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념처경(109)-1090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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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색의(壞色衣)입고 또 분소의(糞掃衣) 입고 선한 마음으로 악을 행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곧 천상에 태어나리. 만일 언제나 선정에 들고 항상 세상을 벗어날 마음 있어 한결같이 한적한 곳을 즐기면 그 사람은 곧 천상에 태어나리. 좋거나 혹은 좋지 못하거나 남에게서 얻은 그것에 맡겨 기뻐하지도 않고 성내지도 않으면 그 사람은 곧 천상에 태어나리. 색이 더럽고 때 묻은 분소의 입고도 이런 옷에 만족할 줄 알면 그 사람은 곧 천상에 태어나리. 평상이나 맨땅이나 누각이나 혹은 다른 어떤 곳에 있거나괴롭다 즐겁다는 마음 내지 않으면 그 사람은 곧 천상에 태어나리. 파랑·노랑·빨강·하양 등 눈으로 보는 그런 색에 대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면 그 사람은 곧 천상에 태어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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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거나 두 가지 소리 듣고도 집착하지 않고 바른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곧 천상에 태어나리. 여섯 감관을 잘 제어하여 경계를 즐거워 하지 않고 마음을 거두어 흔들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곧 천상에 태어나리. 이렇게 큰 이익을 얻고 한결같이 늘 쾌락을 누리면서 일체 선업을 모두 지으면 그 사람은 곧 천상에 태어나리. 일체의 선업을 행하면 그것은 곧 가장 훌륭하나니 번뇌 없는 법을 행하는 이 그 사람은 곧 천상에 태어나리. 만일 그 업보를 잘 알아 능히 훌륭한 업보를 짓고 괴로움을 항상 두려워 하면 그 사람은 곧 천상에 태어나리. 이렇게 그 천자는 턱 밑과 목구멍 위에서 그 여러 상을 보고 매우 두려워 하여, 이 게송을 읊었다. 그는 강물 언덕에서 여러 하늘과 함께 본성이 방탕한 그 본래의 업 때문에 그런 상이 목구멍에 나타난 것이요, 다른 곳에 가면 볼 수 없는 것이다. 인연이 있으면 볼 수 있지마는 인연이 없으면 그것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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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도 보지 못한다. 왜냐 하면 일체의 법은 인연으로 생기기 때문이다. 또 그 천자는 본성이 방탕하기 때문에 그 행동도 방탕하다. 그는 구욕산을 떠나 다시 보위산(寶圍山)으로 간다. 마음이 기쁘기 때문에 갖가지로 장엄하고 현재에 생기는 욕심이 그 마음을 끌고 가므로 미래에 있을 여러 가지 두려움은 생각하지 않는데 그것은 감관이 흔들려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하늘에서 가장 훌륭한 쾌락을 누리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이 웃으며 갖가지로 유희한다. 그 강물 가에 있는 온갖 나무들은 여러 가지 꽃을 다 다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상환희조(常歡喜鳥)라는 새들이 많다. 또 보위산보다 더 훌륭한 산들이 있는데 한량 없는 백천 곳에서 서로 섞인 여러 가지 보배를 모두 갖추었다. 하늘들은 쾌락을 바라기 때문에 그것을 보러 가려고 한다. 그들은 멀리서 그 산을 둘러 싼 광명이 허공을 뚫는 듯 위로 솟는 것을 본다. 그것은 일찍이 보지 못했던 것인데 갑자기 본 것이다. 그 광명은 파랑·노랑·빨강·자주빛 등으로서 만 유순에 가득하다. 또 그 잡보의 광명은 그 밖의 한량없는 보배 산에 있는 광명보다 뛰어 났다. 마치 수미산의 여러 광명이 일체 다른 산의 여러 광명을 부수는 것처럼, 이 보위산의 여러 광명이 다른 보배 산들의 광명을 부수는 것도 그와 같다. 그 산은 바라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한다. 다음에는 둘째 감관인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있으니, 이른바 갖가지 강물 소리와 공작 등 7보의 날개를 가진 새들의 온갖 소리로서, 이런 한량없는 종류의 온갖 새 소리가 있고, 또 보배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는 방울 그물이 있어서 바람이 불면 그 소리의 미묘함은 비유할 수가 없다. 보위산은 이런 소리로 귀를 즐겁게 한다. 또 그 산은 셋째 감관인 코를 즐겁게 한다. 하늘 무리들이 그 산까지 가기 전에, 그 산에 있는 한량없는 꽃은 한량없는 향기를 내어 그들의 코를 즐겁게 한다. 보위산은 이렇게 셋째의 감관(코)을 즐겁게 한다. 또 그 산은 넷째 감관인 혀를 즐겁게 한다. 이른바 혀를 즐겁게 하는 것으로서 빛깔과 향기와 맛이 있는 술이 있어서 혀를 만족시키고, 또 갖가지 맛난 과실로 만족시킨다. 그 산은 또 그들 몸으로 하여금 무봉의(無縫衣)의 촉감을 얻게 하는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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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없는 그 옷들은 매우 부드럽고 또 시원한 바람이 불어 그 몸에 즐거운 촉감을 준다. 그 대보산은 이렇게 천상의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그들의 다섯 감관은 이처럼 즐거움을 받는다. 다섯 감관의 즐거움처럼 뜻도 그와 같아 가장 훌륭한 즐거움을 받는다. 이 산은 일체의 감관을 모두 즐겁게 하고, 또 이와 같이 하늘 무리들을 이익 되게 한다. 그 때에 그는 이렇게 보위산에 가면 그 산은 광명에 둘러 싸이고 한량없는 종류의 광명을 내어 거기에 둘러 싸인다. 한량없는 백천의 연꽃, 흐르는 물·강·못 등으로 장엄하고 금·비유리·푸른빛의 묘한 보배와 백은 보배 등 갖가지로 섞여 백천으로 장엄하였다. 그들은 이 산을 보고는 본성으로 즐거워하는 데다가 이 산을 보기 때문에 백 배로 즐거워 하며, 천녀들과 함께 다시 쾌락을 누리면서 기뻐한다. 그리하여 못 견딜 희망으로 그 산의 굴과 골짜기들을 간절히 보고자 한다. 가는 곳마다 연꽃 못 숲이 있어서 그들은 이 산봉우리에서 저 산봉우리로, 이 강에서 저 강으로 가고, 수타(首陀)가 있는 곳에서는 이 보배 숲에서 저 보배 숲으로 가서 온갖 새들을 두루 다 보고, 또 5락(樂)의 소리 같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유희하고 즐거워 한다. 그들의 눈·귀·코·몸 등에 대한 다섯 가지 경계는 모두 사랑할 만하고, 색·소리·냄새·맛 등에 대한 다섯 감관은 모두 뛰어나고 묘하다. 이렇게 모든 감관은 그 모든 경계에서 즐거움을 받는다. 이런 경계를 사랑하여 방탕하기 때문에, 현세의 괴로움이나 즐거움도, 과거의 괴로움이나 즐거움 등을 모두 잊어 버린다. 그리하여 전에 보았던 과거의 업의 과보로 목구멍에 나타났던 갖가지 글자도 다 잊어 버린다. 이렇게 갖가지로 유희하면서 쾌락을 누린다. 그러므로 과거에 지었던 업을 모두 잊어버린다. 그 하늘의 뛰어나고 묘한 보위산봉우리를 정무구(淨無垢)라 한다. 그렇게 때가 없고 청정한 곳에서도 행전(行殿)의 티끌을 본다. 그들은 궁전에서 다니고 궁전의 가는 곳에서 묘한 보배의 티끌이 있기 때문에 그런 청정한 곳에도 궁전의 티끌을 보거늘 하물며 다른 하늘의 몸이나 그 밖의 물건들이겠는가? 그것들은 다 갖가지로 장엄하여 사랑할 만한 몸뚱이지마는 업의 그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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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된 것으로서 여러 가지 다른 종류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 목숨이 다해 타락할 이 하늘 무리들은 어떤 업으로 된 것인가? 그것은 선업의 힘으로 된 것으로서 목구멍에 글자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 그것을 보고도 염증을 내지 않는다. 왜냐 하면 어리석기 때문에 처음에 쾌락을 맛보고 곧 집착하여 염증을 내지 않는 것이다. 저 우둔한 하늘은 남의 가르침을 받거나 혹은 스스로 깨달아, 저 탐욕의 허물을 보고 곧 깨닫고는 변이 닥칠까 두려워 한다. 그들은 이렇게 탐욕의 맛에 집착했다가 그 허물을 보면, 뒷날 불에 태워질 것을 후회한다.'나는 왜 진작 독약이나 칼이나 불같은 이 욕심을 버리지 않았던가. 이 욕심은 곧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의 근본이다. 나는 지금 이 욕심 때문에 반드시 지옥이나 아귀나 축생 등 나쁜 세계에 떨어질 것이다.'이렇게 뒷날 불에 태워질 것을 후회한다. 마음을 닦는 사람은 욕심의 맛에 대해 맛들이거나 즐거워 하지 않고, 욕심의 허물을 보면 곧 맛들이지도 않고 즐거워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욕심의 허물을 알기 때문이다. 그는 지혜가 있어 그 허물을 보기 때문에 뒷날의 후회가 없는 것이다. 그 욕심의 경계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잃어버려도 근심하지 않는 이는 본래 마음을 닦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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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념처경 제 42 권
원위 바라문 구담 반야류지 한역
김월운 번역
6. 관천품
3) 야마천 ⑦
"그 때에 그 하늘들은 걸어서 차츰 그 산봉우리의, 제일 더럽지 않은 거울과 같은 땅에 올라 간다. 그들은 업지(業地)의 거울 속에서 자기들의 몸을 분명히 본다. 어떤 하늘은 과거에 몸·입·뜻을 닦아 업지의 거울에서 자기 이마에 나타난 업의 과보로써 생사를 본다. 즉 그는 어느 때 어느 곳 어느 나라에서 어떤 인연으로 어떻게 물러났는가 하는 상(相) 등을 일체 다 본다. 또 무엇 때문에 장차 타락할 것인지 다른 상과 이마에 그려진 다른 업의 상과 혹은 생업(生業) 등 그 일체의 상을 업지의 거울 속에서 다 본다. 야마천에서 타락할 때는 그것이 '남은 업인가?, 태어날 업인가?, 혹은 몸·입·뜻 등 때문인가?, 그런 인연으로 타락해서는 장차 어떤 지옥·어떤 아귀·어떤 축생들 속에 날 것인가?, 그 축생 속에서 벗어 나서는 욕심을 부리고 방탕하려는 마음에 속기 때문에 업의 바람에 불려 어떤 곳에 태어나며, 또 이와 같이 욕심의 허물 속에서 벗어나는가?' 등을 이마에 그려진 글자에서 자세히 본다. 그 이마의 그림에서 또 이런 것도 본다. 즉 욕심의 허물에서 나올 때 어떤 욕심은 이렇게 다스린다. 즉 욕무광명관(欲無光明觀)을 닦아 그 욕심에 속지 않는 것이다. 또 그 욕심을 다스리는 다른 법이 있으니, 이른바 색을 보고는 '이것은 허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색을 색 그대로 보고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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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관찰하여 욕구하는 마음이 더 불어나지 않는다. 이리하여 다섯 경계 가운데서 욕심의 허물을 이렇게 자세히 본다. 그러므로 그들은 애욕이 없고 애욕이 있더라도 그것이 방해되거나 장애되지 않는다. 애욕은 곧 생사의 종자다. 이리하여 그들은 '애욕을 벗어날 수 있다'고 그 이마에 그려진 글자에서 모든 것을 다 본다. 그들은 그것을 본 뒤에는 훌륭하게 몸을 닦거나 또 뜻을 닦아 악업을 다 버린다. 욕심의 허물을 보기 때문에 욕심에서 벗어날 줄을 알고 욕심의 허물에서 벗어난 뒤에는 전에 쾌락을 누리던 경계의 허물을 볼 때에는 그것은 독한 대추를 먹은 것 같았고 지금 받고 있는 즐거움도 그와 같이 본다.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면 경계에서 쾌락을 누림으로써 나쁜 세계에 떨어지기 때문이니, 이렇게 수행하기 때문에 그들은 경계를 버린다. 그리하여 혹 이마에 쓰여진 글자에서 나쁜 세계로 가는 업으로 말미암아 지옥이나 아귀·축생 속에 떨어지는 것을 보더라도 그것을 보고는 그들은 그런 업을 다 버린다. 그리하여 훌륭한 세계로 가는 업이 다 생기는데 그것은 선업의 힘 때문이다. 그들은 이렇게 보고는 깊은 신심을 내어 선업을 짓고 나아가서는 열반 종자의 선업을 짓는다. 그러나 지혜가 적은 다른 천자들은 마음으로 욕심을 즐긴다. 그들이 전에 지은 업과 업의 그물에서 마음대로 놀았는데 지금 이마에 쓰여진 문자를 보고는 이렇게 생각한다.'만일 이 뒷날 내가 여기서 타락한다면 인간이나 혹은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태어날 곳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다섯 경계의 물결에 들어가 애욕의 강물에 목욕한다. 그리하여 방탕하기 때문에 방탕한 행동을 한다. 이렇게 그들은 배우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하여 지혜가 적기 때문에, 욕심이란 것을 모르고 그것을 버릴 줄도 모르므로 선법은 멸하고, 다시 지옥이나, 아귀·축생에 태어날 업을 짓는다. 왜냐 하면 일체의 선업이 다 멸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욕심에 미혹되어서 다시 지옥이나 아귀·축생 속에 떨어진다. 그 때에 현어(賢語)라는 새가 있어 방탕한 하늘이 방탕하게 노는 것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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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는 그들의 선업을 위하여 다음 게송을 읊는다. 만일 선(善)에 마음이 끌리면 그는 선인이 되고 만일 불선을 따르면 그는 악인이 된다. 여러 곳에다 마음을 쓰면 땅·바람·불·물 등의 그 얻은 바 인연을 따라 이 마음은 그대로 움직인다. 마음은 빨리 가고 또 빨리 돌아 오나니 천상에도 빨리 끌고 가고 나쁜 길에도 빨리 들게 한다. 마음은 빨리 선(善)을 행하나니 만일 마음을 잘 단속하면 일체의 선법을 지을 수 있고 일체의 악업도 잘 끊는다. 일체의 법을 행하는 주인 그것은 이른바 이 마음이다. 또 그러한 뜻에 있어서 그 때문에 마음이라 부르는 것이다. 마음은 항상 사람의 틈을 엿보나니 그러므로 그것을 다 믿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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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체와 성질은 매우 억세어 장사도 그것을 붙들지 못한다. 잠깐 동안에 선을 짓기도 하고 잠깐 동안에 악을 짓기도 한다. 그와 같이 무기(無記)도 짓기도 하나니 그러므로 그 행동 헤아릴 수 없다. 마음은 오는 것도 알 수 없고 마음은 가는 것도 알 수 없다. 먼저는 없다가 뒤에는 있고 있다가 다시 없기도 한다. 마음은 있는 곳 없고 한 곳에 모을 수도 없다. 그것은 몸뚱이가 없기 때문에 또 붙들 수도 없는 것이다. 인연이 모이기 때문에 찰나찰나로 그렇게 생기나니 마치 주우(珠牛)의 똥이 모여그 인연으로 불이 생기는 것 같다. 이와 같이 감관과 경계 등 그 일체 인연으로 마음이 있다. 하나로는 마음을 내지 못하나니 여러 인연 모여 마음 생긴다. 이렇게 마음을 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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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제어하기 어려움도 안다. 뜻이 바른 법을 따라 행하여 부디 욕심을 즐거워 하지 말라. 그 천자들은 이 게송을 듣고는 몸을 닦고 뜻[意]도 닦아 두 가지로 마음을 닦는다. 마음을 닦고는 경계를 즐기지 않고 법을 따라 행하면, 야마천에서 물러나더라도 다시 훌륭한 곳에 나서 천상을 떠나지 않고, 혹 인간에 나더라도 왕이 되거나 대신이 되며, 때로는 해탈하는 종자를 심어 세 가지 보리를 원하는 대로 다 얻고, 혹은 선업을 갖추어 전륜왕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희귀한 업의 상을 거울 속에서 보듯이 보고도 마음을 조절하지 못하면, 그들은 다시 지옥이나 아귀·축생들 속에 떨어진다.또 그 비구는 이 희유한 업이 그린 문자에 나타난 과보의 현상을 보고는 생각한다.'어떤 사람은 알뜰하고 깊은 마음으로 부지런히 여래의 형상을 그리거나 혹은 생각하고 믿는 고요한 마음이 있다. 이와 같이 바른 법의 경전을 쓰거나 마음이 고요하면, 그는 천상에 태어나서 목구멍 안과 이마 위를 보고는 곧 신심을 낼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바른 믿음은 없더라도 왕의 사신이나 남의 심부름꾼이나 혹은 남의 물건을 취하여 살아가는 사람으로 경전을 쓰거나 불상을 그리면, 그도 천상에 태어난다. 그러나 목구멍의 글자를 보아도 그것을 믿지 않고 방탕한 행동을 계속한다. 그도 선업의 종자를 심어 천상에 태어나기는 하였으나 그것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믿음이 없이 왔고 생각이 없이 왔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인(因)이 없으면 그 업의 과보가 없다. 이와 같이 일체는 다 인연을 따라 그와 같은 업(業)이 생기는 것이다. 또 어떤 천자는 성질이 방탕을 좋아하여 방탕한 행동으로 하늘 경계의 오욕의 쾌락을 누리면서 언제나 염증을 낼 줄 모르고, 또 한량없는 욕심을 돋구는 보위산에서, 오랫동안 오욕의 쾌락을 누린 뒤에는, 천녀들과 갖가지로 유희하며 즐거워 한다. 그 뒤에 오욕의 쾌락으로 장엄한 그 산을 떠나 셋째의 주위산(珠圍山)으......
-나무 관 세 음 보 살-
"욕심을 가능한한 적게 가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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