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등대집경

대집경(88)-880

근와(槿瓦) 2016. 1. 10. 01:17

대집경(88)-88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871 / 1773] 쪽

그러므로 선정의 법을 닦아서 머무는 마음을 조성(助成)합니다.

 

사리불이여, 이러한 중생은 번뇌로 마음이 어지럽기 때문에 보살이 그 중에서 선정을 잘 닦고 조성하여 이 선정으로 하여금 평등한 마음에 머물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를 일러 보살이 선정을 수행한다 하나니, 만약에 중생의 평등한 지혜 속에 머문다면 이를 선정이라 하며, 마음과 행이 평등하고 성품과 모양이 평등하고 필경이 평등하고 발행(發行)이 평등하다면 이를 선정이라 하며,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와 모든 법에 머문다면 이를 지혜라 하며, 선정이 평등하면 중생이 평등하고 중생이 평등하면 모든 법이 평등한 것처럼 이러한 평등에 들어간다면 이를 선정이라 하며, 이 평등한 선정이라면 공과 같고, 공과 같다면 중생이 평등하고 중생이 평등한 것이라면 모든 법이 평등한 것처럼, 이러한 평등에 들어간다면 이를 선정이라고 합니다.

 

또 공(空)이 평등한 것이라면 무상(無相)도 평등하고 무상이 평등하다면 무원(無願)도 평등하고 무원이 평등하다면 지음 없음도 평등하고 지음 없음이 평등한 것이라면 중생도 평등하고 중생이 평등한 것이라면 모든 법이 평등한 것처럼, 이러한 평등에 들어간다면 이를 선정이라 합니다.

 

또 자기 마음이 평등함으로써 다른 사람 마음도 평등함을 선정이라 하나니, 모든 평등이란 것은 이른바 날카로움[利]과 쇠함[衰]이 땅·물·불·바람과 같습니다. 이 평등한 마음을 얻는다면 마음이 허공과 같아서 높거나 낮음이 없이 항상 머물러 흔들리지 않고 행하는 바 위의는 항상 안정되어 구르지 않고 본 성품은 자연히 평탄하고 자재로워 두려움이 없고 잠잠히 말이 없고 이치를 알고 법을 알고 때[時]와 때 아님을 알고 세간을 따라 다녀도 세간에 섞이지 않고 세간의 여덟 가지 법을 버리어 온갖 번뇌를 없애고 시끄러움을 멀리 여의어 홀로 거처하기를 즐겨하리니, 보살은 이러한 여러 법을 수행하여 모든 선정에 마음을 편히 머물러서 세간의 하는 일을 여의는 것입니다.

 

이 보살은 방편과 지혜로써 선바라밀에 들어가므로 선정에 들 때에는 크게 슬픈 마음[大悲心]을 내어서 모든 중생을 위하므로 이를 방편이라 하고 그 마음이 길이 고요하므로 이를 지혜라 하며, 들 때에 부처님을 염하므로 이를 방편이라 하고 선정에 의지하지 않으므로 이를 지혜라 하며, 들 때에

 

                                                                                 [872 / 1773] 쪽

모든 착한 법을 섭취하므로 이를 방편이라 하고 법성을 분별하지 않으므로 이를 지혜라 하며, 들 때에 부처님 몸으로 장엄하므로 이를 방편이라 하고 부처님 몸과 법신(法身)에 분별을 내지 않으므로 이를 지혜라 합니다.

 

또 들 때에 염불하는 소리가 범(梵)의 음성과 같으므로 이를 방편이라 하고 법성 가운데 말하는 모양이 없으므로 이를 지혜라 하며, 들 때에 마음을 받아 가짐이 금강(金剛) 같으므로 이를 방편이라 하고 모든 법을 생각하되 본 성품이 어지럽지 않으므로 이를 지혜라 하며, 들 때에 본래의 서원을 버리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므로 이를 방편이라 하고 모든 법에 나 없음[無我]을 생각하므로 이를 지혜라 합니다.

 

또 들 때에 모든 선근을 생각하므로 이를 방편이라 하고 선근의 성품을 생각하되 머묾이 없으므로 이를 지혜라 하며, 들 때에 모든 불세계를 두루 관찰하므로 이를 방편이라 하고 모든 불세계를 허공과 같다고 보므로 이를 지혜라 하며, 들 때에 보리의 도량을 장엄하므로 이를 방편이라 하고 장엄한 것을 적멸과 같다고 관찰하므로 이를 지혜라 하며, 들 때에 위없는 법바퀴를 굴리려고 하므로 이를 방편이라 하고 법바퀴는 굴림도 굴리지 않음도 없음을 생각하므로 이를 지혜라 합니다.

 

또 들 때에 한결같이 각분(覺分) 돕기를 닦으므로 이를 방편이라 하고 중생을 모든 열뇌(熱惱)의 마음을 알기 위해 여래의 선정을 닦아서 일체 법이 서로 응하고 서로 응하지 않음과 모양이 있고 모양이 없음과 모든 것의 서로 계속됨을 알고 보살의 결정된 생각에 수순하므로 이를 지혜라 하나니, 이것을 일러 보살의 선정에 드는 방편과 지혜라 함이요, 이와 같이 보살은 선바라밀의 방편과 지혜, 두 가지 일을 함께 행하여 부처님의 법 그릇[法器]을 얻음으로써 모든 마(魔)가 파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법을 연설할 때에 3만 2천의 보살이 일등(日燈)삼매를 얻었다.

 

“어떤 인연으로써 일등삼매라 하는가 하면, 마치 해가 나올 때 등불과 달의 광명과 별들의 밝음은 다 나타나지 않음과 같이 보살 대사가 이 선정을 얻고 나서 먼저 지혜를 닦음으로써 2승(乘)의 배워야 할 이[學]와 배울 것이 없는 이[無學]와 다른 중생들이 얻는 지혜가 다 나타나지 못함도 그러하나니, 이를 일등삼매라고 합니다.

 

                                                                                [873 / 1773] 쪽

보살이 선바라밀에 머문다면 곧 한량없는 백천 가지의 삼매에 자재로움을 얻나니, 이제 그 삼매 중에서 약간의 부분을 말하자면 그 삼매의 이름은 전등(電燈)삼매·정(淨)삼매·월광(月光)삼매·정장엄(淨莊嚴)삼매·일광(日光)삼매·불가사의(不可思議)삼매·용출(湧出)삼매·조명(照明)삼매·무구광명(無垢光明)삼매·공덕광명(功德光明)삼매·일체법중득자재(一切法中得自在)삼매·길도(吉道)삼매·무우(無憂)삼매·견칭(堅稱)삼매·용출여수미산등(湧出如須彌山等)삼매·법거(法炬)삼매 등입니다.

 

또 법건(法健)삼매·법존(法尊)삼매·자재지일체법(自在知一切法)삼매·주법취(主法聚)삼매·총지법정(摠持法淨)삼매·수지타심행(隨知他心行)삼매·법당영락(法幢瓔珞)삼매·소일체번뇌(燒一切煩惱)삼매·파사마력(破四魔力)삼매·십력성용건(十力聲勇健)삼매·무애단애(無礙斷礙)삼매·수등(手燈)삼매·시득명문(施得名聞)삼매·지지(持地)삼매·주무아여수미산(住無我如須彌山)삼매 등입니다.

 

또 승제명지(勝諸明智)삼매·지염(智焰)삼매·생혜(生慧)삼매·수선(修禪)삼매·무량자재(無量自在)삼매·심조복무아무아소성취(心調伏無我無我所成就)삼매·수월(水月)삼매·일성(日聲)삼매·무유고하여불(無有高下如佛)삼매·이상(離相)삼매·여선조상사자유희(如선調象師子遊戱)삼매·무퇴불퇴(無退不退)삼매·불순삼매·승정광무아(勝淨光無我)삼매입니다.

 

또 공(空)삼매·무상(無相)삼매·무원(無願)삼매·주심평등(柱心平等)삼매·금강(金剛삼매·증상(增上)삼매·무능승(無能勝)삼매·선(旋)삼매·정성(淨聲)삼매·선분별(善分別)삼매·이번뇌(離煩惱)삼매·광대여공(廣大如空)삼매·일제공덕(入諸功德)삼매·염의진각(念意進覺)삼매·용혜(勇慧)삼매·변무진(辯無盡)삼매·어무진(語無盡)삼매·총지(摠持)삼매·불망(不忘)삼매·선작(善作)삼매·관일체세(觀一切世)삼매·선지소락(善知所樂)삼매·생용약(生踊躍)삼매입니다.

 

또 용자심정(勇慈心淨)삼매·대비근본(大悲根本)삼매·입희(入喜)삼매·사리삼전(捨離三纏)삼매·법의(法義)삼매·법작(法作)삼매·지거(智炬)삼매·지해(智海)삼매·불파탕(不波蕩)삼매·일체심희(一切心喜)삼매·조복(調伏)삼매·해탈지(解脫智)삼매·이자재(已自在)삼매·법장금강당(法場金

 

                                                                               [874 / 1773] 쪽

剛幢)삼매·연화(蓮華)삼매·연화증상(蓮華增上)삼매·이세법(離世法)삼매·부동(不動)삼매·혜증상(慧增上)삼매·제불소염수릉엄(諸佛所念首楞嚴)삼매·무쟁(無諍)삼매·화(火)삼매 등입니다.

 

또 화명(火明)삼매·해탈승지(解脫勝地)삼매·장엄불신(莊嚴佛身)삼매·변조(遍照)삼매·입중생심환희(入衆生心歡喜)삼매·순조도(順助道)삼매·장엄제바라밀(莊嚴諸波羅蜜)삼매·보만(寶鬘)삼매·여제각화(與諸覺華)삼매·여해탈과(與解脫果)삼매·단 이슬[甘露]삼매·속질여풍(速疾如風)삼매·실제(實際)삼매·차해도(遮海濤)삼매입니다.

 

또 산상박(山相搏)삼매·광대신족(廣大神足)삼매·견무량제불(見無量諸佛)삼매·문지(聞持)삼매·불란(不亂)삼매·일념지무량공덕해정(一念智無量功德海淨)삼매들이요, 이와 같이 헤아릴 수 없는 나유타의 모든 삼매가 선바라밀에 들 때에는 다 청정함을 얻습니다. 사리불이여, 이를 일러 보살이 선정을 수행하되 다함없음이라 합니다.”

 

그때 사리불은 무진의보살에게 말하였다.

“훌륭하고 훌륭합니다, 선남자야. 그대는 이미 보살의 선바라밀을 쾌히 말하였으니, 원컨대 그대는 다시 보살의 반야바라밀을 말해주십시오. 보살이 얻는 다함없는 반야바라밀이란 어떠한 것입니까? 선남자여, 반야바라밀을 어떻게 수행하고 어떻게 들어갑니까?”

 

무진의보살이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반야바라밀을 들음과 같이 수행하고 생각함에 잘 들어가야 합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어떤 것을 들음과 같이 수행한다 합니까?”

 

무진의보살이 말하였다.

“들음이란 여든 가지 행을 갖추나니, 그 여든 가지를 말하자면, 수행하려고 하는 순한 마음의 행이요, 필경의 마음 행이요, 항상 발기하는 행이요, 착한 벗에 친근하는 행이요, 교만이 없는 행이요, 방일하지 않는 행이요, 공경하는 행이요, 가르침에 수순하는 행이요, 착한 말에 따르는 행이요, 법사 계신 곳에 자주 가는 행이요, 지심으로 법을 듣는 행이요, 잘 생각하는 행이요,

 

                                                                              [875 / 1773] 쪽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않는 행이요, 부지런히 정진하는 마음의 행이요, 보배라는 생각을 내는 행이요, 약(藥)이란 법 그릇[法器]을 염하는 행이요, 깨달음에 나아가는 행이요, 뜻으로 기뻐하는 행입니다.

 

또 깨달음에 들어가는 행이요, 듣고서 싫어함이 없는 행이요, 버리는 마음[捨心]을 더 자라게 하는 행이요, 조복하는 지혜의 행이요, 많이 들은 이에게 친근하는 행이요, 환희심을 내는 행이요, 몸이 경쾌하고 기뻐지는 행이요, 마음이 화하고 부드러워지는 행이요, 듣고서 지치거나 게으름이 없는 행이요, 이치를 듣는 행이요, 법을 듣는 행이요, 위의를 듣는 행이요,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행이요, 듣지 못했던 것을 듣는 행이요, 모든 신통을 듣는 행이요, 다른 승(乘)을 구하지 않는 행입니다.

 

또 모든 바라밀을 듣는 행이요, 보살의 법장(法藏)을 듣는 행이요, 모든 거둬주는 법을 듣는 행이요, 방편을 듣는 행이요, 4범(梵)을 듣는 행이요, 바른 지혜를 듣고 염하는 행이요, 사는[生] 방편을 듣는 행이요, 생사 없는[無生] 방편을 듣는 행이요, 깨끗하지 못함을 관찰하는 행이요, 사랑[慈]을 생각하는 행이요, 인연을 관찰하는 행이요, 덧없음을 관찰하는 행입니다.

 

또 괴로움[苦]을 관찰하는 행이요, 나 없음[無我]을 관찰하는 행이요, 적멸(寂滅)을 관찰하는 행이요, 공(空)을 관찰하는 행이요, 무상(無相)을 관찰하는 행이요, 무원(無願)을 관찰하는 행이요, 조작 없음을 관찰하는 행이요, 착함을 조작하는 행이요, 진실을 지니는 행이요, 잃어버리지 않는 행이요, 좋거나 나쁜 것의 머무는 곳에 마음을 방호(防護)하는 행이요, 부지런히 정진하여 게으름이 없는 행이요, 모든 법을 잘 분별하는 행이요, 모든 번뇌가 짝이 아님을 아는 행입니다.

 

또 착한 법 옹호하는 것을 자기의 짝으로 하는 행이요, 번뇌의 짝 아닌 것을 항복시키는 행이요, 바른 법재(法財)에 친근하는 행이요, 모든 빈궁을 끊는 행이요, 슬기로운 이의 찬탄하는 행이요, 영리한 근기를 즐겨하는 행이요, 성인의 권하는 행이요, 성인 아닌 자로 하여금 즐겁게 하는 행이요, 모든 진리[諦]를 관찰하는 행이요, 음(陰)의 허물과 근심[過患]을 관찰하는 행이요, 함이 있음[有爲]은 허물과 근심이 많다고 생각하는 행이요, 이치를 생각하는 행이요, 온갖 나쁜 것을 조작하지 않는 행이요, 자신이 이롭고 다른 사람을

 

                                                                                [876 / 1773] 쪽

이롭게 하는 행이요, 모든 착한 업에 수순하여 더 정진하는 행이요, 정진하여 증상하는 행이요, 모든 불법을 얻는 행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이 그의 들음과 같이 여든 가지를 갖추는 행이라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함에는 서른두 가지 일을 갖추어 잘 생각함에 드나니, 그 서른두 가지란, 선정을 받아 지님에 잘 들며, 지혜를 분별함에 잘 들며, 마음의 유화(柔和)함에 잘 들며, 몸의 홀로 수행함에 잘 들며, 12인연에 잘 들며, 끊지 않음에 잘 들며, 떳떳하지 않음에 잘 들며, 인연으로 나는 법에 잘 들며, 중생 없고 수명 없고 사람 없음에 잘 들며,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머무는 것도 없는 곳에 잘 들며, 잘 정진 없는 데 들되 인과를 끊지 않으며, 잘 공에 들되 게으르지 않으며, 잘 모양 없는데 들되 폐하지 않으며, 잘 원 없는 데 들되 버리지 않으며 공과 무상과 무원을 증(證)하지 않는 데 잘 듭니다.

 

여러 선정 사매를 내는 데 잘 들며, 선정의 남(生)을 따르지 않는 데 잘 들며, 모든 신통을 내는 지혜에 잘 들며, 누(漏) 없는 법을 증하지 않는 데 잘 들며, 안[內]으로 관찰하는 법에 잘 들며, 결정을 증하지 않는 데 잘 들며, 함이 있는 법[有爲法]의 과환을 생각하는 데 잘 들며, 함이 있는 법에 집착하지 않는 데 잘 들며, 모든 중생의 나 없음[無我]을 관찰하여 큰 슬픔[大悲]을 버리지 않는데 잘 들며, 온갖 갈래의 겁나고 두려운 곳에 잘 들며, 비록 모든 갈래에 나더라도 업 때문에 나지 않는 데 잘 들며, 애욕을 여의는 데 잘 들며, 애욕 여의는 법을 증하지 않는 데 잘 들며, 즐거움과 애욕을 버리는 데 잘 들며, 법의 즐거움을 버리지 않는 데 잘 들며, 희론(戲論)의 모든 깨달음을 버리는 데 잘 듭니다.

 

또 방편의 모든 관찰을 버리지 않는 데 잘 드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를 일러 보살은 반야바라밀의 서른두 가지 일을 수행함에 잘 생각에 드는 것이라 합니다.

 

또 잘 생각한다는 것은 이른바 선순(善順)한 글귀니, 선순한 글귀란 시작하지 않는 글귀, 끝나지 않는 글귀, 의지함이 없는 글귀, 머물지 않는 글귀, 움직이지 않는 글귀, 의착하지 않는 글귀, 평등한 글귀, 평등도 아닌 글귀, 진

 

                                                                               [877 / 1773] 쪽

실한 글귀 등입니다.

 

또 바르고 참된 글귀, 변하지 않는 글귀, 청정한 글귀, 길이 고요한 글귀, 불타지 않는 글귀, 들지 않는 글귀, 낮추지 않는 글귀, 멸하지 않는 글귀, 더하지 않는 글귀, 같지 않은 글귀, 희론하지 않는 글귀, 진여의 글귀, 진여가 아닌 글귀, 진여이며 진여가 아닌 글귀, 진여도 아니고 진여 아닌 것도 아닌 글귀, 3세 평등한 글귀, 3제(際)의 글귀, 색(色)에 머물지 않는 글귀, 수(受)와 상(想)과 행(行)과 식(識)에 머물지 않는 글귀, 지대(地大)에 머물지 않는 글귀, 수대(水大)·화대(火大)·풍대(風大)에 머물지 않는 글귀, 눈의 경계[眼界], 색의 경계[色界], 눈의 식별의 경계[眼識界]에 머물지 않는 글귀, 귀의 경계, 소리의 경계, 귀의 식별의 경계[耳識界]에 머물지 않는 글귀, 코의 경계, 냄새의 경계, 코의 식별의 경계[鼻識界]에 머물지 않는 글귀, 혀의 경계, 맛의 경계, 혀의 식별의 경계[舌識界]에 머물지 않는 글귀, 또 몸의 경계, 촉감의 경계, 몸의 식별의 경계[身識界]에 머물지 않는 글귀, 뜻의 경계, 법의 경계, 뜻의 식별의 경계[意識界]에 머물지 않는 글귀, 이치를 염하는 글귀, 지혜를 염하는 글귀, 분명한 이치의 경(了義經)의 글귀, 법을 염하는 글귀 들이니, 이를 일러 보살이 잘 생각함에 드는 것이라 합니다.

 

또 잘 사유(思惟)한다는 것은 이른바 모든 착한 법에 있어서 나[我]와 나 없음[無我] 이러한 법을 수순하여 관찰함이니, 만약에 중생의 나 없음을 안다면 이것이 바로 모든 법을 수순하여 관찰함이며 이와 같이 관찰함은 바로 잘 사유함에 드는 것이며 잘 사유함은 바로 생사와 열반을 동일한 법계라고 사유함과 같음이오. 이 두 가지 글귀를 관찰하되 차별이 없다면 이러한 견(見)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잘 사유함에 든다 하며, 만약에 검은 법과 흰 법을 관찰하되 두 가지 성품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다면 이도 부지런히 정진하여 잘 사유함에 든다 할 것입니다.

 

또 잡을 것이 있음과 잡을 것이 없음을 관찰하되 움직이지 않고 믿지도 않는다면 이를 부지런히 정진하여 잘 생각함에 든다 하며, 보살이 착한 생각을 일으켜서 중생을 위해 버리지 않고 모든 법 모양에도 분별하지 않는다면 이를 보살이 착한 생각을 낸다 하리니, 사리불이여, 들음과 같이 수행하는 자가 이 착한 생각에 들게 되어 착한 생각을 갚는다면 이를 지혜라 합니다.

 

                                                                                [878 / 1773] 쪽

사리불이여, 보살의 지혜는 열여섯 가지 법 가운데에 머물지 않습니다. 열여섯 가지 법이란 것은 무명, 지어감, 식별, 이름과 색, 여섯 가지 감관, 닿임, 느낌, 애욕, 집착, 존재, 나고 늙고, 죽음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무명의 멸함과 생사의 멸함에 머물지 않으며, 근본의 몸의 소견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예순두 가지 소견에 머물지 않으며, 높고 낮음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세간의 법과 이익과 쇠함과 헐뜯고 기림과 칭찬하고 나무람과 괴롭고 즐거움에 머물지 않으며, 만만(慢慢)과 증상만(增上慢)과 승만(勝慢)과 아만(我慢)과 하만(下慢)과 교만(憍慢)과 사만(邪慢)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스무 가지 번뇌에 머물지 않습니다.

 

또 욕심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거칠고 가는 것과 상·중·하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탐욕으로 일으키는 모든 장애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모든 번뇌에 머물지 않으며, 음욕과 애욕의 흐림[愛濁]에 머물지 않으며, 음(陰)의 마와 죽음의 마와 번뇌의 마와 자재천의 마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마로 인하여 일어나는 모든 마군의 일에 머물지 않습니다.

 

또 나와 남[人]과 중생과 수명과 양육(養育)과 장부[士夫]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중생의 모양 취함에 머물지 않으며, 업의 장애와 과보의 장애와 법의 장애와 번뇌의 장애와 모든 소견의 장애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모든 습기에 머물지 않으며, 사상(思想)과 억상(億想)과 분별상(分別想)과 연상상(緣相想)과 경계와 듣고 보고 깨달아 아는 데 머물지 않으며, 내지 모든 번뇌에 머물지 않으며, 중생의 심행(心行)에 따르는 지혜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8만 4천의 법 덩어리에 머물지 않으며, 간탐과 보시, 파계와 지계, 성냄과 참음, 게으름과 정진, 어지러움과 선정, 어리석음과 지혜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모든 바라밀의 짝과 짝 아닌 것에 머물지 않으며, 안정과 혼란, 삿됨과 바름, 착함과 착하지 않음, 세간과 출세간, 지음과 지을 수 없음, 누(漏) 있음과 누 없음, 함이 있음과 함이 없음, 검은 법과 흰 법, 생사와 열반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모든 법의 짝과 짝 아닌 것에 머물지 않으며, 중생의 다른 모양과 모든 승(乘)의 다른 모양, 불세계의 다른 모양과 모든 부처님의 다른 모양, 모든 법의 다른 모양과 성인 무리[聖衆]의 다른 모양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879 / 1773] 쪽

그 밖의 모든 다른 모양에 머물지 않으며, 앎과 알지 못함, 인식과 인식하지 못함, 세간의 이치와 참된 이치에 머물지 않으며, 내지 온갖 모양으로서 이른바 보살의 생각하는 지혜 들음 없고 행함 없고 몸 없고 모양 없고 형체 없고 함이 없는 이러한 참된 지혜에 머물지 않습니다. 모든 지난 기억과 오는 생각과 마음이 일어나고 그치고 머묾과 명자(名字)의 다른 모양에 머물지 않는 것입니다. 사리불이여, 이것을 일러 보살의 참된 지혜는 이러한 16법에 머물지 않는다 합니다.

 

사리불이여, 보살의 지혜란 것은 처소에 따라 여덟 가지 방편을 갖추나니, 이른바 모든 음(陰)의 방편과 계(界)의 방편과 입(入)의 방편과 모든 이치의 방편과 인연의 방편과 3세의 방편과 모든 승(乘)의 방편과 법의 방편이니, 모든 음(陰)의 방편은 물거품 같고 더울 때 아지랑이 같고 파초(芭蕉)나무 같고 허깨비 같고 꿈 같고 외치는 소리의 메아리 같고 거울 속의 모습 같고 변화하는 색 같고 물거품의 성품 같고, 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고 수명도 아니고 남도 아니며, 색(色) 또한 그러하나니, 능히 이와 같이 안다면 이를 일러 보살이 색을 관찰하는 방편이라 합니다.

 

또 수(受)는 마치 물거품 같고, 상(想)은 마치 아지랑이 같고, 행(行)은 파초 같고, 식(識)은 마치 허깨비 같으므로 물거품 같고 아지랑이 같고 파초 같고 허깨비 같은 성품은 나도 없고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고 남도 없으며, 수·상·행·식 또한 그러하나니, 능히 이와 같이 안다면 이를 일러 보살이 수·상·행·식을 관찰하는 방편이라 합니다.

 

모든 음(陰)은 꿈 같고 메아리 같고 모양 같고 그림자 같고 변화하는 성품 같으므로, 나도 없고 남도 없고 수명도 없고 중생도 없으며, 모든 음(陰) 등도 또한 그러하나니, 능히 이와 같음을 안다면 이것을 일러 보살의 음을 관찰하는 방편이라 합니다.

 

보살의 계(界)아는 방편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법의 경계는 땅의 경계, 물·불·바람의 경계이므로 이 법의 경계 속에는 딱딱한 모양과 눅눅한 모양과 더운 모양과 움직이는 모양이 없으며, 법의 경계는 눈의 경계, 귀의 경계, 코·혀·몸·뜻의 경계이므로 이 법의 경계 속에는 보는 모양과 듣는 모양과 냄새 맡는 모양과 분별하는 모양과 깨닫는 모양과 아는 모양이 없습니

 

                                                                                [880 / 1773] 쪽

다.

또 법의 경계는 색의 경계와 소리·냄새·맛·촉감·법의 경계이므로 이 법의 경계 속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양과 귀로 들을 수 있는 모양과 코로 냄새 맡을 수 있는 모양과 혀로 분별할 수 있는 모양과 몸으로 깨달을 수 있는 모양과 뜻으로 알 수 있는 모양이 없으며, 법의 경계는 눈의 식별의 경계, 귀·코·혀·몸·뜻의 식별의 경계이므로 이 법의 경계 속에는 눈의 식별로 아는 색이 없고 내지 뜻의 식별로 아는 법도 없으며, 법의 경계는 색의 경계이면서 법의 경계는 색으로 만든 모양이 아니고 내지 모든 법의 경계가 다 그러하므로 법의 경계와 나의 경계가 둘 없고 분별 없습니다.

 

또 법의 경계[法界],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 아계(我界), 생사계(生死界), 열반계(涅槃界)가 둘 없고 분별 없으며, 법의 경계와 허공계(虛空界), 모든 법의 경계와 아계와 공계가 모양 없고 원 없고 지음 없고 내지 않고[不出] 나지 않아서[不生] 아무것도 없음이 열반과 같으므로 허공과 열반과 모든 법들이 둘 없음이요, 능히 알고 또 이와 같이 말한다면, 이것을 일러 보살의 계 아는 방편이라 합니다.

 

보살의 입(入)을 관찰하는 방편이란 어떤 것인가 하면, 부처님 말씀과 같이 눈도 공하고 나도 공하고 내 것도 공합니다. 왜냐하면 이 눈의 성품 속에는 나 없고 내 것이 없고 귀·코·혀·몸·뜻의 공함이 다 그러하므로 이 감관을 관찰하는 자는 모든 법의 착하고 착하지 않는 것이 두 가지 모양 없음을 보나니, 이것을 보살의 감관 관찰하는 방편이라 하며, 눈의 감관이든 색의 감관이든 또는 눈과 색의 욕심 여읨을 보되 욕심 여의는 법을 증(證)하지 않는다면, 이것을 보살의 입을 관찰하는 방편이라 합니다.

 

또 귀의 감관과 소리의 감관이거나 코의 감관과 냄새의 감관이거나 혀의 감관과 맛의 감관이거나 몸의 감관과 촉감의 감관이거나 뜻의 감관과 법의 감관에서 욕심 여읨을 보되 욕심 여읨을 증하지 않는다면, 이를 보살의 감관 관찰하는 방편이라 함이니, 이른바 감관은 성인의 감관과 성인의 감관 아닌 것이 있고, 성인의 감관이라 함은 도(道)를 닦음이요, 성인의 감관 아니라 함은 도를 닦지 않음이니, 만약에 보살이 도에 머물되 도 닦지 않는 자에게 크게 슬픈 마음[大悲心]을 내어 도에 감관을 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을 보살의......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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