 눈앞이 까맣게 변하면서 어지러워지더군요. 한데 잠시 동작을
멈추고 기다리다보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었구요. 그러한 현상이 약 보름 정도 가더군요. 그 기간중에 잠시 먹었던 마음은 이러다가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이왕 굳게 마음 먹은 것, 물러설 수 없다 라고 마음 먹고 밀어붙였죠. 그러면서 약
1년 4개월 동안 끌고 갔고 좌선도 병행하면서 말입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먼저 잠이 많이 줄어 하루에 약 2시간 정도 잤던 것으로 기억이
되고 그러고도 피곤하지가 않고 정신이 그렇게 맑았었습니다. 또 하나는 섭취하는 것이 오로지 채식인지라 큰일을 볼 때 냄새를 맡으면 거의
악취가 나지 않더군요. 반찬이라는 것이 오로지 김치 정도였던 것으로 생각이 되며 김치를 담글 때 들어가는 젖갈도 비린내가 나서 소금으로만 절여 담그기도 했었습니다.
요즘은 채식이 주이지만 멸치, 계란, 우유 정도는 섭취하고 있고 친구들과의 모임, 동호회 모임 등 이런 자리에선 가급적이면 불교라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고기를 먹기는 합니다. 하지만 영양을 생각하며 먹을 뿐이지 맛으로 즐기지는 않습니다. 불자님들 대부분도 그러하겠지만
우리네 불법을 모시는 불자는 윤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하나하나의 소소한 것들도 금생뿐만 아니라 내생에 아주 크나 큰
영향을 끼치니까요. 소위 과보 즉 업으로 따라오는 것이죠. 저는 먹는 것에 대해서 불교를 알고난 후 부터는 그리 욕심이 없습니다. 그전에는
크지는 않지만 대식가였드랬습니다. 지금은 소식으로 하고 있고 어떤 음식이 어떤 영양분을 갖고 있어 먹어야 겠다라는 생각은 없고 그저
세끼를 채우는 데 있어 채식 위주로 하고 가끔 단백질 섭취를 위해 두부를 제법 많이 섭취하고 몇일에 한번 번데기를 먹는 정도입니다.
먼저번에 실었던 핸드폰 이야기에 이어 먹을거리에 대해 실어봤습니다만 물욕, 식욕 이 두가지가 우리 사람들의 생활에 아주 밀접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소 이런 욕심들을 자제해 가면서 불법을 수행해 나간다면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자못 판단해 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석가모니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