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86)-86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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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고 쇠모(衰耗)한 보시가 없고 후생(後生)을 구하여 보시하지 않고 자재로이 재보(財寶) 얻기를 구하여 보시하지 않습니다.
제석과 범천과 호세(護世)천왕과 전륜(轉輪)성왕의 모든 과보를 구하여 보시하지 않고 성문과 연각의 승(乘)을 원하여 보시하지 않고 왕자로서 자재롭게 되기를 구하여 보시하지 않고 한 세상을 위하는 까닭으로써 보시하지 않고 만족을 느끼는 보시가 없고 모든 지혜를 회향하지 않는 보시가 없고 청정하지 않은 보시가 없고 때(時) 아닌 보시가 없고 해독스러운 보시가 없고 중생을 괴롭게 하는 보시가 없습니다.
보살이 행하는 보시는 슬기로운 이의 깔보거나 웃음거리가 되지 않나니, 왜냐하면 공적(空寂)을 관찰하여 보시를 행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세 가지 존재의 모양을 벗어나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곳(處)을 취하지 않고서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해탈을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마군을 조복하기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번뇌와 애욕을 끊기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증상(增上)하기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잘 분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보리를 돕기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바르게 회향하기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도량과 해탈의 과(果)를 장엄하기 위하여 보시하므로 다함이 없으며, 이 보시는 끝이 없으므로 다함이 없으며, 이 보시는 헒이 없으므로 다함이 없습니다.
또 이 보시는 끊이지 않으므로 다함이 없으며, 이 보시는 넓고 크므로 다함이 없으며, 이 보시는 머묾이 없으므로 다함이 없으며, 이 보시는 항복이 없으므로 다함이 없으며, 동등함이 없는[無等等] 보시이므로 다함이 없으며, 이 보시는 온갖 지혜에 나아가므로 다함이 없나니, 사리불이여, 이를 보살이 보시를 수행하되 다함없음이라 합니다.”
그때 사리불이 무진의보살에게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선남자여, 그대는 이미 보살마하살이 단바라밀을 수행하는 것의 다함없음을 쾌히 말하였습니다. 원컨대 그대는 보살의 시(尸)바라밀을 말해주십시오. 보살이 얻는 다함없는 시바라밀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무진의보살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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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불이여, 보살의 계율이 67종류가 있는데 그 계율을 청정하게 닦음[修治]도 다할 수 없습니다.
그 67종류를 말하자면,
모든 중생을 괴롭히거나 해치지 않음이요,
다른 사람의 재물을 도둑질하지 않음이요,
다른 사람의 부녀(婦女)를 삿되게 보지 않음이요,
모든 중생을 속이는 일이 없음이요,
처음부터 두 가지 말을 하지 않음이요,
자기의 권속에 만족한 줄을 알기 때문이요,
나쁜 말을 하지 않음은 거칠고 더러움을 참기 때문이요,
나쁜 말을 하지 않음은 거칠고 더러움을 참기 때문이요,
꾸미는 말이 없음은 항상 착하게 말하기 때문이요,
다른 사람의 즐거운 일을 탐내거나 질투하지 않음이요,
처음부터 성내거나 미워함이 없음은 나쁜 말을 참기 때문이오.
바른 소견으로 삿되지 않음은 다른 도(道)를 천시하기 때문이요,
부처님을 깊이 믿음은 마음이 흐리지 않기 때문이요,
법을 믿어서 수순함은 법을 잘 관찰하기 때문이요,
승을 믿어 공경함은 선인의 무리를 존중하기 때문이요,
엎드려 절함은 부처님을 염하기 때문이요,
엎드려 절함은 법을 생각하기 때문이요,
엎드려 절함은 승을 높여 공경하기 때문이요,
금계(禁戒)를 굳게 가져 모든 것에 범함이 없음은 조그마한 금계까지도 방사(放捨)하지 않기 때문이요,
완전한 계율을 가짐은 다른 승(乘)에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요,
뚫어지지 않는 계율을 가짐은 나쁜 곳에 태어남을 여의기 때문이요,
거칠지 않는 계율을 가짐은 모든 번뇌에 섞이지 않기 때문이요,
더럽지 않은 계율을 가짐은 깨끗한 법을 자라게 하기 때문이요,
매우 깊은 계율을 가짐은 뜻에 따라 회향하여 자재로움을 얻기 때문이오.
찬탄할 계율을 가짐은 슬기로운 이도 가책하지 않기 때문이요,
순수하고 착한 계율을 가짐은 바르게 연하여 알기 때문이요,
가책하지 않는 계율을 가짐은 모든 계율에 산란하지 않기 때문이요,
착하고 견고한 계율을 가짐은 모든 감관을 보호[防護]하기 때문이요,
명문(名聞:명성)의 계율을 가짐은 모든 부처님께 염하기 때문이요,
지족(知足)의 계율을 가짐은 만족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요,
소욕(小欲)의 계율을 가짐은 탐내고 아낌을 끊어버리기 때문이요,
성정(性淨)의 계율을 가짐은 몸과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이요,
아란야(阿蘭若)의 계율을 가짐은 시끄러움을 여의기 때문이요,
성종(聖種)의 계율을 가짐은 다른 사람의 뜻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위의(威儀)의 계율을 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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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온갖 선근을 자재롭게 하기 때문이오.
설한 대로[如說] 계율을 가짐은 사람과 하늘이 기뻐하기 때문이요,
사랑하는 마음의 계율을 가짐은 중생을 옹호하기 때문이요,
슬퍼하는 마음의 계율을 가짐은 모든 괴로움을 참기 때문이요,
기뻐하는 마음의 계율을 가짐은 마음이 게으르지 않기 때문이요,
평정한 마음의 계율을 가짐은 사랑과 미움을 여의기 때문이요,
자성(自省)하는 계율을 가짐은 잘 분별하기 때문이요,
단결(短缺)하는 계율을 가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옹호하기 때문이요,
잘 거둬주는 계율을 가짐은 잘 수호하기 때문이요,
혜시(惠施)하는 계율을 가짐은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이요,
인욕의 계율을 가짐은 마음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요,
정진의 계율을 가짐은 물러나지 않기 때문이요,
선정의 계율을 가짐은 모든 선의 갈래[禪支]를 자라나게 하기 때문이요,
지혜의 계율을 가짐은 선근을 많이 들어도 만족함이 없기 때문이오.
다문(多聞)의 계율을 가짐은 널리 배워서 꿋꿋하기 때문이요,
선지식에 친근하는 계율을 가짐은 보리를 조성하기 때문이요,
악지식을 멀리 여의는 계율을 가짐은 나쁜 도(道)를 멀리 여의기 때문이요,
몸을 아끼지 않는 계율을 가짐은 덧없는[無常] 생각을 관찰하기 때문이요,
목숨을 아끼지 않는 계율을 가짐은 선근을 부지런히 행하기 때문이요,
뉘우치지 않는 계율을 가짐은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삿된 생활[邪命]이 아닌 계율을 가짐은 심행이 청정하기 때문이요,
초조하지 않은 계율을 가짐은 필경 청정하기 때문이요,
사르지 않는[不燒] 계율을 가짐은 착한 행업을 닦기 때문이요,
교만 없는 계율을 가짐은 마음을 낮추어 교만하지 않기 때문이요,
흔들리지 않는 계율을 가짐은 모든 욕심을 멀리 여의기 때문이오.
높지 않은 계율을 가짐은 마음이 곧기[平直] 때문이요,
유화(柔和)한 계율을 가짐은 마음에 충돌이 없기 때문이요,
조복된 계율을 가짐은 괴롭히거나 해침이 없기 때문이요,
적멸(寂滅)한 계율을 가짐은 마음에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요,
순한 말[順語]의 계율을 가짐은 말과 같이 행하기 때문이요,
중생 교화하는 계율을 가짐은 말과 같이 행하기 때문이요,
중생 교화하는 계율을 가짐은 거둬주는 법[攝法]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요,
바른 법 옹호하는 계율을 가짐은 진실다움을 어기지 않기 때문이요,
원과 같이 성취하는 계율을 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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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여러 중생에게 마음을 평등이 하기 때문이요,
부처님께 친근하는 계율을 가짐은 여래의 위없는 계율을 구하기 때문이요,
부처님삼매에 들어가는 계율을 가짐은 모든 불법을 원만히 갖추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의 67종류 깨끗이 다스리는 계율의 다함없음이라 합니다.
또 사리불이여, 보살은 다함없이 청정한 계율 속에 의착(倚着)함이 없나니, 이른바 나[我]·남[人]·중생(衆生)·수명(壽命)·양육(養育)·장부[士夫]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과 땅·물·불·바람을 깨뜨림이요, 이 청정한 계율 속에는 눈과 색의 모양과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촉감, 뜻과 법 등의 모양이 없고 또 몸과 마음도 없나니, 이 계율의 일정한 모양은 한결같지 않기 때문이요, 이 계율의 분별된 모양은 방편으로써 모든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며, 이 계율의 공한 모양은 모양 없는 짬을 얻어 삼계(三界)에 섞이지 않기 때문이며, 이 계율의 조작할 수 없음은 무생법인[無生忍]이기 때문이요, 이 청정한 계율 속에는 이미 조작된 것과 이제 조작함과 앞으로 조작할 것이 없고, 이 청정한 계율은 과거에 멸하지 않았고 미래에 오지 않고 현재에 머물지 않습니다.
또 사리불이여, 이 청정한 계율 속에는 마음이 깨끗하여서 더러움이 없고 식(識)이 머물지 않고 생각이 친근하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욕계(欲界)에 의지하지 않고 색계(色界)에 가까이하지 않고 무색계(無色界)에 머물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욕심의 티끌을 내버리고 성냄의 거리낌을 제거하고 무명의 막힘을 없애며, 이 청정한 계율은 단(斷)이 아니고 상(常)이 아니고 인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나란 모양이 없고 내 것이란 모양을 버리고 신견(身見)에 머물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을 붙인 이름을 취하지 않고 물질 모양에 머물지 않고 이름과 색[名色]에 혼잡하지 않습니다.
이 청정한 계율은 인(因)에 매이지 않고 모든 소견을 일으키지 않고 의심과 뉘우침에 머물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에 머물지 않고 선근에 집착하지 않으며, 이 청정한 계율은 열뇌(熱惱)가 없고 고요하여 모양을 여의며, 이 청정한 계율이 부처님 종자[佛種]를 끊지 않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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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법을 구하기 때문이며, 법 종자[法種]를 끊지 않음은 법 성품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며, 승가 종자[僧種]를 끊지 않음은 함이 없음[無爲]을 닦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청정한 계율을 가짐이란, 상속(相續)하여 끊지 않으므로 다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범부의 계율은 곳에 따라 수생(受生)하므로 다함이 있고, 사람 가운데 10선(善)이 다하므로 다함이 있고, 욕계 여러 하늘은 복 갚음의 공덕이 다 되므로 다함이 있고, 색계 여러 하늘은 선정의 한량없는 마음이 다 되므로 다함이 있고, 무색계 하늘은 선정에 들어감이 다 되므로 다함이 있고, 외도(外道)와 선인(仙人)의 모든 계율은 신통을 잃어버리므로 다함이 있고, 모든 성문과 배울 것이 있고 배움이 없는 계율은 열반에 드는 짬이 다 되므로 다함이 있고, 벽지불의 계율은 크게 슬픈 마음[大悲心]이 없으므로 다함이 있습니다.
보살의 청정한 계율은 다함이 없나니, 왜냐하면 이 계율 안에서 모든 계율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마치 종자가 다함이 없으므로 열매도 다함이 없는 것처럼, 이 보리의 종자는 다할 수 없는 까닭에 여래의 금계도 다함이 없나니, 그러므로 여래 대사들이 가진 모든 계율은 다 다함없습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이 청정한 계율을 닦아 가짐이 다함없음이라 합니다.”
그때 사리불은 무진의보살에게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선남자여. 그대는 이미 보살의 시바라밀의 다함없음을 쾌히 말하였습니다. 원컨대 그대는 다시 보살의 찬제바라밀을 말해주십시오. 어떤 것을 보살이 얻는 다함없는 찬제바라밀이라 합니까?”
무진의보살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서른두 종류의 일을 갖추어 참음[忍辱]을 수행하는 것 또한 다함없습니다.
그 서른두 종류란 것은,
모든 번뇌를 끊으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아는 것이니,
해치는 마음을 내지 않으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얽매임이 없으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괴로움이 없으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덮임이 없으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성냄이 없으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다툼이 없음으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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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없으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모든 티끌 세계에서도 마음이 다르지 않으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자기와 다른 사람을 옹호하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보리심에 수순하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입니다.
잘 생각하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두 가지 생각[想]이 없으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업보를 알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몸[身]을 장엄하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입[口]의 연설이 깨끗하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뜻[意]이 청정하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마음이 청정하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마음이 견고하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말씀이 자재로우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생각[億想]하지 않으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마음을 잘 분별하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옹호하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범세(梵世)의 행을 닦으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사람과 하늘의 과보를 받으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아는 것입니다.
몸의 모양이 훌륭하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미묘한 범(梵)의 음성을 갖추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모든 과환(過患)을 제거하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모든 거칠고 더러움을 끊어 버리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모든 착하지 못한 뿌리를 끊으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모든 번뇌의 적(賊)을 죽이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괴롭히고 해치는 중생을 초월하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앎이요,
모든 불법을 원만히 갖추므로 마땅히 이 참음을 아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보살의 서른두 종류 참음을 수행하는 것이 다함없음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어떤 것을 참음이라 하는가 하면,
욕설하는 자가 있더라도 잠자코 받아들여 보복하지 않음은 그 음성이 메아리의 모양 같음을 잘 알기 때문이며,
가책하는 자가 있더라도 그대로 받아들임은 몸뚱이의 모양이 그림자와 같음을 잘 알기 때문이며,
성내는 자가 있더라도 마음에 원한을 품지 않음은 심법(心法)이 허깨비 모양[幻相]과 같음을 잘 알기 때문이며,
분한 일이 있더라도 그 분함을 보복하지 않음은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명예로운 말을 들어도 마음에 애착하지 않음은 스스로 훌륭한 체하지 않기 때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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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롭지 않은 말을 들어도 마음에 장애를 일으키지 않음은 공덕을 원만히 갖추기 때문입니다.
영달과 이익[榮利]이 있더라도 기뻐하지 않음은 잘 스스로 조복하기 때문이며,
쇠하여 줄어드는[衰耗]일이 있더라도 거리끼지 않음은 마음이 적멸(寂滅)하기 때문이며,
칭찬하는 자를 보아도 마음이 움직이지[驚動] 않음은 분별하여 잘 알기 때문이며,
헐뜯는 자를 보아도 마음이 위축되지 않음은 그 마음이 넓고 크기 때문이며,
비웃는 자를 보아도 그 마음이 낮아지지 않음은 편히 머물기 때문이며,
추켜세우는 자를 보아도 그 마음이 높아지지 않음은 기울거나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며,
즐거운 일을 당하여도 마음에 기뻐하지 않음은 함이 있는[有爲] 법과 덧없는[無常] 모양을 관찰하기 때문이며,
괴로운 일을 당하여도 마음에 지치거나 싫어하지 않음은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며, 세간법에 물들지 않음은 의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괴로움을 참아 받음은 위급한 자를 보고는 자신이 대신하기 때문이며,
마디마디 사지가 분해되더라도 이것을 참음은 깨달음의 갈래[覺支]를 원만히 갖추기 때문이며,
괴로움이 몸에 더하더라도 다 견디어 받음은 부처님의 몸 모양[身相]을 갖추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의 허물[過患]을 참음은 업력(業力)을 잘 짓기 때문이며,
번뇌[燒熱]를 드러내어 모든 고행을 닦음은 외도를 조복하기 때문이며,
현전에서 모든 도(道)에 들어감은 제석(帝釋)·범천(梵天)·호세(護世) 등 여러 천왕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니, 이것을 보살의 참음이라 합니다.
또 필경 참음이란 서로 다툼이 없는 것이니, 왜냐하면 만약에 다른 사람이 나를 꾸짖는다고 보고 참는다면 이러한 참음은 두 가지 모양을 관하는 것이므로 필경의 참음이 아니며,
누가 나를 꾸짖는다고 말을 하여도 이러한 참음은 법 공덕이므로 필경의 참음이 아니며,
눈[眼]을 꾸짖는 것이라 하여도 이러한 참음은 감관[入]의 모양을 관하는 것이므로 필경의 참음이 아니며,
귀·코·혀·몸이거나 뜻을 꾸짖는 것이라 하여도 이러한 참음은 모든 감관을 관하는 것이므로 필경의 참음이 아니며, 만약에 꾸짖는 이가 없다고 하여도 이러한 참음은 나 없음[無我]을 관하는 것이므로 필경의 참음이 아닙니다.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참음은 메아리의 모양을 관하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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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의 참음이 아니며, 저 사람과 나는 다 덧없음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참음은 덧없음을 관하는 것이므로 필경의 참음이 아니며,
저 사람은 뒤바뀌고 나는 바뀜이 없다고 한다면 이러한 참음은 높고 낮음을 관하는 것이므로 필경의 참음이 아니며,
저 사람은 부지런히 행하지 않고 나는 부지런히 행한다고 한다면 이러한 참음은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관하는 것이므로 필경의 참음이 아니며,
저 사람은 악도(惡道)에 머물고 나는 선도(善道)에 머문다고 한다면 이러한 참음은 선악을 관하는 것이므로 필경의 참음이 아니며,
나는 덧없음은 참아도 덧 있음[有常]은 참지 않는다거나, 나는 괴로움을 참으므로 모든 즐거움을 받지 않는다거나, 나는 무아는 참아도 유아(有我)는 참지 않는다거나, 나는 청정하지 않음은 참아도 청정함은 참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러한 참음은 상대가 있음을 관하는 것이므로 필의 참음이 아닙니다.
나는 공(空)은 참아도 모든 견(見)은 참지 않는다거나, 나는 무상(無相)은 참아도 모든 깨달음은 참지 못한다거나, 나는 무원(無願)은 참아도 원은 참지 않는다거나, 나는 조작 없음은 참아도 조작은 참지 않는다거나, 나는 번뇌 다함은 참아도 번뇌 있음은 참지 않는다거나, 나는 착함은 참아도 착하지 못함은 참지 않는다거나, 나는 출세는 참아도 다툼은 참지 않는다거나 나는 누(漏) 없음은 참아도 누 있음은 참지 않는다거나, 나는 흰[白] 법은 참아도 검은 법은 참지 않는다거나, 나는 적멸(寂滅)은 참아도 생사는 참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러한 참음은 상대를 관하는 것이므로 필경의 참음이 아니라 합니다.
필경의 참음은 어떤 것인가 하면, 만약에 공적(空寂)에 들어서 모든 견(見)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공(空)에 의착(倚著)하지도 않는다면 이 모든 견도 다 공하리니, 이러한 참음은 두 가지 모양이 없으므로 필경의 참음이며, 무상에 들어서 모든 깨달음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모양 없는 것에 의착하지도 않는다면 이 깨달음도 다 공하리니, 이러한 참음은 두 가지 모양이 없으므로 필경의 참음이며, 무원에 들어서 원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원 없는 것에 의착하지도 않는다면 이 원도 다 공하리니, 이러한 참음은 두 가지 모양이 없으므로 필경의 참음입니다.
다한 번뇌[盡結]에 들어서 번뇌와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다만 번뇌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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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않는다면 모든 번뇌가 다 공하리니 이러한 참음은 두 가지 모양이 없으므로 필경의 참음이며,
착함에 들어서 착하지 않음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착한 것에 의착하지 않는다면 착하지 않음도 다 공하리니 이러한 참음은 두 가지 모양이 없으므로 필경의 참음이며,
출세에 들어서 세간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출세에 의착하지도 않는다면 재세(在世)도 다 공하리니 이러한 참음은 두 가지 모양이 없으므로 필경의 참음이며,
다툼 없음에 들어서 다툼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다툼 없는 것에 의착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참음은 두 가지 모양이 없으므로 필경의 참음이며,
누(漏) 없음에 들어서 누와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누 없는 것에 의착하지 않는다면 모든 누가 다 공하리니 이러한 참음은 두 가지 모양이 없으므로 필경의 참음입니다.
흰 법에 들어서 검은 법과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흰 법에 의착하지도 않는다면 검은 법도 다 공하리니 이러한 참음은 두 가지 모양이 없으므로 필경의 참음이며,
적멸(寂滅)에 들어서 생사와 더불어 화합하지 않고 적멸에 의착하지 않는다면 생사도 다 공하리니 이러한 참음은 두 가지 모양이 없으므로 필경의 참음입니다.
만약에 성품이 스스로 나지[生] 않고 다른 데를 따라 나지도 않고 화합하여 나지 않고 내는 것도 없고 파괴할 수도 없다면, 파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다할 수 없음이니 이러한 참음은 필경의 참음이며,
조작과 조작 아님이 없어서 의착함이 없고 분별이 없고 장엄이 없고 다스림[修治]이 없고 나아감[發進]이 없어 마침내 지어내지[造生] 않는다면, 지어냄이 없는 것이 바로 다할 수 없음이니, 이러한 참음은 남[生]이 없는 참음이요, 남이 없는 참음은 내지 않는 참음이요, 내지 않는 참음은 필경의 참음입니다.
이와 같이 보살은 이 참음을 수행하여 수기(授記)의 참음을 얻나니,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의 참음을 수행하는 것이 다함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참음을 말할 때에 모든 대중들이 무진의보살을 찬탄하여 말하였다.
“선남자여, 훌륭하고 훌륭하다. 쾌히 이 참음을 말씀하였도다.”
이렇게 말하고는 곧 갖가지 희유한 꽃과 가루 향, 바르는 향, 무수히 찬란한 옷과 당기·보배 일산을 뿌려 무진의보살을 공양하고, 백천의 기악(伎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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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공중에서 자연스럽게 소리를 내어 이런 말을 하였다.
“만약에 중생으로서 여래의 아주 깊은 참음을 얻고자 한다면, 이 자연스러운 소리를 듣더라도 놀라거나 겁내지 않으리라.”
이때 여러 꽃·향·찬란한 옷과 당기·일산이 두루 넘쳐서 이 삼천대천세계를 가득하게 하였다.
그때 부처님께서 무진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 몸으로 그릇(器)을 만들어, 네가 공양하는 꽃·향 등을 그 안에 넣을 수 있겠느냐?”
무진의보살이 말하였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신통의 힘으로 곧 몸을 그릇으로 만들겠나이다.”
그 때 무진의보살이 곧 보살의 색신(色身)삼매에 들었다. 삼매에 들고는 온갖 공양 거리를 다 배꼽 속에 넣었으나 그 몸의 한계는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았다.
그때 대중 가운데 대장엄(大莊嚴)이란 보살이 무진의보살에게 물었다.
“선남자여, 이제 들어간 삼매의 이름은 무엇이기에 모든 공양거리를 다 몸 속에 넣어도 몸의 한계는 변함없어 더하거나 덜 하지 않습니까?”
무진의보살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그 삼매의 이름은 모든 색신삼매라는 것입니다.”
대장엄보살이 말하였다.
“이 삼매 선정은 또 다른 어떤 세력이 있습니까?”
무진의보살이 말하였다.
“이 삼매의 힘은 능히 몸 한계로 하여금 삼천대천세계의 물질을 다 받아들여도 몸의 한계는 더하거나 덜 하지 않습니다.”
그때 대중 가운데 있던 어떤 사람과 하늘들은 이런 생각을 하였다.
‘어떻게 하면 이 선정의 힘을 볼 수 있겠는가?’
이때 부처님께서 모든 사람과 하늘 대중들의 생각을 아시고 무진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네가 이 선정의 신통력을 나타내어 보일지어다.”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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