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집경(85)-85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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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머묾은 희론하지 않기 때문이며, 발심을 비유할 수 없음은 서로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며, 발심을 금강(金剛)처럼 함은 모든 법을 헐기 때문이며, 발심을 다함이 없음은 한량없는 공덕을 다 성취하기 때문이며, 발심을 평등하게 함은 중생을 이익케 하기 때문이며, 발심을 널리하여 덮어줌은 분별하거나 달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발심을 선명하게 함은 성품이 항상 깨끗하기 때문이며 발심하되 더러움이 없음은 지혜가 밝기 때문이며, 발심하되 잘 이해함은 필경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며, 발심하되 광쾌(廣快)히 함은 자비하기가 허공 같기 때문이며, 발심을 광대히 함은 모든 중생을 다 용납하여 받아들이기 때문이며, 발심하되 걸림이 없음은 지혜가 통달하기 때문이며, 발심을 두루 이르게 함은 큰 슬픔[大悲]을 끊지 않기 위함이며, 발심하되 끊임이 없음은 잘 이해하여 원력을 세우기 때문이며, 발심하되 귀의함은 여러 부처님이 칭찬하기 때문입니다.
또 발심을 뛰어나게 함은 2승(乘)이 높여 우러르기 때문이며, 발심을 심원하게 함은 모든 중생으로서는 알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며, 발심을 실패하지 않음은 불법을 무너뜨리지 않기 때문이며, 발심을 안온하게 함은 중생들과 모든 쾌락을 같이하기 때문이며, 발심을 장엄하게 함은 모든 공덕을 다 성취하기 때문이며, 발심하되 잘 관찰함은 지혜를 성취하기 때문이며, 발심하되 더 자라나게 함은 뜻대로 시여(施輿)하기 때문이며, 발심을 원력과 같이 함은 계(戒)가 청정하기 때문이며, 보리심을 내어 원수나 친한 이에게 널리 미치게 함은 참음을 갖추기 때문입니다.
발심하여 파괴함이 없음은 정진을 갖추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고요함은 선정을 갖추기 때문이며, 발심하여 헐뜯음이 없음은 지혜를 갖추기 때문이며, 발심하되 원(願)이 없음은 크게 자애로운 마음[慈心]을 더 자라게 하기 때문입니다.
보리심을 내어 뿌리에 머물기를 굳게 함은 크게 슬픈 마음[悲心]을 더 자라게 하기 때문이며, 발심하되 화하고 즐겁게 함은 크게 기쁜 마음[喜心]을 더 자라게 하기 때문이며, 발심하되 움직이지 않음은 크게 평정한 마음[捨心]을 더 자라게 하기 때문이며, 발심하되 책임이 중함은 여러 부처님께 받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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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며, 발심하되 끊지 않음은 삼보를 끊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은 이같이 모든 지혜를 위하여 보리심을 내나니, 어찌 다할 수 있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마치 허공이 다함없는 것처럼, 모든 지혜를 위하여 보리심을 냄도 그러합니까?”
무진의가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부처님 계율의 다함이 없음도 계율로 인하여 발심하기 때문에 다할 수 없으며, 부처님 선정의 다함이 없음도 선정으로 인하여 발심하기 때문에 다할 수 없으며, 부처님 지혜의 다함이 없음도 지혜를 인하여 발심하기 때문에 다할 수 없으며, 부처님 해탈의 다함이 없음도 해탈을 인하여 발심하기 때문에 다할 수 없으며, 부처님 해탈 지견(知見)의 다함이 없음도 해탈 지견으로 인하여 발심하기 때문에 다할 수 없음이니, 사리불이여, 여래의 계율·선정·지혜와 해탈·해탈 지견은 그 성품의 다함없음이 이 다섯 가지를 인하여 발심하나니, 어찌 다할 수 있겠습니까?”
여래의 10력과 4무소외와 18불공법의 다함없음도 이러한 것을 인하여 보리심을 내므로 다함이 없습니다.
사리불이여, 대개 요약하여 말하자면, 모든 여래로서 다함이 없음은 이 발심을 인하기 때문에 다함없으며, 삼보가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다함없으며, 중생의 성품이 다함없기 때문에 다함없으며, 실다운 지혜가 다함없기 때문에 다함없으며, 여러 중생의 한량없는 마음과 행에 따르는 지혜가 다함없기 때문에 다함없으며, 가장 훌륭한 것을 회향함이 다함없으므로 다함없으며, 중생을 교화함이 다함없으므로 다함없으며, 다함없는 지혜는 남[生]이 없기 때문에 다함없으며, 성품의 남이 없음을 여의기 때문에 다함없으며, 모든 법 본성의 다함없음을 앎으로써 다함없습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이 보리심 내는 것이 다함없다고 합니다.
사리불이여, 이는 보살의 마음이 청정하여 다함이 없는 것이요, 마음이 청정한 것은 아첨을 하지 않기 때문이고, 아첨을 하지 않음은 간사함이 없기 때문이고, 간사함이 없음은 잘 분별하기 때문이고, 잘 분별함은 삿된 생활[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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命]이 없기 때문이고, 삿된 생활이 없음은 마음이 청정하기 때문이고, 마음이 청정함은 항상 바르기[正一] 때문이고, 항상 바른 것은 그 성품이 뛰어나기 때문이고, 성품이 뛰어남은 깔보거나 헐뜯음이 없기 때문이고, 깔보거나 헐뜯음이 없음은 모든 삿된 왜곡[邪曲]을 없애기 때문이고 삿된 왜곡을 없앰은 마음이 순박하고 정직하기[質直] 때문이고 마음이 순박하고 정직함은 평정(平正)에 들어가기 때문이고, 평정에 들어감은 마음이 견실하기 때문이고, 마음이 견실함은 파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파괴할 수 없음은 그 성품이 견고하기 때문이고, 성품이 견고함은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고, 움직일 수 없음은 의지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고, 의지하는 곳이 없음은 나라는 마음을 제거하기 때문이고, 나라는 마음을 제거함은 짝이 없기 때문이고, 짝이 없음은 비방하거나 멸시하지 않기 때문이고, 비방하거나 멸시하지 않음은 착한 업을 짓기 때문이고, 착한 업을 지음은 가책(呵責)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가책이 없음은 과실(過失)을 없애기 때문이고, 과실을 없앰은 열뇌(熱惱)하지 않기 때문이고, 열뇌하지 않음은 성품이 진실하기 때문이고, 성품이 진실함은 거짓말[虛誑]이 없기 때문이고, 거짓말이 없음은 말한 대로 행하기 때문이고, 말한 대로 행함은 일을 잘 하기 때문이고, 일을 잘 함은 결함이 없기 때문이고, 결함이 없음은 그릇됨이 없기 때문이고, 그릇됨이 없음은 막힘이 없기 때문이고, 막힘이 없음은 물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물러나지 않음은 중생을 관찰하기 때문이고, 중생을 관찰함은 큰 슬픔[大悲]의 바탕이 깊기 때문이고, 큰 슬픔의 바탕이 깊음은 중생을 잘 교화하되 지치거나 게으름이 없기 때문이고, 중생을 잘 교화하되 지치거나 게으름이 없음은 자기의 안락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고, 자기의 안락을 구하지 않음은 이끗[利養]을 탐내지 않기 때문이고, 이끗을 탐내지 않음은 애욕에 물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애욕에 물들지 않음은 모든 법을 반연하기 때문이고, 모든 법을 반연함은 넉넉함과 모자람을 관찰하기 때문이고, 넉넉함과 모자람을 관찰함은 중생을 보기 때문이고, 중생을 봄은 항상 옹호하기 때문이고, 항상 옹호함은 귀의하기 때문이고, 귀의함은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고, 더러움이 없음은 잘 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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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때문이고, 잘 관찰함은 기론(譏論)이 없기 때문이고, 기론이 없음은 마음이 순수하고 착하기[純善] 때문입니다.
또 마음이 순수하고 착함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고, 흔들리지 않음은 잘 청정하기 때문이고, 잘 청정함은 언제나 정진하기 때문이고, 언제나 정진함은 안[內]이 청정하기 때문이고, 안이 청정함은 항상 선명하기 때문이고, 항상 선명함은 더럽히거나 물듦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그 청정한 마음은 능히 인색함을 끊고 또 다른 사람을 가르쳐 인색함을 끊게 하며, 그 청정한 마음은 파계를 끊고 또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파계를 끊게 하며, 그 청정한 마음은 성냄과 미움을 끊고 또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성냄과 미움을 끊게 하며, 그 청정한 마음은 게으름을 끊고 또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게으름을 끊게 하며, 그 청정한 마음은 어지러운 마음을 끊고 또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어지러운 마음을 끊게 하며, 그 청정한 마음은 어리석음을 끊고 또 다른 사람을 교화하여 어리석음을 끊게 합니다.
사리불이여, 그 청정한 마음이 이와 같이 모든 착하지 않은 법을 끊고 중생을 착한 법 가운데에 편안하게 하므로, 이를 일러 보살의 청정한 마음은 다함없다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의 심행(心行)의 청정함 또한 다함없나니, 왜냐하면 보살이 보시를 행할 적에 소유한 모든 것을 다 버린다고 보기 때문이며, 보살이 계(戒)를 행함 또한 다함없나니, 모든 금계(禁戒)를 다 지닌다고 보아서 두타(頭陀)의 바른 행으로서 위의를 범함이 없기 때문이며, 보살이 참음[忍]을 행함 또한 다함없나니, 모든 중생을 보되 마음에 미워하거나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며, 보살이 정진을 행함 또한 다함없나니, 모든 착한 법에 정진을 부지런히 닦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보살이 선정을 행함 또한 다함없나니, 모든 선정에 그릇되거나 어지러움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며, 보살이 지혜를 행함 또한 다함없나니, 모든 것을 많이 들음을 닦는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살이 보시를 행하고 계율을 행하고 참음을 행하고 정진을 행하고 선정을 행하고 지혜를 행함이라 합니다.
보살이 자애[慈]와 슬픔[悲]과 기쁨[喜]과 평정[捨]를 행함 또한 다함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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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모든 것을 이익 되게 하고 괴로움을 없애고 기뻐 뛰고 애욕과 성냄을 잘 끊어버린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를 보살이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고 기뻐하고 버리는 것이라 합니다.
보살이 행하는 3업(業)의 청정함은 몸의 3악(惡)과 입의 4과(過)를 여의어서 마음에 3악을 여의게 되나니, 이른바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사견(邪見)이니, 보살이 많이 들음을 닦아 배우되 다함이 없음은 인색하지 않기 때문이며, 보살이 인색함이 없음을 수행함은 온갖 지혜를 모으기 때문이며, 보살이 온갖 지혜를 닦음은 다른 보살을 권하여 도심(道心)을 내게 하기 때문이며, 다른 보살을 권하여 도심을 냄은 선근에 편히 머물도록 수행하기 때문이며, 선근에 편히 머무르게 수행함은 위없는 보리도에 나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위없는 보리도를 원함은 모든 불법을 섭취하기 때문이며, 모든 불법을 섭취함은 네 가지 일을 섭취하기 때문이며, 보살이 네 가지 일 섭취하기를 수행함은 온갖 죄를 참회하기 때문이며, 보살이 참회하는 법을 수행함은 모든 나쁜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며, 보살이 모든 나쁜 것을 드러내기를 수행함은 모든 공덕을 회향하기 때문이며, 보살이 모든 공덕을 회향함은 한량없이 진귀한 보배를 모으기 때문입니다.
한량없이 진귀한 보배를 모음은 모든 부처님께 권청(勸請)하기 때문이며, 모든 부처님께 권청함은 모든 법을 섭취하기 때문이며, 모든 법을 섭취함은 대사(大士)의 법을 행하기 때문이며, 대사의 법을 행함은 중생을 위하여 중대한 임무[重任]를 짓기 때문이며, 중생을 위하여 중대한 임무를 지음은 견고하게 여러 가지 장엄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며, 이 여러 장엄을 버리지 않음은 중생의 모든 착한 일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여, 또 보살마하살은 네 가지 행의 다함없음이 있나니, 그 네 가지 행이란 보살의 심행이 다함없음, 법 보시의 다함없음, 교화의 다함없음, 선근의 다함없음이니, 이를 보살의 다함이 없는 네 가지 행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행의 다함없음이 있으니, 그 네 가지란, 비고 한가한 곳에 있기를 즐겨 위의를 거둬 가지되 만족함이 없으며, 항상 한량없는 공덕 모으기를 즐겨하되 만족함이 없으며, 학문을 많이 구하여 모든 이치를 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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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되 만족함이 없으며, 항상 위없는 보리의 지혜를 원하되 만족함이 없나니, 이를 보살의 네 가지 행의 다함없음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행의 다함없음이 있나니, 그 네 가지란, 교계(校計)를 깨달음이 다함없으며, 칭량(稱量)을 깨달음이 다함없으며, 사유(思惟)를 깨달음이 다함없으며, 법 관찰을 깨달음이 다함없음이니, 이를 보살의 네 가지 행 다함이 없음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행의 다함없음이 있으니 그 네 가지란, 더러움[垢]의 인(因)을 깨달음이 다함없으며, 깨끗한 법을 깨달음이 다함없으며, 모든 번뇌를 꾸짖음이 다함없으며, 깨끗한 법을 찬탄함이 다함없나니, 이를 보살의 네 가지 행 다함이 없음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행의 다함없음이 있으니, 그 네 가지란, 모든 음(陰)의 다함을 관찰함이 다함없으며, 모든 계(界)의 다함을 관찰함이 다함없으며, 모든 입(入)의 다함을 관찰함이 다함없으며 모든 인연의 다함을 관찰함이 다함없음이니, 이들 보살의 네 가지 행 다함이 없음이라 합니다.
보살은 또 네 가지 행의 다함없음이 있으니, 그 네 가지란, 덧없음[無常]의 행을 말함이 다함없으며, 괴로움[苦]의 행을 말함이 다함없으며, 나 없음[無我]의 행을 말함이 다함없으며, 적정(寂靜)과 열반을 말함이 다함없음이니, 이를 보살의 네 가지 행 다함이 없음이라 합니다.
대개 요약하여 말하자면, 보살의 행하는 모든 다함없음이란, 온갖 지혜에 나아가고 온갖 지혜를 높이고 온갖 지혜를 우러름이니, 온갖 지혜는 다함이 없으므로, 이 인연으로써 보살의 행하는 이른 다 다함이 없나니, 이를 보살의 심행 다함없음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의 마음은 마침내 다함이 없나니, 왜냐하면 그 생각하는 바가 한 찰나 동안이라도 항상 보리를 인연하여 마음에 지치거나 싫어하지 않고 오로지 모든 자리[地]에 나아가 생사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며, 필경 키우고 자라게 하여 저 언덕에 이르기 때문이며, 필경 본행(本行)을 더욱 늘어나게[增上] 하기 때문이며, 필경 짐을 여의고 훌륭한 법을 거두기 때문이며, 필경 동등함이 없는 모든 불법을 원만히 갖추기 때문이며, 필경 착한 법을 반연하여 키우고 자라게 하기 때문이며, 필경 심행(心行)의 곳을 도과(到過)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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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때문입니다.
필경 장엄하여도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기 때문이며, 필경 길상(吉祥)한 보리를 수행하여 갖가지의 고행을 다 성취하기 때문이며, 필경 자기의 안락을 바라지 않고 구하지도 않기 때문이며, 필경 수순(隨順)하여 모든 나쁨을 없애기 때문이며, 필경 조복하여 성인의 법[聖法]에 머물기 때문이며, 필경 잡되지 않아 번뇌를 여의기 때문이며, 어려운 보시를 끝까지 하여 머리와 눈이라도 아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계율을 끝까지 하여 금계[禁] 범함을 옹호하기 때문이며, 어려운 참음[難忍]을 끝까지 하여 참는 것은 세력과 나쁜 허물을 없애기 때문이며, 어려운 정진을 끝까지 하여 오로지 고행을 닦아 2승(乘)을 버리기 때문이며, 어려운 선정을 끝까지 하되 마음은 모든 선정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며, 어려운 지혜를 끝까지 하되 모든 선근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심하여 수행함에는 모든 착한 일을 다 성취하기에 이르기 때문이며, 필경 교만과 증상만(增上慢)과 승만(勝慢)과 아만(我慢)과 하만(下慢)과 사만(邪慢)을 멀리 여의고 잘 분별하기 때문이며, 필경 모든 중생에게 보시하되 갚음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며, 필경 깊은 불법을 관찰하여도 놀라지 않기 때문이며, 필경 증진(增進)하여도 정체(停滯)하지 않기 때문이며, 필경 다함이 없이 항상 정진하기 때문이며, 필경 속이지 않고서 반드시 중생을 위해 무거운 짐을 짓기 때문입니다.
또 필경이란 것은 중생을 조복하여 부드럽게 하고 어질고 착한 사람을 사랑으로 덮어 이익 되게 하고 슬퍼하는 마음으로써 모든 악행 하는 자를 구원하며, 높은 어른을 공경하고 보호하는 이 없는 자를 보호하고, 돌아갈 데 없는 자를 돌아가게 하고, 빛[照]이 없는 자에게 빛을 비추어 주고 의지할 데 없는 자를 의지하게 하고 짝이 없는 자를 짝지어 줍니다.
모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착하지 않은 것은 착하게 하고, 간악한 자는 간악하지 않게 하고, 삿된 생활[邪命]을 하는 자는 깨끗하게 하고, 은혜 있는 자나 은혜 없는 자나 은혜 모르는 자를 다 은혜롭게 하고, 이롭지 못한 이를 이롭게 하고, 헛되이 비방하는 자를 진실하게 하고, 교만한 자를 교만하지 않게 하고, 일어나는 자를 헐뜯지 않고, 모든 나쁜 일 하는 자를 고운 말로써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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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고, 방편 행함을 보고서 허물로 삼지 않고, 모든 받는 자에게 평등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다른 보살을 항상 유도(誘導)하여 부드럽고 고운 말로써 가르쳐 훈계하고, 비고 한가한 곳에 있기를 즐겨하여 착한 법을 수행하고, 모든 이끗[利養]을 여의어 신명을 아끼지 않음이니, 삿된 마음[邪念]이 없음은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이며, 말하는 데 삿되거나 아첨함이 없음은 입[口]의 허물을 거두기 때문이며, 삿된 업[邪業]으로써 이익을 구하지 않음은 그 마음이 욕심 적고 만족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 마음이 고르고 부드럽고 화합함은 더러움이 없기 때문이며, 생사에 회향함은 선근을 갖추기 때문이며, 능히 모든 괴로움을 참음은 중생을 위하기 때문이니, 이는 대사(大士)로서 모든 것을 필경 다함없음이라 합니다. 이 보살의 마음은 생사와 번뇌를 길이 파괴할 수 없나니, 왜냐하면 이 마음이 바로 모든 공덕을 증장하기 때문이며, 온갖 중생을 함수(含受)하기 때문이며, 다함없는 묘한 지혜를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대덕이시여, 이를 보살마하살의 필경 다함없음이라 이르는 것입니다.”
그때 사리불이 무진의 보살마하살에게 말하였다.
“선남자여, 또 어떤 다함없는 법이 있습니까?”
무진의보살이 말하였다.
“있습니다. 보살은 단(檀)바라밀을 수행하되 다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살마하살이 보시를 행함은 한량이 없나니, 이른바 먹이[食]를 기다리는 자에게 먹이를 줌은 수명과 변재[辯]와 색력(色力)의 즐거움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마실 것[飮]을 기다리는 자에게 마시는 것을 줌은 목마른 애욕을 여의게 하기 때문이며, 옷[衣]을 기다리는 자에게 옷을 줌은 청정한 색을 갖추어 부끄러움을 없애게 하기 때문이며, 승(乘)을 기다리는 자에게 승을 줌은 온갖 안락을 얻어 신통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등(燈)을 기다리는 자에게 등을 줌은 부처님 눈[眼]의 청정함을 원만히 갖추게 하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기다리는 자에게 음악을 베풀어 줌은 하늘 귀[天耳]의 맑게 트임을 원만히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향을 기다리는 자에게 향을 줌은 몸에서 원만하고 미묘한 향을 내게 하기 때문이며, 꽃목걸이를 기다리는 자에게 꽃목걸이를 줌은 다라니 7각(覺)의 꽃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바르는 향과 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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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을 기다리는 자에게 다 향을 베풀어 줌은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갖추어 그 몸을 향내로 바르게 하기 때문이며, 갖가지 맛을 기다리는 자에게 뜻에 따라 줌은 맛의 모양[味相]을 성취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의지할 데 없는 자에게 의지할 곳을 베풀어 줌은 중생을 위해 충분히 구호하여 의지하게 하기 때문이며, 깔자리[敷具]를 기다리는 자에게 깔자리를 베풀어 줌은 필경 음개(陰蓋)를 끊어버리게 하여 범천과 현성(賢聖)과 여러 부처님의 묘한 상자리[床座]를 성취하기 때문이며, 앉을 자리를 기다리는 자에게 자리를 줌은 삼천대천세계를 도량으로 삼아 금강좌처(金剛坐處)를 다 성취하기 때문이며, 그 기다림에 따라 모든 것을 베풀어 줌은 보리에 온갖 필요한 것을 성취하게 하기 때문이며, 병에 따라 약을 베풀어 줌은 늙고 죽음이 없게 되어 단 이슬[甘露]의 법약(法藥)을 다 성취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환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사환을 급여(給與)함은 자재로운 지혜를 원만히 갖출 수 있게 하기 때문이며, 만약에 금·은·유리·파리(頗梨)·진주·가패(珂貝)·벽옥(碧玉)·산호(珊瑚) 따위의 갖가지 보배로써 혜시(惠施)한다면 이는 대인의 32상을 원만히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갖가지 영락(瓔珞)으로써 혜시(惠施)한다면 이는 80종호(種好)를 원만히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코끼리·말·수레를 혜시한다면 대승을 원만히 갖추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숲[園林]을 가지고서 보시한다면 모든 선의 갈래[禪支]를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처자(妻子)를 가지고서 보시한다면 위없는 도법(道法)의 사랑을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창고의 재보(財寶)로 보시한다면 모든 착한 법의 보배 갈무리[寶藏]를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염부제(閻浮提)나 사천하로써 뜻에 따라 보시한다면 법왕을 원만히 갖추어 자재로움을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즐거운 도구로써 보시함은 한량없는 법의 즐거움을 갖추어 즐겁게 하기 때문이며, 다리와 발로써 보시함은 법의 발을 갖추어 도량에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며, 손으로써 보시함은 법의 손을 원만히 갖추어서 중생을 무마하여 즐거움을 얻게 하기 때문이며, 귀와 코를 가지고서 보시함은 모든 감관을 원만히 갖추어 다 통리(通利)케 하기 때문입니다.
눈을 가지고서 보시함은 걸림 없는 법의 눈[法眼]을 원만히 갖추게 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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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며, 머리를 가지고서 보시함은 삼계(三界) 속에 가장 훌륭한 모든 지혜를 갖추게 하기 때문이며, 피와 살을 가지고서 보시함은 모든 견고하지 못한 것을 견고하게 하기 때문이며, 수뇌(髓腦)를 가지고서 보시함은 금강의 몸을 갖추어 헐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보살은 삿된 생활[邪命]로 재물을 구해서 보시하지 않고, 중생을 괴롭히거나 다른 사람의 재물을 억지로 구하여 도로 남에게 보시하지 않고, 겁내는 보시와 부끄러운 보시와 인색한 보시가 없으며, 그가 허락하는 그대로 손감(損減)하는 보시가 없고 사랑하지 않는 보시가 없으며, 필경 언제나 보시하므로 필경 보시하지 않음이 없으며, 아첨하는 보시와 간사한 보시가 없고 업보를 의심하여 보시하지 않으며, 삿된 생활의 보시가 없고 어리석음의 보시가 없고 믿지 않는 보시가 없고 알지 못한 보시가 없습니다.
지치거나 어려워하는 보시가 없고 의지하거나 집착하는 보시가 없고, 선택하는 보시가 없고 이상(異相)한 보시가 없으며, 받을 자를 구하여 보시하지 않고, 중생으로써 받지 못할 자가 없으므로 계율을 가진 자나 계율을 범한 자에게 더하고 덜한 보시가 없으며, 받는 자에게 갚기를 바라고서 보시하지 않고, 이름을 구하려고 보시하지 않고, 보시를 헐뜯거나 칭찬하지 않고, 교만과 교만 아닌 보시가 없고, 열뇌(熱惱)의 보시가 없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보시하지 않고 보시를 자찬하지 않고 잡되거나 더러운 보시가 없고 업보를 바라고서 보시하지 않고 일정한 곳에 보시함이 없고, 미워하거나 성내거나 더러워하거나 사랑하는 따위의 보시가 없습니다.
와서 애걸하는 자가 있을 때 괴롭게 하거나 해쳐가면서 보시하지 않고 가볍고 쉽게[輕易] 보시함이 없고, 낯을 찡그려가면서 보시하지 않고, 던져주면서 보시하지 않고, 원인[故] 없는 보시가 없고, 손수 주지 않는 보시가 없고, 떳떳하지 않은 보시가 없고, 끊어버리는 보시가 없고, 질투하거나 교만하는 보시가 없고, 제한(際限)하는 보시가 없으며, 그가 허락하는 그대로 무역(貿易)하는 보시를 하지 않고 감임(堪任)하거나 감임하지 않는 보시가 없고 복밭[福田] 아닌 보시가 없고 적은 보시를 깔보지 않고 많은 보시를 찬탄하지.....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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